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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민주주의 - 학술총서 94
로버트A.다알 지음, 안승국 옮김 / 인간사랑 / 1995년 10월
평점 :
품절
세번째로 '본' 로버트 달(본서에는 '다알'이라고 되어있지만, 대부분은 '달'이라고 표기하더라)의 책이지만, 솔직히 완독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에서 그의 정말 새심하고 꼼꼼한, 정말이지 바늘하나 들어갈 틈새없을 정도로 완벽했던 그의 논리에 이미 질릴 정도로 경탄한 바 있었는데, 본서에서도 그의 그러한 꼼꼼함은 유감없이 발휘된 듯 싶다.
토크빌은 민주주의에서 사회 구성원의 동질화는 필연적이고 그 동질화에 기한 평등은 성질상 본래부터 주어지는 것이기에 평등의 확대로 인한 자유의 침해를 우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토크빌이 보았던 미국적 특수(농경사회였고, 토지에 제한이 없었던-인디언이라고 불리우는 원주민들을 수탈하면 되었기에, 적어도 미국의 백인 남성들에게는 그랬다)에 비롯된 잘못된 전제에 선 논증이었고, 산업화 이후의 사회는 오늘날 보여지듯 자유가 평등을 극심할 정도로 침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부의 편중 현상은 대다수 계층에게 민주주의-거칠게 말해 그 중에서도'자치권'(우리로 치면 '정치적 기본권'쯤으로 생각해주면 될것같다)-의 실현을 어렵게 만들었고, 이러한 자치권을 침해하는 원흉이라 할만한 기본권인 '사적소유권'이 알고보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될만한 절대적인 기본권-자치권과 동위에 설만큼의-은 아님을 그는 책을 통해 논증해 낸다.(정말 역사적, 법학적, 정치적 탐구를 복합한 이 논증 과정은 빛날 지경이다.)
그리고 그는, 어찌보면 민주주의 사회의 유일한 성역(?)이라 할 수 있는 기업에도 그 민주적 잠재성과 민주공화국(우리나라도 분명 민주공화국인데, 이 말 참 어색하다)에 미치는 유익한 효과를 고려하여 민주주의가 적용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그 대안으로서 '자주관리기업체제'를 내세운다. 이 기업체제는-개인적으로도 잘 이해했는지 의문스럽기는 하다만-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기업을 소유하여 1인1표로 기업의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인데, 이러한 기업체제가 과연 기존의 '주주자본주의' 체제보다 효율성이 있을 것인지, 거시경제적 목표(투자, 고용등의 확대)에 적합한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담보할 수 있을것인지, 주주에 대한 기본권 침해는 아닌지 등등에 관한 수많은 의문에 대해, 그는 본서에 제시된 여러 자료와 논증을 통해 외려 기존의 체제보다 합리적이며, 아울러 심각하게 망가진 오늘날 민주사회의 정치적 평등을 어느정도 복원할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읽으면서 유럽의 '이해당사자자본주의'가 떠오르기는 했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노동자의 참여가 조금 더 포괄적이면서도, 기업이 국가 및 여러단체-노조를 포함하여-로부터의 자율성을 더욱 보장하고 있기에 다소 차이는 있어보였다. 확실한 것은 그 또한 이런 기업체제의 변화 자체만으로 이미 망가져버린(?)오늘의 정치적 평등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할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기업의 민주화 뿐 아니라 소득재분배정책, 그리고 경제적 자원의 정치적 영향력 규제정책 등이 뒤따라야만 정치적 평등이 어느정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달성될 것이라 언급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사회안전망이라고는 거의 갖추어지지 않은 우리의 현실때문인지, 오늘의 우리에겐 외려 경제민주주의보다 후자의 정책들이 더 절실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먹고살아야 민주주의'-이는 일부는 맞을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잘못된 주장임을 저자는 책에서 밝히고 있다-의 경제민주주의 버전인것 같아서 맘에 조금 걸리기는 한다만)
저자는 이런저런 논증과정을 통해 결국 기업민주주의가 조금 더 합리적임을(적어도 현실적으로 이를 대체할만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기에) 논증해내긴 했지만, 이것이 정작 정말로 실현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바로 국민들의 신념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이런 언급은 그가 처음은 아니다. 토크빌 또한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경험, 관습, 여론과 같은 사회적 관행'이라 말한 바 있다. 비슷하게 잘살아도,(혹은 못살아도)어느 국가는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했고, 어느 국가는 후퇴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민주주의는 단순히 투표하고 대표자를 뽑는 것만이 아니다.(사실 오늘날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나마도 무시하는게 현실-물론 이는 국민탓만도 아니다. 정당체제, 언론등등의 합작품 정도겠지-이지만ㅋ)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욱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지키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은 민주주의에 무관심하거나 아예 '알지못한다.'(더 암울한 것은 잘 모르면서도 다 그냥 아는줄 착각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지만-_-v) 개인의 자존감이란 온데간데없이 온통 영웅만을 고대하고, 수탈당한 수많은 민중의 땀보다는 독재자만을 추억하며, 너도나도 그저 대박만을 기대하는 오늘의 세태를 보면, 사실 경제민주주의는 커녕 '협소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민주주의라도 제대로 되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라는.(너무 오반가?ㅋ-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