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전에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소감을 글로 남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때로는 시끄러울 정도로 수다스럽고, 한 토막으로도 충분한 말을 반복, 장황하게 설명하려고 하는듯한 느낌. 처음엔 보통의 글쓰기 방식이 낯설어 속으로 욕도 많이 했음을 솔직하게 밝혀 둔다. 그러나 동의할 수 없는 어떤 부정적인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 작가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은, 표현방식의 독특함, 독자들의 예상을 넘는 빼어난 상상력, 뛰어난 유추능력, 우리가 알지만 말할 수 없는 갖가지 빛깔에 이름을 붙여주는 탁월한 능력 때문이라고나 할까.


그의 여러 책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행복의 건축' 인데, 이번 책은 전작들보다 더 노련하고 완숙미가 넘친다. 비틀지 않아서 편안하게 읽힌다. 


영화와 비교했을 때 건축은 어떨까. 영화는 시각 언어와 청각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주로 그것을 이루고 있는 내용적 측면- 그 안에 함의되어 있는 철학, 문학, 사회학적인 측면에 주목해 영화를 관찰하게 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그것을 이루는 것은 시청각적 언어이다. 이것들은 매우 기술적인 요소이긴 하나, 연출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샷 의 크기나 길이, 높이와 각도만으로도 충분히 표현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건축은, 건축을 이루는 언어를 굳이 이름붙이고자 한다면 그것은 무엇이 될까. 공간언어?

알랭 드 보통이 그 공간언어에 대해 얘기하고자 했다면, 우리는 그것에서 어떤 지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책은 시중에 나와 있는 책처럼 아주 평범하고 지루한 책이 되어버렸을 수도 있다.


시각적 경험과 정신적 가치. 과연 인간은 물질적인 것들에 눈감아버리고 살 수 있는가. 알랭 드 보통은 물질적인 것을 저차원적인 것으로 치부하면서도 인간은 늘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꼬집는다. 그의 그런 생각은 ‘시각적 경험을 경멸하는 그런 단호한 노력에도 늘 우아한 목적을 위해 물질세계를 꾸미려는 집요한 시도들이 짝을 이루어 왔다.’ 이 문장 안에 다 들어 있다.

너무나 빤히 보이는 거짓이다. 이런 논리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이들은 시각적인 것의 영역과 윤리적 영역이 동등하다는 믿음을 가졌다는 것인데, 매우 그럴 듯해 보이는 이 전제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바꾸어 말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그토록 건축을 동경하는 것은 모든 변해가는 것들 속에서 그래도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는 어떤 가치를 붙들어 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2013.3.5) 때문일지도 모른다. 완전에 대한 지향과 이상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변덕스러운 기질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본질 아닐까. 디자인이나 스타일 자체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다양하지만, 어쨌든 어떤 형식이 보여줄 수 있는 숭고한 미적 가치. 사람들은 그것이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 


건축물 그 자체의 정체성보다도 관계적 개념에서 건축물을 설명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예술작품에서는 질서의 베일을 통해 혼돈이 아른거려야 한다' 노발리스의 이 말 한마디에 예술과 건축에 대한 모든 정의가 다 들어 있다. 플라톤이 말한 ‘에로스’가 이것이 아닐까. 지와 무지, 선과 악, 미와 추 양 극단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또 우리는 그런 중간자적 존재를 예술가라고 부른다. 


양립할 수 있는 카오스. 한때 내가 이상으로 삼았지만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명제. 그러나 알랭 드 보통은 '균형 잡힌 건물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면 대립물 가운데서 뭔가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결국 살아가는 것은 생에 대한 욕망이고, 질서와 반복에 대한 권태와 혼란에 대한 불안을 견뎌내는 일이라면 살아 있는 한 인간은 누구나 아슬아슬하게 카오스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지금 이 순간, 살아 숨쉬고 있는 자체가 카오스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20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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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2008-10-07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영국에서 알랭드 보통이랑 사진찍고 왔어요오(뜸금없는 자랑질 댓글 ㅋㅋ)

Alicia 2008-10-07 12:44   좋아요 0 | URL

어~어~ 너무 부럽당 니나님~~
여행사진 올려주셔야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