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 - 정신분석학, 남녀의 관계와 고독을 이야기하다
대리언 리더 지음, 김종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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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태숙 연출의  `대학살의 신`이란 연극에는  변호사인 남편 알랭과  그의  아내 아네트가  나온다. 알랭은  자기아들이  남의 아들  앞니를  부러뜨려  상대방  부모와  합의를  보러  왔으면서도  도무지  그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기  업무 때문에  걸려온  전화를  받기에만  급급하다.  술에  취한  아네트는  극의  막바지 무렵,  술기운을  빌려  남편에  대한  억눌린   감정을  표출해버리기에  이르고,  핸드폰을  못쓰게 된  남편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고  만다.   이 책에  따르면  이런  강박증남자와  히스테리 여자의  만남은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삶을  구겨넣고   억제하며  시체처럼  되려는  남자의  일상을  무너뜨리고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고  그들  삶을  되돌려  놓으려는  것이  히스테리  여자의  관심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여자가  관심있어 하는 것이  자신의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자는  그의  능력보다  그가  가진 약점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아버지 혹은  연인이  부재하는  공간과  관련되고,  그  빈공간에는  상상력과  사랑에  대한  관념이  들어차게  된다.  라캉은  사랑이  지향하는  바가  바로  그  결핍이라고 했고,  사랑이  결핍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남자는  그의  거세  덕분에  그녀의  사랑을  받게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남자는  대상  자체에  대한  소유에  관심이  있지만  여자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자연스럽게  남자는  그가  관심있어  하는  것  외에는  볼수  없지만,  여자는  자신의  욕망을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성찰한다.  당연히  관계의  문제에서  조망능력이  뛰어난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이다.   

 책의  제목이 말하는   `보내지  않은  편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자는  여자의  말에서  의미를  캐치하려고  하는  남자들의  노력은  헛수고일  경우가  많다고  하면서,  남자는  단호한  의미  추구를  원하는 반면  여자의  사랑이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의미할  필요없음이라고  한다.   따라서  여자는  자신의  욕망을  말할 수 없고  말하지  않지만,  남자는  그  침묵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말을  내어놓으라고  소리친다.   이것이  그녀가  그를  떠나보내는  이유인 거다.   

 그렇다면  여자는  어떤  방식으로  그녀의  마음을  드러낼까.   이 책에  따르면  여자는  편지가  놓일  자리에  자신을  놓는다고  말한다.   `투윅스  노티스`에서의  산드라  블록을   떠올려 보면  된다.   그녀는  우아한  검정색  튜브 드레스를   입고  휴 그랜트의  방으로   그를  찾아가지만,   휴 그랜트는  편지를  들고와  그녀  앞에서  읽는다.   이  장면은  언어와   비언어로  말하는   남과 여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런데  알면  뭐하겠는가.  남녀란  다만  사랑할 수 있을 뿐   화해불가능한  존재인 걸.    

 늘  그렇듯,  언제나  정답은  없고  어떤  결론에  이르러도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  생기는 문제를  예방해 주지 않는다.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이  우리에게  주는  도움은  무슨  일엔가  상처받고  허우적 거릴 때,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관념의  틀안에서  우리  행동의  동인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일어나는  일을  한번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할수 있음과   용서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건,  늘  별개의  문제고   그래서  사랑이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사랑해서  깨지고   멍들고  빨간약  바르고  연고바르고,  그래서  아물게  만드는 건  온전히  우리  몫인걸.    

 

 덧.  사람은  자꾸  변하고   자기 자신마저도  변해가는데  심리학에 의존해  다른사람을  읽는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심리학은 자신을 바꾸는데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다. 외려 사람은 문학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에  자신의 감정을  덧입히고  그들과 대화하는 그런 과정에서 자기자신임을 가능케 하는 힘을 찾는다는걸  깨달아가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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