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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 레디앙 / 2008년 8월
평점 :
아, 표지사진마저 정치적이다. 정당에 몸담은 자로 믿기 어려운 집시풍의 스커트 하며 플랫슈즈까지. 거기다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 란 표상은 그 얼마나 정치적인가. 많은 사람들은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속까지 정치적인' 이란 책이름에서 제도를 거스르며 살아가는 보헤미안적 낭만을 꿈꾸겠지만, 아서라. 난 목수정에게서 전쟁같은 삶의 치열함을 읽었다.
그녀는 이 책에서 거리에서 김밥파는 아주머니를 내쫓으면서 민중운운하는 정치인들의 민중,이란 말의 허상을 지적한다. 정치적인 것에 관심이 없으면서 '정치에만' 관심있는 자들의 찌든 표상이다. 이 때 이들이 말하는 민중은 결코 주권을 분유分有하는 인민peuple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주권론에서 말하는 정치권력의 객체로서 추상적 국민에 가깝다. 한창 촛불집회가 열리던 때 광우병 대책위에서는 집회에 모인 사람들을 가리켜 '시민'이라고 표현했다. 민중, 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든다면 민중 대신 집단적 의미가 아닌 개인적 의미로서의 정치주체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시민, 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일이다.
그녀가 유학을 떠나게 됐던 계기이자, 민주노동당에 몸을 담그게 된 이유로서 문화적 빈곤, 그녀는 문화의 운명을 사익집단에 맡길것이 아니라 예술과 문화가 공공서비스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예술이 생활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엄숙주의는 생명의 숨구멍을 끊어놓는다. 정치를 비롯한 모든 활동은 자유로운 상상력에 기반하므로.
아마도 독자의 흥미를 가장 많이 끄는 것은 그녀의 비혼과 가정생활, 자녀교육이지 않을까 싶다. 프랑스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란 부제가 떡 하고 붙어있으니.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은 결혼하지 않은 동거부부의 가정생활을 법률혼과 거의 같은 정도로 보장한다. 이때 한쪽 배우자가 외국인이라도 국내거주나 국적취득에 장애가 별로없다. 하지만 한국을 보라. 한국에 귀화하기 위해서는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일정기간 계속거주가 필수적 요건이다. 한가지 예외가 있는데 임신중에 한국국적을 가진 배우자가 죽었을 때- 물론 이때도 혼인한 상태여야 국적취득이 가능하다. 여러모로 한국은 한 개인의 자유에 관해서, 불필요한 절차와 허식을 강요하는 나라다.
오늘날, 정치적, 경제적이유로든 정서적인 이유로든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동거를 한다. 그러나 이들의 동거가 과연 어떤 의식이 담긴 그릇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성적 자유를 원하면서도 그들 사이에 태어난 생명을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세태이므로. 그것은 비혼과 기혼을 떠나서 남자와 여자, 모두가 가져야 할 인간으로서의 성숙의 문제다. 부모로서의 책임과 결혼과 비혼 문제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그렇지 않은가? 말이 쉽다만 그녀가 희완이 아닌 한국남자 아무개씨와 결혼했다면 지금의 삶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또한 내게 다음과 같은 말을 던졌다. 단호하고도 명료하게. " 원칙이 있는데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이지 그 사람들 때문에 내가 떠날 필요는 없다." 이 말은 어떤 집단에 몸을 담그다 떠나야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일때 내게 커다란 힘이 되줄 것이다.
언젠가 사주를 볼때, 30에도 공부운이 있고 40에도 공부운이 있어. 평생 공부만 하게 생겼네, 라고 했다. 이것도 하고싶고 저것도 하고싶고 어느것 하나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할 수 없던 나는 내게 끈기가 없다는 말을 좌절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나도 한 우물 파기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었고, 지금도 그렇고. 니가 이걸 견딜 수 없다면 다른것도 견딜 수 없어, 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이고 또 다그치면서. 목수정의 말대로 , 사회는 한 우물을 팠다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으면서 종종 이런 이데올로기로 상자인간을 만들어낸다.
어떤 걸 하고싶은데 외부적 상황이 받쳐주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건 사실, 개인이 둘러대는 그럴듯한 방패막이 아닐까 한다. 입버릇처럼 도망치고 싶다고 말하면서 자유와 낭만을 찾아 떠돌다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유목민의 삶은 아니므로. 언제나 가능성은 자신안에서 실험되어야 하고, 주장과 일상은 일치되어야 한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어냐고 물을 때, 첫번째도 La vie, 두번째도 La vie, 세번째도 La vie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그녀의 글을 읽으며 훌쩍 월경을, 월담을 꿈꾸는 오늘 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