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아이처럼 -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
파멜라 드러커맨 지음, 이주혜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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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인 유럽 스포츠기자와 결혼해 파리에 살고 있는 미국 여성이 쓴 프랑스식 양육법에 관한 책이다.

 

아이와의 전쟁에 지친 저자는 문득 프랑스의 생경한 풍경에 눈을 돌리게 된다. 레스토랑에서 소란 피우는 법 없이 식탁에 얌전히 앉아 코스요리를 먹는 아이들, 부스스한 쌩얼에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아이 뒤를 쫓아다니는 대신 트렌치코트에 풀메이크업을 하고 하이힐을 신은 엄마들, 마트에서 떼 쓰지 않는 아이들, 생후 2-3개월부터 밤새 한 번도 안 깨고 잘 자는 아기들…

 

본격적으로 프랑스 육아를 취재하며 작가는 미국(읽다보니 우리나라도 미국쪽에 가까운 듯 하다)에서는 얼마나 아이를 작은 왕처럼 떠받드는지, 정해진 까드르(규율) 없이 무조건 받아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바른 식생활을 '교육'하는 대신 얼마나 무분별하게 먹이고 있는지, 아이를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생물로 대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비로소 객관적인 시선으로 육아를 바라보게 된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밤에 한두 시간마다 깨는 아기를 곧장 달래주기보다는 잠깐 멈춰(la pause) 아이가 진정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는 점, 아이들을 까드르(cadre)를 지키도록 엄격하고 단호하게 가르치면서도 그 안에서는 자율성을 부여하는 점,  때로는 어른들만의 시간도 꼭 필요하다는 걸 이해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아무 때나 음식을 주지 않고 정해진 시간에 먹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점(초콜릿, 케이크, 쿠키 등 설탕이 들어간 군것질거리는 구떼(gouter)라 부르는 오후4시 간식시간을 제외하고는 절대 먹이지 않는 모습에, 나의 식생활도 반성했다), 크레쉬(creche)라 불리는 정부의 종일제 탁아소에서 아이들에게 제공할 4가지 코스요리 메뉴를 '시 식단위원회'에서 전문가들의 치열한 토론 끝에 결정한다는 것도 신선했다.

 

우리나라도 요새 '독친'이니 '헬리콥터맘'이니 하는 도를 넘어선 부모의 간섭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규율 안에서의 최대한의 자율을 보장하고, 아이가 실수하고 때론 다쳐도 모든 것이 '교육'의 일부라 쿨하게 받아들이며, 엄마이지만 여성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프랑스 엄마들의 모습은 멋지기까지 하다. 물론 저자가 프랑스식 육아를 따르게 된건 파리에 거주하며 출산부터 양육까지 국가가 대부분을 책임져 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부가 상의 하에 양육 철학과 일관성있는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비춰지는 모습을 우린 너무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아이를 갖기도 전에 이런 책을 접하다니, 행운이다. 내 아이는 프랑스가 키워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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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지은 집 - 가계 부채는 왜 위험한가
아티프 미안 & 아미르 수피 지음,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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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아티프 미안과 이므르 수피는 모두 거시경제학에 정통한 학자들이다. 이들의 시각은 기존 거시경제학적 이론을 보강하고, 전통적인 거시경제 분석모형에서 간과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명쾌하고 쉬운 문장으로 우리에게 설명하며, 가계 부채의 위험성과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한다.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강조하는 가격조정 매커니즘과 소득 불평등을 가속화시키는 금융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거품이 터졌을 때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소개하고, 2부에서는 거품이 형성되는 과정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3부에서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내놓는다.

1920~30년대 미국의 대공황, 2000년대 초반의 주식시장 붕괴, 2007~9년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을 분석하며 가계부채와 소비와의 관계에 대해 치밀한 분석 결과를 제시한다. 저자는 경제의 충격이 발생될 경우, 저축자(대출자)보다는 차입자가 더욱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이를 통해 소득불평등 심화, 소비감소에 따른 경제성장 저하 등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한다.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에서도 부실한 은행을 구제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은 큰 성과가 없었으며 오히려 저소득층의 부채탕감과 가계부채의 채무재조정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통해 경제 활성화가 가능하다고 여긴다. 채무에 대한 위험을 사회 전체에 고르게 분산시키기 위해 저자는 책임분담 모기지를 제안하는데, 이 책임분담모기지는 주택 가격이 하락했을 때, 그 손실을 차입자와 대출자가 일정부분 공유하고, 반대로 주택가격이 상승했을 때 역시 그 이익의 일정부분을 서로 공유하도록 하는 대출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차입자는 적은 위험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고 주택 가격의 하락으로부터 위험 노출이 줄어들면서 그만큼 소비를 감소시키지 않게 되고, 이는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과 이뤄 불황을 타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에서는, 거시 경제가 현재보다 안정되고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한 금융시스템의 도입에 있어 전통적인 은행 중심의 금융 시스템 방식에서 벗어나길 촉구하고 있다. 더 나아가 가계부채와 이를 관리할 수 있는 제도, 그리고 적절한 위험 분산이 가능한 대출상품 등을 통해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도모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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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는 왜 다문화를 선택했는가 - 다문화 정책을 통해서 본 보수의 대한민국 기획
강미옥 지음 / 상상너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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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특파원으로 한국에 11년간 체류한 다니엘 튜더는 저서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에서 "친미적 경향과 친일 잔재에 맞서고자 한국의 좌파 세력은 민족주의에 바탕을  정치사상을 발전시키게 되었다."라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타국에서 좌파와 우파는 세금, 복지예산  평범(?) 문제로 갈등하는  비해 한국에서는 역사, 민족적 정체성, 분단현실이 얽혀있기 때문에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얼핏 생각해보면 보수주의자들이 다문화의 유입과 공존을 반대할  같은데 현실은 달랐다. 진보 진영에서 '민족' 강조하는데 맞서 보수는 (민족을 배반한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민족' '민족주의' 해체의 대안으로 다문화라는 카드를 내세웠다는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보수든 진보든 누군가는 소외계층인 이주여성, 아동,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펼친다는  사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주민중에서도 전통적 여성상에 부합하며 사회구성원을 생산해낼 수 있는 다문화 가정 여성에게만 혜택을 주고 이주노동자에게는 오히려 가혹하다는 , 비싼 등록금 마련을 위해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내몰리는 대학생들을 뒤로한  (자격요건 수학성적 80% 이상을 만족한) 외국학생 유치, 장학 지원을 아낌없이 베푸는  등은 다문화 정책의 모순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정부의 다문화 정책에 대한 배경을 쉬운 언어로 이해시키고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점에선  다섯 개를 주고 싶지만, 바람직한 대안 제시보다는 추상적인 답변, '그들이 아닌 우리의 문제' 급격하게 마무리 짓는 부분은 비판과 분석은 잘하지만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나와 같은) 대중을 설득하여 결집시키는데 약한 진보의 모습을 답습하는  같아 아쉬웠다. 미국, 유럽 사례가 다양하게 인용되어 정치 관련 서적도 재미있게 읽을  있다는 점을 알게  책이니, 다문화에는 관심이 있지만 정치엔 관심 없던 분들께 추천한다.

 

 

 

 

 

p.38
스튜어트 홀의 지적처럼, 한 개인이나 집단의 성적, 계급적, 문화적, 언어적 정체성은 명사로서가 아니라 동사로서 규정된다. 정체성은 이미 만들어진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검증 과정, 거칠게는 '딱지 붙이기' 과정을 토대로 계속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란 뜻이다.
나와 다른 누군가를(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고 딱지 붙이고 차별하는 행위는, 지극히 사회적인 행동 양식이다. 개별적인 주체들의 주관적인 결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사회 구성원들의 공개적, 암묵적 합의에 의해 사회적 행동 양식으로 고착된 것이란 뜻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별 것 아닌 사소한 차이를 마치 극복할 수 없는 엄청난 차이로 인식하게 만드는 정치적, 사회적 기제가 작동한다. 그러므로 편견이나 차별은 한 사회에서 힘을 가진 주체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적, 의도적, 노골적으로 만들어낸, 철저하게 계산된 인식과 행동의 양식이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를 유지, 강화하기 위한 매우 의도적인 전략을 통해 차별과 편견이 생겨난다는 얘기다. 다만 겉보기에 일상적이고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을 뿐.

 

 

p.46
'다문화'란 다양한 민족이 품고 들어온 이국적이고 독특한 사물이나 도구, 행사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관점, 즉 인식의 방법에 대한 반성적 이해를 전제한다. 베트남 국수를 좋아하든 안 하든 그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다. 머리에 커다란 흰색 꽃핀을 꽂은 여자아이, 역시 자신이 좋아서 그렇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베트남 음식은 불결하고 추한 것이니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면, 그리고 그러한 관점이 한 개인뿐 아니라 특정한 집단에 보편적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사회적 문제다.

 

 

p.183
다문화 교육 정책을 벌이면서 정부는, 다문화 가족 아이들을 장차 두 나라 사이의 교두보 역할을 맡는 산업역군으로 키우겠다, 그래서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일꾼이 되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퍼뜨렸다. 이는 주류 사회에 다문화 정책이 왜 필요한지 설득하기 위해 꺼낸 말이긴 하겠지만, 궁극적으로 '다문화 가족'의 입장을 대변하기는 어려운 주장이다. 그 아이들이 나중에 두 나라 사이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맡을지 말지는 그들이 나중에 선택할 문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대한민국 안에서 성공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가 먼저 주어져야 하고,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다문화적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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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 : 외국인이 본 한국에 관한 책


1. 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 전 한국을 걷다(2005)

20세기 초, 미지의 땅을 찾아 대한해협을 건넌 스웨덴 모험가의 한국여행 이야기. 당시 서구인의 눈으로 본 한국 사회와 문화, 그가 묘사한 한국인의 삶의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한다.
저자가 서술하는 대한제국의 모습과 내가 개발도상국에 살면서 보고 느낀 것들이 흡사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어디서도 볼 수 없던 풍성한 사진 자료들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날아간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선사한다.


2.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013)

비교문화와 동아시아 언어문화학을 전공한 하버드 박사가 본 한국.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한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지한파다. 한국인도 잘 모르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역사의 강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고전문학과 사상, 현대한국 경제와 사회, 한류, 기술,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시각을 들려준다. 전반적으로 애정 어린 따스한 조언이 느껴진다. 책에서 소개한 정책 아이디어들은 정부 관계자들이 꼭 읽고 활용해줬으면 좋겠다.


3.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2013)

앞서 소개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이 아시아문화 전공 서구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이라면, 이 책은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출신 기자가 발로 뛰며 취재한 보고서에 가깝다. 2012년에 출간된 영문판을 한국어로 번역 소개한 책. 다양한 통계자료의 활용과 팩트 위주의 서술이 돋보인다.


4. 사미르, 낯선 서울을 그리다(2014)

프랑스 만화가가 그린 서울의 일상. 대부분 그림이다. 소설가 김중혁의 추천이 인상 깊다. ˝두 번 보았는데도 여전히 찜찜하다. 익숙한 한국의 풍경인데, 어째서 이 그림들은 이토록 낯선 것일까. 다시 책을 들여다보다가 수많은 그림 속에 환하게 웃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타인의 시선으로 본 서울은 어떨까, 매일 오가는 곳인데도 생경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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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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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면 한번에 뇌리에 콕 박히는 이름이다. 생강이라니. 서점에서 생강이 몸에 좋다는 책을 보고 즉흥적으로 필명을 결정했다는 말에 저자의 정신세계(?)가 궁금했는데, 나중에야 성인saint과 악당gang의 혼성 혹은 '생각의 강'을 염두에 둔 작명이란 걸 알게 됐다. 톡 쏘는 생강 맛처럼 종횡무진 통통 튀면서도 은근히 달콤한 냄새가 나는 소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는 저자의 필명과 딱 어울리는 책인듯 하다.

 

책의 서두는 흥미진진하다. 민형기의 심리상담소에 찾아온 매력적인 여인 한나리. 그가 일하는 카페의 사장이자 애인이 빼빼로가 두려워 대형마트도 기피하는 빼빼로포비아란다. 자신을 소시오패스로 의심하는 민형기에게 빼빼로포비아는 당장 자신의 카페 '스윗스틱'으로 오지 않으면 한나리를 '삭제'하겠다 협박한다. 카페에 도착한 민형기는 드디어 카페사장을 대면한다. 다음 내용이 어떨지 궁금하던 찰나, 이 모든 이야기가 김만철의 소설 속 이야기라는 당황스러운 전개가 이어진다.
          
미스터리한 카페사장의 정체는 바로 지구에 불시착한 실리칸이라는 외계인(오잉?). 미각과 언어의 담당하는 혀를 신성히 여겨 사랑해도  키스하지 않고, 성기는 롤빵과 패스트리 정도로 여기는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존재다. 소설을 읽다보면 현실 속 김만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은 소설처럼 느껴지고, 소설 속 빼빼로포비아 쪽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소설인듯 소설아닌 소설같은 이야기. 마지막엔 짜잔! 하고 김만철이 겪은 모든 에피소드야말로 한 편의 소설이었다며 새로운 현실이 드러나는 반전을 의심했지만, 예감은 빗나갔다. (결말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작가는 "현실에서 비현실의 이야기를 찾는 게 아니라 비현실이 슬그머니 찾아와 어깨를 두드린다"며 "그럴듯한 소설을 쓰는 대신 그럴듯함과 그럴듯하지 않음 사이에서 꿈틀대는 어떤 자리들을 발견하려 애쓰겠다"고 했다.

액자소설의 현실과 비현실의 혼란함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되새겨보는 것도 묘미다.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 소설에 대한 생각, 빼빼로와 빼빼로데이를 바라보는 관점 등이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

 

소설 속 민형기가 삼킨 다섯 개의 알약은 현실의 김만철이 삼킨 다섯 마리의 주술사를 연상시키고, ​소설 속 카페사장은 빼빼로포비아였으나 현실에서는 인류애와 이타심이 넘치는 스윗스틱 제조자로 대비된다. ​​오히려 현실의 민형기가 빼빼로포비아에 가까웠다. 김만철이 자신이 쓰는 소설 안에 카페사장, 단골손님, 상담가, 짝사랑을 등장시켰듯, 우리가 읽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김만철의 소설 선생님은 어쩌면 작가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건 아닐까. 알듯 모를듯 재미있는 책이다.

 

 

 

이 시대의 인간은 어쩌면 빼빼로 피플이네. 인간은 태어나기를 딱딱하고 맛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개성이란 달콤한 초콜릿을 묻히지. 타인을 유혹할 수 있는 존재로 특별해지기 위해. 하지만 그 개성의 비율 역시 언제나 적당한 비율, 손에 개똥 같은 초코가 묻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적정선의 비율로 필요하네. 그게 넘어가면 괴짜라거나 변태 취급을 받기 쉽지. 그렇게 이 시대의 인간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양 착각하지만 실은 모두 똑같은 봉지 안에 든, 더 나아가, 똑같은 박스 안에 포장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코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네. (중략)

 

내 말은 자네의 입장에 대해 누구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 말라는 거야. 어차피 그들은 자네를 개똥으로 여길걸세. 그러니 비닐 포장 속에 담긴 빼빼로 병사가 아니라 차라리 비닐 포장까지 뚫고 나올 수 있는 살아 있는 막대 벌레가 되라는 거야. ​(p.145-146)

 

<어쩌면 ​21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빼빼로」가 아닐까? 빼빼로라는 소설이 있기에 어쩌면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 않는 게 아닐까?>

 

빼빼로는 문장 아닌 막대 과자로 구성된 과자 상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11월 11일이 가까워 오면 그 과자를 통해 자신이 상상하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건 대개 사랑에 대한 환상이지만, 그 환상은 얼룩지고 음산해지며 종종 우울하게 가라앉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그때뿐이다. 시답잖은 베스트셀러를 읽은 뒤에 던져 버리듯 빼빼로데이가 지나면 이내 그 과자는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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