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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1
정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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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을 외치는 세상에서 신의로써 다져진 만남을 읽는 일은 향긋했습니다. 신뢰는 신뢰로 사랑은 사랑으로만 갚아야 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가 아닐런지요. 저자의 노고가 묻어나는 글을 읽는 일은 언제나 보람있고, 어릴 적 다산초당의 기억과 남도의 정취를 떠올리는 일도 더없이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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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4-06-05 0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도, 좋은 제자를 만나는 것도 모두 서로에게 너무 중요한 일인데, 요즘에는 어려운 듯 합니다. 인생에서 단 한분만이라도 진정한 스승을 만나는 건 큰 복이 아닌가 싶어요.

Alicia 2014-06-05 16:09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공감해요. 정민 선생은 요즘은 학생은 있어도 제자는 없다고 말하는데, 저는 역으로도 선생은 있고 스승은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나이들어서 좋은 영향을 주는 스승을 만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새삼 깨닫는데, 눈을 뜨니 없네요.
근데 또 생각해보면 꼭 학교에서 만나야 스승과 제자인가요. 살면서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될 때가 또 오겠죠. 그러려면 먼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어야 하는게 인간관계 이기는 하지만... ^^
 
강신주의 감정수업 - 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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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애란 우리가 불쌍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친절하려고 하는 욕망이다. - 에티카

'자발적인 가난', 이것이 바로 박애가 드러나는 행동 양식이다. 비참한 사람들보다 더 비참해지려는 결의, 그들보다 더 피곤하려는 결의, 그들보다 더 가난해지려는 결의다. -121,124쪽

연민은 결코 사랑으로 바뀔 수 없다. 타자의 불행을 감지했을 때 출현하는 감정이기에, 연민의 밑바닥에는 다행히 자기는 그런 불행을 겪지 않았다는 것, 나아가 불행한 타자를 도울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134쪽

애인과 친구의 가치를 알려면, 사실 내가 고통에 빠져 있을 때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히려 내가 가장 행복할 때에 진짜 애인인지 가짜 애인인지, 혹은 진짜 친구와 가짜 친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가 당신의 행복을 함께 행복해하고 당신의 불행을 함께 불행해하는 사람이어야만이 여러분은 자신에게 애인이나 친구가 있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당신의 불행을 위로하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당신보다 행복하다는 사실에 뿌듯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6쪽

무엇인가 욕망하는 것이 있을 때는 반드시 그것을 실현해 보아야만 한다. 실현의 순간에 우리는 자신의 욕망이 나의 것이었는지 타인의 것이었는지 사후적으로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법대에 간 것이 자신의 욕망이라면 입학하자마자 "이제 시작이다, 멋지게 살아가야지."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반면 그것이 타인의 욕망이었다면 "이제 완성이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출발의 설렘이 있다면, 과거 우리의 욕망은 나만의 욕망이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완성의 허무함이 있다면, 과거 우리의 욕망은 불행히도 타인의 욕망을 반복했던 것임이 밝혀지는 것이다. -188쪽

카페나 술집에 들릴 힘이 있을 때, 충분히 집을 벗어나 어디론가 갈 수 있을 때, 동경은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한마디로 몸을 움직이는 데 별다른 불편이 없는 사람이 과거를 동경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절정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현재의 삶을 살아내지 못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의 삶과 직면할 때에만 우리는 새로운 삶의 절정에 다를 수 있다. -198쪽

그러니까 절망은 냉철한 이성을 가진 사람보다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유자에게 더 자주 찾아오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비극적인 미래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가느다란 희망의 줄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다. 예상했던 비극이 빨리 오지 않자, 희망의 동아줄은 더 튼튼한 것처럼 보인다. 당연히 우리는 그 동아줄을 더 집요하게 움켜 잡으려고 할 것이다. (중략)
절망에 자주 빠지는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비관론을 가지려고 하는 것도 좋겠다 .항상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둔다면 미래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기대도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니까. 그렇지만 우유부단한 사람이 비관론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인가. -218쪽

감사 또는 사은은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우리에게 친절을 베푼 사람에게 친절하고자 하는 욕망 또는 사랑의 노력이다. -에티카

스피노자가 말하려는 것은, 감사의 감정에는 분명 사랑이라는 열정적인 감정이 함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감사의 표현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열정을 삭힐 수 있다. 아니, 삭히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서둘러 상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지도 모른다. -272쪽

말을 걸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 하라! 그 순간 우리는 그 삶이 함께 이야기할 만한 사람인지 확인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대화를 할 만한 사람이면 계속 이야기하면 되고,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면 헤어지면 된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욕정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허락한다는 조건에서 기꺼이 섹스를 시도하라! 그 순간 우리는 그가 지속적으로 정사를 나누면서 그 외의 것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섹스는 사랑의 완성이나 결실이 아니라 단지 사랑이 시작되는, 혹은 사랑이 진척되는 한 가지 계기일 뿐이다. -338쪽

공손하고 온화한 사람을 조심하라!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받는 사람을 조심하라! 법 없이 살 사람을 조심하라! 결국 우리가 가까이 해도 되는 유일한 인간들은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다. 이런 부류에 속한 사람은 타인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당당하게 표현하니, 적과 동지가 명확히 구분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칭찬도 받고 욕도 먹는 것이다. 만일 그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과 부합된다면, 이런 사람과는 주저하지 말고 사랑에 빠져도 된다. -376쪽

후회에는 모든 불운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정신적 태도, 다시 말해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었다는 의식을 전제한다. 그렇지만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했다고 믿는 것처럼 거대한 착각이 어딨겠는가. 이보다 더 큰 오만이 또 어디있을까. 결국 후회는 강한 자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자주 찾아오는 감정이다. -394쪽

끌림은 사랑이 아니다. 끌림이 나의 과거상태에 의존한다면, 사랑은 나의 본질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어떤 음식이 배가 고파서 맛있다고 느끼는 것과 내 입맛에 맞아서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허기짐이 없을 때에만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앞서 나의 삶 자체가 지나치게 불행한 건 아닌지 점검해 봐야 한다. 다시 말해 끌림을 사랑으로 착각하지 않으려면, 우리 삶이 어느 정도는 행복하도록 스스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408쪽

"난 너를 믿어." 이 말을 들었을 때 지혜로운 사람만이 상대방의 깊은 의심을 읽어낼 수 있다.(중략)

확신과 의심이라는 치명적인 변증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의 슬로건을 따르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님 말고!" 그러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한 다음에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쿨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상대방이 어떻게 하느냐는 전혀 신경 쓸 일이 아닌 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는지 여부를 확신하거나 의심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만일 상대방이 나를 사랑하면, 그것을 그저 행운이라고 생각하면 될 뿐이다. 그러니까 진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정말로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지가 될 것이다.

이것은 사랑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 혹은 세상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일이다. 타인에 대해 확신을 갖거나 의심을 품을 이유는 없다. 그저 묵묵히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다. 의심과 확신에 갇힌 사람이라면 이제 시선을 밖이 아니라 안으로 돌리도록 하자. 그러면 아마도 너무나 의존적이고 나약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38쪽

이런 나약함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는 영원히 확신과 의심 사이를 방황하는 길 잃은 영혼으로 남게 될 것이다. -4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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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론 - 인문연대의 미래형식
김영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7월
구판절판


대개의 어리석음은 어떤 종류의 '반복'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어리석음은 그 성격이 형식적이다. 형식을 이루지 못하는 실수는 반복되지 않는 법이다. 따라서 현명함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그래서 그 자체로 형식을 이루지 않도록 민활하게 애쓸 일이다. -25쪽

호의는 바로 그 호의의 천국 속에서 사적 규칙을 만든다. 호의지상주의자인 선량한 이들은 사적 규칙에 의해서 선의의 천국, 신뢰의 관념론을 건설한다. 그러나 신뢰는 타자들 사이의 심연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사회성의 건축이기 때문에, 사적 규칙은 실질적으로 별무소용이다. 오히려, 개인의 호의 속에서 번창하는 사적 규칙들은 신뢰라는 공공의 건축에 적지 않은 장애를 제공한다. -26쪽

어쩌면 호의와 호감은 그 자체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평가는 생각 밖으로 극히 중요하다. 호의가 만든 천국의 수만큼, 우리는 바로 그같은 종류의 호의가 만든 그만큼 많은 지옥의 수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31쪽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종의 '배치'인데, 말하자면 호의와 호감을 인간관계의 어느 곳에 배치하는가, 그리고, 배치한 후에 어떤 식으로 그것을 모른 체 하는가, 하는 문제다. 신뢰와 호감이 각각 제 나름의 가치를 발하려면, 호감은 신뢰를 이드거니 통과하는 통시의 과정이 필요하고, 신뢰는 호감을 재구성하는 변화된 공시의 과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46쪽

내 애인의 사랑에 토대가 없다는 사실, 그 사랑의 텍스트가 우연과 비약의 결과라는 사실은 때로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슬픈일이다. 그래서 연정은 흔히 환상 속에서의 흔들림(물매)과 그 흔들림의 관성적 자가동력으로 근근이 스스로를 유지하는 것이다. 호의나 그리움에 토대가 없다는 진실은 전래의 통념에 어긋날 뿐 아니라 세속을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수용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63쪽

선의나 호의도 우리 삶의 잡박한 흐름 속의 일부일 뿐이며, 계몽과 성숙을 통해서 그 나름의 변증법적 변용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로써, 선의나 호의 그 자체가 아니라 이것들이 시공간속의 일관된 실천을 통해서 그 가능성을 건강하게 펼쳐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69쪽

호의라는 사적 규칙과 신뢰라는 사회적 약속이 서로 겹치거나 어긋나는 문제를 다룰 때에, 관련 당사자들의 사회적 관계에 원천적으로 개입하는 권력의 무게나 물매는 흔히 생략되거나 축소된다. 이른바 '마음의 환상적 전능성'속에서 빠르게 무책임하게 움직이는 호의는 특히 권력의 비대칭적 기반과 그 물매를 모른 체하곤 한다. 어쩌면, 종종 호의도, 고백(가라타니 고진)이나 웃음(바흐친)처럼 역시 기성의 권력을 자의적으로 무화시키려는 또다른 종류의 권력이기 때문이다. -82쪽

교태는 광고의 광고와 같다. 자신을 광고한다는 사실을 안다는 사실, 바로 그 사실이 새로운 광고의 소재로 등장하는 행위 속에서 교태의 본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태는 광고처럼 비본질을 상대와 공유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한다. -94쪽

약속은 그 근본에서 일종의 도착이다. 그것은 '세속'이라는 어긋남, 그 불가능성을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그것은 과거에 붙박힌 채, 미래를 선취하려는 과욕이기 때문이다. -116쪽

세속은 호의가 신뢰의 문 앞에서 자빠지는 꼴 속에서 그 화색을 드러냅니다. 호의를 향한 슬픔과 신뢰를 향한 아픔이 교차하는 사건 속에서, 그리고 그 사건이 총체적 무지 속에서 반복되는 조건/한계 속의 바로 그 사건의 밝은 아우라가 세속이지요.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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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의 선물 - 인생의 전환점에서 만난 필생의 가르침
에릭 시노웨이 & 메릴 미도우 지음, 김명철.유지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품절


적극적인 행동에는 늘 위험부담이 따른다는 걸 인정해야지. 미셸의 제안이 전부 옳아야 할 필요는 없어. 이건 옳고 그른 차원이 아니라 미셸이 자기 목소리를 내냐 마느냐의 문제야. 물론 충분히 심사숙고할 필요는 있지. 단, 미셸의 제안은 승진이나 연봉 인상 같은 개인적 의도가 숨겨져 있지 않은 '객관적 의견'이어야 해.
"만약 회사에서 미셸한테 '고맙지만 자네 의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네'라고 하면요?
"그것도 큰 수확이지 회사와 미셸 본인의 관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게 되는 셈이니까. 만일 회사에서 그렇게 말한다면 그건 미셸이 회사에 대해 잘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회사에서 미셸을 생각만큼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둘 중 어떤 경우라도 미셸은 중요한 정보들을 얻게 되는 셈이야." -34-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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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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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가설은 본질적으로 시장만능주의가 불러들인 사회악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이것을 개인의 악덕을 합리화하는 알리바이로 오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사회악과 개인적 악덕은 연관되어 있지만 둘 사이에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53쪽

내 나름의 비법이 있기는 하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거리감'이다.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나는 좋은 세상을 원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저주하지는 않는다. 좋은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믿지는 않는다. 내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은 의미가 있다고 믿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임을 인정한다. 삶이 사랑과 환희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89쪽

아이를 잘 키우려면 도를 닦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두 가지만 이야기하자. 따지고 드는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 공정성fairness에 대한 인식이 일찍 발달하는 아이일수록 지적 재능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사회성은 가장 높이 발달한 생물학적 재능이다. 끝없이 "왜?"를 쏟아내는 아이를 억압해서는 안된다. 더 창의적인 아이들은 덜 창의적인 아이들보다 부모를 더 힘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기존의 규범으로 길들이면 아이는 호기심을 버리고 창의적이기를 그만둔다. -216쪽

나이를 먹어도 삶은 똑같이 귀한 것이다.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이다. 자기 힘으로 삶을 꾸려가야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다. 자식이든 친구이든 타인에게 의존하면 삶은 존엄과 품격을 상실할 수 있다. 늙어도 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설계하고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몇 가지를 제대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 있다. 돈, 건강, 그리고 삶의 의미이다.-221쪽

젊은 시절 칼럼니스트로 이름을 떨쳤던 홍사중 선생은 아름답게 나이를 먹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일흔여덟에 쓴 수필집에서 그는 밉게 늙는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1. 평소 잘난 체,있는 체,아는 체를 하면서 거드름 부리기를 잘 한다.
2. 없는 체 한다.
3. 우는 소리,넋두리를 잘 한다.
4. 마음이 옹졸하여 너그럽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낸다.
5.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한다.
6. 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이야기만 늘어 놓는다.-224쪽

측은지심은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앞에서 나는 품격있고 행복한 인생의 비결이 하고싶은 일을 열정적으로 하면서 즐겁게 놀고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측은지심이 할 일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일도, 놀이도, 사랑도 모두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타인의 기쁨과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은 인생의 성공비결목록에 없다. 그러나 맹자가 말한대로 측은지심이 없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아니다. 그가 중국 대륙을 돌면서 여러 왕들을 만나 한 모둔 이야기의 초점은 한 가지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이 측은지심을 발휘하면 만인의 삶을 고통에서 건져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241쪽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일까? 왜 일부 사람들은 진보적인 것일까? 생물학적으로 덜 자연스러운 일을 하지만, 진보주의 자체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임이 확실하다. 크게든 작게든, 급격하든 점진적이든 생활환경은 늘 변화한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이 필요하다. 모두가 예전의 상황에 맞는 익숙한 생각과 행동만 한다면 개체 뿐만 아니라 집단도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해 절멸할 수 있다. (중략) 정치적 이념에 대한 지능의 영향력은 성이나 인종보다 두 배나 강력하다. -256쪽

신념을 지니고 살면서 그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나도 정답은 모른다. 내 나름의 방법이 있을 뿐이다. 신념은 훌륭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사람은 훌륭해야 한다. 나는 내가 가진 신념 덕분에 내 자신과 내 삶이 더 훌륭해지는지 주의깊게 살핀다. 내 자신을 비루하게 만드는 신념은 좋은 것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도 신념 그 자체가 확실해 보인다면, 그 신념을 실천하는 방법을 잘못 선택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많은 국민의 관심과 비판을 받았던 '통진당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신념 그 자체 보다는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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