한바탕 시원한 소나기가 쏟아졌다. 이 맘 쯤에 내리는 비는 단비다. 지금 시골에서는 들깨며 콩이며 옥수수 등이 한참 갈증을 호소할 때이다. 더도 말고 하루 한번 씩만 급한 비를 뿌려주었으면 좋으련만 하늘이 언제 쉬이 소원을 들어주던가. 모자라지 않으면 넘쳐서 송두리째 쓸어가 버리는 심술만 가득하지. 할머니는 비탈 밭에 앉아 풀을 뽑으셨다고 전화 속의 음성이 기운차다. 손과 눈에 잡히는 일거리가 없으면 살아있음의 의미를 모를 분이시다.


아침과 저녁으로 마당에는 붉디붉은 보리수 열매가 굴러다닌다. 작년부터 벨까 말까 고민 중인 나무다. 그만 좀 커 줬으면 싶은데도 옆으로 위로 쭉쭉 가지를 뻗치고 있고, 약을 치지 않으면 진딧물이 껴서 옆에 있는 감나무에 옮기기 일쑤다. 보리수 열매는 아무리 잘 익어도 떫다. 예전에 산에서 따먹던 조그만 보리수 열매는 기차게 달았는데, 이 놈의 보리수는 주렁주렁 열매만 풍성하지 맛은 영 아니다. 또 자잘한 잎들은 봄, 여름, 가을에 걸쳐 마당을 어지럽힌다. 감나무와 함께 손바닥만한 마당을 다 차지하고 가리니 햇빛이 들지 않는 마당은 퍼런 이끼가 기승을 부리고, 이런저런 벌레며 날아드는 새들이 싸는 똥도 마땅치가 않다. 해롭건 이롭건 살아있는 것들이니 삭막하지 않아서 좋은 거 아니냐고 자위하다가도 기분에 따라 확 베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 화단에는 이상한 식물 하나가 자라고 있다. 높이가 벌써 내 키를 넘어섰다. 어디서 날아온 씨앗인지 모르겠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조그맣고 하얀 꽃을 피우려는 모양이다. 그 열매가 무슨 약재로 쓰인다고 하는데, 세상모르고 몸을 키우고 있는 식물을 보며 나중에는 산만큼 자라서 집을 덮치는 요상한 상상까지 한다. 하얀 꽃이 만든 열매에서 에이리언이 튀어나오는 것은 아니겠지? 그만 베 버릴까? 그래도 저만큼 컸는데 끝장을 봐야지 않겠어? 설마 하지만 모를 일이다.



자리공이라는 요상한 식물의 정체다. 이름이 영 익숙치 않다. 재밌는 건 아버지께 무어냐 했더니 장록이며 약용이다 하셨고, 엄마에게 물으니 당륙이며 나물로 무쳐 먹는 거라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독초에 가깝다는 사실은 모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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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6-18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에어리언..^^
가끔씩 화분에서 심지않은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는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그래요~^^

물만두 2005-06-18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셔라^^

겨울 2005-06-18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얼굴도 무서워요.^^
날개님, 시골에서 자라서 어지간한 풀들은 다 아는데 풀이 아니면 꽃이려니 했던 게 실수였어요. 하여간 이상한 식물들이 마구마구 자라고 있답니다. 호기심이 깊으면 화를 부를까요?

비로그인 2005-06-19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식물 정체가 파악되면... 알려주세요. 궁금해요..;;

잉크냄새 2005-06-21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황금박쥐가 나올것 같은데요.^^

겨울 2005-06-21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 저기를 뒤져 찾아보니 이 식물은 자리공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라네요. 당륙, 장록, 다미, 상륙이라 부르기도 하고 열매는 독성을 지니고 있어 이 열매가 땅에 떨어지면 떨어진 열매가 부패하여 땅이 산성화 된다고 합니다. 어린잎은 데쳐서 무쳐먹기도 한다는데 어디 무서워서 먹겠어요? 뿌리는 달여서 이뇨제로도 쓰인답니다. 그 밖에도 많은 효능이 있는데 정확한 용법을 모르고 먹으면 독성이 강해 오히려 해롭답니다. 관상용으로 보기에 나쁘지는 않지만 어째 살벌합니다. 당장 뽑아야 할까요? 몇 개는 줄기를 잘라냈어도 세 개 정도가 남았는데 그것도 엄청난 위용을 자랑합니다. 싱싱한 푸르름을 자랑하는 줄기를 몽땅 자를 용기가 일단은 없지만 두고두고 재난이 될까 걱정입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지음 / 이레 / 200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처마 밑에 제비가 깃들기를 기다리는 강화도에 산다는 총각 이야기를 우연찮게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 시인답다는 생각을 했었다. 집터를 가리는지 사람을 가리는지 불행히도 제비는 홀로 사는 남자의 집에는 찾아들지 않더라는 이야기다. 제비를 언제 보았더라.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다. 오랜 옛날, 슬레이트 지붕 처마 밑에 살던 제비와 하얀 똥 검은 똥을 싸던 기억은 삼십 년도 더 묵은 거다. 정말이지 그 많던 제비들은 다 어디에 숨어 집을 짓고 새끼를 낳는 걸까. 강화도의 빈 집에 세 들어 산다는 시인은 어쨌건 남의 처마에 깃든 제비 구경은 실컷 했으리라.


그는 가난을 드러내놓고 말한다. 가난하다. 가난하다. 얼마나 가난하냐면, 홀로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 처지가 안돼 뚝, 떨어진 어느 시골에 보증금 100만원에 월 2만 원짜리 방을 얻어 주고는 시시때때로 못난 자식이라고 자책한다. 가산이 기울고 형제는 뿔뿔이 흩어지고 그 와중에 노모의 처지가 가장 쓰라린 것이다. 굳이 골라내어 가난을 쓴 것은 아닐진대 써보니 온통 기억들이 가난뿐이라서, 그것을 들여다보는 마음도 덩달아 쓰리다.


가난에 길들여져 익숙한 사람끼리 공감하는 거와는 별개로 웬 지지리 궁상이냐고 눈도 한번 흘겨보지만, 가슴에 꼭꼭 묻어두고 선뜻 말하기 꺼려지는 말들을 보태지도 빼지도 않은 그대로 빨랫줄에 척척 널어놓는 시인이 착하다. 누굴 원망하지도 세상 앞에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이렇게 살았다고 수줍게 말하는 시인이 참 착하다. 앞으로의 삶도 크게 다를 거 없다고, 그게 뭐 어떠냐는, 없는 얘기를 지어내지도 않고 공치사도 없는 진솔한 글들을 두 번 혹은 세 번을 읽어도 마찬가지다. 고요하고 맑아서 선뜻 소리 내어 문을 두드리기가 겁이 나는 산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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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6-09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표 다섯.. 우울과몽상님의 별표 다섯개라는 것에 손을 내밀기로 했습니다..;;

잉크냄새 2005-06-09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부끄럼이 없는 것은 결코 죄악이 아니죠. 가난이 부끄러운 이들에게 가난은 죄악으로 비치겠지만 시인처럼 삶의 한 부분일때는 그저 옆구리에 붙은 살과도 같지 않을까 싶네요. 결코 싶지는 않겠지만요. 근데 이책 시집이 아니라 산문집인가요.

겨울 2005-06-09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간에 시도 나오지만 얇은 산문집이에요. 근데 다듬어진 글들이 시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어요. 그리고 남들 눈에 가난한 것과는 달리 스스로 가난하다는 말을 쉽게 말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저는 그랬거든요. 사실 그건 자존심도 뭣도 아닌데 말이죠. ^^

비숍님, 제 별표는 다분히 주관적인 거랍니다. 하나도 버릴 것 없는 글들을 아까워하며 읽었어요. 산문집치고는 좀 얇거든요. ^^

2005-07-10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 2005-07-11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역시 님의 글의 읽고서. ^^
 

 

삶이라는 게 그렇더라. 흔적을 찾아서 지나간 사진첩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기억 하나가 새삼 잔인하게 다가오고, 며칠을 몸살을 앓듯이 갇혀 있었다. 


지금도 그 사람이 살아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차라리 죽었기를 바란다. 주변에 물어보면 되겠지만 알고 싶지도 알려 하지도 않았다. 늘 허술한 옷차림에 막자란 수염, 내 버려두라는 듯 휘젓는 걸음이 있고 그 뒤로는 무표정의 벙어리 소녀가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아닌 산골짜기에 오두막을 지어놓고 홀아비와 남매가 사는데, 마누라는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도망갔다던가. 그들 가족이 동네에 나타나는 날이면 사람들은 두어 마디씩 품평을 하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술 한 잔을 걸치고 딸내미의 손에는 과자 부스러기를 들려주고 휘적휘적 산으로 돌아가던 사람. 기인인지 야인인지 멋대로 살면서 어린 남매를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일만 시킨다고 했다. 세상에 그런 나쁜 아버지가 있구나 하면서도 결국은 남의 일로 치부하던 그런 시절의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 남자에게도 꽃 같은 아내가 있었다. 소복같이 하얀 치마저고리를 입고 쪽을 진 머리를 한 여자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참혹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여름, 술기운에 광폭해진 남자는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동네 어귀로 끌어내어 발로 차고 때리는데, 그것을 무슨 구경거리라고 어린아이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섰었다. 진흙탕을 뒹구는 흰옷과 풀어헤쳐진 머리, 여자의 비명이 몇 살적의 나였는지 모르지만 슬프고도 무서운 사건으로 여전히 뇌리에 박혀 있다. 그 일 이후, 여자가 도망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고, 벙어리인 딸아이가 남자 손에 끌려 마을로 다니러 왔다. 소문에는 원래 벙어리가 아니었는데 남자에게 맞아서 말을 못한다고,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은 끊임없이 입방아를 짓찧었다.


남편이 마누라를 죽이거나 말거나 구경거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듯 바라보던 동네 사람들의 무관심에 대해서 지금 이러쿵저러쿵 떠든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없는데, 아직도 나는 남자의 뒤에 혹은 옆에 서 있는 빗질도 안한 긴 머리를 한 벙어리 소녀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소녀에게 삶은 무엇이었을까. 그 소녀는 그 삶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을까. 그 소녀는 지금 어디의 무엇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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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6-02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소설 속 인물과 이야기 같습니다.
먹먹하네요.
그 소녀 생각하니......

겨울 2005-06-02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옥과 다름없는 잔인한 일화죠. 가족이라는 이름은 때로 면죄부가 되어, 어떠한 폭력을 휘둘러도 처벌받지 않습니다.

2005-06-18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06-18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 2005-06-18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돌이켜보면 가족이기에 건네지 못한 쉬운 말들이 있어요. 가족이란 심장에 박힌 가시와도 같아서 숨을 쉴 때마다 욱신욱신 아픈 존재지만 빼거나 자를 수는 없어요. 자식은 부모의 업이라는데 형제자매도 마찬가지 같아요.
 

  

 

 

 

 

알렉산더 대왕의 개인 서기관이었던 에우메네스. 아리스토텔레스와 조우하는 1권을 비교적 유쾌하게 읽었고, 2권도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꿈속에 등장하던 여인의 정체와 함께 잔혹한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그때도 넌 울지 않았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조차도 에무메네스는 놀라거나 의문을 품지 않는다.  노예 카논의 설명대로 살해된 엄마의 죽음을 슬퍼하는 순간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되리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24명의 남자들을 상대로하여 대등하게 결투를 벌이는 여인의 동작 하나 하나를 정확하게 기억하면서 정작 그녀가 자신을 낳아준 엄마였다는 사실만은 기억하지 못했던 에무메네스다.   

그가 어찌하여 훗날 알렉산더 대왕의 서기관이 되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양부의 예언처럼 남들과 다른 비범한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용맹성과 잔혹함으로 유명한 스키타이인 여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는 본능적으로 살아남는 법을 깨우쳤다. 또한 갑작스럽게 귀족 집안의 도련님의 신분에서 갈곳없는 노예로 전락하였어도 운명을 비관하지도 않는다. 스키타이인 아버지와 엄마를 살해한 사람들 속에 있지만 도망노예 트라쿠스의 비극적인 말로처럼 맹목적인 복수를 꿈꾸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에무메네스는 어떤 식의 복수를 하고 갇힌 새장에서 달아날 것인가.  그의 몸과 정신에는 부정할 수 없는 스키타이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전쟁에서 쓰러뜨린 적군의 머리가죽과 손가죽 혹은 전신가죽을 벗겨 두건이나 주머니, 깃발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스키타이인들.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그 열 배의 복수를 하였다는 민족. 분명 에무메네스는 스키타이인이다.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광기의 정체가 낙천적이고 재치있는 성격과 어우러져 어떤 형식으로 드러날 지 궁금하다.

역시, '기생수'의 작가답다. 대단한 흡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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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6-0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기생수...

겨울 2005-06-0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아직 안 읽으셨어요? 참 반갑고도 친숙한 그림이지요? 읽는 내내 가슴이 뛰더군요.

panda78 2005-06-01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스토리에 1권밖에 못 읽었는데 2권이 나왔군요. 기생수도 그렇고 칠석의 나라도 그렇고 다 좋았는데, 이번 것도 역시나 마음에 들었어요. ^^

겨울 2005-06-01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판다님도 읽으셨군요. ^^ 뒷 얘기가 궁금해 죽을 지경입니다. 그리운 그림에 끌려 '기생수'도 다시 읽어보고 예전의 기억과 다른 점을 발견하는 기쁨도 누렸지요. ^^

날개 2005-06-02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장바구니 넣어놨는데.. 낼 주문할거예요..^^

겨울 2005-06-0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전 아직 '유레카'를 읽질 못했네요.
 

 

일요일 낮,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았다. 오랜만에 맡는 풀냄새, 흙냄새에 괜히 맘이 설레는데, 잡초 뽑힌 자리마다 이름모를 벌레들이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삭막한 시멘트 마당 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는 잡초도 생명이라고 신기하게 바라만보다가 그것이 커서 씨를 남길까봐 기어이 뽑아 없앴다. 감나무는 노란 감꽃을 피우고, 빠트리고, 화단에는 정체모를 식물 두어 그루가 나날이 자라고 있다. 무슨 꽃을 피울지 궁금해서 두고 보는 중인데, 꽃은커녕 키만 큰 잡초로 자랄 가능서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때때로 꽃이건 풀이건 마음껏 자라도록 내버려두고 싶지만 사람도 없는 집이라고 흉볼 것이 걸렸다. 달력을 보니 어제가 소만(小滿)이다. 산과 들판이 신록으로 물드는 시절, 보리가 가을의 벼처럼 익어가고 죽순이 절정으로 자라는 입하와 망종 사이의 절기.



小滿


이만하면 세상을 채울 만하다 싶은

꼭 그런 때가 초록에게는 있다


조금 빈 것도 같게

조금 넘은 것도 같게


초록이 찰랑찰랑 차오르고 나면

내 마음의 그늘도

꼭 이만하게는 드리워지는 때

초록의 물비늘이 마지막으로 빛나는 때


소만(小滿) 지나

넘치는 것은 어둠뿐이라는 듯

이제 무성해지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

나무는 그늘로만 이야기하고

그 어둔 말 아래 맥문동이 보랏빛 꽃을 피우고


소만(小滿) 지나면 들리는 소리

초록이 물비린내 풍기며 중얼거리는 소리

누가 내 발등을 덮어다오

이 부끄러운 발등을 덮어다오


나희덕의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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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5-22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4000

서재 지붕이 문득 눈에 들어오네요. 앙상한 나뭇가지들......근사합니다.


겨울 2005-05-22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오늘은 종일 빈 화단에 고추를 심을까, 토마토를 심을까 아님 가지를 심을까 궁리를 했어요.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요. 아침 저녁 부지런히 물을 길어 나르기가 두려워 그냥 지나가려다 게으른 습성을 고쳐야지 싶어서요. 로드무비님, 이벤트 중이신 책 '사는게 거짓말 같을 때'를 마침 주문 넣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기대 반 걱정 반이어요. 너무 가슴 아픈 얘기는 읽기도 쓰기도 겁부터 납니다.

잉크냄새 2005-05-23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이건 풀이건 마음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두고 싶은 마음, 공감이 가네요.

겨울 2005-05-23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어디 멀리 다녀 오셨나요? 아님 바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