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자본주의 -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에바 일루즈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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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과 감정은 과연 양립 가능한 것일까. 감정이나 가치가 계산 가능한 것일까. 로맨틱한 사랑과 계산이 공존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스, 이다. 이 책은 오늘날  자본이 사람의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얘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심리학은   이제  정신분석, 자기계발서, 국가(범죄와 관련하여), 상담산업, 제약산업, 인터넷 테크놀로지등 제도와 결탁해 다방면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책은  심리학이 어떻게 가족관계와 페미니즘에 끼어들어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프로이트가 정신고통을 어떻게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지적 야바위꾼같으니라구!)  

 이전에는 자본과 분리되는 개인적 영역이 분명히 존재했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자본은 조직 구성원의 시간과 공간마저도 식민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회사는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시간을 응축하고 사람들의 사적공간마저도 인정해주지 않으려 한다. 이런 예로는 개인 블로그를 검열한다거나 하는 현상이 대표적일 것이다. 인터넷 테크놀로지가  이러한  경향을  가속화 시켰다. 한편, 시장은  노동자  자신의 감정관리까지도  작업능력, 즉 노동능력으로  치환하여  사적자아와  공적자아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든다. 

 오늘날  정신건강 및 심리학과 관련된 자기계발서가 넘쳐나는 현상을  저자는  ‘치료 내러티브의 유통’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자아를 건강한 자아와 병든 자아(=신경증적자아, 열등자아)의 층위로 나누게 된 내러티브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치료내러티브를 이해하기 힘들다면, 간단히 ‘오프라 윈프리 쇼’를 떠올리면 된다.  어떤 이의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아를 병리로 정의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마저도 정신의학의 잠재적인 수요자로 정의되는 것이 치료 내러티브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심리학의 발전?경향에 힘입어  감정지능 혹은 감정능력이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의 경계에 있는 아비투스의 한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 현상에 주목한다.

 그렇다면 연애와 사랑에 있어서도 감정의 계량이 가능할까. 에바 일루즈는 그 가능성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로맨틱한 관계들 자체가  대량생산, 소비되는  상품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다만 인터넷은 취향을 사물화하기 때문에  인터넷 데이트에서  ‘언어’와 ‘감정적 친화’는 로맨틱한 끌림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로맨틱한 끌림에 있어서는  여전히 육체적인 요소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앞서 말했듯이, 소비자본주의 자체가  사적자아와 공적자아를 불분명하게 하고, 로맨틱 감정과 소비경험을 불분명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집주인의 딸과 하녀 중에서 연애를 더 잘 하는 사람은 그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게 살아온 하녀이다. 집주인의 딸은 리비도에 대한 억제 때문에 신경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연애를 잘하는 것은 문화자본을 갖고 있으면서  감정양식에 대해 잘 알고있는 집주인의 딸이라고 말한다. 그가 아비투스를 갖기 때문이다.

 심리학이 자아를 상품화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무엇보다도  정신의학담론은  멀쩡한 사람들까지도  환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저자인 에바 일루즈는 푸코식으로 쾌락을 권력의 측면에서만 정의하지는 않는다.  사회영역이 다르면  각 영역마다  정의의 영역이 다르고, 그보다 정치언어와  문화언어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문화를 정치영역으로 끌어들여 설명하려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제도와 감정이 뒤범벅이 되어 그 경계가 불분명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은 아닐 것이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정체를 알면서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 냉소이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상품 사용에 대한 특수한 감정구조이다) 하지만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또 하지 않을 수 없다면 그건 강박충동이라고.  어쨌든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덧. 매슬로우나 마스터스&존슨 등 심리학, 여성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인물들에 대해 알고 읽으면 편한 점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사회학`의 관점에서 씌어진 것이고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만 대략  알아도 이해하기에 큰 무리가 없을 듯 싶다. 논증 과정은  비교적 자세하지만  일반독자에게  언술된  개념을  이해시켜가며 쓴  다정하거나  친절한 책은  절대 아니다. 
 덧덧.  이  모든 복잡한 논증과정이  벤담의  파놉티콘 모델과  공리주의로  어느정도 분명하게 설명된다는 사실. (2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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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25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주인의 딸과 하녀의 얘기가 흥미롭군요. 저 사두었는데 친절한 책은 아니라고 하셨으니, 각오하고 읽어볼게요. :)

Alicia 2010-04-25 22:06   좋아요 0 | URL

리뷰는 읽은 내용을 그대로 정리한 수준이구요, 책에서 의외로 건질만한 문장들은 조금 있어요. 그런데도 읽다보면 왜 이 책을 읽고 있는거지? 이런 생각이 드는 책이에요. 아는데서 만족하고 무엇도 바꿀 수 없다면 대체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뭐지? 요즘 부쩍 이런 생각 많이해요. 그래도 다락님께는 흥미로운 책일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