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적 금융 사회 - 누가 우리를 빚지게 하는가
제윤경.이헌욱 지음 / 부키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 제윤경은 2011년, 경향신문의 칼럼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동안 그가 쓴 칼럼을 스크랩하기도 했었는데, 책을 통해 만나게 되어 더욱 반갑다.  이 책은 한국의 가계 부채 문제의 원인을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세계의 여러 경제학자들의 저서를 인용하며 조목조목 근거를 들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을 도입하여 채무자의 상환능력에 대한 조사의무를 부과하고, 과도한 중도 상환 수수료 부과를 금지하여 채권자 금융기관의 행위를 규제하고, 신용카드 개혁법을 도입하여 이자율 인상제한, 리볼빙 수수료 상한 설정, 가맹점 수수료 조정 등 소비자를 보호하는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1%를 위한 99%의 희생에 반대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월가 시위와 달리 한국에서의 여의도 시위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띠고 진행되었다. 일반인들의 큰 관심을 이끌어 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자본의 탐욕에 대한 규탄이 아닌 금융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 개선 요구가 주된 목적이었다. 그 결과 은행 ATM 수수료,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등의 소폭 인하 등의 성과를 거두는 데 그쳤다.   

 

우리나라 대형은행의 대마불사(도덕적 해이) 문제를 지적한 점도 적절했다고 본다. 이런 은행들을 미국에서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Systematically Important Finacial Institute)라고 한다. 기업이 잘 나갈 때 주주는 이익을 보지만, 기업이 잘 안 나갈 때는 출자한도 내에서만 책임을 진다. 이것이 이상적인 주주유한책임 제도인데, 대형은행의 경우 부실채권이 대거 양산되어 국가경제가 파탄날 정도로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경영 정상화를 도모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대마불사의 문제이고, 이 경우 주주가 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출 권하는 사회의 대표적인 희생양-신용불량자-은 어떻게 구제될 수 있겠는가, 그 물음에 대한 구체적인 답이 책의 후반부에 제시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죽음에 이른 자들을 다시 살려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여러가지 제도들이 있고, 이들을 위한 금융상품도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파산,회생과 워크아웃이고, 이 책에서는 파산,회생과 워크아웃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파산, 회생은 법원의 절차에 의하는 반면, 워크아웃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절차를 따른다. 파산,회생채무를 소멸시키는 것이 목적이라면, 워크아웃채권회수가 주된 목적이다. 당연히 채무를 소멸시키는 쪽의 절차가 더욱 까다롭다. 또 신용회복위원회가 금융기관이 상당부분 지분을 출자하여 만들어진 법인이기 때문에 신용불량자의 금융복지를 위해 좀 더 파격적인 제도를 내놓을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다각도로 가계부채 문제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꼼꼼하게 짚어준 점, 이를 통해,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강력하게 채권자 윤리를 준수하도록 요구할 것을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이 높이 평가받아야 할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금융위와 금감원에서 저축은행 부실채권을 캠코가 사들이도록 해 금융기관의 부실화를 조장했다고 서술하는 부분은,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고 보여진다. 2011년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PF와 저축은행 사태`문제도 작정하고 다루었다면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금융 이슈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의미있는 책이다.

 

 

 

<밑줄긋기>

어떤 때 은행은 강한 풍요감에 젖어 제한없이 자금을 빌려주지만 또 어떤 때는 신중함이 극에 달해 차입자들이 바람에 휘둘리도록 내버려 둔다.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 <광기,패닉,붕괴>

  

IMF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들은 과다부채에 바탕을 둔 위험경영 대신 현금흐름경영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대출 기피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은행은 안정적이고 중요한 자금 수요자를 잃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가계 대출 증가는 은행의 마케팅 전환과 관계가 있다.

 

우리 사회를 휩쓴 부자열풍은 중산층이 노동시장 구조조정에 맞서 연대와 저항을 선택하는 대신 머니게임과 소비확장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소비확장은 저축률감소로 이어졌고, 과도한 불안으로 인해 보험가입이 늘면서 금융비용이 금융비용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 역시 방카슈랑스와 자통법 제정이라는 정책적의지가 만들어낸 금융과소비다.  

 

서민금융기반 강화를 위해 미소금융과 햇살론 같은 무담보 소액대출확장하는 정부의 서민대출정책도 문제이다. 그러나 카드 대출을 변제하면 카드사는 대출한도를 다시 늘려 주고, 다시 카드대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 115쪽

 

언론이 머니게임을 부추긴다. 우리 사회가 약탈적 금융사회가 된 것은 소비를 위한 차입은 `나쁜 빚`, 레버리지 투자를 `좋은 빚`이라고 하여 약탈적 대출관행을 언론이 부추긴 데 있다.

 

적당한 긴장은 사람에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지만, 지나친 부담은 사람을 주저 앉히고 만다. 사회적 비난이 거세질수록 파산에 처한 사람들의 자립동기는 낮아지기 때문이다. 행동 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실험을 통해 `사회적 압박`이 강하면 사람들이 훨씬 더 낮은 성과를 보인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심지어 바퀴벌레 조차 다른 바퀴벌레가 지켜볼 때는 성과가 저조하다는 것을 <경제심리학>에서 소개하고 있다.  -182쪽

 

약자에 대한 배려와 보호는 경제 생태계에 선순환을 가져 온다. 파산으로 돈 떼이기 싫어서라도 돈 빌려줄 때 신중해지고, 채무자가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상황에서 채권자 윤리도 되살아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