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나뭇잎이 시멘트 마당 위에 쩍쩍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아. 지겨워. 라는 말이 눈을 뜨면서 시작해서 눈을 감을 때 까지 터져 나오는데, 그것도 역시 지겨워. 젖은 신문지 조각, 붕 떠버린 벽지, 무덤처럼 쌓아놓은 책 냄새가 바이러스처럼 허공을 부유하는 것만 같아서 불쾌해. 천지사방이 비에 젖어 축축해. 오늘 밤엔 보일러를 돌려야 할 거야. 근데, 몸은, 말라비틀어진 북어처럼 버석거려. 건들면 마른 비듬이 우수수 떨어질듯이, 뼈대 앙상한 손가락 발가락이 무시무시해. 가을이면 앓는 알레르기는 불청객이지만 속수무책이야. 아침마다 눈 뜨기가 괴로워 몸부림을 치지만 이것도 곧 지나가겠지. 이대로, 무거운 눈까풀을 닫아걸고 책상에 엎드려 자버리고 싶은, 밤 같은 오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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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박군과 상담했던 생활부장(여교사)은 "상담은 30여분 정도 했다. 돈을 벌어 가게를 차리겠다고 하더라. 상담하면서 어려운 가정 형편을 이야기 했고, 울기도 했다. 하지만 특별히 마음의 상처를 입을 만한 말은 없었다"고 말했다. http://kr.news.yahoo.com/shellview.htm?linkid=33&articleid=2007083111442759124

 

어쨌든 책임을 면해 보려는 안간힘이 보이는데, 입을 열면 열수록 진흙탕에 뒹구는 듯. 어려운 가정 형편을 말하며 우는 학생에겐 그 상황 자체가 상처임을 모르나. 평소 모범생일수록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질책이나 충고 한마디가 엄청난 모멸로 느껴질 수 있다. 그동안 구축한 세계가 땅밑으로 꺼지는 듯 싶을 만큼. 학생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에 대해 학교는  전학이니 어쩌니 하면서 융통성 없이 굴며 엉덩이를 때리고 복도에 벌까지 세웠다.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아니고 고등학교 2학년생에게. 그의 죽음에 영문을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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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는 무릎 사이에 머리를 박고 앉아 있었다. 머리는 맑았지만 현기증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그는 그걸 막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계절이 다시 바뀌기 전에, 모든 곡식이 비에 깨끗이 쓸려가고 햇볕에 마르고  바람에 씻기겠지. 나의 어머니가 이승을 살고 난 다음, 깨끗이 씻기고 날려가고 풀잎 속으로 빨려 들어갔듯이, 나의 손길이 닿은 곡식은 한 알도 남지 않게 되겠지.

그렇다면 도저히 두고 떠날 수 없는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곳에 나를 붙들어 매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나야 하고, 우리들의 어머니를 떠나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집을 떠나지 못하고,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죽으려고 돌아와야 하는 그런 어린애들의 집안에서 태어난 어린애일까? 나는 내 어머니의 무릎에,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의 무릎에, 그렇게 수세대를 거슬러 올라가 모든 이가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죽는 그런 어린애들의 집안 말이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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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녀석에게 준다고 사 놓고는 내가 푹 빠져 읽어버린.

나뭇잎이라는 닌자 마을에 나루토라는 천방지축 외로운 꼬마가 살고 있었다. 설상가상, 꼬마는 만년 낙제생에 고아. 마을 사람들로부터의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며 그 반작용으로 일부러 말썽을 부리는 장난꾸러기지만 그런 소년에게 믿음을 준 선생님이 있었으니, 이름 하여 이루카 선생님. 실력은 제로면서 나중에 커서 호카게(대통령쯤?)가 될 거야, 라고 큰소리 뻥뻥 치는 나루토. 나는 나의 닌자의 길을 갈 테야. 일단 꿈을 크게 가져라 인가? 하하. 

며칠에 걸려 읽고 나니, 정신이 몽롱할 지경이다. 매력적인데, 악당과 대립하는 선한 사람들의 정신 구조는 어느 만화에서나 비슷해서 차별성이 희미해지고 만다. 힘을 얻기 위해서, 강해지기 위해서는 일족이나 가족, 가장 친한 친구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패륜이라니. 이런 사상이 성장기의 애들에게 어떻게 비출까. 그러니까 악당이지 정도? 낙제생도 나루토 같은 근성만 있으면 된다는 적당한 교훈과 무엇보다 대단한 스승과 운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 하여튼 매력적인 만화고, 만화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맨드라미는 참, 싱싱하기도 하다. 어지간한 녀석들은 말라 죽거나 벌레에게 먹히거나 이유모를 병에 걸려 있는데, 이 녀석만은 생명력이 흘러 넘친다. 우리집 마당 구석구석은 지금 채송화와 맨드라미가 만개해 있다. 맨드라미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예쁘다는 말은 솔직히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꽃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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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8-28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드라미, 참 예쁘단 말 안 나오는 꽃이죠^^
그래도 색깔만은 얼마나 선명하고 성질 있게 보이는지...
우몽님, 8월도 가고 있네요^^

겨울 2007-08-28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올 8월은 유난히 길고 지루했어요.
성깔 있는 꽃, 맞아요.
남이 뭐라거나 말거나 우람한 핑크빛 꽃대를 세웁니다.

잉크냄새 2007-08-28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애로선인의 팬이랍니다.ㅎㅎ

겨울 2007-08-28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라, 보셨군요.^^
전 카리스마 가아라의 드라마틱한 인생전환에 감동 먹고 눈물까지.....
 
8월, 당신의 추천 도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아이에 대해 “걘 야구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걔 머릴 열어보면 야구장이 들어 있을걸....... ”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 하는 말 중 상당수가 단어들의 뜻 그대로의 의미가 아님을 아직 알기 전이었다. 나는 내 머리를 열어보면 그 속에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어머니에게 물어보자, 어머니는 “아가, 뇌가 들 어 있단다”라고 하고, 주름진 회색 덩어리의 그림을 보여 주었다. 나는 내 머릿속을 그걸로 채울 만큼 뇌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누구도 그렇게 흉한 것을 머릿속에 넣어 다니지 않으리라고 확신했었다.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야구장이나 아이스크림이나 소풍이 들어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회색 뇌가 들어 있음을 안다. 내 마음에 무엇이 담겨 있든, 뇌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는, 그 그림이 잘못 만들어졌다는 증거 같았다.

내 머릿속에 든 것은 빛과 어둠과 중력과 우주와 칼과 식료품과 색깔과 숫자와 사람들과 온몸이 떨릴 만큼 아름다운 패턴들이다. 나는 아직도 왜 내가 다른 패턴이 아니라 이런 패턴들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책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해 낸 질문들에 답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답하지 않았던 질문들을 생각했다. 나는 늘, 아무도 한 적이 없으니 내 질문들은 잘못된 질문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쩌면 다른 누구도 생각해 낸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둠이 먼저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무지의 심해에 처음으로 닿은 빛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질문들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365~366쪽)

 

 

좋아하는 마저리에게 식사 한번 하자는 말조차 건네지 못하고 그저 바라만보며 그것으로 됐노라고, 그녀의 주변 언저리의 공기나 그늘의 일부인 채로 만족하는 루의 여린 사랑을 쫓아가노라면 가슴이 저릿하다. 자폐를 가진 자신은 정상인 마저리로부터 결코 사랑 따위를 받을 순 없다고 체념하는 그러면서도 간절히 원하는 루의 섬세한 마음이라니. 소설에서 마저리와의 관계는 루의 사념들이 전부다. 통속적인 뭔가를 기대하기도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건 정상인과 장애인과의 사랑 이야기는 아니니까. 마저리는 루가 현재의 익숙한 세계를 깨고 나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계단 같은 존재다. 그 계단이 없이는 벽을 오를 수가 없다. 소설을 다 읽은 뒤,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에서는 안도하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기억하기를 바라면서도 기억하지 못해서 다행(?)이라니, 참.




자폐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뜻인지 혹은 아닌지 의문을 느끼기도 하지만 루는 주어진 현재에 최선을 다한다. 그는 보고 듣고 배운 대로의 삶을 완벽하게 살아간다. 마치 프로그램화된 로봇처럼 기억 속의 매뉴얼을 따라서 반응하고 말하고 사고한다. 루에게 친구란 절대적 신뢰관계에 있다. 화를 내서도, 의심을 해서도, 해를 끼쳐서도 안 된다. 그렇게 구축한 불완전하지만 안전하다고 믿었던 세계가 친구라고 믿었던 돈으로부터 이유모를 공격과 폭언을 들으면서 깨어진다. 루는 조금씩이지만 변화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가 가보지 못한 곳, 체념하거나 포기했던 꿈을 선택을 때임을 자각한다.




그 자신이 조금만 달랐더라면 싶은 순간들. 그가 정상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달라지는 호의적이지 않는 낯선 사람들의 시선과 질문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간절한, 간절한 소망의 실현이 그것이다. 그는 마음껏 별을 보고 싶지만 낯선 길이나 공간이 두려워 떠나지 못한다. 정상인들이 쓰는 말의 이면을 분석을 통해서가 아닌 그저 직감과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원한다. 그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존재들에 대해 그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자각하는 순간 그는 선택한다. 가진 것을 모두 잃을 수 있는,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 안정된 직장, 그리고 생명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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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7-08-28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한번쯤 스스로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네요.^^
오랫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겨울 2007-08-28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지낸다는 것에 회의가 느껴지는 즈음입니다.
아마도 권태일까요.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길.

물만두 2007-08-2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읽었습니다.
루를 보면서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되고 부럽더군요^^

겨울 2007-08-28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함께 읽어서 기분이 좋은데요?
사실, 저도 루가 여러가지 면에서 부러웠어요.
정상이라는 말이 얼마나 모호한 단어인지 생각했구요.
다시 한번 읽고 싶은 멋진 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