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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금융 사회 - 누가 우리를 빚지게 하는가
제윤경.이헌욱 지음 / 부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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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제윤경은 2011년, 경향신문의 칼럼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동안 그가 쓴 칼럼을 스크랩하기도 했었는데, 책을 통해 만나게 되어 더욱 반갑다.  이 책은 한국의 가계 부채 문제의 원인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세계의 여러 경제학자들의 저서를 인용하며 조목조목 근거를 들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을 도입하여 채무자의 상환능력에 대한 조사의무를 부과하고, 과도한 중도 상환 수수료 부과를 금지하여 채권자 금융기관의 행위를 규제하고, 신용카드 개혁법을 도입하여 이자율 인상제한, 리볼빙 수수료 상한 설정, 가맹점 수수료 조정 등 소비자를 보호하는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1%를 위한 99%의 희생에 반대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월가 시위와 달리 한국에서의 여의도 시위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띠고 진행되었다. 일반인들의 큰 관심을 이끌어 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자본의 탐욕에 대한 규탄이 아닌 금융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 개선 요구가 주된 목적이었다. 그 결과 은행 ATM 수수료,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등의 소폭 인하 등의 성과를 거두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 대형은행의 대마불사(도덕적 해이) 문제를 지적한 점도 적절했다고 본다. 이런 은행들을 미국에서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Systematically Important Finacial Institute)라고 한다. 기업이 잘 나갈 때 주주는 이익을 보지만, 기업이 잘 안 나갈 때는 출자한도 내에서만 책임을 진다. 이것이 이상적인 주주유한책임 제도인데, 대형은행의 경우 부실채권이 대거 양산되어 국가경제가 파탄날 정도로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경영 정상화를 도모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대마불사의 문제이고, 이 경우 주주가 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출 권하는 사회의 대표적인 희생양-신용불량자-은 어떻게 구제될 수 있겠는가, 그 물음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책의 후반부에 제시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죽음에 이른 자들을 다시 살려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제도들이 있고, 이들을 위한 금융상품도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파산,회생과 워크아웃이고, 이 책에서는 파산,회생과 워크아웃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파산, 회생은 법원의 절차에 의하는 반면, 워크아웃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절차를 따른다. 파산,회생채무를 소멸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워크아웃채권회수가 주된 목적이다. 당연히 채무를 소멸시키는 쪽의 절차가 더욱 까다롭다. 또 신용회복위원회가 금융기관이 상당부분 지분을 출자하여 만들어진 법인이기 때문에 신용불량자의 금융복지를 위해 좀 더 파격적인 제도를 내놓을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다각도로 가계부채 문제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꼼꼼하게 짚어준 점, 이를 통해,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강력하게 채권자 윤리를 준수하도록 요구할 것을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이 높이 평가받아야 할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금융위와 금감원에서 저축은행 부실채권을 캠코가 사들이도록 해 금융기관의 부실화를 조장했다고 서술하는 부분은,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고 보여진다. 2011년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PF와 저축은행 사태`문제도 작정하고 다루었다면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금융 이슈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의미있는 책이다.

 

 

 

<밑줄긋기>

어떤 때 은행은 강한 풍요감에 젖어 제한없이 자금을 빌려주지만 또 어떤 때는 신중함이 극에 달해 차입자들이 바람에 휘둘리도록 내버려 둔다.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 <광기,패닉,붕괴>

  

IMF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은 과다부채에 바탕을 둔 위험경영 대신 현금흐름경영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출 기피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은행은 안정적이고 중요한 자금 수요자를 잃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가계 대출 증가는 은행의 마케팅 전환과 관계가 있다.

 

우리 사회를 휩쓴 부자열풍은 중산층이 노동시장 구조조정에 맞서 연대와 저항을 선택하는 대신 머니게임과 소비확장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소비확장은 저축률감소로 이어졌고, 과도한 불안으로 인해 보험가입이 늘면서 금융비용이 금융비용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 역시 방카슈랑스와 자통법 제정이라는 정책적의지가 만들어낸 금융과소비다.  

 

서민금융기반 강화를 위해 미소금융과 햇살론 같은 무담보 소액대출확장하는 정부의 서민대출정책도 문제이다. 그러나 카드 대출을 변제하면 카드사는 대출한도를 다시 늘려 주고, 다시 카드대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 115쪽

 

언론이 머니게임을 부추긴다. 우리 사회가 약탈적 금융사회가 된 것은 소비를 위한 차입은 `나쁜 빚`, 레버리지 투자를 `좋은 빚`이라고 하여 약탈적 대출관행을 언론이 부추긴 데 있다.

 

적당한 긴장은 사람에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지만, 지나친 부담은 사람을 주저 앉히고 만다. 사회적 비난이 거세질수록 파산에 처한 사람들의 자립동기는 낮아지기 때문이다. 행동 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실험을 통해 `사회적 압박`이 강하면 사람들이 훨씬 더 낮은 성과를 보인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심지어 바퀴벌레 조차 다른 바퀴벌레가 지켜볼 때는 성과가 저조하다는 것을 <경제심리학>에서 소개하고 있다.  -182쪽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는 경제 생태계에 선순환을 가져 온다. 파산으로 돈 떼이기 싫어서라도 돈 빌려줄 때 신중해지고,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상황에서 채권자 윤리도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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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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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언젠가 숨을 들이 쉴수도 내뱉을 수도 없이 힘들 때 주문처럼 외우던 시 였다. '괜찮다'라는 말은 위로하는 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든 위로를 받는 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든, 가만히 듣고 있기가 힘든 말이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자꾸 괜찮다고 말하는 책이 많아졌고, 위로의 대상에게 다가갈 수 조차 없으면서 무력하기만 한 그 말엔 진정성조차 깃들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앗!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른 것 같다. '욕망해도 괜찮아' 라는 말은 독자를 다독이거나 훈계하는 말이 아니라 김두식 교수 자신을 위한 말로 들린다. 유명해지고 싶지 않은 욕망, 그리고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과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을 들켜서는 안된다는 욕망을 오가는 자신의 혼잡한 마음을  우리에게 '고백'하기도 하고, 또 더 이상 인정욕망으로 인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음'과 '사실 나도 나이키 신발을 신고 싶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아마도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내용은 가짜 신사 '포리스티어'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진짜 신사도 하지 않을  '신사다운' 행동을 하다가 목숨까지 잃는 '포리스티어'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삶의 방식에서부터 종교, 정치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꽤 많은 은유를 담고 있다. 아직 생각할 거리가 많은 부분이다.

 

자신도 자기가 그어놓은 경계선을 넘지 못하면서 '선을 넘으라'고 독자나 주변인에게 바람을 넣는 모습이 이율배반적이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혹에 대해서  저자는 자신은 선을 한번에 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조금씩 눈치보며 어깨로 밀어가며 경계선을 넓혀 온 사람임을 새삼 고백한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통해 자신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왔기에 할 수 있는 대답일 것이다.

 

이 책은  저자 자신에 대한 공감과 위로이며 가까이 서 그를 바라본 우리에 대한 공감과 위로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도 갖기 힘든 능력이지만, 의도하지 않았고 애쓰지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어루만질 수 있다는 건 상당한 내공이 쌓이지 않고서는  좀처럼 얻기가 힘든 능력이다. 이 책의 저자 김두식은 그러한 두 가지 능력을 모두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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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 마, 청춘! - 우리 시대 청춘을 위한 인생 항해술
김진각.박광희 지음 / 한국in(한국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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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순수하지 않다. 그렇다. 나는 작은 위로가 필요했고 또 어떻게 어떻게 살라고 가르쳐 줄 책을 원했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얘기하는 것들은 가짜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난 이것을 안다'라고 확신에 차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것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가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살짝 아쉬운 점은 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에 대해서 말해볼까. 이 책의 공저자 김난도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좋아하는 걸 하지 말고 잘하는 걸 하라고 말한다. 탁석산 교수도 같은 말을 한다. 좋아한다는 건 취향의 문제고 취향은 변하기 마련이므로. 지속적으로 나에게 밥을 주어야 하는 일은 취향과는 별개의 것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보면 좋아하는 것을 해야한다는 정민 교수의 말은 조금 무책임해 보인다. 그러니까 잘하는 것을 찾아야 하는데, 그걸 찾는게 쉽지 않고 또 찾았다해도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어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기다리는 일에 대해 말해볼까. 쉽게 끝을 보려고 조급증 내지 않는 마음.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그 지점에서 멈추어 서기.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은 수업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아이를 두고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상관없어 기다리면 돼."  기다리면 된다, 기다리면 돼~! 라고 왜 나는 자신한테 진심으로 그 말을 해줄 수 없는 것일까.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 길을 잃어버렸을 때 사람들이 찾게 되는 것이 인문학인 것같다. 스티브 잡스가 죽었을 때 또 한번 인문학 열풍이 불었다. 어느 신문에서는 잡스가 학부 때 들었던 손글씨 수업이 지금의 아이폰을 만들었다며, 혁신적인 사고가 인문학에서 나오는 것처럼 떠들었다.(실은 나도 논술 시험볼때 써먹었었다--;) 혹자는 그건 인문학이 아니라 리버럴 아츠(교양수업)였고, 인문학과 리버럴 아츠는 엄밀하게 다른 의미라고 말했다.

 

확실히, 어떤 계기만 있으면 사람들은 인문학에서 창의성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적어도 내 경험으로 인문학은 내게 어떤 답을 주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의문점이나 비판의식을 갖게 만들고, 그 어떤 하나가 단서가 돼서 내 삶의 이야기를 만들고, 또 그것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그것 외에 창의적인 문제해결능력을 갖게 해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인문학을 위대한 학문으로 만들어놓고, 필요할 때마다 인문학에서 창의성이라는 말을 꺼내어 쓰는 태도는 정병설 교수의 말처럼 왠지 '가짜'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앞에 인문학이 존재해야할 이유는. 여전히 인문학을 붙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어떻게든 살아야 할 이유를 주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생각은 가끔 한다.  인문학에 대해 이렇게 얘기를 많이 한 이유는 이 책의 저자들이 인문학(기초학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그것이 그동안 생각해왔던 바에 많은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또 정혜신 박사가 얘기한 '기다림'이라는 말과 '인문학'이라는 말이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청춘이 읽어도 좋을 책이지만  아이를 둔 부모가 읽어도 좋은 책이겠다 싶다. 죽도록 바쁜 현대인들의 구미에 맞게 길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칼럼보다는 깊은 내용을 담았다. 스터디 끝나고 전철타고 오면서 삼분의 일 읽고, 집에와서 나머지를 다 읽었는데 박승 교수가 경제를 택한 이유가 내가 이력서에 쓰는 내용과 비슷해서 조금 웃었다. 여전히 답은 알 수 없으나, 생각보다 인생이 길다는 것은 알겠다. 거칠게 말하자면, 어떻게든 살아야 할 이유를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인문학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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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2-01-28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보다 알리샤님 이력서의 내용이 더 궁금해요 ^^
잘 지내시죠? 여전히 춥습니다. 몸도 마음도 무탈하시길 ~!

Alicia 2012-01-29 00:09   좋아요 0 | URL

작년보다는 덜 추운것 같은데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자꾸 춥다춥다 하게 되네요^^
굿바이님도 추운 겨울에 맛난음식, 좋은음식 드시고 모쪼록 건강 잘 챙기세요~ :>
 
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 - 정신분석학, 남녀의 관계와 고독을 이야기하다
대리언 리더 지음, 김종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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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태숙 연출의  `대학살의 신`이란 연극에는  변호사인 남편 알랭과  그의  아내 아네트가  나온다. 알랭은  자기아들이  남의 아들  앞니를  부러뜨려  상대방  부모와  합의를  보러  왔으면서도  도무지  그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기  업무 때문에  걸려온  전화를  받기에만  급급하다.  술에  취한  아네트는  극의  막바지 무렵,  술기운을  빌려  남편에  대한  억눌린   감정을  표출해버리기에  이르고,  핸드폰을  못쓰게 된  남편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 책에  따르면  이런  강박증남자와  히스테리 여자의  만남은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삶을  구겨넣고   억제하며  시체처럼  되려는  남자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고  그들  삶을  되돌려  놓으려는  것이  히스테리  여자의  관심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가  관심있어 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자는  그의  능력보다  그가  가진 약점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아버지 혹은  연인이  부재하는  공간과  관련되고,  그  빈공간에는  상상력과  사랑에  대한  관념이  들어차게  된다.  라캉은  사랑이  지향하는  바가  바로  그  결핍이라고 했고,  사랑이  결핍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남자는  그의  거세  덕분에  그녀의  사랑을  받게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남자는  대상  자체에  대한  소유에  관심이  있지만  여자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자연스럽게  남자는  그가  관심있어  하는  것  외에는  볼수  없지만,  여자는  자신의  욕망을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성찰한다.  당연히  관계의  문제에서  조망능력이  뛰어난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이다.   

 책의  제목이 말하는   `보내지  않은  편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자는  여자의  말에서  의미를  캐치하려고  하는  남자들의  노력은  헛수고일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  남자는  단호한  의미  추구를  원하는 반면  여자의  사랑이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의미할  필요없음이라고  한다.   따라서  여자는  자신의  욕망을  말할 수 없고  말하지  않지만,  남자는  그  침묵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말을  내어놓으라고  소리친다.   이것이  그녀가  그를  떠나보내는  이유인 거다.   

 그렇다면  여자는  어떤  방식으로  그녀의  마음을  드러낼까.   이 책에  따르면  여자는  편지가  놓일  자리에  자신을  놓는다고  말한다.   `투윅스  노티스`에서의  산드라  블록을   떠올려 보면  된다.   그녀는  우아한  검정색  튜브 드레스를   입고  휴 그랜트의  방으로   그를  찾아가지만,   휴 그랜트는  편지를  들고와  그녀  앞에서  읽는다.   이  장면은  언어와   비언어로  말하는   남과 여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알면  뭐하겠는가.  남녀란  다만  사랑할 수 있을 뿐   화해불가능한  존재인 걸.    

 늘  그렇듯,  언제나  정답은  없고  어떤  결론에  이르러도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  생기는 문제를  예방해 주지 않는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이  우리에게  주는  도움은  무슨  일엔가  상처받고  허우적 거릴 때,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관념의  틀안에서  우리  행동의  동인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한번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할수 있음과   용서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건,  늘  별개의  문제고   그래서  사랑이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사랑해서  깨지고   멍들고  빨간약  바르고  연고바르고,  그래서  아물게  만드는 건  온전히  우리  몫인걸.    

 

 덧.  사람은  자꾸  변하고   자기 자신마저도  변해가는데  심리학에 의존해  다른사람을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심리학은 자신을 바꾸는데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 외려 사람은 문학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에  자신의 감정을  덧입히고  그들과 대화하는 그런 과정에서 자기자신임을 가능케 하는 힘을 찾는다는걸  깨달아가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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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자본주의 -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에바 일루즈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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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과 감정은 과연 양립 가능한 것일까. 감정이나 가치가 계산 가능한 것일까. 로맨틱한 사랑과 계산이 공존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스, 이다. 이 책은 오늘날  자본이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심리학은   이제  정신분석, 자기계발서, 국가(범죄와 관련하여), 상담산업, 제약산업, 인터넷 테크놀로지등 제도와 결탁해 다방면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책은  심리학이 어떻게 가족관계와 페미니즘에 끼어들어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프로이트가 정신고통을 어떻게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지적 야바위꾼같으니라구!)  

 이전에는 자본과 분리되는 개인적 영역이 분명히 존재했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자본은 조직 구성원의 시간과 공간마저도 식민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회사는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시간을 응축하고 사람들의 사적공간마저도 인정해주지 않으려 한다. 이런 예로는 개인 블로그를 검열한다거나 하는 현상이 대표적일 것이다. 인터넷 테크놀로지가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 시켰다. 한편, 시장은  노동자  자신의 감정관리까지도  작업능력, 즉 노동능력으로  치환하여  사적자아와  공적자아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오늘날  정신건강 및 심리학과 관련된 자기계발서가 넘쳐나는 현상을  저자는  ‘치료 내러티브의 유통’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자아를 건강한 자아와 병든 자아(=신경증적자아, 열등자아)의 층위로 나누게 된 내러티브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치료내러티브를 이해하기 힘들다면, 간단히 ‘오프라 윈프리 쇼’를 떠올리면 된다.  어떤 이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아를 병리로 정의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마저도 정신의학의 잠재적인 수요자로 정의되는 것이 치료 내러티브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심리학의 발전?경향에 힘입어  감정지능 혹은 감정능력이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의 경계에 있는 아비투스의 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 현상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연애와 사랑에 있어서도 감정의 계량이 가능할까. 에바 일루즈는 그 가능성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로맨틱한 관계들 자체가  대량생산, 소비되는  상품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다만 인터넷은 취향을 사물화하기 때문에  인터넷 데이트에서  ‘언어’와 ‘감정적 친화’는 로맨틱한 끌림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로맨틱한 끌림에 있어서는  여전히 육체적인 요소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앞서 말했듯이, 소비자본주의 자체가  사적자아와 공적자아를 불분명하게 하고, 로맨틱 감정과 소비경험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집주인의 딸과 하녀 중에서 연애를 더 잘 하는 사람은 그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게 살아온 하녀이다. 집주인의 딸은 리비도에 대한 억제 때문에 신경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연애를 잘하는 것은 문화자본을 갖고 있으면서  감정양식에 대해 잘 알고있는 집주인의 딸이라고 말한다. 그가 아비투스를 갖기 때문이다.

 심리학이 자아를 상품화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무엇보다도  정신의학담론은  멀쩡한 사람들까지도  환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저자인 에바 일루즈는 푸코식으로 쾌락을 권력의 측면에서만 정의하지는 않는다.  사회영역이 다르면  각 영역마다  정의의 영역이 다르고, 그보다 정치언어와  문화언어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문화를 정치영역으로 끌어들여 설명하려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제도와 감정이 뒤범벅이 되어 그 경계가 불분명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은 아닐 것이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정체를 알면서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 냉소이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상품 사용에 대한 특수한 감정구조이다) 하지만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또 하지 않을 수 없다면 그건 강박충동이라고.  어쨌든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덧. 매슬로우나 마스터스&존슨 등 심리학, 여성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들에 대해 알고 읽으면 편한 점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사회학`의 관점에서 씌어진 것이고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만 대략  알아도 이해하기에 큰 무리가 없을 듯 싶다. 논증 과정은  비교적 자세하지만  일반독자에게  언술된  개념을  이해시켜가며 쓴  다정하거나  친절한 책은  절대 아니다. 
 덧덧.  이  모든 복잡한 논증과정이  벤담의  파놉티콘 모델과  공리주의로  어느정도 분명하게 설명된다는 사실. (2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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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25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주인의 딸과 하녀의 얘기가 흥미롭군요. 저 사두었는데 친절한 책은 아니라고 하셨으니, 각오하고 읽어볼게요. :)

Alicia 2010-04-25 22:06   좋아요 0 | URL

리뷰는 읽은 내용을 그대로 정리한 수준이구요, 책에서 의외로 건질만한 문장들은 조금 있어요. 그런데도 읽다보면 왜 이 책을 읽고 있는거지? 이런 생각이 드는 책이에요. 아는데서 만족하고 무엇도 바꿀 수 없다면 대체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뭐지? 요즘 부쩍 이런 생각 많이해요. 그래도 다락님께는 흥미로운 책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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