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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세계문학의 숲 6
헨리 제임스 지음, 정상준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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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이라는 장르의 글이 초반의 수십페이지가 넘어갈 동안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한다면, 그 글은 꽤나 진입 장벽이 높은 글이다. 그런 의미에서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은 상당히 높은 벽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뛰어난 소설들이 그 서두에서부터 독자들을 그 매력에 빠지게 하진 못하고,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해서 매력적인 글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걸 생각한다면 이 소설, '나사의 회전' 역시 그 높은 장벽을 뛰어넘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간단한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는 '나사의 회전'은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보호를 받고 자라난 젊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글이다. 그리고 바로 그녀가 한 매력적인 신사에게 고용되어 ㅡ혹은 사랑에 빠져ㅡ 그의 어린 조카들의 가정교사로서 시골 저택이 있는 블라이에 가게 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게 따스하고 목가적인 시골 저택과 천사 같은 아이들과 상냥한 가정 교사와 성실한 고용인들의 이야기라면 좋겠건만, 물론 그렇지 않다. '나사의 회전'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유령'이다. 물론 글을 읽다보면 이 유령들 혹은 심령 현상이 정말로 '실재'하는 것인지, 우리의 여주인공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드러내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한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지만, 어쨌든 그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글을 읽어야만 하는 감상자들은 자연스레 '그들'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얼핏 보아도, 자세히 보아도 어쩐지 슬프고도 기이한 표지를 가진 '나사의 회전'은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글이다. 그리고 그 흥미로움들은 대개 '불분명함 혹은 흐릿함'으로 귀결되지만, 역시 가장 커다란 화두는 '유령들'이다. 과연 그 유령들은 실재했는가, 정말로 그녀가 의심하는 것처럼 사랑스러운 두 아이들ㅡ마일스와 플로라는 그 유령들과 접촉하면서도 그녀에게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완벽히 순진한 척' 연기를 했던 것일까, 사실은 그녀가 정신 착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의문들은 그리 길지 않은 이 글을 읽는 내내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의심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우선 블라이에 머무는 모든 이들 가운데 실제로 이 유령들을 목격한 것은 오로지 그녀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 유령들이 그녀 혼자 있을 때만 등장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과 함께할 때 또한 그녀만이 목격하고 반응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분명한 이유가 된다. 그리고 그 유령들은 그들이 아이들을 지배하며 악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그녀의 의심을 받고는 있으나 사실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이유들로 이 글, '나사의 회전'은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이 책의 서두에 실려있는 '작가 서문'을 통해 헨리 제임스는 이 글을 통해 "독자가 악을 생각하도록 만들고, 그것을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라. 그러면 너는 빈약한 상세한 설명에서 해방될 것이다."라는 말로서 그의 유령들이 어째서 구체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지, 그저 그녀의 머릿 속에서만 극악무도한 존재로 존재하는지와 같은 의문의 해답을 제시한다. 결국 그는 '나사의 회전'을 읽는 독자들이 그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마치 그녀처럼 ㅡ하지만 독자적으로 그 유령들로 인한 공포를 스스로 만들어내길 원한 것이다. 따라서 '나사의 회전'은 읽는 이가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작가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이 글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 만족도가 크게 좌우될 수 있는 글이 되어버린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불분명하며 흐릿하게 만들어낸 이 이야기의 여백은 감상자가 스스로 채워야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로 말할 것 같으면, 낑낑거리며 올라간 높은 벽 위에서 경사가 가파른 미끄럼틀을 타고 대번에 내려온 듯한 감각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엔 좀 힘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즉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여진 글들은 그 흘러가는 의식에 제대로 올라타기만 한다면 제법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는데, 나는 성공적으로 그녀의 의식에 올라탈 수 있었다. 단지 글 자체가 가진 특징인지, 번역되는 과정에서 기인한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장황한 문장들이 조금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끝나버려도 되는 건가?' 라는 의문, 아니 충격에 가까운 감정을 준 결말 부분을 포함해서 '나사의 회전'은 제법 매력적인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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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외 세계문학의 숲 5
다자이 오사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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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 작품을 읽을 때에, 그 글을 쓴 사람에 대해서 항상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경우는 그의 주요 작품들이 대부분 그의 자전적인 부분을 반영하고 있기에 작가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하는 필요성이 생긴다. 그리고 그 것은 읽어야 할 글이 <인간실격>일 경우 더더욱 그렇다. 세계 문학의 숲의 네 번째 작품으로 읽게 된 <인간실격>은 이미 한 번 읽었던 경험이 있는 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처음 접하는 소설을 읽기 전과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기대가 컸는데, 그건 내가 예전과 다르게 좀 더 다자이 오사무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내 기대는 들어맞았던 것 같다.  
 
* * *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을 하고 있다. 우선 글의 가운데에 배치되어 있는, 세 장으로 구성된 수기가 본편에 해당하고, 그 수기의 앞 뒤로 이 수기를 책으로 발간하게 한 인물의 이야기가 첨부되어 있는 형식이다. 그리고 그 짧은 머릿말에서는 동일한 한 남자를 찍은 세 장의 사진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사진들은 각각 그 수기를 쓴 남자 '요조'의 모습으로, 세 장으로 나누어진 수기의 각각의 장과 맞물려 있다. 얼핏 보기엔 귀여워 보이지만 섬뜩함이 느껴지는 아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미모를 가진 청년, 아무런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는 백발의 남자. 이 전혀 다른 느낌의 세 장의 사진 속에 찍혀있는 한 남자의 수기가 바로 이 소설 <인간실격>이다.

     하지만 사실 <인간실격>은 정말로 작가 다자이 오사무 본인의 '수기'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로 그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글이다. 물론 다자이 오사무는 본래부터 자기 자신의 경험을 본인의 작품에 자주 언급하는 성향의 작가기도 하지만, 그의 마지막 완성작인 <인간실격>은《부끄러운 일이 많은 생애를 보내왔습니다.》로 시작해《나는 올해 스물일곱 살이 됩니다. …대개 마흔 넘은 나이로 봅니다.》로 마무리되어, 그야말로 '유서'와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다자이 오사무는 이 글이 연재되던 중간에 원고만 완성해둔 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했으니 그런 느낌은 어찌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서로 사기를 치면서도 다들 이상하게 아무 상처도 입지 않고 서로 속이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실로 훌륭한, 그야말로 맑고 밝고 명랑한 불신의 사례가 인간의 삶에 가득한 것입니다.

ㅡ p. 26

     불행. 이 세상에는 온갖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 아니, 불행한 사람들만 있다, 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의 불행은 세상을 향해 당당히 항의할 수 있고 또한 '세상'에서도 그 사람들의 항의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해줄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불행은 모조리 내 죄악에서 나온 것인지라 어느 누구에게 항의할 도리도 없고, 또한 우물우물 한마디라도 비슷한 소리를 한다면 딱히 넙치가 아니더라도 세상 사람들 모두 어떻게 그런 뻔뻔한 소리를 하느냐고 어이없어할 게 틀림없습니다.

ㅡ p. 124 


     어린 시절의 가면과도 같던 삶을 거쳐, 타인과 세상을 불신하고 두려워하던 '요조'. 한 여자와 동반 자살을 시도했지만 자신만이 살아 남았다는 죄의식을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 술에 의존하는 자신을 바꾸기 위해 되려 약에 손을 대다 결국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그의 모습은 실제의 다자이 오사무와 고스란히 닮아 있다. 실제로 작품 속 요조의 마지막 문장처럼 다자이 오사무 또한 스물 일곱 살이던 시절에 정신 병원에 수용되었었는데, 당시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는 그 느낌을 <인간실격> 속에서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인간실격'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물론 수용소에서 벗어난 뒤로 수많은 작품들을 써내고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간간히 언급되는 당시의 이야기들, 아직 쓰지 않은 <인간실격>이라는 작품에 대한 언급 등은 다자이 오사무가 이 작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짐작케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인간실격>은 읽고 있노라면 '어째서 일부의 소설가들은 작중 인물이 되려는 기묘한 충동에 휩싸이는 것이냐' 며 신랄한 어조로 다자이 오사무를 비판했던 미시마 유키오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주인공 '요조'와 작가 '다자이 오사무'를 동일시하게 된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또 하나의 '나'가 존재한다. 수기를 쓴 인물, 그러니까 '요조'를 아무렇지도 않게 '광인(狂人)'으로 부르는, 냉정한 관찰자이자 이 수기를 책으로 펴내기로 결심한 한 남자가 말이다. 극과 극이라고 해도 어울릴 법한 '요조'와 '나'는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의 다자이 오사무를 각각 반영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의 다자이 오사무가 어떤 생각으로 이 글을 썼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고, 그가 자기 자신을 토해내듯이 '요조'라는 인물을 만들어내고 세상에 펴내는 것을 통해, 냉정한 제 3자 '나'의 시선으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는지 어떤지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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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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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의 세계 문학의 숲은 여태까지 만났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비교적 쉽게 읽히는 글이었다. 그건 중국의 대문호로까지 불리우는 '바진'의 글이 가벼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어딘지 익숙한 풍경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읽기 전까지만 해도 삼국지나 수호전 등의 고전을 제외한다면 읽은 적이 없는 생소한 중국 문학에 대한 걱정이 컸을 정도였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은 '고유 명사를 제외한다면 그 언젠가의 우리나라를 살아가던 인물의 이야기라고 해도 믿겠다' 는 것이었을 정도였다.

     그런 '차가운 밤'은 전쟁 중이던 1940년대를 배경으로 꿈과 열정을 가진 젊은 지식인 왕원쉬안과 마찬가지로 고등 교육을 받은 그의 아내, 청수성, 그리고 그런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왕원쉬안의 어머니가 주요 등장인물로 등장하는, 근대 중국을 현실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그러니 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어느 정도 근대 역사에 대한 언급도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 글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주인공 왕원쉬안에 대해서 말이다.  



     "언젠가 우리도 그같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죠.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방법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내는 눈썹을 찌푸렸다.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서렸으나 곧 사라졌다.
     "방법을 생각한다고? 내 보기에는 끌려가서 죽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어. 재작년에는 작년이면 괜찮을 거라고 하더니, 작년엔 또 올해에는 좋아질 거라고 하고, 올해는 또 뭐라고 하려나. 해마다 나빠질 뿐이야!"
     어머니가 옆에서 야단법석을 떨었다.


ㅡ p.111

     전쟁으로 인해 자신이 젊은 시절부터 꿈꿔오던 이상 대신 어쩔 수 없는 갑갑한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왕원쉬안. 하지만 그에게 있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젊고 자의식이 강한 부인 수성과 고분고분하지 않은 며느리가 곱게 보이지 않는 어머니 사이의 갈등이다. 본래 성격이 그러한 것인지, 꿈을 잃은 생활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왕은 수성과 어머니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갈등을 일시적으로 덮는 데에만 급급하다. 분명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텐데도 그는 끝끝내 그 어느 쪽의 입장도 제대로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째서 그렇게 대립하는 걸까, 라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 의문을 해결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데, 그것은 결국 그에게 있어 비극이 되어버린다. 왕을 가운데 둔 두 여인의 대립은 사소한 것에서조차 '의미없는 갈등'을 만들어내며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위에 인용한 본문처럼, 그저 상대의 말에 반대를 하기 위한 반대를 하는 상황의 반복이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참 안 좋아하는 캐릭터를 가진 인물이다, 왕원쉬안은. 이 쪽의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이 쪽 편을 들며 한없이 너그럽고 관대한 남편의 행세를 하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고, 반대 쪽으로 와서는 또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당연하다는 듯 그 약속을 깨버려 어머니를 실망시킨다. 그런 그의 모습이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전쟁과 이어지는 피난 생활, 꿈을 꿀 기회조차 없어 보이는 막막한 현실을 살아가던 근대 중국의 청년들을, 근대 중국의 현실을 반영한 설정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그런 성격이기에 그의 삶이 비극으로 끝맺어졌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에게 주어졌던 수많은 선택들을 그는 포기하거나 진정으로 원하는 쪽이 아닌 방향으로 선택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기 자신이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체면을 차리거나 하는 것이다. 거기다 미련은 많아서 자기가 그렇게 하라고 해놓고는 상대방이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라기까지 한다. 엄밀히 말해서 그의 선택들은 타인, 특히 수성이나 그의 어머니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없으며 일종의 책임회피에 가깝다. 그는 결국 책임을 질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런 그의 이야기였기에 나는 왕원쉬안의 성격이 확실하게 드러나기 시작하는 소설 초반 부분부터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 결말지어지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해진 수순처럼 완성되어 가던 그의 비극은 일본의 패전으로 희망을 가지기 시작한 사회 상황과 맞물려 더더욱 암울하게 그려진다.

     어찌보면 허무하기까지한 왕원쉬안의 짧은 인생은 줄곧 차가운 밤이었다. 밤이 오기 전에는 반드시 낮이 있듯이, 그에게도 밝게 빛나던 시간이 있었지만 그는 또 다른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버텨내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버리고 만다. 홀로서기를 결심하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게 될 다른 사람들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까지 남기면서 말이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 남자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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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 세계문학의 숲 3
토머스 드 퀸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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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시공사 '세계 문학의 숲' 초반 라인업은 지극히 승부욕을 자극시키는 글들인 것 같다. 전 권인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은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좀처럼 따라잡기 힘든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여진 글이어서 읽는 것 자체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데, 이번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짧은 글ㅡ해설을 제외하고 185쪽 가량ㅡ임에도 불구하고 글 전체를 관통하여, '17년 동안이나 아편을 복용하고 8년 동안이나 아편의 힘을 남용한' 저자, 토마스 드 퀸시의 적나라한 치부를 들여다보는 느낌이 드는 바람에 꽤나 고생하며 읽어야 했다. (p. 166)

     실제로 이 글은 '문학작품'이 아니라 수기(手記)로서 쓰여져 '런던 매거진'에, 그것도 익명으로ㅡ하지만 아마도 쉽게 그 저자를 예측할 수 있을법한 내용으로 실렸던 글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 글이 발표되었던 당시, 아편은 어린아이들도 평범하게 복용을 할 정도로 일상적인 약재였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재'로서가 아니라 '쾌락'만을 위한 아편 복용은 백안시되었고, '아편'의 의학적 효능에 대한 논쟁도 꽤나 활발했었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토마스 드 퀸시가 동 시대를 살아가던 실제 인물들의 실명이나 실명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그가 누구인지 추측할 수 있을만한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 수기가 얼마만큼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을지 쉽게 상상이 간다. 실제로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의 경우 반박하는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니 말이다.   

 


     짤막한 감상을 언급하기 전에 나로선 드물게도 표지가 인상적이었기에 언급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얼핏 보기에도 굉장히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는데, 얼핏 담배 연기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고, 저자인 토마스 드 퀸시가 주로 액체 상태인 아편을 복용했으리라 추측됨에도 불구하고, 다소 생소하지만 '사진'으로 구성된 이 표지는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닌, '작자 자신의 체험담'을 담아낸 이 글의 특징을 반영하는 듯한 느낌이다. 대부분의 책들이 표지 디자인 등을 통해 책의 분위기를 드러내려고 하겠지만, 이 정도로 잘 어울리는 표지는 드물지 않을까. 그렇게 표지와 제목에서부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잡은 채로 책을 읽기 시작할 수 있다는 건 꽤 괜찮은 경험인 것 같다.
 
     하지만 사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요약하기도 버겁다. 그만큼 '이야기의 문장 효과까지도 망쳐버리는' 불필요한 내용이 그다지 없는, 그야말로 아편쟁이인 토마스 드 퀸시가 그대로 담긴 글이기 때문이다. (p. 164) 일 단 간단하게 언급하자면 1부는 아편의 부작용을 겪기 전 어째서 아편을 복용하게끔 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저자의 학생 시절, 굶주렸던 런던 생활 시절 등을 이야기하고 있고, 2부는 매일 같이 아편을 복용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겪었던 환상, 고통, 아픔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부록이 있는데 이는 본래 3부작으로 이 수기를 계획했던 토마스 드 퀸시가 아편과의 마지막 싸움으로 인해 3부를 써내지 못한 일종의 '변명'이라고 보면 된다. 개인적으로 이 글을 읽으면서 줄곧 앞서 언급했던 불편함을 느끼며 읽어야 했는데 그 와중에 가장 인상적으로 와닿았던 것은 토마스 드 퀸시가 이 글을 쓸 때 혹은 구술할 때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한 독자들에게의 부탁이다.

     선량한 독자여, 내가 자명한 사실로 제시하는 것을 나 자신의 공로로 삼게 해달라. 내가 당신의 인내와 내 인내라는 대가를 치르고 그것을 사실로 입증하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해달라. 내가 당신을 편하게 해주려고 자세한 설명을 자제한 것 때문에 나를 나쁘게 생각하는 옹졸함은 보이지 말아달라. 아니, 내가 부탁하는 것을 모두 믿어달라. 즉, 나는 더 이상 저할할 수 없었다는 것을 믿어달라. 즉, 나는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는 것을 믿어달라. 관대하고 자비롭게 믿어달라. 아니면 단순히 타산적으로 믿어달라. 당신이 믿어주지 않으면 나는 내 <고백>의 개정증보판에서 당신의 믿음을 얻고 당신을 두려움에 떨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자들은 '지루한 나머지', 내가 또 같은 짓을 되풀이할까 두려워, 내가 자명한 사실로 제시하는 편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두 번 다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제2부, p. 113)

     이 모든 것, 그리고 내가 차마 말할 수 없거나 말할 시간이 없는 것에 독자들은 공감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동양의 형상과 신화적 고통으로 가득 찬 꿈이 나에게 심어준 상상할 수 없는 공포를 이해할 수 있다. (제2부, p. 155)

     이렇게 여러 차례에 걸쳐 드 퀸시는 자신이 겪었던 것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믿어달라', '공감해달라', '알아달라' 등의 말로 대신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냥 무심코 넘어갈 수도 있었을 그러한 부분들에서, 되려 드 퀸시가 겪어야 했던 일들의 공포가 생생하게 전해졌던 것은 어째서일까.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다, 는 의미인지 글을 만들어낼 당시의 드 퀸시가 너무나도 힘든 상태라 설명할 기력이 없다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2백여페이지 남짓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토마스 드 퀸시의 수기를 통해 나는 아편에 대해 거의 처음으로 안 듯한 느낌이 든다. 정말로 이 책의 주인공은 '아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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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 책의 날 기념, 10문 10답 이벤트!

1. 개인적으로 만나, 인생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누고픈 저자가 있다면?

꼭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하는 건가요. 어떤 주제든 상관없이 어떤 사람인지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대화를 나누고픈 저자라면 오츠이치. 단 현재의 오츠이치가 아니라 그가 데뷔작인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를 썼던 시절의 오츠이치를 만나보고 싶습니다. 대체 어떤 십대인거야...


2. 단 하루, 책 속 등장 인물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누구의 삶을 살고 싶으세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던 질문이지만... 기왕 책 속의 등장인물의 삶을 살거라면 화끈하게 <반지전쟁>의 프로도? 단 하루니까 그 험난한 여행의 전부를 살진 않아도 되고, 어떤 하루인지 고를 수도 있다면 원정단 전원이 모여 한가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3. 읽기 전과 읽고 난 후가 완전히 달랐던, 이른바 ‘낚인’ 책이 있다면?


<살인의 해석>. 프로이트와 융이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과대과장허위광고에 속아버렸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소설 자체는 추리물로서 그렇게 나쁘거나 혹평할만한 내용이 전혀 아니고 되려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책인데, 프로이트와 융이 사건을 해결한다는 광고에 혹해 구입한 사람으로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배신감이 더 컸었지요.


4. 표지가 가장 예쁘다고, 책 내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책은?

전면이 풍경 사진 등으로 이루어진 여행책들 대부분은 예쁘고, 책 내용과도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표지에 혹해서 책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 여행책이라서요;

5. 다시 나와주길, 국내 출간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는 책이 있다면?

아직 읽지 못한 오츠이치의 글들. 현재 오츠이치 붐이라서 ^^;

6. 책을 읽다 오탈자가 나오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요.

헐. 책에서 오타가 나와! 책에서 오타가! 하고 좀 놀랍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책이라는 게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가진 편이라 일단은 놀라고 그 다음엔 내가 틀린건가? 하고 의심도 좀 합니다. 누가봐도 오타일 경우엔 그냥 어이없어 하고 계속 읽지만, 애매한 경우엔 검색을 통해서 확인을 한 후에 다시 읽습니다. 어쨌든 그냥 계속 읽습니다.
 
7. 3번 이상 반복하여 완독한 책이 있으신가요?

<어린왕자>. 3번이 뭔가요. 백번은 읽었겠네요.
각각 다른 출판사의 다른 번역본의 책만 해도 스무권 정도 가지고 있는걸요.


8. 어린 시절에 너무 사랑했던, 그래서 (미래의) 내 아이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
말괄량이 삐삐로 유명한 아스트리드 린그렌이 쓴,
정말 눈물나게 멋지고 아름답고, 또 의미심장한 책입니다.


9. 지금까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두꺼운(길이가 긴) 책은?

<오리엔탈리즘>.
대학 다니던 시절 읽었던 책인데,
기억이 맞다면 역자후기만 해도 거의 50여페이지가 넘었던 기억이 납니다.



10. 이 출판사의 책만큼은 신뢰할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는?


다른 건 몰라도 판타지 등의 장르문학에 대해서는 황금가지를 무한 신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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