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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7
안재성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사실, 본 서평을 쓰기 전에 이런저런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웹으로 조금 구경해봤고, 저자의 다른 책에 대한 주변의 평가도 조금 알아보기도 했다. 보통 이런 수고 어지간하면 잘 안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그랬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만큼 박헌영에 대해, 그리고 이 책에 대해 읽고 난 후에도 어떤 갈증이랄까, 그런것이 남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이 책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의미에서 본서에 대한 평가가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그리고 내가 찾아본 서평에서는 굉장히 야박한 것 같다는게 다소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적어도 해방정국의 한반도에서 동원가능한 거의 유일한 정당이었을법한 정당의 수장에 대한 읽어볼만한 평전이 쓰여졌다는 점 그 하나만으로도 본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다시피, 해방정국에서 한국전쟁까지가는 과정 속에서 남과 북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인사는 비단 박헌영 한사람 뿐만은 아니다. 하지만 중도좌파까지만 커버하던 기존의 대중적 연구분야(?)에서 적어도 '공산주의자'부분에 있어서는 최초의 그럴듯한 출판물이라는 점, 아울러 박헌영의 일생이, 그러한 남과북 모두로부터 금기시되는 좌익인사의 일생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본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어 보인다.(참고로 본서는 말미에 박헌영 뿐만 아니라 그와 뜻을 함께하다 비슷한 행보를 걷게 된 수많은 좌익인사들이 전쟁이 끝나고 어떻게 사라져갔는지를 아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 책의 백미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정말 영화보다 낭만적이고 신화적이고 비극적이랄까.) 후처와 후처의 자식들은 전부 소리소문없이 함께 숙청당하고, 조선 여성 공산주의자의 대표주자였던 전처는 소련에서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당하며 전처의 딸은 그런 사정조차 모른채 스탈린주의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고, 남한에 유일하게 남은 아들은 스님이 된 기구한 사정은, 어찌보면 해방 이후 한반도의 기구한 운명을 투사해 보여주는 것 같기까지 하다. 

사실 학부시절 현대사를 처음 접한이후 지금까지, 개인적으로는 외세에 의해 해방이 되는 바로 그 순간, 한반도의 분단은 유예는 할 수 있으되 막을 수 없는 필연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아울러 깐깐하고 샌님같은(김일성은 그를 '리론가'라고 종종 비꼬고는 했다)뿐만아니라 소극적이고 심지어 살짝 수줍음까지 타는 듯한 박헌영의 성격은, 상황이 어떻게 되건간에 당내 경쟁에서 김일성에게 밀릴 수 밖에 없는 단초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박헌영이 한반도 공산주의자의 수장으로, 아니 외세의 조금 더 유연한 대외전략에 따라 남한의 공산주의자 정당에 수장으로 남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그의 비대중적 성향, 무엇보다 스탈린주의에 대한 교조적인 성향은 공산당이 해방정국 이후 더이상 커가는 데에는 분명히 방해요인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도, 박헌영의 공산당이 남한에 설령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이탈리아 공산당같은 유연함과 그에 따른 세를 확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공산당처럼 적어도 70년대까지는 지식인들의 보호막으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노동자들의 최후의 보험으로, 지식인들의 방탄막으로 자신의 역사적인 소명을 다한채, 조용히 평화롭게 역사의 한페이지에 기록될 수 있지는 않았을까, 그 흐름 속에서 적어도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평등하고, 조금 더 민주적으로 변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물론 그것이 어느 교조적인 좌파정당이 의도한 것이건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건 말이다.(물론 친일지주들이 모여만든 극우적 여당과, 무산계급의 친구...도 아니고 아버지(그것도 폭군같은!!)를 자처하는 스탈린주의적 제1야당이 타협없이 죽도록 치고박고 싸우다가 죄다 공멸했을수도 있겠다마는) 

사실, 해방정국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어떤 이론가도, 외교관도, 운동가도, 군인도 아닌 바로 '정치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모두가 자신의 이념을 내세우며 그 이념에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가 되어있는 해방정국의 상황은, 그 이념적 분열성과 함께 필연적으로 전쟁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바로 이 전쟁의 가능성을 감소시키고, 그것의 결과가 설령 '분단'이라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건 전쟁없이 평화적으로 타협해나가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정치'와 '정치인'이었다. 그런의미에서, 어찌보면 모두 '정치인은 아니라는 점'에서 평면적인 해방전후의 인물들 중 박헌영은 조금 혼란스러운 인물이다. 그는 분명 교조적이고, 종종 무리수를 두는 결단과 그에 기반한 정세파악을 하여 일을 그르치곤 했지만, 때때로 마키아벨리적인 모습 또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해방전후 정국에서의 마키아벨리적인 행보는 이후 그를 고난에 빠뜨리는 한 원인이 되어버린 셈이지만, 정작 내가 박헌영을 평가하는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이다.  

ps. 끝으로 살짝 여담. 서평을 쓰면서 '잘 모르는 데 이렇게 막 써도 되냐'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우리가 해방전후사 연구에 대한 질적인 논쟁을 하기 이전에 연구의 양부터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마주서게 한다. 연구자의 이념적 정향을 떠나서라도 이 부분에 대한 어느정도 진지한 연구가 양적으로라도 좀 늘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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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4-15 16:38   좋아요 0 | URL
요즘 서점엔 80~90년대에 나온 해방전후사 관련서적들은 다 없어졌는데도 그 이후 나온 관련서적들도 그 량이 엄청나더군요.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率路 2010-04-16 00:27   좋아요 0 | URL
앗, 정말요? 막상 저는 90년대 나온 해방전후사 책(청년사라던지 다현사같은), 아니면 브루스 커밍스나 이종석 선생님 책 정도만 읽은터라...ㅠㅠ 막상 박헌영이나 그시절 토착 공산세력을 다룬 책은 박헌영 전집 빼고나면 이거랑, '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 그리고 지금은 절판된 '한국현대사의 라이벌'빼곤 찾지를 못하겠더라구요. 어떻게 추천해주실만한 책 혹시 없을까요?ㅠㅠ

노이에자이트 2010-04-16 16:24   좋아요 0 | URL
이정식<대한민국의 기원> 강준식<혈농어수>(여운형과 박헌영의 암투가 잘 나와 있음) 심지연<이강국 연구> 도진순<분단의 내일 통일의 역사> 모두 꽤 두툼합니다.이 책 읽고 나서 커밍스 책을 다시 읽으십시오.몇가지 질문해도 될까요? 1.안재성의 책에는 여운형과 박헌영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나와 있는지요? 2.커밍스의 책은 어떤 것을 읽으셨습니까?

率路 2010-04-17 00:41   좋아요 0 | URL
1.여운형 선생과는 각별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지만(첫 결혼 주례까지 서셨더라구요!), 기본적으로 '두루두루 친한'여운형을 박헌영은 아주 좋게만은 보지는 않았고, 나아가 여운형의(공산당원의 입장에서 봤을때) 개량주의적인 경향으로인해 결국 둘은 갈라섰다는 식으로 조금은 복잡 미묘하게 써 있었던 것 같아요. 연관해서, 저자 본인도 여운형을 가끔은 '호인'으로 가끔은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정치인'으로 혹은 '여기저기 걸쳐놓은 줏대없는 정치인'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표현을 하는 듯 싶습니다. 물론 전반적인 평은 '호인'쪽에 가깝긴 하지만요.

2.커밍스의 책은 대학 입학하고 초기에 의욕적으로 '한국전쟁의 기원'을 사놓고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찔끔 보려는데 컴퓨터 조판이 아니라는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제껴놨다가 손호철 선생이 '현대 한국정치'의 한 꼭지에서 커밍스의 이 책을 비판한 것을 읽고나선 이래저래 치이면서 내용을 대강 유추-_-;;;;하고 접어버렸어요. 그러다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가 나와서 읽었는데, 역시나 꼼꼼히 다 읽었다고는 결코 말할수 없을 정도로 설렁설렁 날림으로 읽었지요. 차라리 이종석 선생의 '조선로동당 연구'를 정말 감탄하면서 읽었는데 지금와선 당최 기억이 안나기도 하거니와 초점이 해방 전후 토착 공산세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보니.-_-;;;;;

-검색해봤는데 정말 두툼하네요. 더군다나 혈농어수는 어휴..(근데 이건 또 무슨 심뽀인지 땡기기는 젤 떙기네요^^;;;;) 아무래도 전부 다 읽는건 물리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불가능일것 같지만!!그래도 저 중에 한두권정도는(이미 찍었어요^^;;;)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려구요. 책 추천 감사합니다~ㅋㅎ

노이에자이트 2010-04-17 15:38   좋아요 0 | URL
답변에 맞추어 말씀드리겠습니다.제가 추천한 책을 읽기 전에 커밍스<한국전쟁의 기원>중 '국제주의적 정책과 민족주의적 논리'를 정독하고 들어가십시오.특히 여운형이 좌우합작을 하면서 토착공산세력과 결별하는 과정을 주목해서 보시구요.<혈농어수>가 소설이긴 하지만 꽤 어렵습니다.그전에 이정식 책의 이승만,김구,여운형,김규식론을 읽는 게 나을 겁니다.

열심히 읽으시고 그 연구성과를 한번 여기 써주십시오.저에게도 공부가 많이 될 것입니다.

率路 2010-04-18 00:13   좋아요 0 | URL
음, 그러니까 우선 이정식 책을 건드려(?)봐야겠군요. 그 전에 한국전쟁의 기원을...근데 조악하고 완역되지도 않은셈인 한국전쟁의 기원이야말로 다시 좀 나왔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물론 너무 오래된 책이고 혹자는 이제 그 효용가치가 없어졌다고까지 이야기하지만, 어떤의미에서 우리시대의 '고전'이었다는 팩트만큼은 사실이잖아요?

노이에자이트 2010-04-18 15:51   좋아요 0 | URL
<한국전쟁의 기원> 1권은 완역된 겁니다.번역 가지고 말은 많지만 참고 읽을 만합니다.솔직히 말해서 <한국전쟁의 기원> 1권을 정독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명저라고 하니 읽은 체하는 사람은 많지만요. 다른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해방전후사는 외교사도 알아야 하니까 상상외로 어렵습니다.고교시절 국사시간에 제대로 강의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그러니 독학해야지요.


건준-인공-민주주의 민족전선-인민당-남로당으로 변하는 과정은 자칫 집중력을 잃으면 독서가 엉망이 됩니다.특히 좌우합작을 축으로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해야지요.

좋은 성과를 기대하겠습니다.

率路 2010-04-19 17:48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번역을 논하는 수준은 아니구요, 구하기도 힘든데 편집이라도 다시해서 나왔으면 해서요^^;;; 저 정도 세대만 되어도 컴퓨터 조판이 아니니깐 읽기가 조금 쉽지않더라구요.ㅠㅠ 그리고 2권은 어떤 내용인지 몰라도 번역이 안된게 조금 의아하기도 하구요.(우리시대의 '고전'임에도 말이죠)

여담입니다만, 저는 고교시절 국사시간에 건준-인공 정도까지는 배웠었어요. 국사선생님께서 무려 고등학교 3학년 때 '과거사는 단군이 시조고 삼국-신라-고려-조선-일제시대로 이어진 것정도만 알면 된다. 하지만 현대사를 모르는 놈은 바보다.'라고 하시며 1년 내내 현대사를 가르치셨거든요(참고로 전교조 선생님은 아니셨습니다.) 마지막 시간에는 6월항쟁 자료집 보는걸로 끝나면서 그렇다고 일방적인 주장보다는 논란꺼리를 소개해주셨죠(물론 80년 광주나 유신같은거에 대해선 논란꺼리를 만드는것 자체가 편향된 이야기인지라 제외하고라두요)

문제는 저희때는 정말 감동먹으면서 수업을 들었는데, 듣기에 저희 졸업하고 매해 시간이 지나면서 학부모들이 입시공부 시켜야 할때 그런거 가르친다고 항의가 들어왔었나봐요. 선생님 입장에선 어차피 그렇게 입시공부시키실꺼라면 돈도 많이 벌 수있고, 더 많은 애들 가르칠 수 있는 학원이 낫겠다 싶으셨는지 사교육 시장으로 자리를 옮기셨다구 들었구요. 그 이후로 전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 종사자들에 대해 욕을하지 않게 되었죠. 그분들 책임이라기보단, 우리모두 공모해 만들어낸 것 같다는 느낌? 그런게 들어서 말이죠. 앗 갑자기 상관없는 이야기 주저리주저리. 아무튼 고등학교 때 그런거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도 계신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19 22:15   좋아요 0 | URL
한국현대사에 관한 해외명저들이 주로 80년대 중반에서 말기까지 꽤 번역되었는데 지금은 안 나옵니다.헌책방에서 구해야지요.저도 헌책방에서 구했습니다.인용도 많이 되는 책들이라서 필독서에 속하지요.

겉으로는 역사를 알아야 하네 어쩌네 하지만 역시 시험에 안 나오는 현대사를 잡고 가르치는 교사는 학부모,학생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지요.이제 지금의 청소년들이나 그 부모세대나 모두 현대사를 모르니 다 마찬가지네요.저와 제 동생들은 현대사를 강조하는 그런 선생님을 단 한 분도 못만났답니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 3 - 청년학술 14
반민족문제연구소 / 청년사 / 1994년 3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는 재수시절 '유일하게' 구입했던 책이고, 그 이후 대학시절에도 틈틈히 봤던 책이다. 사실, 사서 읽을 때만해도 이 책이 내 생각의 흐름에 그렇게 큰 영향을 주리라 생각하지 못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당시 이 책을 본 덕택에 적어도 국가가 항상 맞는 말을 하는건 아니라는 것. 시민 대중이 스스로 노력하고 투쟁하여 책임을 묻지 않는 한, 역사적 과오에 대해 책임져야 할 사람들 스스로가 '알아서' 반성하거나, 하다못해 절대정신이나 신 등등등의 힘을 빌어서라도 '말하게 되어지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 등등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던 듯 싶다.

친일파의 명단과 그들의 간단한 생애를 보면서, 재미있는 것은 친일파들은 항상 그 이후 친미-친재벌-친독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일관성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언제나 '강한자의 편'에 있었다는 것 뿐, 역사의식이나 신념없이 이리저리 휩쓸리며 권력에만 빌붙었다. 그들의 인간적인 면을 이해해주고 싶어도 그들의 존재자체가 그간의 한국사에서는 걸어다니는 폭력이자 위선이었고, 때문에 몇몇 개인 혹은 집단이 우리 조상님이라, 우리 총장님이라, 우리 사주라, 우리 대통령이라 모시는건 자유일지는 모르겠지만 사회 국가적인 역사적 단죄 혹은 그들의 사죄가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이 있다면, 무엇보다 친일파 선정 기준이 다소 모호하지 않느냐라는 점을 들고 싶다. 물론 이 책의 출판당시보다 연구가 많이 진척되어서 이젠 어느정도 기준이 정립되었을 것이라 기대는 하지만, 이를테면 최규하씨 같은 경우 친일 행적보다는 이후의 행적에 대한 비판을 친일에 대한 비판으로 치환한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었다.(그런 경우는 최규하씨 뿐만 아니라 몇몇 더 있다.) 

책의 제목은 '청산하지 못한 역사'이다. 이는 우리가 친일파를 앞으로 '청산해야 함'을 전제한다. 하지만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역사는 청산하고 끝내야 할 것은 아닐 일인 것 같다. 외려 이는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정리하여 보관하고 두고두고 잊지말아야 할 역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에 대한 단순한 행적 뿐 아니라 심리나 정신들도 지속적으로 심도있는 연구, 분석이 이루어져 후대에 교훈을 삼아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ps. 당시 이 책을 출간했던 '반민족문제연구소'는 현재 '민족문제연구소'로 개칭(개인적으로는, 이전보다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잘 바꿨다고 본다^^)했고, 이 책은 현재 '절판'상태이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 책에 있는 내용들이 온전히 자료로 올라와 있어서 찾아볼 수 있는데, 텍스트를 읽기 위해선 가입을 해야 한단다. 관심있으신 분은 가입해 찾아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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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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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시절 선배들이 새내기에게 주는 선물목록 1,2위를 다투었던 책이었고, 굉장히 감동적이라는 평이 많았던 책이라 묘하게 경계(?)했던 책이다. 그러한 경계심의 여파는 엄청나서, 개인적으로 본서를 갖게 된 것은 이십대가 꺾인 이후였고, 결국 완독은 서른 가까이 되어서야 가능했다. 내 머리속의 자기검열체계랄까. 생각해보면 체게바라 평전 같은 건 대학 1,2 학년때 어렵잖게 읽곤했던 내 머리가 무엇때문에 이 책을 거부했는지 모르겠다. 어찌보면, 그만큼 이 책의 내용이 진솔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어느 겉멋없는 청년에 의해 쓰여진, 정말이지 겉멋 하나 없는 청년에 대한 평전은 정말이지 멋있기에 그지없다. 아니 '멋있다'는 말이 너무 가벼워진 오늘, 그러한 평을 전태일과 조영래에게 안긴다는 것은 고인들에 대한 누가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그저 이 책을 왜 이제서야 접할 수밖에 없었는가, 내 가슴속에 아직도 남아있는-어찌보면 어린시절의 세뇌에 의해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지도 모를-레드컴플렉스를 저주할 수밖에.

사실 서평을 쓰려고 리뷰창을 열고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이 책에 대해 무어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다. 시간과 여력이 닿는다면, 그냥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다시 타자로 치고 싶은 심정이다.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그의 삶은 진정 영웅적이었고 평범함에서 우러나온 그 비범함은 오늘의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나는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가.

저자인 조영래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전태일의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삶을 역사에 남을 고전으로 승화시킨 것은 많은 부분 저자의 능력에 기인하기도 한다. 전태일의 행동에 대한 저자의 해석과 평가는 무어라 형용할 수없는 문체로 우리 가슴에 와닿는다. 그리고 그 문체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어려운 수사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진솔함'이 묻어나기에 더욱 감동적이다. 진솔한 삶이 진솔한 저자를 만나 더욱 빛났다고나 할까.

물론 본서는 어느 노동자가 노동자로써의 자의식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사회과학적 분석자료로 해석될수도 있고, 당대 노동자들의 삶의 현실을 알 수 있는 역사적 사료로 고려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국한해 보기에는 책의 내용이 너무 '광대하다'. 해서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사실 본서는, 과장 하나 보태지 않고, 어찌보면 우리시대 또 하나의 '성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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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협력인가 - 비시 프랑스와 민족 혁명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87
박지현 지음 / 책세상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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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전간기는 어찌보면 또다른 세계대전을 이미 예정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혼란의 시기였다. 자본주의 발달의 극점이 결국 대공황으로 귀결되고, 다른 한편에선 볼셰비키의 혁명이 성공함에 따라 기존의 지배계층이 보기에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이념이 대안으로 제시되는 당시의 분위기는, 어찌보면 애초부터 자본주의나 기술혁신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던 서구의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위기이자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당시의 서구 보수주의자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대체적으로 '민족혁명'을 위시한 '정신적 측면의 혁명'을 내세운다는 점에 공통적인 특징을 보이는데, 본서는 그 중에서도 프랑스의 '비시정부'에 대한 역사와 정신을 논하고 있다.

비시정부의 수립과정과 역사, 그리고 그 정부의 정신을 서술하는 저자가 결론적으로 비시정부에 대해 내리는 판단은 '우리가 알듯 그렇게 단선적으로 악(惡)이라 명명할 성질의 정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혼란스러운 시대, 토크빌의 용어를 빌리자면 이른바 새로운 '모럴'을 세워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고자 한 당대 프랑스 보수세력의 일종의 정치적 운동이었으며, 따라서 간단하게 '나치 부역자' 혹은 '나쁜놈'으로 몰아세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흐름은 프랑스에서만 있던 것도 아니고 당대의 영국, 이태리, 독일 등에도 있었고,(독일의 경우 전진성씨의 '보수혁명'에서 잘 서술되어 있다.) 저자 말마따나 미테랑 등 당대의 좌우파를 막론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실험에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동조한 것도 사실이다.

허나 석연찮은 것은 이 사실을 다루는 저자의 태도다. 비시정부가 시도한 민족혁명, 혹은 정신혁명이란 것이 당대의 좌우파를 막론한 많은 유명 인사들이 지지를 보냈고, 아울러 그것이 단순히 '유태인 나쁜놈' '독일 착한놈'이란 감정에 기반해 이루어진 정권이 아닌 나름의 이론과 기획을 근거로 구성된 정권이라 한들, 그 정권의 행태와 그 정권이 낳은 역사적 결과물이 합리화 되느냐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비시정부 뿐 아닌 이탈리아 파시즘에 대해서도 종종 '진지하게'제기되는 문제이기도 한데, 위기에 빠진 이탈리아를 하나로 묶고자 시도했고, 역사상 그나마 어느정도 하나로 묶어내는데 거의 유일하게 성공했다는 이탈리아 파시즘이 과연 그 생각보다 진지한(?) 동기와 결과물로 인해 합리화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동기가 선하다면 모든 것이 무죄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국가주도의 민족혁명을 위시한 가부장적 색체를 띤 정신적 혁명이 하나같이 파시즘이나 반민주, 불관용적 정치문화, 혹은 인종차별이라는 깊은 골을 남기는 것으로 귀결되어버린 역사적 현실은, 우리로 하여금 동기 뿐 아닌 그것이 잘못된 길을 걷게 되는 과정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 인간의 정신과, 그 정신의 복수성을 무시한 채 자신들의 '좋은 명분'을 내걸고 '아버지'의 성격을 가진 국가와 민족 아래 그 구성원을 하나의 기계처럼 돌아가게 만들기를 원하는 보수주의적 '정신혁명'은 그 자체에 이미 파시즘으로의 예정된 경로를 노정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비시의 유산이 아직도 프랑스에 이어져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유산이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유산으로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지를 저자가 조금이나마 더 고려했다면, 이렇게 나이브한 서술을 하진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오늘 우리 사회의 비시정부에 대한 담론이 종종 친일청산문제의 소극성을 공격하는 근거로서 단순화되어 쓰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근거가 되는 비시정부의 성격이 구체화된들, 우리 사회가 적극적인 친일청산을 함에 있어 제지할만한 근거가 될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든다. 저자는 프랑스의 역사는 그들의 역사일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우리의 친일청산과 그들의 나치 부역자 청산이 다른 문제임을 강조했지만, 이는 그저 뜬금없이 읽혀질 따름이다. 외려 저자 자신이 너무 우리의 정치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책을 서술하느라 다소 중언부언하면서 중심을 잃게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점에서 참신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다소 아쉬움이 남는 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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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거이야기 - 1948 제헌선거에서 2007 대선까지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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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식을 가진 민주주의(흔히 자유민주주의라고 칭해지고, 혹자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고 말하기도 하는)가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는지를 일일히 부연설명하지 않더라도 현대의 정치구조 속에 선거가 갖는 강력하면서도 특수한 함의를 부인할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선거의 특수하달법한 기능은 그 자체로서 우리에게 몇가지 논점을 제시하는데 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번째로는 현대 정치구조에서 선거가 가지는 그 특수한 위상이 과연 합리적이라 할만큼 선거라는 제도가 그 나름의 민주적 정당성을 담지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는 불법, 탈법선거라는 선거과정에서 참여자의 비위를 차치하고라도 제기할 수 있는 문제로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선거가 과연 민주적인 것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다수의 '인기'에 기반한 인물을 뽑는다는 발상이 정치 자체를 '정치 없는 정치'로 희화화 시킬 수 있는 우려가 있다는 점(이는 오늘날엔 미디어의 발달과 자본집적의 고도화(?)로 심지어 '구조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까지 한다.)뿐만 아니라 다수의 의사가 일반의사와 과연 얼마나 일치하느냐는 의문은, 지역이기주의에 기반하여 당선된 수많은 '반민주적'성향의 국회의원을 보며 부정적 확신으로 변화하기까지 한다. 아울러 선거란 정치적 열망의 표출기재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열망을 억압하고 순화시키는 역할 또한 하고있는데(특히 개인적으로는, 최근의 우리사회에서의 선거가 이런 도구로 부쩍 자주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조금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시도된 수많은 다른 시도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거가 중심이 된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될 중요한 이유 중 하나로 보인다.

두번째로는 선거라는 제도 자체가 민주적이건 그렇지 않건간에 현대 사회에서 선거 자체가 갖고 있는 현실적인 힘을 염두에 둘 경우 피할 수 없는 논제인데, 과연 우리사회가 치뤄 온 선거의 결과가 사회에 실질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이끌어냈으며 그 변화의 결과는 어떠한지에 대한 평가부분이다. 사실 현대사회에 보통선거가 갖고 있는 현실적인 영향력은 거의 주술적(!)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고, 이는 오랜기간 군주제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군주제에 대해서는 '뒤도 안돌아보고'공화제와 보통선거를 도입한, 아울러 해방이후 최대의 국민운동이란게 결국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위한 것이었던 우리 사회에는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처참하달만큼 저조한 투표율에 단 1~2%차이로 당락이 갈린 지난 교육감 선거를 두고 '국민은 경쟁을 택했다'운운하던 언론의 설레발이나 그러한 선거결과로 인해 '실제로도' 그만한 정치적 추진력이 주어지게 되는 구조를 생각해보라!) 때문에 이는-선거라는 제도는 그저 자본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급진주의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하더라도-우리가 선거라는 화두에 대면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된다.

본서는-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굳이 따질 것도 없이 두번째 문제의식에 따라 서술된 역사 서적이다.(즉, 본서 뒷면의 '선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결코 상식이 될 수 없다'는 광고(?) 문구를 두고 아무리 토를 단다해도 남의 다리 긁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는 소리다.) 본서와 비슷한 형식, 즉 선거를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서적으로 언뜻 떠오르는 것은 개마고원에서 출간된 '진보와 보수의 영국사'(이하 '영국사')정도인데, '영국사'가 단순히 역사 서술의 기술적 용이성을 위해 선거를 중심으로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면, 본서는 오로지 대선과 총선만을 중심화두로 언급하며 거기에 다른 부분은 선거와 '관련하여' 곁들여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겠다. 아무튼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2007년 초에 열린 바 있던 시민강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본서는 강좌를 바탕으로 한 책이 일반적으로 그렇듯 읽기편하고 지루하지 않다는 장점은 있지만-시간제약이 있는 '강좌'라는 한계로 인해-깊이가 부족하고 몇가지 논점은 아예 무시하고 넘어간다는 점에서 아쉬운 점이 많은 책이다.

그 중에도 특별히 아쉬운 부분을 꼽자면 먼저 제2공화국 시절의 선거를 서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4.19 이후 심지어 지금까지도 가장 자유롭고 다원적인(?) 정치의 장이 열렸다고 해도 될 법한 것이 그 시절이거니와, 2공화국의 구조가 지속되었다고 가정할 경우 이는-그것이 좋건 나쁘건-오늘날 우리가 '가보지 못한 길'이었을 확률이 높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선거를 분석하는 것이 무의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군다나 정부가 어떠한 정책을 추진하기도 전에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인해 무너져, 사실 분석할만한 유의미한 정치적 사건이라곤 선거밖에 없는 것이 2공화국이기에 당시의 선거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은 그 아쉬움이 더욱 크다 하겠다. 아울러 투표율의 변화와 관련해서도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점 또한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선거를 바라보는 저자의 자세 또한 얼마간 한몫하는 듯 싶기도한데, '선거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라는 저자의 대전제는, 결국 투표율이 낮은것에 대해 '나쁘다'외에는 별로 할말이 없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 선거는 완전무결한 제도가 아니고, 때문에 투표거부나 선거에 대한 무관심 또한 가볍게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선거가 우리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투표를 거부하는 행동 또한,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건 긍정적인 것이건 가볍지 않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본서가 얕은(?)분석에 기인한 단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방이후 남한만의 첫 단독선거부터 1공화국 사이의 분석은 분량으로보나(5회 강의 중 2회가 여기에 할애되었다) 깊이로 보나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더군다나 60년 선거역사동안 그나마 집권층의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최소한의 의미에서 '정상적인' 선거를 해본 역사라곤 15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 우리 역사속에서 어디까지가 선거의 '진짜'결과인지를 추출해내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저자의 과학적이고 사려깊은 서술은, 자칫 잘못하면 그저 무협소설로 빠질수도 있을 법한(실제 우리의 '주류'언론은 선거를 그런식으로 다뤄왔고, 다루고 있다)주제를 과학적으로 구해(?)낸 듯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본서가 갖는 현실적인 '미덕'은 얼토당토 않은 협잡과 반칙만이 난무하는 우리의 지난 선거사를 서술하면서도 그 협잡과 반칙이 그것을 행한 세력에게 어떻게 부메랑으로 돌아가 더 나은 오늘을 낳는데 도움이 되었는가를 날카롭게 분석해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정치는 무조건 더럽고 추하다는 인식이 비정상적으로 만연해 있는 듯한 오늘날, 그리하여 참여 자체부터 불공정하게 짜여져 있는 '자본'(혹은 '경제')이라는 영역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참여자체의 평등성이 보장되어 누구나 사회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이라 할법한 '정치'의 영역이 외면받아 축소되고 있는 오늘날, 이러한 우리의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정치'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정치라는 것, 그 정치의 한 수단으로서 선거라는 것은 인간의 불완전성으로 인해-경제라는 영역이 그렇듯, 윤리라는 영역이 그렇듯-완벽하지는 못하지만, 그만큼의 완성도도, 그만큼의 가능성도 담지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이 영역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며, 또 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절망적인 변화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진보의 주춧돌이 되는 우리의 지난 역사는, 이에 대한 우리의 의지와 용기를 북돋워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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