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 나이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시모토 바나나는 사실 내가 나의 이십대를 추억할 때 떠오르는 이름들 중 하나인데, 지금 생각하면 그저 너도 나도 읽길래, 어, 그럼 나도 읽어볼까, 하면서 집어 들었던 것이 '허니문'이었다. 그러니까 그 시기는 요시모토 바나나라든가 에쿠니 카오리 같은 일본 여성 작가의 담담하면서도 섬세한 문장들로 가득 찬 글을 읽는 것이 유행 비슷한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들은 그 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게 더 잘 맞는다. 그간 겪어낸 삶만큼 더 이해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여전히 요시모토 바나나는 내 이십대를 상징하는 몇 가지 것들 중 하나이고,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넘겨 준 선물 같은, 그런 작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내 독서 취향은 그 때의 나와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마도 그 시기의 내가 요시모토 바나나를 집어 들지 않았더라면 난 영원히 그의 글들을 읽지 못했을 거다. 이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과거는 현재를 만들어간다. 그리고 ‘서커스 나이트’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이 글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사야카가 의문의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편지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공교롭게도 그 발신인은 사야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다. 물론 상대방은 편지의 수신인이 사야카라는 걸 모르는 채다. 잔잔한 일상에 파문이 생기려나, 두근거렸던 것도 잠시, 이야기는 격변하기보다는 사야카의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며 사야카가 어떤 사람인지 천천히 알려주는 길로 간다. 그래서 난 안심했던 것 같다. 이래야 요시모토 바나나지, 같은 근거 없는 편안함 같은 게 느껴졌다.


<이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고 뭐고 맨발로 뛰어 내려올 관계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건 우리가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키워 왔다는 증거다. 그 시간은 계약이나 관습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우리가 키워 온 우리만의 시간이다.> (p.91)


     그리고 늘 그렇듯 그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을 두드리며 사야카라는 인물을 소개한다. 사실 소설 속 인물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하지만, 친구가 되고 싶다고 느낀 건 오랜만이었다. 여러모로 나와는 다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비슷해설까. 작가 본인도 그렇다고 하니,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의 사야카는 사물의 기억을 읽을 줄 안다. 그렇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니, 대단한 능력이지만 그 특기가 그의 삶을 조종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어쨌든 주인공은 신기한 능력을 가졌고, 범죄소설의 사건 소재로 쓰일법한 수상한 편지를 받지만, ‘서커스 나이트’는 담담하고, 잔잔하면서, 흥미롭다. 


<어중간한 상태에 있지만, 그 상태가 조금도 싫지 않다. 오히려 이대로 시간이 마냥 흘러 인생이 끝나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지금이 행복하고 추억 속에 살고 싶다. 추억을 기반으로 한 미래가 아니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기분을 내 손바닥 보듯 알 수 있었다.> (p.154~155)


     읽는 내내 과거에 얽매이지 않지만, 과거를 부정하지도 않는 사야카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글이었다. 그래서 이미 멋대로 친구가 된 기분이지만, 이미 사야카와 '서커스 나이트'는 내 책장 속에 자리를 잡고 있고, 만약 정말로 사야카와 만나게 된다면 기꺼이 내 친구가 되어줄 것 같으니까,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서표 100 - 책에 새긴 이름 POSTBOOK 1
기획집단 MOIM 지음 / 그림씨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난 시간 날 때마다 알라딘에서 '엽서', '엽서책' 그리고 'postcards book'으로 검색하는 게 취미인 사람인데, 한창 그 취미 생활을 즐기던 중에 발견한 책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이 '장서표 100'이라는 심플한 타이틀의. 엽서덕후인 내가 100이라는 숫자에 예민한 건 해외에서 발간되는 엽서북의 대부분이 100장짜리 엽서로 구성되어 있어서인데, 덕분에 놓치지 않고 이 책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사기에 앞서 정보가 필요했다. 엽서를 소장하기 위해서는 물론 실제로 사용하려고 구매하는 나는 엽서의 탈을 쓴 종이를 너무 많이 사봤기 때문에 이 100장의 엽서로 구성된, 그리고 내 기준 상당히 합리적인 가격(기존 100장짜리 엽서북의 약 60% 정도에 불과한 가격)의 이 책이 어떤 종이를 사용하는지 알아봐야 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사전서평단 모집을 알게됐고, 응모해서, 이렇게 먼저 책을 받아볼 수 있었다. 어차피 한 권 더 살거지만 실물을 만져보고 살 수 있느냐 없느냐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는 거다. 


 

 

장서표는 간단하게 말해서 책의 주인이 내 책이라고 표시하기 위해 책에 부착하는 표식이다. 예전엔 책이 고가의 소장품이었기 때문에 소유권을 확실히 표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터. 지금에 와서는 애서가들의 고상한 취미 생활이지만. 한국을 포함한 동양 쪽은 주로 도장을 찍는 장서인(책도장)이 더 주류였다고 하는데, 유럽 쪽은 장서표를 판화로 제작한 후에 별도의 종이에 이를 찍어내 책에 부착하는 장서표 문화가 발달했다. 그래선가 소장자의 특징이 드러나거나 화려하고 멋지게 제작된 장서표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이 책은 그런 장서표를 100개 추려내어 담아내고 있는데 그 형식이 엽서인 신선한 책이다. 앞 면은 위의 사진처럼 장서표를 싣고 있고,


 

 

뒷 면엔 이렇게 장서표의 소유자와 그 제작자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단순한 엽서모음집이 아니라, 짤막한 읽을 거리를 주는 '엽서책'이다. 물론 엽서로 활용하기에 충분한 여백도 존재하고, 종이 사이즈도 규격 엽서 사이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규격이냐 아니냐에 따라 엽서요금의 차이(해외의 경우 430원으로 동일하지만, 국내의 경우 규격은 330원이고 비규격은 350원이다.)가 존재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규격엽서는 좀 작다고 생각하는터라 이 정도 사이즈로 충분히 만족한다. 


 

 

사기 전부터 계속 신경쓰고 있던 종이의 두께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앞서도 말했듯이 나는 엽서를 실제로 사용하려고 사고, 특히 대다수의 엽서를 해외로 보내기 때문에 두께나 휘어짐에 매우 예민한데, 장서표 100의 종이는 가격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아주 좋은 편에 속한다. 비슷한 시기에 구매했던 마블 엽서북의 엽서 100장과 비교했을 때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필기감도 물론 중요한데, 재질 상 연필은 조금 힘들어도 대부분의 펜은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하나 흥미롭게 넘겨보다 발견한 유난히 즐거웠던 장서표를 몇 개.



 

화가 마네의 장서표다. 그냥 딱 봐도 재미있으면서 뭔가 섬뜩하다.


 

 

 

로빈슨 더크워스라는 영국 성공회 사제의 장서표와 그 설명. 장서표만 봤을 때는 이름에 Duck이 들어가서 저렇게 오리가 많은건가? 했었는데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오리로 출연하셨다고 한다. 아, 옛날에도 이름 가지고 말장난 했구나. 뭐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 귀여운 장서표였다. 

 

엽서덕후이자 책덕후인 나에겐 정말 선물 같은 책이었다. 두번째 시리즈인 Bible 100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소재인 판화그림들이라 반갑기 그지없고... 부디 앞으로도 계속 이 시리즈가 다양한 소재를 담고 출간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룡경찰 LL 시리즈
쓰키무라 료에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룡경찰.


제목부터 끌렸던 작품이었다. 물론 제목만 보고도 읽고 싶어지는 작품은 자주 만날 수 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그 끌림이 유지되는 경험은 흔치 않다. 되려 더 흥미로워지기까지 했으니, 참 괜찮은 제목이다.


기대와는 다른 작품이었다. 상상했던 것은, 조금 먼 미래, 지금과는 조금 다른 사회 속에서 기갑장비를 타고 호쾌하게 범죄자들을 소탕하는 쿨한 경찰들이 주인공인 그런 이야기였다. 아니었지만. 보다 가까운 미래, 사실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회. 그 속의 일본, 그 안에서도 철저하게 자신들의 성 안에 들어 앉아 있는 경찰조직과 그런 경찰의 치부로 인해 탄생한 특수부간의 알력. 전쟁과 테러,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압도적인 스펙의 기갑장비, 드래군이 있다. 막연한 미래상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사는 현실과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일들이 현실적인 매력으로 넘치는 캐릭터들과 가상의 장비, 기갑병장과 함께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야기는 어느 날 경찰서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흔히 있는 신고전화 쯤으로 생각하고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들은 <인체를 본떠서 설계한, 총 길이 3.5미터에 이르는 이족보행형 군용 유인 병기 '기갑병장'>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도 한 기가 아닌 세 기씩이나. 그리고 그것들은 시내로 돌진하기 시작한다.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면서. 세기말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야기지만, 한편으론 인간형 로봇들이 등장하는 SF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특히 다른 기갑병장들과는 차원이 다른 <드래군>의 묘사에 이르르면 부족한 상상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그 모습을 상상하게 될 정도다. 거기에 각자의 사연을 품고 있는 특수부의 외인 부대 3인이 있다. 드래군의 탑승자이자 드래군이 없더라도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와 경력, 실력을 지닌 이들. 아직 첫번째 이야기이기에 이들의 사연도,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진 사건의 배후도, 드래군의 확실한 정체 혹은 활약도 아직 제대로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프롤로그와도 같은 역할이겠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다음 이야기를 빨리 읽어보고 싶게 만들었으니, 이쯤되면 완벽한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듯 하다.


그래서 다음 편은 언제쯤 읽어 볼 수 있는 거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엔드 오브 왓치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전, 스티븐 킹의 탐정소설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처음 읽었을 때, 다소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퇴직한 형사이자, 탐정 역의 빌 호지스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빌런이었던 '미스터 메르세데스'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었다. 그 결말도. 그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이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이었던 '파인더스 키퍼스'를 읽었던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전작과의 연결고리가 있긴 했지만 그 자체로도 완벽히 아름다운 글이었고, 그제야, 아, 역시 스티븐 킹은 스티븐 킹이로구나,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작품 속에서 다시 한 번 '미스터 메르세데스' 브래디가 등장했을 때-아주 짧은 등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느꼈던 전율을 아직 기억한다. 아, 그럼 그렇지. 킹 옹이 그렇게 끝냈을 리가 없지! 다시 한 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다림 끝에 드디어 빌 호지스 삼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엔드 오브 왓치'의 마지막 책장을 지금 막 넘기고 오는 길이다.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역시 스티븐 킹이다.


     이야기는 조금 복잡하다. 아마 전작들을, 특히 첫번째 작품이자 이 이야기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미스터 메르세데스를 읽지 않았다면 따라 잡는 것이 조금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읽지 않았더라도 필요한 만큼의 설명은 친절히 하고 있는 편이다. 되려 이 작품을 먼저 읽는다면 궁금해서라도 전작들을 찾아보게 만들 정도로. 어쨌든 모든 것은 브래디 하츠필드라는 한 범죄자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처음 등장했던 전작에선 다소 매력없는 악당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바보로 느껴질 정도로 독특하고, 흥미로운 존재로 돌아왔다. 그리고 빌 호지스가 있다. 역시나 처음 만났을 땐, 한 시리즈를 이끄는 탐정이라고 하기엔 조금 어색하고 재미없어 보였던 빌이었지만 이제는 그의 건강이 걱정될 정도로 친근하고 반가운 존재다. 시리즈 내내 서로를 신경쓰고, 생각해왔던 두 사람이 드디어 다시 만나고, 드디어 관계의 마무리를 짓는 이야기라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가치가 있지만, 두 사람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ㅡ물론 그 둘을 제외한 이들과 독자인 나에게는 아닐 수 있지만ㅡ 끝을 선사하기까지 한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설명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작품은 오랜만이다. 짤막한 문장 몇 개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이러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할 뿐이다.


     사실 상상조차 못했었다. 물론 일명 미스터 메르세데스, 브래디 하츠필드가 육체만 살아있을 뿐, 아무런 인지능력이 없는 상태라는 건 믿지 않았지만 이러한 방향으로 흘러갈 줄은 몰랐다. 처음엔 이야기 속 빌 호지스와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이지 형사가 느꼈을 감정과 더 가까울지도 모를만큼, 당혹스럽기도 했고 난감함까지 느꼈다. 악마와도 같은 속살거림으로 사람들을 자살로 인도했던 브래디에게 새로운 영역이 열린다는 자체가 끔찍했던 것도 사실이고. 대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문장을 따라가며 읽어가는 동안 서서히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ㅡ마치, 내가 책이 아니라 재핏을 들고 있는 것처럼!ㅡ 스스로를 느끼게 되더라. 그만큼 '엔드 오브 왓치'는 그 자체로도 잘 짜여진 글임과 동시에 '미스터 메르세데스'에서 열렸던 이 이야기의 문을 완벽하고 깔끔하게 닫아주는 멋진 작품이었다. 만약 다시 그 문이 열릴 수 있다면, 꼭, 그래주었으면 좋겠다는 독자의 작은 바람도 분명 있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당 밀리언셀러 클럽 147
야쿠마루 가쿠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선한 외모의 배우 앤드류 가필드가 나오는 '보이 A'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어린 시절 범죄를 저질렀던 소년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복귀하고 난 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는 비록 가해자였지만 이제는 성실하게 살고 있는 그에게 또 다시 기회를 주고 말고를 대체 누가 결정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 죄값을 치뤘다면 그 다음엔 사회가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이야기는 거의 완벽하게 배제된다.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보다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피해자가 진심으로 그를 용서했는지 어떤지는 가해자의 사회복귀에 그리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야쿠마루 가쿠의 '악당' 속에도 방향이 조금 다를 뿐 피해자가 배제된다는 결론은 비슷한 시선이 있다. 가해자는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느냐는 질문 속에는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용서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어차피 용서받을 수 없으니 용서를 구하지도 않을 거고 착하게 살지도 않겠다는 '악당'들이 존재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호프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는 사에키 슈이치다. 그는 우연히 자신의 아들을 죽인 가해자의 현재와 그를 용서해도 되는지 아닌지를 알아봐달라는 의뢰를 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다양한 가해자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일련의 의뢰들을 해결해나가는 동시에 그의 삶을 줄곧 옭아매고 있던 '그 사건'의 가해자들에게도 조금씩 가까워져간다. 사에키는 피해자다. 피해자의 가족이고,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풀리지 않는 의문과 증오를 가지고 살고 있다. 자신의 누나가 학생이었듯이 가해자들 또한 미성년자였기에 그들의 신상은 철저하게 보호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알아내는 것만으로도 수년의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피해자 입장에선 그조차도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해자들은 대부분 잘 살고 있다. 괴로워하고 고생하고 있는 것은 역시 피해자들이다.

 

     내 어떤 모습을 봤어야 용서할 생각이 들었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 용서를 받을 수 있나?

 

     작품 속에 등장하는 가해자의 질문이다. 만약 당신이 피해자라고 했을 때, 가해자가 저렇게 물어온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만약 나라면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뻔뻔함에 크게 화를 내거나, 차갑게 무시해버리거나, 혹은 그딴 방법이 있을 리 있겠느냐고 헛소리 집어 치우라고 했을 것 같다. 저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온갖 훌륭하고 의미있는 선행들을 하며 남은 생을 살고 있다면 용서할 수 있을까? 제3자라면 혹시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면 됐잖아, 개과천선해서 훌륭하게 살고 있네, 따위의 말을 하면서. 하지만 당사자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용서한다고 해서 상대방에 대한 모든 원망과 미움이 사라질 리도 없고, 과거가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하물며 그 가해자가 반성의 기색조차 없다면? 답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 그 어떤 일이 일어나건 간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걷는 길은 영원히 평행선일지도 모른다. 물론 세상엔 가해자를 용서하는 피해자도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그건 용서가 아니라 체념하는 것에 불과할 뿐일 거라고 생각한다.   

 

     사에키의 결론도 그에 가깝다고, 나는 느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가, 그리고 세상의 모든 피해자들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보란 듯이, 웃으면서. 

 

* * *

 

책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그 내용을 곱씹고 되새김질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