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75
강성호 지음 / 책세상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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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씨가 어떤 강연에서 왈 "여러분들, 역사가 고대 지나서 중세 지나서 근세 살짝 걸치고 근대지나 지금에 왔다고 생각하시죠? 이런 식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대다수일텐데, 이런 식의 역사인식을 하는 사람들은 맑시스트에요"

물론, 당시 김용옥씨의 이 발언은 마르크스의 사관을 비판하기 위한 전제로 한 발언이었지만, 이 발언만 봐도 일반인들의 인식에 맑스주의 사관이 알게 모르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알게 해 준다. 하지만, 이러한 맑스주의 사관은 스탈린주의에 의해 단순화, 직선화, 경제주의로의 환원화되어 많은 '구멍'과 이론적 모순을 노출시켰고, 이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이라는 새로운 조류가 탄생하는 원인이 되었다.저자는 그러한 스탈린주의 사관을 비판하는 것으로부터 이 책을 시작한다.

책은 단순히 이러한 단선적인 스탈린주의 사관을 비판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본서에는 스탈린주의 사관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 또한 잘 정리되어 서술되어 있다. EP톰슨과 앤써니 기든스, 쿠진스키와 월러스틴, '역사작업장'지와 서발턴 연구집단의 시도, 그리고 에릭 홉스봄까지 수많은 걸출한 맑스주의 역사학자들의 다양한 작업들을 소개하고 그들이 극복하지 못한 한계까지 알기쉽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난점을 비판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러한 역사학 조류로 인해 역사학이 더욱 풍요로워졌음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그러한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문제의식을 수용하면서도,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직도 맑스주의는 실천적 함의를 가지고 있기에 여러가지 좌절을 통한 경험을 거울삼아 새로운 맑스주의 역사학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적은 분량에 이렇게 다양한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잘 정리, 분석하고 자신의 주장까지 빠뜨리지 않은 저자의 능력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역사학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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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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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는 리영희 선생님의, 아마도 마지막 저서가 될 듯 싶은 책이다.(라고 쓰려는데, 얼마 전 '전집'이 나오면서 신간이 하나 더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 선생께선, 지난 2000년 말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우반신이 마비되셨지만, 이 책의 출간을 위해 왼손으로 오른손을 잡고 하나, 둘 교정을 보셨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구입하면서도 이 많은 양의 책을 올해안에 다 읽을 수 있을지가 의심스러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임헌영선생과의 대담 형식으로 짜여진 책이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리영희 선생도 리영희 선생이지만, 임헌영선생의 체계적이고 요점에 맞는 적절한 질문과 대담 또한 이 책을 빛나게 하는 한 요소로 보이는데, 임선생께선 리선생의 업적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 뿐 아니라, 그 분의 학문적 내용에 관하여도 시대 순으로 찬찬히 질문을 하여 책이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계시다.

책을 보는 내내 놀라웠던 것은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은 선생의 사상이었다. 물론, 선생께선 그간 어떠한 거대한 사상을 구축하는 작업을 하신 것은 아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선생께서는 옛 진보주의자들이 보였던 여러가지 오류마저도 너무도 가볍게 뛰어넘고 계시다. 포스트모던이니, 해체니, 노마디즘이니 하는 수없이 어렵고 알아듣기 힘든 암호같은 단어나 개념을 단 하나도 사용하지 않으시고도, 선생께서는 이미 그러한 사유를 옛부터 해오셨고 심지어 실천해오시기까지 하셨던 것이다.

한쪽에서는 '사상의 은사'로 한쪽에서는 '의식화의 원흉'으로 불리워지는 리선생님이지만, 책을 읽은 후 개인적으로 양쪽이 다 틀렸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생께서는 군인이시기도, 학자이시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역시 저널리스트라고 보는 것이 좀 더 옳다고 보여진다. 아울러 선생께선 선생 스스로도 이전의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 인정하신 바대로 거대한 사상이나 고답적인 담론을 거드는 것 보다는 암흑같은 시대에 진실, 오로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초인적인 희생을 하신 분이다. 이는 학문적으로 자칫 쉬워보이는 작업처럼 보여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그만큼 굉장히 어려웠고, 위험했으며, 세상을 바꿀만한 소중한 작업이었다. 즉, 선생께서는 '사상의 은사'라고 불리기 보다는 '우리시대의 은사'라고 불리워지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하겠다. 

수많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는 오늘날 우리의 출판시장이지만,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 빛난다. 이는 어느 군인이자, 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한 원로의 진솔하면서도 의지에 찬 힘있는 목소리 때문일 것이리라. 시대와 역사와 사회를 고민하시는 분이라면 그 누구든, 때문에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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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33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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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오는 고전'에 대한 나의 지독한 편견-즉, 굉장히 재미없고, 굉장히 보수적이며, 굉장히 뻔한 얘기들 뿐이라는-은 이책을 만나기까지 수년의 세월을 걸리게 했다. 뒤늦게나마 다 읽고 생각한 것은 너무 늦게 만났다라는 아쉬움과 후회, 그래도 지금에나마 읽었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감 뭐 이정도?

이 책은 오로지 역사학도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균형잡힌 시각을 잡아주기 이전에 그 균형잡힌 시각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해명해주는, 때문에 그저 기계적 중립성의 함정에 빠져 스스로가 굉장히 공정하다고 착각하는(그래서 그 '공정함'이란 '중립'이 아닌 '올바름'이란 것을 쉽게 잊곤하는) 우리들 모두를 위한 책이 아닐까 싶다.

제도권 교육의 교과서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단 한 줄의 문장에 이 좋은 책을 '구겨넣는' 야만을 저질렀지만, 본서는 그렇게 한문장으로 정의될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역사를 바라봄에 있어 올바른, 균형잡힌, 그러면서도 생동감있는 시각을 가지기 위해선 어떻게 역사를 바라보아야하느냐에 대한 너무도 중요하고 너무도 소중한 내용들이 주리줄창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어쨌건 변화의 가능성을 낙관하려는 저자의 '의지로 하는 낙관'이 짖게 베어 있다. 그래서 그 점이 이책을 너무도 따뜻하게 만든다.

물론, '후세의 사람들이 더 정확한 역사를 본다'는 식의 표현은 다소 동의하기 힘들었다.('정확한'역사를 보기보다는 '자신의 시대에 맞는 역사를 본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누구나 빠지고, 빠지고 싶어하는 객관성의 함정을 극복하고, 그 가운데 변혁으로의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너무도 멋있고, 동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런 책은 대학 입학전에 봤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대학입학전에 봤다면, 적어도 조금 더 겸허한 마음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할 수 있지 않았을까.

ps.확실히 영국인들의 유머감각은 참. 이런 고리타분해 보이는 노교수의 저서에서도 그 유머와 풍자 혹은 비꼼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뭐 나름 장단은 있겠지만 나로써는 굉장히 부러운 문화일 따름이다. 덕분에 자칫 지루해질수도 있는 부분에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볼 수 있었던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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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
권형진, 이종훈 엮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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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당시에 곧바로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걸었던 뉴욕의 소방관들이 보여주었던 용기와 규율, 헌신은 찬사를 받을 만합니다. 그렇다고 왜 그들을 '영웅'이라고 불러야 합니까?..(중략)..'영웅'이 존경받을 때마다 저는 도대체 누가 영웅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 단어를 이렇게 느슨한 의미로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브레히트의 경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영웅이 필요한 대지를 불쌍하게 여겨라!'"
 
위 발언은 '테러시대의 철학(문학과 지성사)'에서 하버마스가 한 이야기이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하버마스가 한 위의 발언과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는 어렵잖게 주변에서 수많은 '뛰어난 개인'들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영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아니, 영웅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만들어지는 것일 뿐.

압제와 물리적 폭력에 의존했던 과거의 군주에 비하여, 오늘날 민주주의시대 독재정권은 상징폭력과 정보조작을 통한 대중의 지지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의 지지를 위해 가장 손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영웅만들기'이다.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만들어진 영웅을 두 부류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우선 첫번째는 '일반인 영웅'이다. 이를테면 우리의 이승복이나 중국의 레이펑같은 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은 이러한 영웅을 통해 대중의 따라하기를 유도하고, 그 영웅은 권력에 복종함으로써 권력의 권위는 더욱 향상될 수 있다. 두번째는 '역사적 위인'이다. 여기에는 우리의 이순신이나 비스마르크 등을 들 수 있다. 권력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위인은 위인이 활약하던 시대가 아닌 현 시대의 중심 이데올로기의 화신으로 변신하고, 지배자는 위인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그 권위를 더하게된다.

물론 글간의 유기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공동작업의 한계가 엿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페텡이나 성녀 테레사같은 경우 주제와 다소 벗어난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물론 그럼에도 그 부분 또한 읽을만 하다.)하지만, 이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뿐만아니라 수많은 자료들과 그에 기반한 날카로운 비판과 분석을 보다보면, 독자로하여금 정말 지금, 여기에 필요한 괜찮은 책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쏟아지는 정보, 절차적 민주주의 확립 속에서 진실을 찾기란, 실질적 민주주의로의 발전을 이루어 진정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과 평가는 뒤로 한채 그저 한 영웅에 열광하고, 떠받들고, 합리적 비판마저도 매도하며 소수에게 유무형의 수많은 폭력을 행사하는데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오늘의 우리사회, 영웅만들기에 온 사회가 미쳐돌아가는(이건 좀 오반가?)그리 건강하지 못해보이는 우리 사회, 오늘 이 책이 갖는 함의는 적지 않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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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만들기 - 신화와 역사의 갈림길
서울대학교 인문학 연구원 '영웅만들기' 프로젝트팀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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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영웅이 현실에서 어떻게 조작되며 그 조작 과정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즉 영웅은 얼마나 허구적인지가 서술되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본서를 샀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당대의 영웅만들기의 허구성에 주목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영웅에 대한 기억이 시대의 변화와 필요성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가의 측면이다.

책은 나폴레옹이나 엘리자베스, 비스마르크 등이 일단 '영웅이 될만한 자질'을 가진 것을 전제로 깔고 들어간다. 그런 후 국민국가(즉, 근대적인 '상상의 공동체')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인물의 기억을 어떻게 조작하는지, 그리고 정치적인 변화에 따라 각 정파에 의해 이 영웅의 기억은 어떻게 조작되고 유지되는지를 추적한다. 즉, 책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기억의 역사'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책이 겨냥하고 있는 독자층은 다소 불분명해 보인다. 다소 깊이있게 들어갈 법하면 그 순간 내용이 끝난다고 할까? 우리가 아는 그 수많은 외국의 영웅들이, 사후에 살아있을 때보다 더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겪었던 그 수많은 부침의 역사를 보면서 은근히 흥미진진했지만, 그러한 흥미가 생길 때쯤 되면 내용은 갑자기 다른 인물로 넘어간다. 이는 아무래도 공동작업의 단점이 크게 그 위력(?)을 발휘한 영향으로 보이는데, 이를테면 무솔리니 같은 경우-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봤던게 사실이지만-'기억의 역사'와 연관이 있어 보이면서도 조금은 책 전체의 흐름과 엇나가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 도입부에 쓰여진 강옥초 교수의 프롤로그(이 글은 교수님의 유고이다)나, 영웅의 기억에 대한 많은 자료들은 나름대로 읽을만 했다. 하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음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아쉬움은 이후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대중독재의 영웅만들기-를 읽음으로써 어느정도 해소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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