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문화
배리 글래스너 지음, 연진희 옮김 / 부광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은 이미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도 출연한바 있는 배리 글레스너씨의 책이다. 본서는 미국에서 '가장 듬직한 사회학 서적'으로 꼽히며 그 해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지만, 책을 본 나의 느낌으로써는 미국에서 출간되는 사회학 서적의 고질적인 난점-이전에 황광우씨가 그의 책 '레즈를 위하여'에서 지적한바대로 '사상의 빈곤, 내용의 과다'-을 본것같아서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저자가 '공포 행상인'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언론일수도 있고 정부관료일수도 있으며 학자일수도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말장난과 통계장난 혹은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는 방법등으로 대중들에게 공포를 '판매'한다. 그들이 이렇게 공포를 판매하는 이유는 세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는데, 1)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회의 흐름을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2)돈을 벌기 위해 3)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고 책이 루즈벨트가 말한바대로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공포 그 자체'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는 것에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 그리하여 정작 공포를 느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부분이 가려지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미국의 사례들을 들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PC'라는 딱지를 붙혀 진보정치에 대해 조건반사적인 공포감을 조성한다는 사례나, 범죄자에 대한 일벌백계식의 센세이셔널한 보도만을 일삼으면서도 정작 범죄의 핵심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 빈곤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오히려 복지 예산을 삭감할 생각만 하고있는) 정치세력이나 기업의 이야기를 보며, 이것이 과연 미국에만 해당하는 이야긴가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책이 명확한 주제의식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예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은-물론 이게 어느정도는 이 책의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본서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인다. 책에는 대부분 미국에서 센세이셔널하게 다뤄진 일화들이 수록되어 있어 미국독자들이 보기에는 흥미롭기도 하고 반성도 되겠지만 한반도에 사는 우리로서는 대다수의 예들이 그저 남의 나라 일처럼 보일 따름이다.(물론 언론의 작동방식은 우리나 그들이나 정도의 차이일 뿐 그닥 다를껀 없기에 이런저런 생각할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정도 문제를 알기위해 과연 우리가 이렇게 많은 예들을 읽어봐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고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한다면,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되시는 분들께는 일독을 권한다만, 책의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분량을 생각한다면 본서보다는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을 추천하고 싶다는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익환 평전 역사 인물 찾기 15
김형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러니까, 개인적으로는 평전이 '너무 많이'출간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라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고, 그런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긴 하다. 하지만 어쨌건,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책을 구입한 이유는 순전히 책 표지의 사진 때문이었다. 대학 입학당시 무슨 일로 붙어있던 것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하여간 학회실 여기저기에 붙어있던 행사 홍보 포스터(?)의 배경사진이 바로 이 책 표지의 사진과 동일한 사진이었다. 행사가 끝나고도 꽤나 오랫동안 떼어지지 않고 붙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럼에도 언제나 그 포스터에 눈이 갔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 사진 속 인물에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곰곰히 옛 기억을 반추해보면 흥미로운 것은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던 나였지만(단적으로 만26년 조선일보 독자란게 그 예다. 더군다나 중딩때부터 고딩때까진 그냥 독자도 아닌 '열독자'였으니ㅋ) 문익환 목사님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본적도 없고, 나 또한 유독 문목사님에 대해서는 '빨갱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책을보며 모든 사람을 '섬기러 오신'듯 행동하신, 때문에 언제나 자신을 낮추어 세상을 아름답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신 그 분의 파란만장하면서도 일관된 일생이, 그 수많은 흑색선전마저 그 분의 모습을 왜곡시키지 못하도록 만든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전을 쓴 김형수씨의 직업은 문인이다. 이러한 저자의 배경은 책의 강점이기도 하고 약점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이런 인생이 있을수 있나 싶을 정도로 우리의 20세기를 그 한몸에 온전히 담아낸 문목사님의 일생을 정말이지 드라마틱하게 서술하여 평전에 감동과 재미를 준 것은 그 배경이 강점으로 작용한 측면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주변의 몇몇 분이 평하시는바대로 독자에 따라선 문체가 영 취향에 안 맞는 경우도 있겠다싶은 생각은 든다.(그렇다고 몇몇 평전들처럼 한 개인에 대한 찬양 일변도로 가지는 않는다)

우리가 아는 문익환 목사님의 모습은 1976년 59세 나이로 '3.1민주구국선언'성명서를 작성한 것이 처음이다. 하지만 책은 우리가 아는 문목사님의 모습만큼이나 우리가 알기 이전의 문목사님 모습이 중요하다며 그 분의 일생에 대해 자세하고 극적으로(?) 서술해 나간다. 자신의 컴플렉스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며 그 컴플렉스를 하나, 둘 극복해가던 그 분의 모습, 그 고생스럽고 위험했던 저항의 공간마저도 웃음의 공간, 해학의 공간으로 녹여버릴 만큼 그 분의 광대한 '사랑'은 정말 인상적이었다.(참고로 문익환 목사님께선 생전에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모든 것은 좋습니다. 좋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악은 무엇인가? 악은 악용된 선이 아니겠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의 80년대는 문익환 목사님으로 흘러들어가 문익환 목사님으로부터 다시 나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리라는 생각이 든다. 80년대는 문 목사님 만큼 가능성이 존재 했고, 문목사님 만큼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넘치는 정열과 헌신, 사랑과 휴머니즘은 80년대의 가능성이었지만, 분명 너무도 순진하셨고, 다소 감상적이셨던 부분 또한 없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분을 단순히 진보적 민족주의자 정도의 구획에 가두는 것은 그 분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그 시대에 대한 모독이기도 한 듯 싶다. 그 분은 단순한 사상적 구획설정을 뛰어넘는 수준의 사고와 그 무엇보다도 정력적인 실천을 하셨던 분이시기에.

여담이다만, 문목사님의 인생은 그 출생부터 한국 현대사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에 있으셨던지라 책은 '한 유력한 재야 운동가를 중심으로 본 한국현대사'수준이다. 한국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책은 충분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인다. 물론 그보다 중요한건 그 분의 정말이지 '위대한'일생이겠지만. 엔간하면 평전은 추천 안하는데, 이 책만큼은 예외로 하고 싶을만큼 괜찮았다.

ps.문목사님 사진을 보며 느낀건데, 40세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이 정말이지 옳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나도 그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는. 내가 가진 소망 중 가장 실현불가능 한 소망인듯ㅋ-_-v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의에 대한 강의 동문선 현대신서 8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 동문선 / 199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자인 현택수 교수는 뒤의 해제에서 '부르디외 사회학에의 초대'라는 말로 본 책을 소개하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절한 소개였다는 생각이 든다. 부르디외의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강연문인 본서에서는 부르디외의 주요개념인 아비투스, 문화자본, 상징폭력, 그리고 무엇보다 장(場, Champ)등의 개념이 그 짧은 분량에 비해 비교적 자세하고 광범위하게 설명되고 있다.

부르디외는 일종의 주술행위이자 상징적 권력부여라 할 수 있을 '강의'의 성질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회학 이론들에 대해 하나, 둘 이야기를 해 나간다. 그는 권력은 물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때문에 우리는 장(場) 속에서 경쟁, 대립함으로써만이 재생산되는 아비투스와 장의 구조를 붕괴시킬 수 있을것이라 역설한다. 아울러 그러기 위해서 사회학은 끊임없이 그 상징적 권력부여의 측면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반성하여, 과학의 '상징폭력'적 지위에 이의를 제기하여야 함을 그는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작업이 갖는 탁월성은 굉장히 '실천적'이면서도 '다원적'이라는 점에 있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 자신의 말마따나 그저 '신비화 작업'일 따름인 과학의 '객관성'을 비판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는데, 자칫 지적 허무주의나 상대주의로 흐를 수도 있을법한 그의 이러한 작업은 "보편화 담론을 이용한 상징폭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는 두텁고 굳건한 목적하에 이루어지고 있기에 권력이나 폭력에 대해 결벽적인 지식인들이 흔히 빠질 수 있는 함정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는 듯 싶다.(이러한 그의 사상은 그의 생전의 '행동'을 통해 명명백백히 보여졌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그는 지난 2002년 사망했다-사회적 실천의 영역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끝으로 본서의 번역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굉장히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려 읽히는게 사실인데, 이유는 부르디외의 난해한 화법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이없는 번역의 영향도 크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역자마저 해제에서 불만족스러운 번역이라 인정하며 '독자의 각별한 인내심과 양해를 구한다'고까지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다소 '뻔뻔하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내 6000원은 어쩔 것이란 말이더냐. 동문선의 책은 비싸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다시 번역'해서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는 조그마한 바램을 가져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 지식인과 그 사상 1980 - 90년대 당대총서 13
윤건차 지음, 장화경 옮김 / 당대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저자인 윤건차씨는 인문학 분야에 있어 '1세대 재일조선인 학자'로 칭할만한 분이다. 본서는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저자의 공부 과정 중에 쓰게 된 책으로써 일종의 학문적 중간결산이라 할만한데, 책은 그러한 중간결산을 넘어서는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한국에서 오랜기간 생활하신 분이 아니시기에 이런저런 얽매임으로 비켜가 있으며 조금 더 외부의 시각이라는 특수성으로  한국 사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그 사상논쟁의 흐름으로부터 언제나 벗어나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기에 그러한 부분에서는 다소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때문에 책에서는 '~같다', '나름대로 생각해보자면'식의 소극적인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외려 이러한 표현들 덕택에 어디까지가 저자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저자가 언급하는 학자의 생각인건지 구분해내기 수월했다.

책은 부제에서 보여지듯, 80년대와 90년대의 한국 지식인과 그 사상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저자는 우선 '혁명의 시대'이자 '사상의 시대'이기도 했던 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과 민중개념에 관한 사상, 그리고 리영희, 백낙청선생 등 주요 지식인들의 활동과 사상등등을 정리하고 있으며, 그 다음으로 동구의 몰락 이후 90년대에 진행된 다양한 흐름 즉, 알튀세르나 발리바르 등등등을 통한 맑스주의의 재모색 및 시민운동론의 등장, 포스트모더니즘의 유행과 소멸을 논하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97년 IMF이후 신자유주의 시대에 정말이지 혼미에 혼미를 거듭하는 수많은 사상들의 모색과 새로운 이합집산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말이지 '압축근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복잡다단한 역사를 거쳐왔으며 또 진행되고 있는 한국에서 지식인들의 사상흐름 또한 어지럽기 이를데 없으나 저자는 그러한 사상흐름을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잘 정리하고 있다.

책에 정리된 우리 지식인들의 사상흐름을 보며 어두운 시대, 실타래처럼 꼬여 해결할 수 없을듯 해 보이는 과제들을 껴안고 수많은 고민을 한 우리 지식인들의 고뇌가 느껴져서 새삼 경외심이 들기도 했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피나는 노력이 실제로 사상의 풍요를 낳았는가 하면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압축근대, 식민지성, 포스트모던적 경향이 혼재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 지식인들은 외국 사상을 수입해 와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것이 사실이었고, 이러한 사상의 무분별한 수입은 수많은 오해와 사변적 경향만을 낳게되어, 갈수록 오늘의 현실 및 실천적 측면에서 괴리를 보이게 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근대'라는 개념만해도 스스로도 무엇인지 모르고 남발한 것, 그 근대 또한 우리가 '식민지'근대라는 자각조차 없이 제1세계 이론들을 수입하느라 급급해서 우리의 현실을 파악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통일조차 안된 상황에서 너무도 쉽게 탈국가 탈민족을 떠들다보니 관념적으로 흐르게 된 것, 유의미한 좌파정당 하나 없는 상황에서 제3의길을 수입했다가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꼴이 된 것등등이 그 비근한 예 중의 하나이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사상적 흐름과 지식인들의 고민이 무의미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사상의 수입과 고민들이,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로 우리의 현실을 고민하는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은 지울 수 없었다.(사실 이런 책이 우리 학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일본학계를 통해 출판되었다는 사실도 오늘 우리 사상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아울러 현실적으로 운동이 단순히 이론이나 이치로만 움직이는 것도 아님에도 그간 지식인들이 운동적 측면에 있어서까지 너무 결벽증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살짝 들었던게 사실이었다.

아무튼 저자의 성실한 정리와 설명은 어찌보면 어렵고 복잡한 주제를 쉽게 읽힐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뿐만아니라 한국 지식인의 사상을 설명하면서 그 사상의 세계사적 배경과 간략한 설명까지 곁들여져 있어 사상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는 나로써도 어렵지않게 우리 현대사상의 흐름을 조망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저자가 개입하여 '외부인(?)'의 시선으로 우리 사상가의 사상을 평가하고 비판하는 곳에서 개인적으로는 그간 생각도 못했던 부분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정말 내가 아는 것들이 참 보잘것 없구나라는 자각 또한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김진균, 백낙청, 최장집 선생님부터 이진경, 강내희, 조한혜정씨까지 수많은 지식인들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좀더 짜임새있게 그들의 저술을 비판적으로 읽고 평가하고자 하는 분들이라면 읽어보셔도 절대 후회하시지 않으리라 장담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마도 내 대학시절 캠퍼스 전반(?)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을 꼽으라면 이 책을 꼽아야 하지 않을까? 여담이다만 개인적으로도 본서를 이용해 대학 1학년때 세미나를 했고, 2학년땐 세미나를 진행했으며, 3학년땐 세미나를 구경(?)한 바 있다. 그야말로 '한놈만 패는' 안티조선 운동을 가장 대중화(?)시킨 것은 강준만씨의 공이 가장 크겠지만, 그러한 실천적 운동 이전에 언론을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본서의 영향력은 정말 컸으리라는 생각이 든다.(그런가요?ㅋ)

책은 신문이 신문이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정인, 어찌보면 신문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편집'을 중심으로 신문에 대해 논한다. 저자는 이러한 편집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 후 이처럼 중요한 편집이 정치에 의해, 사주에 의해, 광고주(즉, 자본)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어 왔으며 왜곡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책을 보다보면 정말이지 우리는 언론이 정해놓은 메트릭스 속에서 살아간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충격적이다. 이러한 왜곡된 가상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저자의 제안은 비교적 간단명료한데, 그건 바로 독자 스스로 '편집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라'는 것. 이는 처음 본서를 읽었던 대학 1학년 시절의 나에게는 단순히 행간을 읽으라는 조악한 수준의 신문독법을 넘어서는 정말이지 '혁명적인' 제안으로 다가왔다.

사실 스튜어트 홀 말마따나 언론정보는 일방적으로 주입되고 수용된다기보다는 다 액센트성을 지닌 정보가 공급, 소비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자본에, 언론권력에, 정치권력에 종속된 우리의 언론을 바로잡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효과적인 방법은 독자들이 능동적으로 편집을 재구성하여 입체적으로 독해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 때문에 '더러운 창을 깨자'는 저자의 제안은 지금까지도 정말 가슴에 와닿는다 하겠다.

ps.여담이다만, 이 책에 사례로써 수록된 수많은 기사들은 사료적 측면에서라도 보관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구판도 봤고 개정판도 봤는데, 내용상 큰 차이는 없어보이며 단지 역시나 사료적 가치(?)가 있을만한 몇몇 기사들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물론 민언련으로부터 '향후 몇십년간 이런 사설이 또 나올수 있을까'라는 영광어린? 평가를 받은 조선일보의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사설도 추가되어 있다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