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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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청소년 필독서인 이 책의 원제는 "To Kill a Mockingbird (흉내쟁이지빠귀 죽이기)"로, 하퍼 리의 전작이자 후속작인 <파수꾼> 발간에 앞서 한국에 새롭게 소개되었다. 이야기는 1930년대 남부 앨라배마 주의 메이콤이라는 작은 읍내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9살 소녀 스카웃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4살 많은 오빠 젬, 변호사인 아빠 애티커스 핀치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흑인 가정부 캘퍼니아 아줌마가 살림을 맡아 아이들을 돌본다.

스카웃과 젬이 학교가는 길목에 위치한 래들리 가는 호기심의 대상이다. 부 래들리(본명은 아서 래들리)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자로, 아이들 사이에 소문은 무성하지만 실체는 밝혀진 적 없는 무섭고도 신비로운 존재다. 사춘기 때 물의를 일으켰다고도, 서른이 넘어서 아버지의 허벅지를 가위로 찔렀다고도 하고, 아버지에 의해 감금되어 있다고도 한다. 아이들은 부 래들리의 얼굴이 궁금해 마당 안을 기웃거리지만 좀처럼 만날 수 없다. 그 집앞 나무 옹이구멍에 가끔 놓여져 있는 껌, 메달, 비누조각인형 등의 선물을 제외하고는. 어느날 아버지 래들리의 임종으로 관이 집 밖으로 실려 나올 때, 백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한 적이 없는 캘퍼니아 아줌마는 그를 "하나님께서 숨을 불어넣어 주신 인간 중 가장 비열한 인간"이라 평가한다. 그 이후의 언급은 따로 없기에 독자들은 은둔자 부 래들리보다는 어쩌면 아버지에게 뭔가 문제가 있었을지 모른다고 어렴풋이 추측해 볼 뿐이다.

1929년 미국의 경제 대공황 이후, 가난한 메이콤의 일상은 스카웃이 입학한 학교에서의 에피소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이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않은 월터에게 돈을 주자, 아이들은 커닝햄 집안은 갚을 돈이 없기에 무의미한 행동이라 여긴다. 주정뱅이 유얼의 아들은 개학 첫 날만 학교에 오기에 유급 당하는 것이 아이들에겐 놀랄 일이 아니고, 아이의 머리에서 머릿니가 튀어 나오는 걸 보고 기겁하는 선생님을 아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때, 스카웃의 반에서 가장 가난한 학생조차도 백인임을 기억해야 한다. 흑인이 같은 반은커녕 한 학교에 다닌다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기에.

같은 앨라배마 주의 다른 도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으로 대표되는 흑백차별 철폐운동이 1955년에 일어났다는 걸 감안하면, 그보다 20여년 전 시골마을의 상황이 어떠했을지 그려볼 수 있다. 일요일에 아버지의 부재로 가정부 캘퍼니아 아줌마를 따라 흑인 교회에 가게 된 스카웃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성경책과 찬송가 없이 앞에서 흑인 아저씨가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따라 부르는 모습이었다. 의아해 하는 스카웃에게 캘퍼니아 아줌마는 가난해서 찬송가 책을 살 수 없는 것이라기 보다는, 글을 읽을 수 있는 흑인이 몇 명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흑인과는 같은 교회를 다니지도 않고, 식사도 함께 하지 않으며, 혹여나 인종이 다른 남녀가 사랑에 빠질 경우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는 흑백 분리 정책이 있던 시기였다.

이야기는 스카웃의 아버지가 백인여성 성폭행 혐의로 재판장에 선 흑인 청년의 변호를 맡게 되면서 절정에 이른다. 스카웃과 젬은 유색인종 전용석에서 재판을 지켜보고, 그가 무죄라는 정황적 증거가 있음에도 배심원들이 주정뱅이 백인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뿌리깊은 차별과 배척은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어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판단에 크게 실망한 젬에게 앞집 모디 아줌마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생각을 했단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지.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진일보임에는 틀림없어. (399쪽)

이 책의 제목이 '앵무새 죽이기'인 이유는 스카웃의 아빠가 아이들에게 공기총을 사주는 일화에서 드러난다. 애티커스는 맞힐 수만 있다면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좋지만, 앵무새를 죽이면 죄가 된다고 주의를 준다. 앵무새는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농작물에 해를 입히지도 않는 무고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앵무새'를 상징하는 상대적 약자이자 무고한 인물이 여럿 있다. 먼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편견 때문에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회적 낙인이 찍힌 부 래들리이다. 두 번째로는 감히 백인여성의 유혹에서 도망친 흑인(심지어 유부남인데)이자 장애인, 그렇기에 누명을 쓰고 실제로 목숨을 잃은 톰 로빈슨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가족 없이 자신이 욕하는 '흑인' 소녀의 시중만 받으며 세상을 뜬 듀보스 할머니. 그도 어찌 보면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세상을 떠난 소외된 앵무새가 아닐까 싶다.

스카웃이 9살일 때 시작한 소설은 12살이 되어 마무리된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와 오빠 젬이 겪은 사건을 통해 아이들은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도 훌쩍 성장했다. 독자들은 그들의 시선을 통해 그 시대 남부의 실상을 간접 체험하며 인간의 이중잣대, 편견,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욕심을 들여다 본다. 한편 애티커스 변호사, 모디 아주머니 등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인물들을 통해 희망을 품기도 한다. 또한 선동에 이성을 잃고 톰을 죽이려 했던 폭도였던 동시에 스카웃의 천진한 말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마음을 바꾼(그러나 행동으로 옮기긴 어려운) 커닝햄과 같은 사람도 있다. 우리 사회의 불합리성을 보고 잘못되었다 느끼고 분노는 하지만, 나서서 행동하기는 주저하는 대중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이 책을 두고 왜 미국에서 편견과 인종에 관한 최고의 토론 교재라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곁에 두고 우리 사회를 자주 비춰봐야 할 책이다. 현대판 '앵무새 죽이기'는 모습을 바꿔 계속 등장하고 있으니.

더 먼저 집필됐으나 50년 이상 지나서야 발표된 후속작 <파수꾼>에서는 성인이 된 스카웃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니, 속편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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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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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시리즈물의 저작가, 그의 작품을 더 이상 만나볼 수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특히 시간이 지나도 그가 창조한 캐릭터는 생생히 살아 있을 경우엔 더욱. 홈즈를 그리워하는 셜로키언들의 마음을 아는 건지, 캐릭터의 매력을 고스란히 되살린 작품이 나왔다. 앤터니 호로비츠의 셜록홈즈 '실크하우스의 비밀'(2011), 그리고 그 뒤를 잇는 동일 작가의 '모리어티의 죽음'이다. 아서 코난 도일 재단에서 정식 인증을 받았다니, 믿고 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시리즈 중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주홍색 연구'와 '배스커빌가의 개'인데, 내용도 물론 신선했거니와 단편보다는 장편소설이 줄거리 몰입도가 높았기 때문이기도 하다(재미있는데 분량이 적으면 너무 아쉬우니). 엔터니의 셜록홈즈 시리즈는 행여나 책이 빨리 끝나버릴까 노심초사할 필요가 없다. 분량도 빵빵하고, 내용은 더욱 흥미진진한 반면, 원작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더 잔인한 방식으로 죽어 나간다. 


모리어티 교수는 셜록홈즈의 숙적이다. 어설픈 악당들과는 차원이 다른, 홈즈와 두뇌싸움을 벌일만한 천재적인 악당이다. 원작에서는 (약간 생뚱맞긴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의 이름이 등장하고, 베일이 벗겨지기도 전에 라히헨바흐 폭포에서 홈즈와 격투 끝에 사망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코난도일은 홈즈 캐릭터에 끌려다니는 것이 싫어 이 사건을 통해 홈즈를 죽이려 했으나, 독자들의 반발과 작가의 재정악화로 소설 상의 시간 3년 후에 홈즈가 잠적을 깨고 돌아오는 것으로 다시 홈즈시리즈 집필을 시작했다.)


스위스 라히헨바흐 폭포에서의 사건 이후, 어떤 일이 있었을까. 지난 100년간 독자들을 궁금하게 한 잃어버린 퍼즐, 홈즈의 공백기를 앤터니의 상상력이 훌륭하게 메웠다. 더불어 어설픈 수사로 상대적으로 무능하게 묘사됐던 영국 경찰의 체면도 어느정도 회복된듯 하다. 아쉽게도 홈즈의 절친이자 탐정보조, 전기작가, 주치의까지 담당했던 왓슨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홈즈에게 여러번 도움을 받은 적 있는 런던 경시청의 '애설니 존스' 경감과 미국에서 악당을 쫓아 스위스까지 오게된 본인을 '프레더릭 체이스'라고 밝힌 탐정이 파트너가 되어 모리어티 죽음과 홈즈의 실종 이후의 사건을 추적한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팬이라면, 이 책에서 반가운 이름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셜록홈즈 시리즈를 다 읽지 않은 독자라도, 이전 사건들에 대해 잘 몰라도, 충분히 몰입해 읽을 수 있다. (어쩌면 이 책을 계기로 전작들을 찾아보게 될지도..)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박진감 넘치는 추리소설로 무더위를 잊고 싶은 분들께 적극 추천한다. 

 

 

 

= 출판사의 제공으로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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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영어 선생님 - 북한 고위층 아들들과 보낸 아주 특별한 북한 체류기
수키 김 지음, 홍권희 옮김 / 디오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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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사>에 이은 수키 김의 두 번째 책. 한국계 미국인으로, 전작에서 이민 2,3세대의 정체성 혼란과 한국계 이민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해내 호평을 받았다. 이번에는 평양 과학기술대학교에 영어교사로 잠입해 북한 엘리트 학생들을 직접 만난 경험을 생생하게 써냈다. 원제는 "Without You, There is No Us".  작가의 외할머니는 이북 출신이었고, 피난 중에 장남을 잃었다. 분단의 아픔은 저자 본인 가족사의 상처이기도 했다. 

 

그가 담당한 평양 학생들은 평범하지 않았다. 1학년이었지만 대부분 김일성종합대학 등 다른 학교에서전학해 온 학생들이었고(타 대학들이 폐쇄되었기 때문에), 성적에 따라 1-4반으로 나뉘었다. 저자는 가장 공부를 잘하는 반인 1반과 가장 끝 반인 4반을 맡았다. 학생들 다수는 아버지가 의사, 과학자인 북한 고위층 자제들이었다. 서먹서먹함, 경직된 분위기, (수업내용과 부교재는 물론) 모든 말과 행동을 감시 당하는 상황이었지만 교사와 학생은 조금씩 마음을 열며 같은 '사람'이라는 걸 깨달아 간다. 친구의 예쁜 여동생에 대해 농담하고, 이성친구에게 호감을 얻는 방법을 얘기할 때면 평범한 캠퍼스의 모습 같기도 했다.

 

그러나 좁혀지지 않는 간극은 물론 있었다. 저자는 학생들의 상식이 턱없이 부족함에 놀랐다. 그들은 주체사상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고 주장하고, 놀이공원도 북한이 세계 최고, 냉면과 김치가 세계 최고의 음식이라 한다. 심지어 교과서에는 미국 정부가 애틀랜타 올림픽 공식 음식으로 김치를 지정했다고 써있다 주장한다. 맨체스트유나이티드에 북한 선수가 스카우트 되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늘 자신들이 최고라고 선언하면서 자신과 누구도 본 적 없는 바깥 세계를 비교"하곤 했고, 최상급 표현은 너무 자주 쓰여 그 본래 의미를 잃어 갔다.

 


나는 세상에 대한 그들의 일반적인 지식이 놀랄 만큼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북한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인데 유엔, 타지마할, 기자의 피라미드 등의 사진은 멍한 표정만 이끌어 낼 뿐이었다. 몇명만이 한참 더듬거린 뒤에야 에펠탑과 스톤헨지의 이름과 위치를 추측했다. 그들이 과학과 기술 전공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어느 나라가 달에 처음으로 인간을 착륙시켰는지 아무도 몰랐다. (…)

동시에 그들 모두는 알래스카가 터무니없이 싼 값인 720만 달러에 미국에 팔린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것은분명히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확실한 수업의 결과인 듯했다. 그들의 영어 단어 수준이 고르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줄줄 외는 한 구절이 있었는데 그것은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 두뇌유출)'이었다. 정부가 엘리트들의 탈북이 두려워서 그들에게 이 단어를 연습시켰을까? 단어 공부를  위한 게임 중 종이접기를함께해 보니 그들이 만들 줄 아는 것은 전투기뿐이었다.  (104쪽)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누군지, 페이스북이 뭔지 아마존 킨들이 뭔지 모르는 아이들. '과학기술'대학에 다니지만 교사가 없어 일년 내내 영어만 배우는 아이들.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며 맥도날드의 폐해에 대한 에세이를 쓰겠다더니 "맥도날드에서는 무슨 음식을 만듭니까?"하고 되묻는 아이들. 반 대항 퀴즈게임에서 진 이유는 컨닝하다 '걸렸기' 때문이 아니라 컨닝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부끄럼 없이 공개적으로 말하는 아이들. 주말 오전에 노동한다는 걸 알고 묻는 '오전에 뭐 했니'란 질문에 11시까지 늦잠을 잤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하는 아이들. 


교사는 가까워진듯 하면 다시 멀어지는 학생들로 인해 좌절하기도 하고,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체제에 분노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인식의 폭을 넓혀 주고 싶어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질문하는' 제자에게는 정작 하고픈 말을 꾹 삼킨다. 금지된 호기심 때문에 제자가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하는 건 원치 않으니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들이 미국을 비난하는 것으로 에세이 주제를 바꾸기로 단체로 결정한 것은 저커버그에 관한 기사 때문이었다. 내가 자극을 주려고 의도한 것을 그들은 내가 자랑하려는 것으로 보고 업신여김을 당했다고 생각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수 세대 동안 그들에게 스며들었던 민족주의로 인해 너무나깨지기 쉬운 자존심은 열등감이 되어 그들은 자신을 제외한 세계의 나머지를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시민들로 만들어졌다. 그들의 인식을 확장하려는 나의 노력은 계속 역효과를 냈다. (306쪽)


이 대목에서는 얼마전 UN 북한인권회의에서 북한 대표단의 막무가내 발언이 떠올랐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그의 얼굴에 떠오른 불만족스런 표정은 꾸며낸 표정이 아니었다. 그들은 뼛속 깊이 믿고 있었다. 그가 옳다고. 



책을 읽으며 저자와 함께 웃고 울었다. 자유를 반납하고 모든 말과 행동을 자기검열하며 조심할 때 함께 답답함을 느꼈다. 마침내 저자가 마음의 욕구를 따르는 방법도 자유를 누리는 방법도 모르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학생들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나도 같은 먹먹함과 좌절감을 느꼈다. 


북한과 한 민족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가슴으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내 또래 세대(80년대생?)에선 통일 이후의 삶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서로 간의 문화 차이가 너무 커져서, 통일 후의 갈등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생생하게 접하게 된 이후의 생각은 달라질 것 같다. 조금씩 밀려들어가는 변화의 물결을 언제까지고 막아내지는 못할 텐데. 어느 날 갑자기, 어떤 형태로든, 찾아올 통일의 날을 누군가는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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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심연 - 뇌과학자, 자신의 머릿속 사이코패스를 발견하다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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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뇌에서 사이코패스의 흔적을 발견한 뇌과학자의 인생을 회고한 자서전이다. 


제임스 팰런은 행동의 80% 정도는 유전자(특히 뇌의 신경전달물질에 의해)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을 가진 신경과학자이자 의대 교수다. 가족들의 뇌 PET 스캔 사진을 판독하던 중, 사이코패스라 확신하게 되는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엔 사이코패스의 뇌 스캔사진에서 섞여들어온 것이라 생각했으나, 실은 자신의 뇌였다. 억제, 사회적 행동, 윤리, 도덕성을 관장하는 뇌기능의 활동이 저조하거나 손상된 것이다. 


그는 살인충동을 느낀 적도, 범법행위를 한 적도, 전과도 없었다. 성장 과정중 짓궂은 장난으로 종종 주변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리긴 했지만, 자신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거나 충동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좀더 심도있게 가계 혈통을 조사해 보니 직계 조상 중 살인자, 범죄자, 가정을 버린 바람둥이, 권투선수도 여럿 있었다. 범죄자 가문이었다니! 


그러나 그는 상황을 비관하기보다 과학자로서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편을 택했다. 사이코패스에게서 발견되는 뇌를 가졌고, 폭력성향을 내포한 유전자변이인 전사(warrior)유전자를 가졌음에도 그는 범죄 이력이 없었다. 오히려 성공한 과학자이자 교수, 인간관계가 좋은, 궂지만 재미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답을 성장 과정, 즉 양육에서 찾았다. 자신이 주장하던 이론과는 상반된 내용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정원에서 쓰는 다리 셋 달린 나무 의자가 보였다. 어머니가 주말에 제라늄을 다듬을 때 쓰는 물건이었다. 식물에 상처를 너무 많이 입혀도 성장이 지체되고 너무 적게 입혀도 굼뜬 식물이 되며, 딱 알맞은 양의 스트레스와 보살핌이 개화를 최대화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순간, 사이코패시의 병인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이 창조되었다. 사이코패시의 세 요소와 그 상호작용이 뒤뜰 정원의 다리 셋 달린 의자로 표상됐다.

세 개의 다리란, 안와전두피질과 편도체를 포함한 전측두엽의 유별난 저기능, 전사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 여러 개, 어린 시절 초기의 감정적, 신체적 학대나 성적 학대였다. (128쪽)


뇌스캔에서 드러난 사이코패스의 뇌, 전사유전자와 같은 변이 유전자를 가졌지만, 아들의 남다른(부정적인 면으로) 면을 인지하고 사랑으로 양육한 가족 덕분에 내재된 사이코패스적 기질이 치명적인 방향으로 발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유년기부터 60대에 이르기까지의 삶 중 사이코패스의 면을 보였던 사건들을 상세히 기술한다. 가족, 친구들에게 진심어린 관심을 가질 수 '없어' 상처를 줬고, 때로는 모험심에 그들을 생명의 위험에 처하게도 했으며, 자신에게 흥미로운 파티에 참여하느라 지인의 중요한 행사(결혼식, 장례식 등)에 참여하지 않았다 고백한다. 영안실의 어린 소녀의 시신을 보고 유족에게 "아이의 드레스가 예쁘네요."라는 말을 건넸다는 일화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자신의 성향과 비슷한 인물로 빌 클린턴과 테레사 수녀, 간디를 꼽는다. 이들과 희대의 범죄자의 가장 큰 차이는, 양육과정에서 다듬어졌다는 사실이다.


60대에 시작한 뜻하지 않은 순례를 통해 발견한 것은 5년 전만 해도 내가 믿지 않았던 뭔가다. 태어날 때 자연이 나누어준 형편없는 카드 한 벌을 올바른 양육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것. 지금까지 책을 읽었다면 눈치챘겠지만, 나는 결코 천사가 아니다. 하지만 훨씬 더 나쁜 모습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다. 

나는 사이코패시와 그 유전자를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버리면 인류는 결국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생애 초기에 확인하고 그들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공감에 서툴고 공격성이 강한 사람들도 잘만 다루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그들은 나처럼 가족과 친구들에게 스트레스를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시적 수준에서는 사회에 보탬이 된다.  (249쪽)


그는 우리 사회에 사이코패스가 어느 정도는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스트레스에 강하고, 그렇기에 면역력이 뛰어나고, 감정과 행동을 분리할 수 있기 때문에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을 위험도가 낮다. 특히 군인들에게 필요한 자질이다. 또한 인류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사이코패스의 척도가 아주 높은 사람들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중간 정도의 사람들은 양육에 의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담하고 활기차고 인류의 생동감과 적응력을 지켜주는", 자신과 같은 사람 말이다. 


일상에서의 삶, 인간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개인적인 부분을 과감히, 솔직하게 서술했기에 독자로서는 상당히 읽기 흥미로웠다. 뇌과학, 신경학 관련 용어가 자주 등장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작가의 삶을 예시로 전반적으로 쉽게 설명했다. 과학에 관심있는 독자 뿐 아니라 교육, 양육에 관심있는 분들께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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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바 유지 지음, 이영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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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시간똑같은 일이 주어졌을 때 어떤 사람은 빠르게 일을 끝내고어떤 이는 기한을 넘겨서까지 끙끙대는 경우가 있다이러한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그리고 우리는 왜사람에 따라 걸리는 시간에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암묵적 이해 하에 개선점을 찾지 않는 것일까.


맥킨지에서 10여년간 일한 경험을 갖고 있는 저자는 본인의 경험을 통해크게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첫째로훈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어떻게 하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지어떻게 하면 재빨리 생각을 통합분석정리해서 완성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훈련하는 방법을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둘째로는 생산성이란 개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제조 현장에서는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애쓰지만기획서보고서 작성메일 교환 등의 사무 분야에서는 생산성의 개념이 별로 없다결국개인과 조직 차원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고민하고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초고속 사고를 위한 저자가 권하는 특훈 방법은 바로 메모 쓰기하루에 10분만 투자하면 된다.

방법은 간단하다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을 잇달아 메모로 써나가기만 하면 된다노트나 컴퓨터에 쓰는 게 아니라 A4용지에 1건당 1페이지 분량으로 쓴다느긋하게 시간을 들여서 쓰는 게 아니라 1페이지를 1분 이내에 줄줄 써낸다매일 10페이지씩 쓰고파일에 넣어 재빨리 정리해 둔다. (13)


A4용지를 가로로 놓고한 장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1분간 쓴다상단에 제목을 적고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관련 생각을 4~6행 정도로 나열한다정규 교육과정을 무사히 통과한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뛰어난 판단력사고력행동력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믿음이다심사숙고한다고 해서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게 아니니 정해진 시간 내에 떠오르는 대로 적는다매일 훈련을 하다 보면표현하는 언어도 정제되고,사고의 속도도 빨라지고주제도 다양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무엇보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이 종이에 쏟아져 나오며 정리된다는 장점이 있다.


평소 다양한 생각을 한다고 믿지만 그것은 분명 다람쥐 쳇바퀴나 반복망설임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그것을 1 1페이지로 써나가면그 건에 관해서는 일단 결말이 나기 때문에 고민해야 할 것생각해야 할 과제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에 매일같이 많은 생각을 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는 확연히 다르다. (121)


하루에 A4 10한 달이면 300장이다다양한 생각을 클리어파일에 주제별로 정리하고, 3개월에 한 번씩 리뷰하며 간추려나가길 권한다.한번 해 보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생각해볼 만한 질문 리스트도 제공한다심지어 어떤 펜이 빠른 메모 쓰기에 적합한지클립 보드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까지 깨알 같은 팁을 전수한다.

 

정말 효과가 있을지나도 한번 해보려고 다이소에서 A4 용지 100장짜리 한 묶음을 사왔다. 1,000원이면 열흘을 쓸 수 있다내 안에 숨겨져 있던 풍부한 발상과 창조력직관적 사고와 스피드한 판단력을 정말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인지한 번 도전해 볼까 한다줄리아 카메론도<아티스트 웨이>에서 모닝페이지 쓰기를 권하지 않았던가. 송숙희 작가는 <모닝페이지로 자서전 쓰기>까지 했다는데.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다. 직접 해 보지 않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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