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 -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인터뷰어 김제동의 책 끝에 인터뷰이 김제동이 있다. 다소 심드렁했던 마음에 비로소 물결이 찰랑찰랑. 그 이름 석 자, 어딜 가나 부족함을 채워주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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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 마니아 - 유쾌한 지식여행자, 궁극의 상상력! 지식여행자 9
요네하라 마리 지음, 심정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요네하라 마리 

그녀의 책은 처음이다. 예전에 <공중그네>를 읽다가 관 둔 이후로 일본식 유머(?)가 (공중그네 하나로 대변되는 건 아니지만) 나와 맞지 않는가보다 생각이 들어 '재미있다'는 일본 책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는데, 지난 번 마음산책 이벤트 때 요네하라 마리의 이름이 눈에 많이 띄어서 궁금하던 차에 책 소개글 보고 재밌겠다 싶어서 (아니라면 한 번 더 속은 셈 치자 하고) 주문했다.  

아. 그렇지만 속지 않았다. 속기는 커녕 내내 킥킥대며 웃다가 와와하며 감탄하고 으음하며 얼굴 굳어져가면서, 아주아주 열심히 읽었다. 쉽게 읽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재밌어서 책이 손에서 잘 안 떨어지더라는. 당장이라도 실용화할 수 있을 것 같은 아이디어는 더없이 기발하고, 이건 좀..ㅋ 싶은 황당한 발명들은 실현은 못 할지언정 그 발상만으로도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줬다. 나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여러 개의 다른 시선을 또 얹어주는, 소중한 배움이다. 이렇게 유쾌하고 따뜻한 발명품들을 보고있자니 아무리 비현실적인 것이라도 언젠가는 실현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믿게 된다. 뭐, 된다 안 된다 보장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일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으니까. 

마냥 장난꾸러기같으면서도 너무나 눈이 깊은 그녀라서, 그 소소하고도 거창한 아이디어들이 하나하나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끊임없이 재미있는 것을 찾고, 뭔가 늘 다르게 바라보는 그 방향에는 항상 환경을 보호하고 동물을 사랑하며 주변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고, 반대로 그렇게 그녀가 사랑하는 대상물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썩소를 날려주는 그녀. 더할 수 없이 발랄하고 더할 수 없이 신랄하다.

발랄한 그녀   

개와 고양이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그녀는 이 동물들과 함께 여행을 하거나 비가 와도 편하게 산책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결국 함께 먼 길의 여행을 하는 것은 포기해야 했지만ㅋ 강아지의 등에 배낭처럼 지지대를 메어 그 안에서 넓적한 우산이 펼쳐나오게 한다는 발명은 생각만해도 웃겼다(표지에도 있는 그림). 울집 강쥐넘 저거 메고 비 오는 날 돌아댕기는 모습 상상만해도 아하하하하. 실제로 있을 것 같기도 한데, 한 번 찾아볼까.

그녀는 물건도 잘 잃어버려서 어느 날은 물건마다 센서를 달아보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 전화기, 리모콘, 지갑, 열쇠 등등에 모조리 센서를 부착해 컴퓨터 모니터만 켜면 위치를 알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아 정말 편한 것 같은데, 결정적인 부작용을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도둑이라도 들면 필요한 물건 여기있으니 가져가시오 친절알림서비스가 된다는 거. 모니터를 보며 낄낄대고 좋아 죽는 도둑님 뒤에서 퍼질러 자는 마리 여사가 귀엽다.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이나 사이클을 탈 바에야, 버스나 택시 안을 피트니스 센터라 생각하고 승객들이 단체로 페달을 밟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도 기발하다. 연료 아껴, 따로 운동할 시간 안 내도 되니까 시간 절약돼 돈 절약돼. 나도 걸어서 출퇴근하는데(30~40분 거리) 솔직히 버스 기다리고 신호 걸리고 차 막히고 하면 걷는 거랑 별 차이가 없다. 자전거라면 버스보다 당연히 훨씬 빠르고. 물론 거리가 멀어질수록 효용이 떨어지므로 적당한 범위 내에서나 가능하겠지만 실제로 생기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 그림도 웃긴데, 승객 중 한 사람이 하는 말. "다 같이 페달을 밟게 되면서 치한이 없어져서 좋아." ㅋㅋㅋㅋㅋ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열조 백조가 될 지도 모를 아이디어다.

비슷한 방식으로, 고층아파트에서 펌프로 옥상 저수탱크까지 물을 길어올려 각 층에 급수하면서 쓸데없이 전력을 낭비하는 대신, 옥상에 놀이터를 만들어 시소나 그네같은 놀이기구를 펌프와 연동시키는 방법도 제안한다. 아파트 1층이나 지하에도 피트니스 센터를 만들고 모든 기구를 발전기에 연동해서 전력을 생산한다는 것. 이것 정말 실용화를 진지하게 고민해 볼만하다.  

종이 재활용에 관한 내용도 의미심장하다. 종이를 재활용한다는 것이 폐지를 질척하게 녹여뭉개서 다시 다른 제지류로 재생산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공장을 가동시키며 발생하는 또 다른 오염과 운송, 생산에 들어가는 금전적 부담을 생각해봤을 때 과연 환경보호에 기여하기나 하는지 의문스럽다는 것. 그래서 그녀가 착안한 것은 애초의 원형을 보존하면서도 2차, 3차로 사용이 가능하게끔 제작하면 좋겠다는 것이다. 잡지를 다 보고 나면 종이가방으로 만들어 쓸 수 있게 한다거나 편지봉투를 만들거나 기타 등등으로. 모든 종이를 그렇게 재사용하기엔 쉽지 않겠지만 역시 발상 자체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환경보호라는 미명아래 환경을 더 해롭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동 위험방지 시스템 역시 유용하다. 각종 사건사고을 막기 위해 자동 제어장치를 만드는 것인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안전벨트를 매야 놀이기구가 작동을 한다던가, 열차에 일정한 속도를 넘어가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하는 거다. 이렇게 실현가능성이 있는 것을 넘어서서, 온실가스가 허용 한도를 넘어서면 국내 온실가스 방출 설비가 일제히 가동을 정지하는 시스템이나 예산 범위를 넘자마자 관료들의 급여 지불이 중단되는 시스템도 개발되기를 바라는 그녀. 저도 동의해요.ㅋ 이어지는 그림 역시 재미있다. 식사를 하는 두 여자, 한 명이 스테이크를 포크에 찍어 입안에 넣으려는데 안 들어간다. "어머, 웬일이야. 아무리해도 입이 안 열리네. 더, 더, 더 먹고 싶은데!" "오늘 아침에 비만 방지 시스템을 설치했잖아요. 벌써 잊었어요?"

신랄한 그녀  

이렇게 따뜻한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며 일상의 소소한 재미와 실생활에 쓸만한 개선책을 찾는 와중에, 툭툭 튀어나오는 날 선 눈빛이 매섭다. 비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콕콕 집어내고 이 세상을 불행으로 몰고가는 것들을 자근자근 밟아버리기도 한다. 미국의 오만을 가차없이 비난하며 '궁극의 팍스 아메리카나'를 자조적으로 그리고, 부시에 무기력하게 휩쓸리는 일본 정부에 대한 비판도 수시로 날린다. 그러나 그 분노에 찬 시선 역시 결국에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된다. 비아냥대며 흘리는 냉소 뒤에는 갈수록 팍팍해지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자꾸만 파괴되는 것이 많아지는 세상에 대한 슬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발명1 뭐든지 하이브리드, p.16

까마귀를 메추라기와 교배해보면 어떨까? 알과 고기가 맛있으니 순식간에 다 잡아먹혀서 보호새로 지정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조류의 영장이라 일컬어지는 까마귀의 똑똑한 머리를 활용하기 위해 앵무새와 교배해서 인간과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히 하는 방법도 있다. 언제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죽일지 모르는 세상이다. 앞으로 복지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 나면 보육새, 간호새라 해서 귀하게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위에 자동 위험방지 시스템에 관한 글도 있지만, 책 전체 면면에서 범죄행위에 대한 분개와 예방책에 대한 절실함이 묻어난다. 아이들이 등하교할 때 일대일로 개와 함께 동행하도록 한다거나, 피해자를 실물과 같은 인형으로 만들어 범인 취조실 구석에 두고 마치 귀신이 나타난 것처럼(수사관들은 미리 짜고 못 본 척 연기한다) 해서 자백하게 만들자는 것이 그녀의 생각. 인형에는 실제 피해자와 비슷한 목소리까지 입력시켜 짤막한 말도 하게 한다. 좀 오싹하지만 효과는 짱일 듯.

발명13 '테러와의 전쟁' 게임, p.75  
 
테러리스트에게 정확히 조준하더라도 지나가던 민간인이나 개가 거의 매번 살상당한다. ... 사용자가 발사한 미사일 때문에 사상자의 유족이나 친구들이 유해를 둘러싸고 탄식하며 슬퍼한다. 그러고 나서 좀 지나면 슬퍼하던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로 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용자가 테러리스트 소탕에 몰두하면 할수록 화면상의 테러리스트 수는 늘어난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화면 구석에 오기를 기다렸다 미사일을 명중시키면 민간인을 말려들게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 기회를 기다리고 또 기다려보았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그동안 전혀 공격하지 않고 있었더니 웬걸, 테러리스트의 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결국에는 없어져버렸다.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게임이다. 미친듯이 테러리스트 '박멸'에 집중하다가 그 늘어나는 수에 도저히 감당이 안 돼 손을 놓았을 때, 자연히 사라지는 테러리스트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이 들까?

발명75, 비아그라도 무색케 할 무적의 성욕 증진법, p.377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발생했던 미군의 이라크인 수감자 성학대 사건을 두고) 궁극적인 성욕 증진법은 전장에 몸을 두는 것이다. ... 적일 가능성이 있는 이상 인정사정없이 죽이지 않으면 자기가 당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죽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장은 항상 유혈과 시체로 차고 넘친다.  

이렇게 많은 죽음과 시체를 마주한 인간에게는 어떻게든 그것에 저항하려는 강렬한 본능이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마련이다. 적을 섬멸함으로써 스스로가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분신을 생산하여 자기의 유전자를 영속시키려는 욕구가 맹렬한 기세로 싹트는 것이다. ...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온갖 전쟁에서, 병사들은 생존본능에서 비롯한 강렬한 성욕 억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 따라서 전장에는 성욕이 왕성한 젊은이가 아니라 성욕 감퇴로 괴로워하는 노인들이 가야 마땅할 것이다. 헌법의 평화조약을 걷어치우고 전쟁터에 일본 병사를 보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고이즈미 총리와 국회의원 선생들을 제일 먼저 보냈으면 좋겠다.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을 정말 다방면으로 망가뜨리는구나, 새삼 소름이 돋는다. 전쟁을 결정하는 자들은 그저 책상머리에서 싸인이나 쓱 휘갈길 뿐, 정작 전쟁터로 내몰려 직접 총을 들어야하는 청년들의 삶에 대해 한 번이라도 '내가 그들이라면'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도 진심으로는 아무 생각이 없겠지. 본능과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는 곳을, 외부의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역겨워하기는 쉬운 일일 거다. 그렇더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까지 사람이 변할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 겪어 보지 않았으니 무조건 매도하기가 저어되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인간이란 상상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하기도 하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유약하기도 하지 않나. 정작 당사자들이 그 곳에서 빠져나와 '내가 있었던 곳' '내가 했던 짓'을 떠올리며 괴로워하게 될 시간들은 전장에서의 위험보다도 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일 것이다. 현실이 아닌 고작 테러와의 전쟁 게임을 허무하게 끝내고 났을 때 밀려올 그 자괴감처럼.

마리 여사가 고안해낸 100개의 발명은 무엇보다 재미있어서 좋았고, 단지 재미가 전부가 아니라서 더 좋았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적당한 선에서 유쾌하고도 진지하게 풀어내는 그녀의 글과, "내 아이디어 정말 기발하지 않아?"라고 외치기라도 하듯 쓱쓱 거침없이 그려낸 그림은 더할 수 없이 발랄하고 신랄한 즐거움을 선사해줬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바탕에 깔려있는 세상을 향한 날카롭고도 따뜻한 시선, 그 덕분에 마음좋은 웃음을 웃을 수 있었던 것 역시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억지스럽게 끌려나오는 웃음이 아니라 그냥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쿡쿡 튀어나오는 웃음. 기분이 무척 좋다. 유쾌한 그녀를 만나, 나도 한껏 유쾌해진, 행복한 시간이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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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6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6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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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제는 예전 어느 때처럼 마냥 열정으로만 부를 수 없는 이름 노무현. 그냥... 그런 그의 이야기다. 이미 잘 알려진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이야기, 사법고시 합격 이후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인권변호사로 새롭게 태어났던 이야기, 정치를 시작하면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기까지의 여정, 시대의 바람과 국민의 바람을 타고 대통령이 된 후 재임 시절의 이야기, 그리고... 퇴임 이후의 슬픈 악몽같은 이야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의 노무현은 분명 우리가 바랐던 모습이 아닌 적이 많았다. 얽히고 설킨 국정, 자신이 선택하면 정말 '결정'이 되고 '실현'이 되는 막중한 권한과 책임 속에서, 그는 섣불리 그의 뜻을 온전히 펼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는 지지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족했던 정치인 노무현이 아니라, 그를 지지하지 않고 심지어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까지도 똑같은 국민으로 품어내야 할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그 적이라는 사람들이 어디 보통 사람들이었나.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모든 것이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원망스럽기도 하고, 마지막이 비겁했다고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한 번쯤 마음을 내어 읽어 본다면, 변명같긴 하더라도 조금쯤은 그를 이해할 수도 있을... 작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그도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선택에 모두 만족했던 것은 아니었고, 가진 거라곤 국민들 빽밖에 없던 사람이 그런 국민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하면서까지 외롭게 갈 수 밖에 없었던 그 길에, 그 정도면 애쓴 거라고, 그것으로 됐다고, 뒤늦게나마 작은 불 하나 밝혀줄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소망을 가져본다.

가장 대통령다웠으면서도 가장 대통령답지 않아서 좋았던 노무현. 기대만큼 잘 하지도 않았고 때론 기대와 어긋나는 모습도 보였지만...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 사이에서 엄청났을 번뇌와 갈등을 전혀 모른 척 할 수가 없어서, 그래도 꾸역꾸역 마음 속에 담지 않을 수 없었던 노무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고, 권력자와는 어울리지 않는 꿈을 가졌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공부를 끝까지 게을리하지 않았던 책벌레 노무현. 그와 같은 사람을, 정치인을, 대통령을, 언제 또 볼 수 있을 지 몰라서 더 그립고 아픈 노무현. 그러나 내 평생 정말 사람같은 사람을 대통령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노무현... 그런 노무현이 나의 노무현이다.

그는, 자기가 잘 나서 대통령이 된 게 아니라 바람을 타고 대통령이 된 거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문제는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잘못이라며 자기를 버려야한다고 했다. 잘 된 건 남 탓이었고 잘 못된 건 내 탓인 사람이었다. 꿈 많은 청년은 오로지 꿈만 보고 달려오느라 주변을 정리하는 기술같은 것도 몰랐다.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임기 내내 싸웠던 언론들이 마지막으로 성대하게 차려준 광기의 굿판에서, 선동질에 여전히 잘도 넘어가는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그는 갔다. 그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눈을 뜨고 새삼 눈물 흘리는 바보 국민들은 그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부질없는 손짓을 한다. 바보 노무현은 바보 국민들을 만나 행복했다. 그리고 불행했다. 이제, 다시 행복해질 차례일까. 

이 자서전 아닌 자서전이, 문재인의 말처럼 따뜻하고 정겨운 작별인사가 될 수 있기까지는 해야할 일이 참 많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까이서 그를 보고 느꼈다면, 이제 그를 좀 멀리 두고 그가 있는 곳까지 또박또박 걸어가야 할 거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폼나는 정치인이 있었다. 돼지저금통의 기적같은 힘으로 당선되어 이렇게 진심으로 고군분투했던 대통령이 있었다. 역사가 그렇게 노무현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그가 꿈꿨던 미래를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쉽지 않은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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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 A Prophe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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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프랑스 영화에 빠져서 시간이 날 때마다 비디오를 빌려봤던 적이 있었다. 대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였는데, 비디오실 예약은 하루 1회, 1명당 2시간이 최대치였다. 물론 룸메이트들의 이름을 빌려서 예약을 할 수도 있었고, 그래서 주말같은 땐 4시간 6시간씩 잡아서 밤새 영화를 보기도 했다.  

프랑스 영화가 좋은 이유는 간단했다. 요란하지 않고, 뻔하지 않고, 가식적이지 않다는 거. 소위 예술영화라고 불리는 기준은 솔직히 잘 모르겠고.. 그냥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인 거 같다. 그들이 보여주는 현실은 헐리우드 영화의 그것과 다르고, 그들이 보여주는 환상도 헐리우드 영화의 그것과 다르다. 그들이 보여주는 현실이 더 현실감있고 그들이 보여주는 환상도 더 현실감있다. 보기 좋은 것들을 골라 기분 좋게 부풀려서 예쁘게 포장까지 하는 헐리우드와 달리, 보기 불편한 것들도 끄집어내고 있는 그대로를 사실적으로 혹은 더 깊고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지루하기도 하고 별로 멋있지도 않다. 우리 현실처럼... 가슴에 더 크게 와닿고, 더 오래 남는 이유다.

[예언자]도 그렇다. 글도 못 깨친 채 그저 이런저런 잡범으로 청소년기를 보낸 19살 청년(말리크)이 교도소에 들어와 비로소 공부를 시작하고 잔머리 굴려가며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은 전혀 '재미'있지 않다. 면도날을 입안에 숨겼다가 순식간에 꺼내서 상대방의 목을 긋는 연습을 그렇게 해놓고도 실제로는 제 겁에 제가 질려 겨우겨우 성공하고, 당장의 목숨의 위협 앞에서는 더할 수 없이 비굴하며, 대담한 계획을 세우면서도 눈빛은 흔들리고 몸짓도 초조하다. 혼자있을 때의 표정조차 소심하고 불안해서 쟤 저러다 들켜서 맞아 죽는 거 아닌가 싶다. 아 좀 한 번쯤은 멋지게 씩 웃기라도 해보라고 속으로 외치다가, 나중에 결국 계획이 완벽하게 성공했을 때조차, 날카로운 표정 속에 어딘지 불안한 그의 얼굴을 보고 절감하고 만다. 저런 게 진짜라고.     

 

식스팩 복근도 거침없는 액션도 없다. 나를 위협하는 교도소 내의 권력자(세자르)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생존본능, 생애 최초로 죽인 남자의 환영을 항상 등 뒤에 두고 있을만큼의 죄책감, 때로는 적과의 동침도 선택할 줄 아는 담력, 적절하게 계산된 용인술로 치고 빠지며 결국 나를 위협했던 권력자에게 복수하고야 마는 하나의 '현실'이 있을 뿐. 구석으로 몰려 주저앉아 있다가도 번뜩 고개를 들고 일어서서 한 걸음씩 걷고 힘을 내어 뛴다. 네가 가는 길이 바로 너의 길이라는 메시아적 환상까지 눈앞에 펼쳐진다. 그가 두 번째, 세 번째 살인을 단번에 해치우던 순간 세상이 정지한 듯 희열에 가득한 표정은 정말 압권이었는데, 그 후에 귀가 들리지 않는다며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라고 소리치는 모습에선 좀 소름이 돋았다. 멋지게 사람을 죽이고 농담 한 마디씩 시크하게 날려대는 영화들에선 느끼지 못한 실감이었다. 일부러 외출시간을 어겨 독방에 갇힘으로써 스스로 신변을 보호하고 있는 동안에 그가 이간질시킨 두 조직이 교도소 내에서 혈투를 벌이던 장면은, 단연 이 영화의 백미가 아닌가 싶다. [대부]와 같은 반열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는 평이 나올만하다. 

꽤 긴 러닝타임이었지만, 무겁고 어두운 화면속에서 내내 깊게 흔들리는 눈빛을 좇다보니 어느 새 그 눈빛에 동화되어 위태위태한 성공담이 마치 나의 이야기인양 몰입하고 있었다. 말리크가 양쪽 주머니에 총을 찔러넣고 길거리를 툭툭 걸어갈 땐 내 가슴이 턱턱 내려앉았고 독방에 갇힐 때 간수들이 잠그는 이중철문은 어찌나 든든하던지 내가 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영화를 보고난 후 여기저기 리뷰를 읽어보니 악평도 있고 또 나름 '해석'해서 볼 부분이 있는 거 같은데, 어쨌든 재미있게 봤고 범죄영화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오랜만이라 나로썬 매우 흡족한 시간이었다. 옛날옛날부터 프랑스어를 배우려고 벼르고만-_- 있는데, 이제 좀 달려들어볼까 생각도.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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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조끼 2010-04-06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두 볼까... 우울할거같아서 안볼라했는데

건조기후 2010-04-06 23:57   좋아요 0 | URL
우울한 내용은 아니야. 차마 똑바로 못보겠는 끔찍한 몇 장면이 있었지만 주인공에 심하게 몰입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치유하는 글쓰기]의 서평을 보내주세요.
치유하는 글쓰기 - 발설하라, 꿈틀대는 내면을, 가감 없이
박미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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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08년 끄트머리에서 읽은 [타임패러독스]의 타이밍이 절묘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2009년의 벽두에서 만난 이 책 역시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타이밍이 예술이다. 이런 것을 융의 동시성의 원리라고 한다는데, "'이제 자기 성찰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때쯤 우연히 마음성찰이나 심리학 관련 도서를 선물받는 경우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는 내가 인생을 제대로 찾아갈 수 있도록 누군가가 안내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 된다. 당신이 가고 있는 그 길이 맞다, 아니면 다른 길로 가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p.127)" 내가 내 상황에 대한 고려없이 대뜸 서평단에 지원한 것, 처음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는 여러 가지 치유글쓰기 방편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12주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치유글쓰기 모임에서 첫 주제로 주어지는 것이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라고 한다. 내면의 상처가 된 그 분노의 근원을 찾는 치유의 출발점이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의 죽도록 미운 당신은 부모나 형제자매등 가족일 경우가 가장 많고 나 자신, 어떤 특정 상황 등등까지 다양하다.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대상이 가장 멀고 증오하는 대상이 되는, 알 수 없는 삶의 모순을 실감한다.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쓰는 편지를 시작으로 다양한 글쓰기가 행해진다. `그 때, 그 장소, 그 사람`, `내 생에 최초의 기억`과 같은 여러 가지 주제를 가지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글을 쓰기도 하고, 분노의 대상을 떠올리며 격정에 휩싸여 내 속의 말을 가감없이 터뜨리는 [미친년 글쓰기]나 내가 나에게 묻고 대답하는 [셀프인터뷰]를 통해 스스로 상처를 어루만지기도 한다. 내가 버스운전자가 되어 어떤 사람들을 태우고 어디로 갈 것인지 상상해보는 `버스명상`, 내가 마음을 쉴 수 있는 가상의 공간으로 `내 인생의 집 한 채`를 지어보는 명상시간도 갖는다. 그리고 프로그램 마지막 날에는 `지금 여기, 나의 과제와 각오`라는 글을 쓰고 참가자들이 모두에게 편지를 한 통씩 쓰는 것으로 끝난다. 그 편지는 두고두고 마음의 위안과 힘이 된다고 한다.

글쓰기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이렇게 몇 주간에 걸친 체계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글을 써보는 일은 `정신적 지병`을 갖고 있든 아니든 한번쯤 경험해볼 만하다. 책에 소개된 체험자들의 생생한 글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지만, 고통스럽더라도 상처를 드러내어 치유하고 나면 한없이 짓눌려있던 감정들이 풀어지면서 서서히 정화되어 내면이 고요해지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제3자의 시각으로 나를 바라보며 내가 너무 나만의 늪에 빠져있었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상처를 준 당사자를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도 한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며 그들을 위로하는 동시에 나를 위로하고, 그들의 삶에 내 모습을 투사함으로써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내어놓으며 스스로 감정의 중심을 잡아가고 아픈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혼자 글쓰기는 가뜩이나 기억이란 것이 불완전한 터에 부정적인 기억을 더욱 부정적으로만 각인시킬 우려가 있고, 홀로 어두운 감정의 굴 속에 처박힌 꼴이 되기 쉽다. 나 역시 경험해 본 바다. 집단 글쓰기를 통해 타인의 시선을 접함으로써 내가 `내 기억에 거리두기`를 해보고, 여러 사람들의 진심어린 위로를 받고 또 내가 진심으로 위로를 하며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스스로 과감히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이미 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마음이 아픈 사람은 어떻게든 글쓰기를 하게 되어 있다. 단 한 줄의 낙서라도 한다. 상처를 극복하려는 사람은 무슨 무슨 코칭프로그램이 있는 지 몰라도 스스로 방법을 찾고 터득하기 마련인데, 이가 아프면 치과에 가고 관절이 아프면 정형외과에 가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면 마음을 치료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 제대로 치유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종교가 있어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관련 서적이 충분하니 혼자 이겨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자기 마음 하나 어쩌지 못해서 남한테 의지하는 나약함을 용납할 수 없더라도, 어차피 짐을 지고 갈 바에야 짐을 진 사람들과 함께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가 힘든 걸 남이 알고 남이 힘든 걸 내가 아는 것 자체로도 기운이 날 것이며, 내 짐이 누군가에게는 가벼울 수 있고 누군가의 짐이 또 내게 가벼울 수 있으므로 그것 또한 위안이 될 수 있다. 공감의 힘이란 그렇게 크다. 내 상처는 결국 나의 몫이긴 하지만, 내가 아닌 남이 더 치료를 잘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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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치유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들의 생생한 경험담만으로도 간접치유 효과가 있다. 책에 소개된 프로그램을 따라 다양한 글쓰기를 직접 해보면 내면의 깊은 곳까지 변화의 울림을 느낄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 사람풍경/김형경

책 말미에 단계별로 저자가 추천하는 도서도 따로 소개되어 있다.  

- 아티스트 웨이/줄리아 카메론
-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나탈리 골드버그
- 치유의 글쓰기/셰퍼드 코미나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가슴 속에 응어리를 안고 있거나 인간관계에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한 번.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우리 안에는 내면아이가 한 명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있던 자리마다 딱 거기서 성장을 멈춘 아이들이 있다. 아버지가 구타하기 시작한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아이, 어머니가 집을 나간 그 날에 머물러 있는 아이, 길에서 부모를 잃어버려 헤매던 그 때 성장을 멈춘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을 듯이 싸우는 장면을 목격한 아이, 시부모 때문에 고통받던 어머니가 어느 날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우는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 다양한 정신연령을 가진 크고 작은 아이들이 우리 내면에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내면은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을 잃어버린 아이들로 꽉 찬 고아원이다.(p.14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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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1-0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융의 동시성의 원리와 비슷한 말 중에 도서관의 천사 라는 말도 생각나요.
도서관에 가면 수많은 서가 속에서 우연히 천사가 도와주는 것처럼 딱 필요한 책 앞에 서게 되는 경우가 있는 거. 한 때 참 좋아라 했어요, 이 말을.

건조기후 2009-01-04 16:53   좋아요 0 | URL
도서관의 천사라니. 참 예쁜 말도 다 있군요.. 그런 거 보면 책이랑 사람도 운명같은 게 있는 거 같아요.ㅎ 미약하든 지대하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