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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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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풍요가 도리어 최고급 메이커 제품에만 한정된 선택을 하도록 하는 족쇄가 되는 셈이다. 요동하는 시대를 거치면서 부자들은 모두 신흥부자들일수밖게 없게 된, 이 사회에서 독자적인 미감과 취향을 연마한 세대적 연륜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에게는 이른바 명품취향이 다른 계층과 서둘러 경계를 긋고자 할 때 가장 안전한 선택이 된다. -210쪽

결혼과 가족생활은... 삶의 오물통과 마주하기에 훌륭한 장소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과 엘리자베트 벡 게른샤임의 공저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의 한구절이다. -256쪽

원칙이 있는데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지 그 사람들때문에 내가 떠날 필요는 없었다. -279쪽

모든 진정한 예술작품은 시대에서 튕겨져 나간다. 시대를 저항하고 조롱하고 비판하며 앞서나간다. 우파는 오른쪽으로 가기보다 주어진 길을 가는 사람들이며, 좌파는 현상을 까뒤집어보고 다른 각도에서 삐딱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우파는 사람들을 얌전히 성냥갑안에 넣어놓고 통제하려들며 좌파는 어떻게 해서든 그 통제의 틀을 뛰쳐나오려 한다. -289쪽

모순의 틀을 깨기 위해서 계속해서 또다른 길을 만들어보지만, 새로운 틀을 만드는 순간 조직이라는 것이 갖는 고질적인 병폐는 하나둘씩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그것을 벗어나려면 내부에서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면서 태초의 순결한 의지는 내부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에너지로 소진되 버린다. 그 속에서 개인의 번잡한 욕망따위는 꽃필 틈도 없이 사회적 대의라는 흙더미에 묻히고 만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흙더미를 뚫고 피어나는 꽃도 있고 풀잎도 있다..-302쪽

그러나 한우물 파기 싫으면 어떡해야 하는지, 그 우물에서 아무것도 안나오면 어떡할 건지에 대해서는 답해주지 않는다. 중략, 집단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들이 한 영역씩 맡아서 한우물을 죽어라 파주는 것이 효율적이다. 그러나 각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건 어쩌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인생일 수도 있다. 난 이 거대한 사회의 나사가 아니다.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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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천상의 길, 5000km를 가다
KBS 인사이트아시아 차마고도 제작팀 엮음 / 예담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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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높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천상의 길. 한국 사람들은 '가장-한' 이라는 그러니까   더 베스트, 라는 수사를 쓰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종종  과정보다  성과를 중요시하는  풍습의 폐단으로  지적되어 왔다. 그런데 이 책 역시, 차마고도를 소개하면서 가장 높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답다는 수사를 던지고 있다. 아쉬운 점이다.

이 책은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방영된 다큐는 유럽과 아시아 주요 방송사들이 방송전에 구매하여 한국 다큐 사상 최초로 선판매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다큐가  시각언어와 청각언어로  요컨대 이미지로 그려진 것이라면  책은 차마고도를  문자로 그리고 있다. 다큐를 찍기 전에  세명의 피디들은  '피사체가 말하게 하라' 라는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을 보면  어떤 관점에서  쓰였는지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차에 얽힌 기록이나 전설이며, 보이차 제조와 운반과정, 마방들이 어떻게 차마고도를 건너 교역을 하였는지 마치 어깨너머로  카메라를 들고 따라가는 듯한 서술이 눈에 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차,가 티벳의 운명을 바꾸었다는 것인데  중국의 왕조가 숱하게 바뀌었는데도 바뀌지 않은 단 한가지가 있었는데 그게 대티벳정책이었다는 것이다. 고산지역에서  야크의 젖과 고기를 주식으로 했던 티베트인들에게는  늘 비타민이 부족했고  차는  비타민 공급원이었는데  역사의 격변기에 중국은 언제나  차와 티벳의 말을 맞바꾸는 형태를 취했고  그것은 사실상 조공이었다는 것이다.


서장인은 버터나 치즈를 좋아하며, 차를 얻지 못하면 곧 병이 생겨 곤란하다. 고로 당송 이래 이차역마의 법으로 그들을 제압한다.  ㅡ 명사, 식화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옌징의 소금계곡, 소금호수 짜부예차카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다. 4000만년전에 판과 판이 충돌, 융기되어 생긴 것이 지금의 티벳고원이란다. 산에서 소금이 나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소금우물에서 물지게를 지어다 날라 소금밭을 일구는 것은 언제나 아낙의 몫이다. 남자들은  밭일을 하고 여자들이 만든 소금을  파는 역할을 한다. 사진으로 보기에도 소금꽃은 퍽 예뻤는데  여인들의  눈물이  묻어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티벳에서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은  포탈라궁, 조캉사원이라고 한다. 조캉사원에는 자신의 고향에서  오체투지로 이곳까지 순례를 오는 사람들이 많다. 가장 낮은 자세로 신께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인데, 이렇게 해서  자신의 웅숭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한다. 야크가죽과 나무는 다 닳아없어지고  타이어를 덧댄 자국만  남아있는데  순례자들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리고  닳아서  노곤해보였다. 그런데도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온 재산을 다 버리고  오체투지를 떠난 한 가족에 대해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지독한 가난에서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  부자로 사는게  정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되었을 때, 깨달음의 순간은  이후의  삶의 방향을  틀어버릴 정도의  격렬함과 빛이 있다.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기도 하고,  죽을 때까지 겪지도 않고,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래서 그들이  행복하다고는 생각  안하기 때문에..

티벳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곳을  너무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들의 터전을  외지인들이  망가뜨려 놓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티벳과  중국의 관계, 오늘날  티벳의 정치적 현실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은  옛날얘기만 하느라   이런  이야기들을  놓쳤다.  그것이  의도적인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오늘을  제외하고  어제를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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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들의 대한민국 - 한국 사회, 속도.성장.개발의 딜레마에 빠지다
우석훈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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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종로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청계천  주변의 거리를  걸을때가 있다. 겨울엔  루미나리에의  불빛이  화려하고   여름엔  근처의 까페나 술집에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거리.   도시 특유의  시끌시끌한  활기, 그리고  속도감.   청계천이  별로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으나  '진짜'청계천은  그 물이 흐르는  지반  밑에 있고   '가짜'청계천의 물이  동아일보 수도꼭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이책을 통해  처음 알았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자는  대운하건설이나  사람들이  새만금, 뉴타운등의  정책에   자신의  경제적이해관계에  맞지 않는  상식밖의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가 에  주목한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사결정은   경제이성이 아닌  미학적 관점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것은  건설미학이라고.  결국  이 책의 제목이  상징하는 바는  우리 시대의  건설미학이라고  볼 수 있을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성과주의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있는 결과 측면을  부각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너무 진부하지 않은가) 원인과  전망과  대안모색에  주목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편집이 조금 아쉽지만  속도감있게 읽히는 것도  좋았다.

같은  사물을  보고도  한쪽은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고  다른 한쪽은  생태파괴나  안타까움의  상반된  차이를  보이게 되는 이유는  합리와 비합리  이성과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미학의 차이이다.  문제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학이  어떤 것인가 이다.  건설미학을  지향할 것인가  생태미학을  지향할 것인가.  대운하 문제에 관해서는  연안에서  내륙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개발의  힘  외에는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게 없다는게  이 젊은 학자의 주장이다.  그런데  건설미학이  내세우는  도시적 감성이라는게  과연  있기나  했었던가, 라는 생각이 든다.   

개발에서 정비와 정주로의 전환, 단기균형에서  장기균형으로의 전환. 물질(에너지)관리 방식에 있어서  미국식에서 유럽식으로의 전환,  그리고  환경운동으로서의  소비자 생협조합 을  대안으로 보고  한국의 생태미학이  '지양'해야 할  길을  세가지 정도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우월적 계몽주의와  선험적  패권주의, 근엄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저자가  우려하는  쇼비니즘이나 패권주의가  단순히  건설이나  경제, 개발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스포츠나  마케팅,  예술도  대안으로  들고 있지만  이미 '그들의'  선민의식과  패권주의와   엄숙주의는    문화, 예술, 교육 - 생활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너무도 견고해 보여서  과연 희망이 있기나 한건가, 란  자괴감이 들게 하지만  그래도 한 움큼의 희망을  버릴수는 없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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