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에 흠뻑 젖어드는 만화. 때로는 미소 가끔은 눈물(소리없는)로 꿈을 꾸는 만화. 현실보다는 몽상에 취한 듯 매료되어 행복한 만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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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 아빠 - 상
츠치다 세이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3년 9월
3,800원 → 3,420원(10%할인) / 마일리지 190원(5% 적립)
2003년 12월 31일에 저장
품절
여주인공 이즈미는 맑고 고운 심성의 소유자다.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잣대가 반듯하다. 참혹한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그녀가 역시 힘겹게 살아온 주이치를 만나 사랑하고 가정을 이루려 노력하는 모습은 눈물나도록 아름답다. 세상의 이런저런 편견에 맞서 싸워나가는 두사람은 진짜 용기와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싯귀처럼 슬픈 이야기지만 어떻게 살것인지를 이 만화는 묻고있다.
소년별곡 1
김은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9월
3,000원 → 2,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원(5% 적립)
2004년 01월 10일에 저장
품절
이제 보니 절판이 되었다. 참, 신선하고 기분좋았던 특별한 만화다. 표지그림도 일품이고 거칠은 듯 하면서도 섬세해서 정감이 간다. 요즘 만화처럼 화려하거나 눈이 크지않고 소박해서 작가의 스케치북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만화다. 물론 스토리도 근사하지 않았다면 기억도 없을 터,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게 딱 그만큼인 그런 만화다.
언플러그드 보이 1
천계영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7년 4월
3,000원 → 2,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원(5% 적립)
2004년 01월 10일에 저장
절판
만화를 빌려서 본다는 개념을 처음으로 터득한 만화. 생각해 보면 어지간히 늦되다. 20대에서도 한참 뒤였으니까. 슬플 땐 힙합을 춰라고 말하며 흔들흔들 비틀비틀 놀이터에서 힙합을 추던 현겸이와 지율이가 시시때때로 생각난다. 사족 하나, 이 만화의 지율이란 이름이 예쁘다고 조카여자애 이름이 지율이가 됐다. 그 아인 훗날 무슨 생각을 할까...
파파 톨드 미 Papa told me 22
하루노 나나에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10월
3,000원 → 2,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원(5% 적립)
2003년 10월 10일에 저장
품절
여기가 아닌 어딘가를 상상화로 옮겨 그리며 보는 만화다. 아이지만 어른같은 치세와 젊은 미남 소설가 아빠의 단조로운 일상에는 삶의 온정이 뚝뚝 묻어난다. 메마른 현실에서 도피하고싶을 때 반복해서 읽히는 만화, 근데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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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의 형식에 대한 글을 읽었을 땐 머리를 끄덕였다. 국어교과서의 장황한 해설을 읽는 기분이긴 했지만 다음 중 가장 훌륭하고 합당한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났다면 딱 좋을 정답이었다. 타의에 의해 혹은 스스로가 전문서평가라 칭한다면 저 매뉴얼을 숙지하여 좋은 서평을 쓰기 위한 노력을 어느 정도는 기울일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이 서평이지 간단한 감상 글을 의무가 아닌 자족감에 의해 쓰는 사람에게 그것은 올가미다. 숨이 턱 막힌다. 감시하고 검열 당하는 기분에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이름을 내걸고 쓰는 전문서평이 아닌 다음에야 인터넷 서점에 우후죽순처럼 올라오는 짧고 긴 서평들을 가지고 지나치게 질과 양을 따지는 건 창살 없는 감옥처럼 답답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쓰는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는 글들이다. 읽는 사람과 책이 어울리는 솔직하고 담백한 글들. 매혹적인 읽기와 후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런 글들. 전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쓴 글들. 하지만 좋은 글이든 나쁜 글이든 이 세상에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글의 참과 거짓, 품위와 격은 다를 수밖에 없다. 위선이든 악이든 그 나름의 가치는 있다고 본다. 내가 가진 것을 잣대로 멋대로 재단할 권리 없다. 마음에 안 차고 싫고 거슬려도 그건 그 사정이다. 주관적인 서평을 읽고 맞지 않은 책을 선택했다면 그 한 번의 실수로 서평이 책을 선택하는 최선이 아님을 배우면 된다. 잘못된 선택의 책임이 전적으로 글을 쓴 사람만이 아니라는 거다. 솔직히 읽으면서 그 글이 주관적인지 객관적인지도 모른다면 유구무언이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으라는 강요는 논술강사가 학생들을 상대로 해서나 가능한 것이다. 책을 읽는 목적? 숨 쉬는 목적이 뭐냐고 묻는 거와 같지 않을까.

 

알라딘의 서재 개편. 기대보다는 기다려진다. 계절따라 커튼을 바꾸고 가끔 가구 위치를 바꾸는 걸로 기분전환을 하듯이, 이 서재라는 공간의 바랜 커튼과 낡은 가구에 변화가 생긴다니 기분은 좋다. 어떤 식의 변화인지는 몰라도 초심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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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29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렇습니다. 숨쉬는 목적과 같습니다 지금 제가 책을 읽는 행위는.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죠. 살아간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프레이야 2007-05-29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나 책이나 그림이나 세상 모든 풍광이나... 다 그런 것 같아요.^^

겨울 2007-05-2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그래요, 비단 책만이 아니네요.

아프님. 살아있음의 증명. 그 진정성에 대한 타인의 재단과 독설은 폭력입니다.

잉크냄새 2007-06-0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쓰는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는 글은 바로 우몽님의 글이지요.^^

겨울 2007-06-01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님의 글을 말하는 건데요.^^
 

 

 

 

 

 

 

 

우리는 타락한 피조물로써 늘 가짜 신들을 섬기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남의 행동을 오해하고, 비생산적인 불안과 욕망에 사로잡히고, 허영과 오류에 빠질 위험해 처해 있다.(172쪽)

 

이 책을 통한 가장 큰 소득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었던 기억을 깡그리 지워주었다는 것이다. 연신 감탄사를 뱉을 만큼 멋들어진 문장 투성이였지만 읽고나면 공허해서 내가 무얼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당황했던 그 알랭 드 보통의 재발견이다. 또한 인생에서 이렇듯 오래, 많이 불안에 대해 골몰해 본 적이 없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는 영화제목처럼 삶에서 불안은 매 분 매 초 황홀과 절망 사이를 오락가락 하지만 무의식이 외면을 사주한 것은 아닐까. 불안하면 죄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불안하냐 물으면 뜬금없는 질문이라고 힐난할 테다. 불안할 이유도 필요도 없노라고 자만하면서. 그러나 현실은 얼마나 냉혹하며 나는 또 얼마나 지독한 불안으로 병들어 있는 지를 발견한다.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으로 내 안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정체모를 그림자의 본색을 드러내는,  붉은 빛의 표지에서 심상치 않은 오라를 뿜어내는 그것은 '불안'이다. 


우리는 왜 불안한가. 사랑의 결핍, 속물근성, 욕망, 기대, 지위 때문이라고 하나하나의 근거를 들어 속닥거리는 저자의 친절함은 독약처럼 마음으로 스며든다. 불안이라는 씁쓸한 듯 달콤한 맛에 중독되는 건 시간문제다. 불안은 호수 밑바닥의 침전물이다. 어느 날, 누군가, 우연히 잘못된 실수로 휘저어 버리면 감당할 길 없는 혼란으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 때 떠오른 불안의 근원을 언제까지 무시할 수 있을까. 어쩌면 평생? 타인의 어떤 비난에도 스스로가 떳떳하고 올바르다면 굽힐 필요가 없는 것처럼? 아니면 그것은 인간의 숙명이므로 자신의 나약함과 불완전함을 인정해 버림으로써 초월하는 것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대해 말할 때 그거의 적당한 긴장과 불안은 삶의 에너지로 바뀐다고 한다. 스트레스에 짓눌려 바닥에서 허우적거릴 것인가, 그것을 추진력 삼아 위로 솟구쳐 오를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다, 라고. 거기서 강자와 약자가 갈리고, 현명과 어리석음으로 판가름 난다. 불안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탐색과 사유를 거듭해 철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저술가가 되기도 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불안의 조각들에 채여 설 곳, 앉을 곳을 잃고 거리로 내몰리기도 한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것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할 때마다 우리는 실제로 소유한 것이 아무리 적더라도 부자가 될 수 있다.(80쪽)

 

평소 경제관념이 제로라서 돈에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심리 밖으로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나로서는  루소가 말하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두 가지 방법 중에서 단연 나는 후자 쪽이다.

'부는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   욕심을 갖지 못하는 것, 없는 것이 바보취급을 당하는 이런 세상에서 무슨 뜬구름 잡은 이야기냐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부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 이라는 것에 절대 공감이다. 글에서의 이런 위안까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그러나 비극 작가들은 저항할 수 없는 진실로 우리를 이끈다. 역사상 인간이 저지른 모든 어리석은 일은 우리 자신의 본성의 여러 측면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내부에도 최악의 측면과 최선의 측면을 아울러 인간 조건 전체가 담겨 있으며, 따라서 적당한, 아니 엉뚱한 상황이 닥치면 우리 역시 무슨 짓이든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관객은 이러한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면 기꺼이 말에서 내릴 것이고, 공감이 커지면서 마음이 겸손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자신의 성격상 약점이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아무런 심각한 사고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언젠가 어떤 상황과 마주쳐 무제한의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위력을 발휘하면 자신의 삶도 쉽게 박살나, '어머니와 동침으로 눈이 멀다'라는 신문기사 때문에 고통 받는 불행한 인물과 마찬가지로 수치스럽고 비참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206~207)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조승희의 비극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것. 총기가 허용되는 나라였다면 저런 사건 부지기수로 발생하지 않을까. 핍박받던 외톨이 약자의 돌발적인 분노의 크기에 대해 말하기도 두렵다. 총기라는 건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다면 언제 어느 때라도 보복이 가능한 도구이므로 솔직히 살면서 이런저런 불합리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체격이 작고 힘이 약한 여자라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총기가 허용되는 상황을 몇 번 정도는 꿈꾸기도 했다. 물론 총기 허용으로 발생하는 범죄 빈도가 총기가 없어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해 일어나는 빈도보다 훨씬 높겠지만 그럼에도 만약이라는 영화 같은 상상은 매우 달콤하다. 마이클 무어의 '볼링 포 콜롬바인'을 다시 봐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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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2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0쪽의 글귀가 정말 마음에 와닿습니다. 이 책 사두고 가끔 표지만 들여다보곤
하고 있지요. 얼른 읽고 싶어요.

겨울 2007-05-26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의 책 중에서 가장 끌리는 내용입니다.
다른 책들은 굉장히 무덤덤하게 읽혀서 나하고는 안맞는가보다 했었어요.
 

 

누가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재미있다고 했나. 불구경은 아직 한 번도 못 봤지만 절대 재미있을 것 같지는 않고, 싸움은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열불이 날 뿐이다. 싸움에 능숙하지 못하니까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싫다. 하지만 싫다고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없는 걸로 칠 수는 없다. 내 일 아니면 구경만 하고 있으면 되는데 어찌된 성격이 참견 아닌 참견을 하거나 끼어들어서 사단을 낸다. 결과는 싸움도 못하면서 말만 높아지고 얼굴 험악해지고 감정은 상할대로 상해서 개죽을 쑨다.


주택 밀집지역이 그렇듯이 이 동네의 풍경도 저녁이면 한가한 아주머니들 삼삼오오 모여 수다 떨고, 맛난 음식 있으면 가지고 나와 누군가의 대문 앞에서 둘러앉아 나눠먹는 게 일상이다. 그 모습이 봐줄만한 사람도 있겠지만 눈에 거슬릴 수도 있다. 별로 사교적이지 못한 사람들은 지나가며 매번 같은 사람을 마주쳐야 하는 게 불편할 테지만(예전에는 나도 그랬으니) 그거야 개인 사정이고, 사람 사는 동네가 다 그렇지 철대문 닫아걸고 사는 아파트도 아니고 약간의 불편은 감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문제는 앞집 사는, 정확하게는 앞집의 왼쪽 편에 사는 사람의 괴이한 짓거리다(하도 이상해 고운 말이 나가질 않는다). 무뚝뚝한 나쁜 인상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사는 게 너무 심심해서 심술을 부리기로 했는지 걸핏하면 나와 잘 놀고 있는 동네 아이들을 쫓아다닌다. 요즘 아이들 놀 시간도 없이 바쁘다는 거 알만 한 사람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떠들면 얼마나 떠든다고 아줌마들이 수군거릴 정도로 극성을 떠는가. 거기까지는 그래도 나이 먹은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려니 한다. 집 앞 골목 그늘에 앉아 소일하시는 나이 든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에게까지 성질을 부리는 건 이해불능의 경지다. 사람들 말로는 이 사람 이상한 거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고. 사소한 일로도 동네 사람들과 시비 붙어 싸우는 거 다반사란다. 마치 그게 유일한 삶의 낙인 듯이 말이다.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뭐가 옳고 그른지도 모르고 망아지마냥 날뛰는 게 황당하기 짝이 없다. 전직이 세무공무원이었다나 뭐라나, 참(공무원이었다고 하니까 더 어이없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말과 행동이 심하게 굼뜨고 더듬는 게 딱 봐도 병자처럼 보이는데 왜 그 가족들은 방치하는 걸까. 병원에 데려가 상담이라도 좀 받던지 민폐도 저런 민폐가 없는데 너무 안일하다. 저러다가 울컥하는 심사로 사고라고 칠까 걱정인데, 주변 분들도 이구동성으로 상종하지 말라고 한다. 얽혀봤자 득 될 거 하나 없다고. 귀찮고 성가시고 불편할 뿐. 워낙에 괴팍한 걸로 유명하니 슬슬 피할 뿐 대놓고 맞서지를 않는 것이다. 별 흉흉한 일들이 다 일어나는 세상이니 뭔 일인들 없으랴. 결론은 그 아저씨의 와이프가 두 번인가 나와서 변명 내지 사과 비슷한 걸 했다. 가족으로서도 참 참고 견디기 힘들어 보인다. 그 와이프를 봐서라도 다들 참으라는 눈치를 보니 기분이 더 찜찜하다. 무시하고 참는 것도 쌍방이어야지 어느 한쪽의 일방통행은 괴로운 거다. 사실 차도로부터도 한참은 먼 동네라 아이들이나 동네 사람들의 말소리가 아니면 적막하기 짝이 없는 곳에서 시끄럽다 어쩐다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 정도의 소음이 거슬린다면 정말로 심각한 질병이다. 조용한 절로 요양을 가시거나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다. 음, 그런데 울 할머니 이 싸움과 소동을 약간 즐기시는 듯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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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의 맑음 만큼 기쁘고 설레게 하는 것도 드물다. 매일 맑은 날도 매일 비오는 날도 식상하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도 하얀 구름도 처음 보는 양 바라보게 된다. 군데군데 이끼가 낀 앞집의 낮은 슬레이트 지붕조차도 정겹다. 바람에 날리지 말라고 올려놓은 벽돌도 생경하다. 홀로 사시던 할머니가 서울의 아들집에 다니러 가신 후 비어있는 집은 세월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 추레함이 싫다고 흉하다고 생각하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젠 매끄럽고 번듯하게 페인트칠 된 그 집은 상상하기도 싫다. 낯설 것 같다. 쌓이고 쌓인 먼지가 제 고유의 색을 입어 얼룩덜룩 그림이 된 벽, 녹이 슨 못 자국, 허물어질 듯 갈라지고 모퉁이가 닳아버린 담벼락은 그 자체로 평화롭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집을 거쳐 갔는지도 안다. 병든 노모를 모시고 박스를 주워 생계를 잇던 지체장애의 아주머니의 선량한 얼굴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실까. 조금은 까칠한 주인 할머니와는 달리 세 들어 살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넉넉하고 순했었다. 이제는 과거의 기억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의 떠도는 삶을 떠올리면 그립다는 말로는 부족한 연민이 앞서는. 눈 뜨면 마주 바라보는 정경들이 이렇듯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돌아오는 이런 날엔 빨래줄에 이불을 걸어놓고 먼지 나도록 팡팡 두들겨야지.   

 

~라고 썼는데, 오후부터 구름이 잔뜩 끼고 잠깐이지만 비도 뿌리고 하여튼 날씨가 흉흉했다. 원래 5월이 이렇게 변덕스러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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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5-19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몽님, 빨래줄에 걸린 우몽님의 뽀송한 이불을 상상합니다.
남이 보지 않는 부분을 잘 가려내어 보시는 우몽님의 시선이 이불보다 더 반짝여요.
잘 계셨냐는 인사를 이리 묻습니다.
도대체 정말 잘 지내신겁니까...말많은 여우에게 말도 안걸어주시고.....^^

겨울 2007-05-20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아팠던 팔은 다 나으셨나요?
전, 번잡하고 소소하고 권태로운 일상의 무게에 눌려
책 한 권 제대로 읽을 여유가 없었으니
절대로(?) 잘 지내진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