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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패러독스 - 시간이란 무엇인가
필립 짐바르도.존 보이드 지음, 오정아 옮김 / 미디어윌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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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칼 세이건의 유명한 우주력에 따르면, 지구는 우주가 생겨난 첫 해 9월에 만들어졌다. 공룡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타났으며, 유인원은 12월 31일 밤 10시 15분에 생겨났다. 우리의 첫 번째 조상들은 밤 9시 42분부터 직립보행하기 시작했고, 10시 30분에는 현생인류가 등장했다. 인류가 탄생하기 전인 364일 10시간 30분 동안에는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은하수가 생겨나고, 태양계에 세밀한 균형이 부여되고, 행성들이 그 안을 채웠다."  

우주의 나이를 1년으로 환산한 우주력은 잘 알려져 있는 것이지만, 이렇게 갑자기 맞닥뜨리게 될 때의 새삼스러운 경이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보다. 역사책 첫 페이지에 늘 나오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1시간 30분 전에 등장했고, 25초 전인 밤 11시 59분 35초에 신석기 문명이 시작된 셈이다. 5천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한반도의 탄생은 그럼 몇 시에 태어난 셈이 되나? 삼국시대, 조선시대를 거쳐 내가 태어난 1900년 후반대는? 온 세계가 난리법석을 피웠던 밀레니엄과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시간 속에 던져진 나의 존재를 실감한다. 내 삶이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평소에 죽음을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 것처럼, 나의 존재가 굉장히 대단한 무엇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이렇게 찰나의 점과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며 살지는 않는다. 마치 내 앞에는 무한한 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내가 사는 시간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별다른 의식이 없다가, 이런 식으로 우주 안에 표시도 나지 않는 먼지같은 내 삶을 느낄 때면.. 소름이 돋고 아연해질 뿐이다. 

[타임 패러독스]의 주제나 결론은 간단하다. 이토록 기적같이 주어진, 짧아서 더 소중한 시간을 함부로 쓰지 말고 계획을 세워 의미있게 보내자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앞에 주어진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을 다양한 관점으로 수용하라고 말한다. 즉 시간에 대한 태도를 과거부정적, 과거긍정적, 현재쾌락적, 현재숙명론적, 미래지향적, 초월적 미래지향적 시간관으로 구분하고 "강한 과거긍정적, 현재쾌락적, 적당한 미래지향적 시간관"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과거부정적인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발전의 계기를 만들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과거의 기억에 얽매일 경우 자신의 모든 현재와 미래를 과거속으로 매몰시킬 우려가 있다. 현재쾌락적인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원하는만큼 자유를 누리며 즐겁게 살 수 있지만 지나치게 지금 이 순간에만 충실하다보니 미래를 보장하기 힘들고, 현재숙명론적인 사람 역시 모든 것을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 아무런 열정도 없는 타율적인 삶을 살게 된다. 미래지향적인 사람은 철저한 계획속에 흐트러짐없는 생활을 영위해나가지만 자기자신을 지나치게 계획의 틀 안에 가두어버림으로써 심리적 압박에 시달릴 수 있고, 앞날의 성공을 위해 지금 내 앞의 작지만 소중한 일,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감정을 소홀히 취급함으로써 공허한 노년을 맞을 수 있다. 또한 초월적인 미래지향적 시간관을 가진 사람은 종교적 믿음에 경도되어 영혼의 안녕을 위해 현세의 삶을 파괴해버리기도 한다. 각각의 시간관은 그 효용성이나 의미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편향될 경우 해악으로 작용하게 되며 그것이 바로 타임 패러독스라는 것이다. 물론 한가지 시간관만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그리하여 우리는 과거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되 미래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현재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에 충실한, 유연한 시간관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말은 쉬운데 그것을 실천하거나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의 물리적인 시간을 만족스럽게 계획하는 일도 쉽지 않거니와 내 기억과 사고, 즉 나의 심리적 또는 의식적 시간을 컨트롤하는 것도 무척 힘든 일이다.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 인한 영향을 끊임없이 느끼고, 점점 무언가를 '극복'한다는 일이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운명을 탓할 때가 많아지기도 한다. 구질구질한 감정들은 벗어던지고 최대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내 시간을 설계해나가야 한다고 주구장창 강조하는 걸 보자니 뻔한 얘기만 늘어놓는 자기계발서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저자의, 불우한 어린 시절을 극복한 자부심과 수십년 간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여 권위자로 존중받는 뿌듯함과 은퇴 이후에도 강연을 다니면서 노후를 즐기는 열정과 여유로움은 대단히 존경할만한 것이지만 저명한 학자의 성공스토리를 자신의 전문분야인 심리학 지식으로 설명한 것에 불과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갖는 시간 인식에 관한 다양한 실험과 경험을 통한 분석은 굉장히 재미있으며 무엇보다도 인간의 성격이나 사고방식을 그들의 시간관과 연관지어 교육이나 사회문제, 인간관계까지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흥미로웠다. 숙제를 하지 않고 노는 현재쾌락적 아이와 놀고싶은 마음을 참고 기꺼이 `즉각적 만족` 대신 `지연된 만족`을 추구하는 미래지향적 아이를 다르게 교육해야할 필요성이 있으며, 그 외 다양한 시간관이 동시에 작용하는 저마다의 경우에 유연하게 대처함으로써 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살테러범에 대한 초월적인 미래지향적 시간관에 근거한 분석이나 각 나라의 대통령 등 지도자들의 성향을 보수/진보가 아닌 과거긍정 혹은 현재지향/미래지향같은 각기 다른 시간관에서 유추하는 대목 역시 인상 깊었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들 역시 시간관의 차이에 기인한다는 말은 무릎을 탁 칠 만 했다. 성격차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시간관이 성격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결국 인간관계란 상대방의 시간관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도 있을 듯 하다. 성격은 종잡을 수 없어도 시간관을 파악하는 데에는 객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지식들이 있다. 애먼 혈액형이나 별자리만 들여다보지말고 자신의 시간관과 주변인들의 시간관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도 인간관계의 질을 높이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자기계발서같은 말이 많지만, 감동 어린 이야기로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뻔한 교훈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에 관한 객관적 실험과 분석을 토대로 일반론을 이끌어내는 흥미로운 과정을 통해 새삼 자기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 나아가 내 주변과 사회, 국가 간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바라보는 관점에 훌륭한 학습이 되어주는 것은 이 책이 갖는 장점이기도 하다.   

언제 끝날 지 몰라서 더 무한하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고, 끝난다는 의식 자체를 하지 못해서 영원할 것만 같은 시간이기도 하다. 우주력의 밤 11시 59분 59초와 자정 사이, 그 1초 안의 수많은 시간대 어느 한 점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는 내 삶, 그렇게 우주 속으로 던져진 내 앞에, 또 던져진 이 시간들. 얼마나 짜임새있게 알뜰살뜰 꾸려가야 작은 점이나마 온전하고 또렷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주어진 시간만큼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가면 그 뿐이지 싶다가도, 2008년을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하는 지금 이 시점에서의 기분은 사뭇 남다른 것이 된다.  

연말인 탓과 아울러 개인적으로도 이 책을 접한 12월의 며칠이 여러가지 상황이나 정서상태와 맞물려 매우 의미있는 독서가 되어주었다. 평소에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실제 행하지는 않고 있던 많은 일들을 새롭게 정리함과 동시에, 뻔한 충고같은 말들이지만 가슴 속 깊이 새겨진 글귀들 덕분에 나는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설계하는 데 좀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타임 패러독스`에 빠져 있었을 지도 모를 나의 내면을 용기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해준 데 대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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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대하는 태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켜준다. 특히 어떤 기억이나 상황으로 인해 괴로운 독자에게는 마치 정신치료와도 같은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책 속에서 저자가 추천하고 있는 도서로는 

- 시간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는가/로버트 레빈
- 완전한 행복/마틴 셀리그만 
- 행복도 연습이 필요하다/소냐 류보머스키
-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대니얼 길버트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일반인 모두에게 자기 삶을 진지하게 성찰해볼 기회는 물론 타인의 삶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에도 하나의 지침이 되어줄 것이며 특히 이 땅의 모든 교육자들에게 아이들을 이해하고 교육방향을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로프터스와 동료들은 '가짜 기억'을 만들어내는 일이 놀랄 만큼 쉽다는 사실을 재차 증명했다. 한 연구에서 참가자들은 디즈니랜드에서의 멋진 추억을 떠올려보라는 문구가 들어간 디즈니랜드 광고지를 받았다. 디즈니랜드 주제가를 부르며 다양한 놀이기구를 타고 벅스 버니와 악수를 나누는 등의 추억들을 어찌나 따뜻하고 열정적이고 아련하게 묘사해놓았던지, 후에 많은 참가자들이 실제로 디즈니랜드를 다시 찾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광고지에는 잘못된 내용이 있었다. 잘못된 정보가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려고 연구자들이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것이었다. 벅스 버니는 워너브라더스의 캐릭터이므로 디즈니랜드에 있을 턱이 없다. 하지만 광고지를 본 실험 참가자들은 디즈니랜드를 방문한 기억에 관해 질문을 받자 16퍼센트가 벅스 버니와 악수한 기억이 있다고 답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일어나지 않은 게 분명한 일을 일어났다고 기억하는 경우 해가 되는 점은 무엇일까? 디즈니랜드를 다시 방문해 당신의 아이들에게 벅스 버니를 소개해줄 계획이 아니라면 해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러한 기억이 부정적인 사건에 관한 것이라면 어떨까? 인간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부정적인 사건을 일어난 것으로 기억할 수도 있지 않을까? 로프터스와 다른 심리학자들이 시행한 연구들을 바탕으로 볼 때 대답은 '그렇다'이다. (p.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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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 최신 연구로 확인하는 인간광우병의 실체와 운명
유수민 지음 / 지안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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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올해 5~6월 절정을 이뤘던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를 거쳐 오면서 전국민이 광우병에 관한 한 전문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익히 들어왔던 광우병과 변형 크로이츠-펠트 야콥병(vCJD, 인간광우병)의 내용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한 번 돌이켜 볼 수 있고, 실제 광우병의 감염력을 실험했던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 광우병은 매우 위험한 질병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저자는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 라는 책 제목에 충실하여 광우병에 대한 객관적 사실과 과학적 지식을 매우 유연한 문장력으로 쉽게 기술하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광우병의 발생 기원에서부터 이 책의 핵심인 인간광우병 발병의 전제조건을 상세하게 다루고, 마지막으로 인간광우병은 감염되기 쉽지 않은 병이며 현재는 광우병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과정은 흥미롭다. 파푸아뉴기니 포레족의 식인습관과 18세기 영국의 서퍽품종(우량종끼리 교배시켜 탄생한 양)이 보여주는 동종포식의 무시무시함, 1985년 육골분사료를 사용함으로써 시작된 영국의 광우병이 포레족의 쿠루병이나 서퍽종의 스크래피와 연관이 있음을 밝혀내기까지의 여정은 긴박감마저 느껴진다. 정상 프라이온의 α-β 구조가 잘못 접혀 변형 프라이온이 되고 그 변형된 프라이온이 정상 프라이온을 먹어치우듯 계속해서 변형시켜 간다는 것, 253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프라이온 단백질의 129번째 자리에 메치오닌(M)과 발린(V)의 조합형태에 따라 MM, MV, VV 3가지 쌍이 올 수 있는데 이것이 흔히 이야기하는 MM형 VV형이라는 것, MM형이 변형 프라이온과 더 쉽게 반응함으로써 한국인의 94.33%를 차지하는 MM형이 인간광우병에 걸리기가 더 쉬운 것이 사실이라는 내용 등등이 차분히 기술된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 당시 정부와의 대화에서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근거는 없다'던 정부측 질병관리본부 직원의 확신에 찬 대답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과학에 대한 확신이었나 정부에 대한 확신이었나?

인간광우병의 전제조건 4가지도 재미(?)있다. 인간이 그 병에 걸리려면 ① 우리가 먹는 육류의 원재료가 된 소가 병에 걸린 소나 양의 부산물이 들어간 오염된 사료를 먹어야 하고 ② 그것이 종 간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만큼 대량이거나 강력해야하며 ③ 강력하기 위해서는 양의 부산물을 먹은 소를 다시 양이 먹고, 그 양을 소가 먹는 재순환의 과정을 거쳐서 강해진 특정 스트레인이 출현해야하고 ④ 일부러 사람이 특정위험물질(SRM)을 섭취하거나 ⑤ 환자의 평균 연령대인 28세 내외에 근접해야한다. 결국 인간광우병이란 얼마나 걸리기 어려운 병인가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제3장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에서 여러가지 실험 결과를 동원하여 광우병이 정말 걸리기가 힘든 병이라는 사실에 대해 좀 더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살코기는 광우병에 걸린 소의 근육을 50~100kg 정도 먹어야 인간광우병에 걸리고, 변형 프라이온은 600도 이상에서도 `제거`는 안되지만 고온일수록 `불활성화`되므로 감염력이 크게 떨어지고, 지방과 함께 섭취할 경우 프라이온 단백질이 쉽게 분리되어 역시 감염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험은 실험일 뿐 모든 것은 안전하지 않다. 인간광우병이 신종 질병이라 연구가 미흡하다는 실정을 감안하더라도, 먹을거리가 주는 치명적인 위험을 감소시키기에는 실험 결과마다 붙는 추정, 예측, 가정, 예상 따위의 말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과학적인 통계는 통계일 뿐, 사람의 목숨을 확률로 계산하여 질병의 경중을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발병 확률이 아무리 낮아도 환자 당사자에게는 100%가 되는 것이고, 광우병 감염의 위험이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그 100%에 걸려들지도 알 수 없다.

불안감에 더하여, 과학이 말하는 예방법이라는 것도 다소 황당하다. 위 전제조건에 대비하여 예방할 수 있는 조치라고 말하는 것이 ① 현재 사료 공정 시스템은 안전하고 ② 종 간 장벽이 누구에게나 쉽게 붕괴되지 않는 근거로 <영국에서 광우병이 휩쓸었던 당시 인구 5,000명 중 200명이 채 안되는 수가 인간광우병에 걸리고 나머지는 무사했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③ 우리나라에는 재순환을 받아줄 정도의 양을 키우지 않으므로 특정 스트레인이 출현할 여지가 적다고 하고 ④ 특정위험물질은 안 먹으면 되고 ⑤ 기계적 회수육(햄버거, 소시지 등)이 들어간 음식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나이일수록(어릴수록) 조심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과학자는 과학을 하는 사람이라 정책적인 부분에 대해 관심이 없고 그 실태에 대해서도 관여를 할 생각이 없는지 모르겠으나, 현재 미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소가 사육되는 미국 도축장은 결코 위생적이거나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감독조차 허술하기 짝이 없어 육골분 사료를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다우너 소를 도축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전혀 할 수 없다. 육골분 사료를 철저하게 금지하고 반추동물과 비반추동물의 사료를 엄격하게 분리하여 제조하기만 하여도, 즉 사료만 완벽하게 관리가 되어도 광우병의 위험으로부터 크게 벗어날 수 있다는 저자의 말대로라면, 그 결정적인 전제조건에 대한 확신이 전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광우병이 결코 안전하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광우병에 대해 설명하고 위험에 대한 예방책을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과학자의 일이지만, 그 예방책을 실행하는 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정부의 영역이다. 과학자가 사료 제조는 안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확신하거나 특정위험물질이 철저하게 제거되어 수입된다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닐 것이다. 그런 소소한 예방법 조차, 정부의 엄격한 관리감독을 강력하게 촉구하기 보다는 개인의 끊임없는 모니터링을 강조하고 있어서 좀 의아하다. 광우병 관리가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던가? [과학이 광우병을 말하다]라는 제목이, 과학적 중립을 핑계로 과학자의 사회적 역할을 회피하고자하는 장치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어쨌거나 `과학은 광우병의 실체를 알고 있다`는 뒷표지의 문구처럼, 단지 광우병에 대해 객관적으로 알고 싶을 뿐이라면 과학적 정보로써 부족함이 없다. 서술 과정이나 과학적인 사실 자체로는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 이상의 문제는 이 책의 범위 밖의 것이다. 미국과 한국 정부의 광우병 통제관리 능력과 의지에 여전히 의구심을 갖는다면 뭐 재미는 있었던 데에 만족할 것이고, 미국의 사료 제조 시스템을 믿고 미국의 도축장을 믿고 우리나라의 수입산 소고기 표본추출검사를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저자가 언급한 몇 가지 주의사항을 지키는 것으로 광우병의 공포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산 소고기 시식 쇼를 벌였던 그 어떤 사람들처럼 말이다. 

[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광우병에 대해 잘 몰랐던 독자에게는 관련정보가 상세하게 씌어있어 매우 유용할 것이고, 광우병에 대해 질리도록 들어온 사람에겐 좀 뜬금없이 유전자에 대한 경이로움이 크게 다가온다. 유전자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거나 단백질이 잘못 접혀서 질병이 발생하는 과정, 스트레인의 개념같은 것들은 매우 흥미롭고 새삼스레 소름이 돋을 만큼 유전자라는 것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

•  서평 도서와 동일한 분야에서 강력 추천하는 도서 (옵션)

- 육식의 종말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광우병을 철저히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사람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좋은 예로 헤모글로빈 단백질에서 유전자 한 부위가 바뀌면서 생기는 `겸상 적혈구 빈혈증`을 들 수 있다. 헤모글로빈 단백질을 만들도록 지령하는 1,600개 부위 중 677번째 부위 하나가 변해서 원래 있어야 할 아미노산이 아닌 다른 아미노산이 끼어들게 된다. 글루탐산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발린이 들어가는 것이다. 아미노산은 각기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만 바뀌어도 최종적으로 단백질 전체 모양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원래 적혈구는 원형인데 잘못 만들어진 헤모글로빈 단백질이 서로 엉김겨서 낫 모양(겸상)으로 변한다. 이렇게 낫 모양이 된 적혈구는 미세한 혈관을 통과하기 어렵다. 그 결과 헤모글로빈의 주역할인 산소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빈혈을 일으키게 된다. 단 한 부위의 유전자, 단 한 부위의 아미노산이 바뀜으로써 전체 단백질이 영향을 받고 인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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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정치] 서평단 알림
하나님의 정치 (양장) - 기독교와 정치에 관한 새로운 비전
짐 월리스 지음, 정성묵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 서평단 도서 :

서평도서가 도착하여 포장을 뜯자 동생이 책을 보고 "그런 책도 읽어? 그냥 갖다 버려." 라고 한마디를 했다. 제목만 봐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나 경찰청장을 대표하여 그 외 수많은 공직자들이 당당하게 종교 커밍아웃을 해대는 시류를 타고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았을 것만 같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크리스천에게는 스스로의 양심에 좀 더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를, 크리스천이 아니며 기독교에 다분한 반감마저 갖고 있는 나같은 독자들에게는 가슴에 작은 울림을 일으키는 책이 바로 [하나님의 정치]이다.

저자는 말한다.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크리스천임을 밝히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크리스천임을 말하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것(오히려 반대로 가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종교가 세상이나 정치에 관여해야할 지의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관여할 것인가의 고민"이 핵심인 것이다. 생명을 중시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섬긴다는 자들이 전쟁을 정당화하고, 세상의 낮은 곳으로 임하는 예수의 모습을 우러러본다는 자들이 부자들을 위한 정책에만 골몰하는 것을 신랄하게 질타한다. 성경의 가르침을 받든 자신의 종교적 양심을 회복하여 잘못 들어선 길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저자는 한결같이 목소리를 높인다.

예수는 공화당원도 민주당원도, 우파도 좌파도 아니라고 말한다. 단지 표를 얻기 위해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말라고 비판한다. 권력과 결탁하여 사사로운 이익에 휩쓸려 종교 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종교인들에게 일갈한다. 예수가 전쟁을 일으켜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말했나? 예수가 가난한 자들을 짓밟으라고 했나?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라고 떠드는 그들이 어째서 하나님의 피조물인 환경을 파괴하는 데 앞장서는가? 그리고 또 수많은 기독교 유권자들은 왜 그런 거짓 크리스천을 강력하게 지지하는가...

독실한 크리스천임을 자부하는 부시의 정책들을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그가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매케인)와 공화당을 지지하는 크리스천은 여전히 넘치도록 많고, 지난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며 몇몇 공화당 텃밭까지 이겼다고 하더라도 그 이유가 양심이나 정신적 가치 따위 때문이 아니라 부시정권의 실정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의 반대급부였다는 것 또한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바마가 크리스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행보나 정책기조가 훨씬 더 예수의 가르침에 충실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기독교인인 부시는 최소한 이 책 속에 나오는 성경 몇 구절에만 충실하여도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닌 나마저도 책 머리말에 언급된 성경구절을 보고선 문득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 오랜만에 성경책을 꺼내어 책을 읽는 내내 옆에 두었다. 예전에 교회에 함께 다니자고 끈질기게 권유하던 누군가가 선물해준 것인데, 무심히 펼쳐 맞닥뜨린 글귀들은 내게 잔잔하고도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글쎄, 경험상 기독교인인 지인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예수 대하듯 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교회에서 단체로 자원봉사를 하거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선행'은 많이 하지만 거리에서 동남아 노동자나 행색이 초라한 사람들을 짜증스럽게 피해다녔고 학벌이나 직업 등등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교회에서의 자아와 일상에서의 자아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제는 부산의 한 교회에서 목사와 그 아들이 자신의 교회문을 발로 차는 중학생들을 감금하고 가스총으로 위협했다는 기사도 나온 걸 봤다. 다소 극단적인 경우에다 '한국형 교회'의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있을 사건이지만, 일반교인은 물론 목회자들도 이럴진대, 진정한 종교적 가치를 올바르게 내재화하지 못한 자들이 권력을 얻음으로써 세상에 끼치는 폐해란 일일이 표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일단은 부시만 보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역할을 강조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읽는 내내 가슴을 울렸다. 종교가 정치에 어떻게 영향을 끼쳐야 하는지, 어떻게 세상을 구원해나가야 하는 지를 인간 본연의 양심에 기대어 진심 어린 해답을 제시하려 한다. 종교를 통해 개인적 삶의 도덕성을 회복하고 사회 정의를 위한 책임을 깨우침으로써 예수의 가르침에 진실로 부합되는 정당을 지지하고, 그런 후보에게 투표를 하고, 그러한 진실된 믿음으로 세상을 똑바로, 꼼꼼히 바라보기를 열망한다. 그리하여 그 모든 믿음 속에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존재하는 것임을, "우리가 기다려 온 인물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라는 에필로그로 끝을 맺는다.

종교에도 보수와 진보가 있다는 현실은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는 듯도 하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인데, 그것을 선택적으로 해석하고 때로는 왜곡하는 일부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결과일 것이다. 아니, 이렇게 간단히 말할 문제는 아닐 터이지만, 무엇을 보수적으로 지켜야 할 지 무엇을 진보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지에 대한 고찰 대신 내 지위와 내 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기준으로 보수적 색채를 띠는 교인들이 많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대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기독교인들이 같은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을 하나님 대하듯이 했다면, 그리고 그 마음을 사적인 영역에서나 공적인 영역에서나 잃지 않고 독실하게 걸어왔다면 기독교가 이토록 본연의 가치를 상실한 채 정도에서 멀어지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현실의 논리와 개인의 이익관계를 위해 종교를 오용하거나 남용하지 말고 세상을 종교적 언어로 볼 수 있는 진실된 믿음을 회복해야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주위의 기독교인들이 종교인과 생활인의 괴리를 극복하고 또 저 위정자들이 종교적 양심에 바탕한 신념을 공적인 영역에서 멋지게 실현시켜 최소한 개독라는 오명은 벗을 수 있게 되기를... 작지만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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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2.0] 서평단 알림
미디어 2.0 : 미디어 플랫폼의 진화
명승은 지음 / 한빛미디어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 서평단 도서 :

방송국에서 전파하는 TV, 라디오의 프로그램이나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종이신문이 미디어로 일컬어지던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방송과 신문이 여전히 주요한 정보통신의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인터넷이 활성화되고 IT기반이 급속도로 확장 발달되면서 포털사이트나 각종 홈페이지, UCC, 블로그 등 미디어의 형태가 다양하게 변모하고 그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양상도 커다란 변화를 보여오고 있다. 언론계 종사자로써 이러한 미디어의 변화를 직접 체험해온 저자가 체계적인 분석과 전망을 정리해 내놓은 책이 <미디어 2.0>이다.

표지에 디자인된 문구처럼 미디어 플랫폼은 거의 혁명에 가까운 모습을 진화되고 있다. 방송이나 신문의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던 수용자 입장에서 언론사 인터넷 홈페이지에 의견을 게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참여자를 거쳐 이제는 개인 스스로가 직접 정보를 만들고 전파하는 생산자의 역할에 이르른 것이다. IT강국을 표방하며 유비쿼터스라는 기치 아래 활발하게 실행되어온 정보통신 정책과 디지털 카메라, 카메라가 내장된 휴대폰, 캠코더, 노트북 등 휴대가 간편한 통신장비는 미디어의 플랫폼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물적 바탕이 되어주었고, 또한 기존 매스 미디어의 천편일률적인 보도에 대한 회의, 공공성을 상실한 편파적인 보도 내용으로 인한 불신, 개성을 중시하는 사고, 개인주의적 성향 등이 복합적으로 표출되면서 바야흐로 개인미디어로 정의되는 포스트 저널리즘, 미디어 2.0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는 기자가 취재하여 편집국에서 선별된 기사가 제한된 시간, 제한된 지면에 실리는 것으로 여론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작성한 포스트가 불특정다수의 공감을 얻으면서 화제가 된 것을 기자가 소스로 이용하는 ‘역현상’이 일어나고 그것이 점점 일반화되면서 공식적 미디어와 비공식적 미디어 간의 정보 순환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전문기자보다 더 전문적인 포스트에 수많은 댓글이 달리면서 자연스럽게 토론의 장이 형성되고, 다양한 시각과 의견이 동시다발적으로 오고 가면서 쌍방향을 넘어선 전방위적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양상을 보면 이런 것이 정말 정보의 민주주의임을 실감하게 된다. 최근 촛불집회에서의 1인 실시간 현장중계와 수많은 사진 및 동영상 촬영, 인터넷 게시판을 통한 현장스케치는 미디어 2.0 세대의 위력적인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물론 무한한 자유를 바탕으로 한 개인의 정보 생산이 갖는 폐해도 만만치 않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는 저작권 침해에 관한 문제, 익명성으로 인한 무자비한 사이버폭력,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박함이나 진정성 상실, 아마추어리즘의 취약성 등등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혁명의 공간이 양산해내는 문제점은 미디어 2.0의 역기능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생산되는 마이크로미디어의 폭발적인 증가는 앞으로의 전개 양상을 예측하기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2.0 시대가 기존의 거대 방송사, 신문사가 독점했던 정보 권력을 분산시킴으로써 진정한 민주주의를 천천히나마 실현해가고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일 것이다. 앞으로 개인미디어들이 이루는 집단 지성이 정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보강함으로써 충분히 자정작용을 할 것이라는 대세 평가 역시 미래의 미디어 환경이 긍정적일 것임을 전망하게 한다.

일상적이고 사적인 소통의 공간에서부터 사회 여론을 형성하는 공적 기능의 블로그까지, IT 기술을 통해 미디어 플랫폼이 변화하는 현장의 중심에서 직접 보고 겪은 그 모든 과정이 저자의 경험과 함께 전달되는 것이 박진감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더불어 적절히 소개되는 각종 IT 지식과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 관련 이론은 현재에 이어 미래까지 연결될 사회 현상에 대해 구조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러한 부분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그래서 일반 독자보다는 대학생을 상대로 하는 강의 참고도서로 매우 유용할 것 같지만, 전문적이면서도 친밀한 저자의 글솜씨 덕분에 정보통신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충분히 공감하며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아니 관심이 없더라도,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와 그 블로그들이 모인 집단 네크워크가 사회적으로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해 한번쯤 이론적인 측면과 연계하여 거시적으로 보는 것도 뜻깊은 학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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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e - 시즌 1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1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글자보다 여백이 많음에 감사한 책. 제작진이 방송분량 5분을 채우기 위해 23시간 55분을 미련없이 버리고 마음껏 느끼며 살 수 있었다던 것처럼, 5장 가량의 책장을 넘기고 난 후 밀려드는 깨달음과 감동은 오래도록 나를 울린다. 책을 통해 떠올릴 수 있는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슬펐던 이야기들.

지식e는 대체로 슬픈 이야기다. '구분'해서 슬프고, '밀어'내서 슬프고, '기억'하기에 슬프고, '돌아'보기에도 슬퍼서 모두가 잘 하지않게 되는 그런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하나씩 꺼내서 조심스레 펼쳐놓는다. 그저.. 펼쳐놓을 따름이다. 그런데 그 여백이 가득한 공간에 정성껏, 힘주어 씌어진 짤막한 글귀들은 사정없이 가슴을 툭툭 쳐댄다. 수많은 자료와 사진들을 거쳐 탄생했을 그 짧은 이야기속에 그들의 23시간 55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것이 문득문득 느껴질 땐, 그것이 하나의 지식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녹아들어간, 그리고 우리의 삶으로 녹아들어야 할 '앎'이라는 진중권의 말에 절감한다. 이미 누군가의 실제 삶이었던 것을 또다른 누군가가 스스로의 삶과 바꾸어 전달해주는, 이 소중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내 삶속으로 품어안지 않을 수 있을까.

커피, 햄버거, 축구공, TV, 비타민같은 흔한 일상의 사물들이 결코 일상의 것만은 아님을, 통계데이터의 정확한 수치와 참고자료를 통해 알려준다. 세계가 매년 마셔대는 4천억잔 커피판매량의 이윤 중 1%는 후진국의 커피재배농가의 몫, 99%는 미국 거대커피회사와 중간거래상의 몫. 햄버거용 소고기 100g 때문에 사라지는 숲은 5평방미터. 가죽 32조각과 1,620회의 바느질로 만들어지는 축구공, 그것을 만들고 파키스탄 아이들이 받는 돈은 일당 300원, 세계적인 축구스타 베컴의 일당은 2,000만원......

이렇게 열거된 데이터의 말미에는 분명 그들이 있는 힘을 다해 쥐어짜냈을 것이 분명한 짤막한 멘트가 힘껏 메시지를 쏘아대고 있다. 눈에 보이는 글귀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얻느냐하는 것은 읽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고 그 메시지를 어떤 방법으로 내 안에 융화시켜 나가느냐 하는 것 역시 읽는 사람마다의 몫이 되겠지. 충분히 마련된 여백의 공간에서 마음껏 느끼고 깨닫고 반성하고 생각하면서 문득, 나도 모르게 한장 한장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책장을 넘기는 내 손을 발견하곤, 이제는 처음처럼 마냥 희기만 한 여백이 아닌 그 공간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것 같아 뭉클한 기분이 된다. 지면의 공간이 점점 사유의 공간으로 바뀌어 수많은 상념과 성찰로 채워져갈 때, 이 350페이지 가량의 작은 책이 품고 있는 힘이란 얼마나 거대하고도 따뜻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실제 방송될 때 삽입되는 배경음악 대신 내 주변을 둘러싼 고요한 적막이 주는 느낌도 참 좋다. 지면의 여백처럼 소리에도 여백이 있는 거라고 해야할까. 사방이 조용한 가운데 책 속에 펼쳐지는 파란한 삶을 보고있자니 그 이질감에 한없이 소름이 돋는다. 방송의 사운드와 영상이 주는 효과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책으로 접할 때의 장점이 글귀 한번 더 보고 사진 두번 세번 더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라는 것 역시 굳이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면의 빈 공간과 소리의 빈 공간이, 시간의 빈 공간과 맞물려 내 삶의 빈 공간으로 들어오는.. 말이 좀 웃기지만 정말 그런 느낌이다.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서, 100여년 전 뉴욕 동물원에서 오랑우탄과 함께 갇혀 '전시'되었다가 32살에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한 콩고 피그미족 오타 벵가에 대한 이야기를 봤다. 자연스럽게 사끼 바트만이 떠올랐다. 그녀를 이용한 이상한 쇼, 백인들의 인디언 강제이주, 열악한 환경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삶의 터전을 강탈당하는 철거민들...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한 인간의 잔인하고도 저열한 습성의 끝은 대체 어디인지 마음이 아득해졌다. 아프리카 원주민을 야만인으로 규정짓는 그 순간 스스로가 야만인이 되는 것임을, 약자들을 무참히 짓밟는 그 순간 스스로의 인간성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임을, 우리가 행하는 모든 비인간적인 짓거리들이 바로 그 자신에게 더 큰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것임을 왜 알지 못하는지...

삶의 소중하고도 분명한 가치들, 그러나 그 개념 자체가 너무나도 변질되어버린 것 같은 세상을 향해 부드러운 칼날을 쥐고야 만 감성채널 제작진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하나하나의 아이템을 준비하는 긴 시간동안 느꼈을 수많은 감정들을 고스란히 담아 이토록 짧고 강렬하게 압축시켜낸 그들의 결과물, 이런 것을 돈 몇 푼에 낼름 받아먹어도 되는 것일까. 어떤 이의 삶을 또 다른 어떤 이의 삶으로써 내 삶에 얻어내는 것이.. 한없이 송구스럽고 한없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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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빠 2008-06-09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e>에 관한 설문조사로 도움을 받고 싶은데요
http://blog.naver.com/image2two 에 오셔서
내용을 확인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