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끝에 몇 명의 천사가 앉을 수 있을까를

골똘히 그리고 열렬히 논쟁하는 스콜라들이 

11월 초에 상암동에 "도적처럼" 재림했다.


미처 "등잔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늙은 신부인 나는 

요즘 그들과 무익하고 유해한 댓거리를 벌이고 있다.


일터 안과 밖이 어수선하다.


그  와중에 읽은 책들.

















사이 몽고메리의 <문어의 영혼>과 호프 자런의 <랩걸> 

그리고 에드 용의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


혼자보기 아까워서 여럿에게 권했다.


어떤 깨달음을 얻는 것 만큼 중요한 것 두 가지.

그 깨달음을 기록하고 나누는 것.


문어와 식물과 미생물, 

그 이종의 세계, 미세 영역을 관찰하다

도리어 자신을 포함한 

인간 개체의 삶을 되돌아보고

깨달은 사람들의 기록.


갑자기 차가워진 늦가을 밤에

책방 한 구석에서 웅크리고 <랩 걸>을 읽다가

어느 한 문단에서 찌릿했다. 나는.


나머지 두 책들 모두

"찌릿"한 챕터와 문단이 있다.


나는 좋았다.

평안과 지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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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 나갔다 사고로 죽은

어린 노동자의 카톡 메시지.


"또 야근합니까?'


열여덟 생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우리 아들보다 한 살 많다.

더 짠하고 아프다.


사람값이 개값보다 못하게 된 시절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현장 실습이란 미명하에

아직 핏덩이같은 애기들 불러다 싼값에 

착취하는 일은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


이군은 10m 긴 라인을 혼자서 담당하며

하루 12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회사는 어린 비숙련 노동자에게

경험많은 노동자 두어사람의 일을 맡긴 셈이다.


지난 달에는 심하게 다치고도

회사의 출근 재촉에 제대로 낫지도 못한채

출근했다고 한다.


아동착취와 다를바가 없다.


오늘이 수능날이다.

12년간 쌓은 배움으로 

남은 삶의 행로를 결정지을지도 모를 

한판 싸움을 치르는 날.


아침에 수험생 몇을 지나치며 보았다.

아무리 어른인척 해도

입매에 아직 앳된 기운이 남아있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나중에 어떤 현장에서도

"또 야근합니까?"라는 질문을 하게 해서는 안된다.


이민호군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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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낮부터 늦은 밤까지 

삼청동 어느 골목 구석에 있는 

누군가의 작업실에서 길고 회의를 했다


결론이 당장 나올 없는 안건으로

당장 답을 도출해야 하는 그런 회의.


막연뜬구름지루짜증


제법 밤이 늦어서야 자리를 파하고 

광화문까지 걸었다


늦은 밤거리는 어두웠고

바람은 차가웠다


무거운 배낭은 짊어지고

고개는 숙이고 


궁시렁투덜투덜


터덜터덜 삼청동 길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짜잔 하고 아래가 환해졌다


신발 주변에 가득히 퍼진

노란 등빛의 따뜻함


무슨 조화인가 둘러보니 

폴란드 대사관의 외등이 켜진 것이다.


동작 센서가 달린 외등이 

움직임을 읽고 켜진 .


순간

덜 추웠다.


참 좋았다.


….


땡큐..폴란드 !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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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 이후로

오랜만에 신심과 덕력이 터지는 두 권의 한국 소설을 읽었다.


하나는 단권으로 900페이지에 달하는 

박지리 작가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다른 하나는 김희선 작가의 <무한의 책> 


두 권 모두 크고 두꺼워서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배개로도 쓴다는 러시아 흑빵 뜯어 먹듯 읽었다.


나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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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생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내가 걸어가듯
리듬이 흘러 나오고
당신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듯
그 순간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여럿이 모여 막걸리를 나누어 마셨다.


오늘 나에게

필요한 "그 순간"이었다.


뭐 하나 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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