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쉬는 날 낮 시간에 햇빛 가득한 방에서 읽는 걸 좋아해요. 예전에는 버스나 기차, 카페같은 곳에서도 잘 읽었는데 이제는 차에서는 좀 멀미가 나서 못 읽겠고 그냥 집이 편하고 좋더라고요. 방바닥에 널부러져서 엎드렸다가 모로 누웠다가 바로 누웠다가 앉았다가 또 엎드려 읽었다가 합니다. 그러다 졸기도 하고 잠깐 책 덮고 자기도 하고 그래요. 책 펴놓고 커피도 마시고 군것질도 하고 밥때 되면 맛있는 거 만들어서 먹으며 읽기도 하고. 그렇게 하루종일 책이랑 뒹굴뒹굴. 그럴 때 좀 행복합니다.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저는 아직은 종이책이 좋습니다. 전자책은 한 두 번 보다가 말았어요. 취향에 안 맞더라고요. 기계를 손에 들고 액정화면 터치하며 읽는 것보다 종이를 만지는 촉감이 훨씬 좋아요. 책을 읽을 때는 페이지만 따로 적어두거나 귀퉁이를 접습니다. 단락이 통째로 마음에 들면 폰으로 해당 페이지를 찍어 놓고, 책을 다 읽은 후에 메모해둔 페이지들을 다시 펼쳐 기록하고 싶은 문장을 폰에 저장합니다.

 

 

Q3. 지금 침대 머리 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저는 침대생활을 하지 않아서 침대 머리 맡은 없고 그냥 머리 맡만 있고요 ㅎ 

 

손이 닿기 쉬운 위치의 책장 한 칸에 이런저런 책을 둡니다. 자주 들춰보는 책이랑 읽고 있는 책이랑 읽어야 할 책 등등. <명리>는 한 번 꼼꼼하게 정독을 하고 두 번을 더 정독했는데 헷갈리기도 하고 까먹기도 해서 수시로 펼쳐 봐요. 이렇게 보다가 나중에 시간이 나면 강헌 선생님이 기본적으로 읽어보라고 하신 자평진전, 궁통보감, 적천수같은 책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과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읽으려고 따로 빼놓은 책입니다. 종종 읽으려고 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을 때가 있어서. ;

 

또 함께 놓여있는 책은 <한국사 인물 열전> 시리즈에요. 사료와 연구논문을 바탕으로 역사적 인물의 성장과정, 활동과 업적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한 책입니다. 참고용으로 쓸 데가 있어서 샀는데 지금은 그냥 사극같은 거 보면서 저 사람 궁금하다 싶을 때 찾아 보고 그럽니다. ㅎ

 

어떤 부분은 확실하지도 않은 인물의 성격을 심리학 이론까지 가져와 추측하고 단정지어서 좀 거북하기도 하지만, 암기 위주로 지루하게 배웠던 그 역사가 결국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느낌이 좋습니다. 책 속의 글자로만 존재했던 사건과 인물들이 피부로 실감나게 와닿는 기분... 심심할 때 한 분 한 분 골라 읽어요. 재미있습니다.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보통 개인 서가에서 그렇듯 카테고리별로 갈래를 나눠 꽂아 둡니다. 문학/비문학을 나누고 문학같은 경우는 국내/국외로만 나눈 후 작가별로 정리하고, 비문학은 국내외 구분없이 대충 분야별로 두네요. 책욕심이 있어서 어지간하면 갖고 있으려는 편이긴 한데 장르소설이나 경제분야 책들은 되팔기도 합니다. 책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지만 간소하게...는 절대로 못 할 거예요. ㅎㅎㅎ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어릴 때 제일 좋아했던 건 역시 아르센 뤼팽과 셜록 홈즈였죠. 중학교 때 책상 위에다 아르센 뤼팽 이름을 화이트로 완전 공들여 써놨는데 담임선생님이 그거 보시더니 니 자신을 더 사랑하라고 ㅋㅋㅋㅋㅋ 그렇게 뤼팽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덕에 셜록 홈즈가 더 멋있습니다. ㅎㅎ

 

그리고, 순정만화의 영원한 고전 <캔디캔디>... 특이하게(?) 스테아를 좋아했습니다.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음 놀랄 만한 책...은 없네요. 아, 예전에 이런 책이 제 방에 있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 책이었을텐데 남들이 놀라기도 전에 저 자신부터 보자마자 화들짝! 놀랐죠. 와, 진짜진짜 너무너무 놀랐습니다. ㅡ,ㅡ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조정래 선생님을 꼭 한 번 뵙고 싶어요. 저 대하소설 집필을 위해 중국 동남아 일본으로 참 많이 다니시면서 수집한 자료도 정말 어마어마할텐데.. 그 중에는 소설에 담지 못한 이야기도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쓰고 싶었는데 차마 쓰지 못했거나 흐름상 제외했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인지 그런 후일담같은 것도 궁금하고 자료를 찾고 탐방하시면서 겪으셨던 경험담도 듣고 싶고 그러네요. 오래 전 일이지만 생생하게 말씀해주실 것 같아요.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읽을 수 있을까? 늘 생각합니다. 모든 진실이 밝혀진 이후에는 읽을 수 있을까, 그 때는 더 못 읽게 될까, 늘 읽어야겠다 생각하지만 손으로 잡기도 힘들고 들춰보기도 힘들고 그냥 바라보는 것도 힘든 책들입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펼치면 첫 번째로 건우 어머니 이야기가 나와요. 읽는데, 겨우 한 페이지 넘겼는데, 우리 건우 내 아들, 하시는 순간 눈물이 폭발했습니다. 말 그대로 폭발이요. 어떤 심정일지 가늠도 안 되는데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져서 그 뒤로 도저히 못 넘어가겠더라고요. 멈췄어요. 저의 세월호는 우리 건우 내 아들 이 한 마디 앞에 멈춰있습니다.

 

지난 2년이 얼마나 말도 안 되게 억울하고 서럽고 비참하고 피눈물 나는 2년이었는지를 지켜봤기에 시간이 흘렀다고 잊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아요. 잊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잊으라고 말하기 위해 잊지 못할 겁니다. 아무도 잊지 못할 거예요.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해질 뿐입니다. 전국민이 지켜봤던 그 장면. 배가 서서히 가라앉던 그 광경... 충분히 구할 수 있었던 생명들 앞에서 그토록 무용하게 흘려보낸 시간의 진상이 완전히 밝혀질 날에, 저의 세월호는 멈췄던 자리에서 다시 나갈 수 있을까요.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자기결정>이요. 엄청 얇아서 금방 읽을 줄 알았는데 번역된 문장이 눈에 잘 안 들어와서 덮었다가 다시 못 읽고 있네요. 무슨 말을 하는 지도 알겠고 공감도 되는데 문장이 서걱서걱하니까 쭉쭉 이어지는 맛이 없어서 읽기 싫어지더라고요.

 

사실 이런 책은 내용도 어느 정도 예상이 돼서 기대감도 크지 않고, 그래서 평소에는 이런 류의 책을 잘 읽지도 않는데 어쩌다 마음이 동해 주문을 했건만 역시 잘 안 맞았나 봅니다.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자기결정을 지나치게 하고 살아서 역효과가 난 인생이라 굳이 읽을 필요도 없었는데.. 괜히 읽어서 기분만 안 좋아졌어요. ;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아무도 없는 섬에 혼자 있으면 무서워서 책도 눈에 잘 안 들어올 거 같네요. ㅋ 어렸을 때 좋아했던 저 <캔디캔디> 정도?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울고 웃으면서 푸른 들을 달려보고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도 하면서 잘 살 수 있지 있을까요?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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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캔디, 캔디
    from Oasis 2016-04-27 16:20 
    책의 날 문답 페이퍼 쓰다가... 그리움에 사무쳐ㅎㅎ 결국 주문해버렸다. 올컬러 애장판도 있었지만 컬러감에 대한 의구심때문에 그냥 흑백으로.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지 ㅜ 하ㅜㅜㅜㅜ 주인공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름이 가물거렸던 조연인물들도 꼭 안아주고 싶을만큼 반가웠다. 첫 장에 포니의 집과 통통하고 귀여운 할머니, 마르고 길쭉하게 생기신 수녀님이 나오자마자 맞다, 캔디가 자랐던 고아원 이름이 포니의 집이었고 이 두 분이 포니 선생님이랑 레인 선생
 
 
2016-04-22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건조기후 2016-04-23 00:01   좋아요 1 | URL
안 그래도 놀라시는 분 계실까봐 작은크기로 올렸는데.. 죄송하네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6-04-23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조기후님 이 페이퍼 넘 좋은대요.
세 번 놀랐어요.

첫번째는 <캔디캔디>, 저도 그 책을 읽으며 넘 행복했거든요.
두번째는 스테아... 진짜 특이하세요^^ 저는 나쁜 남자 테리우스요.
세번째는 아시다시피.... 우아.. 박대통령. 저런 책이 있군요. ㅎㅎㅎ

건조기후 2016-04-23 09:52   좋아요 0 | URL
누가 뭐래도 테리우스가 짱이긴 짱이죠 ㅎㅎㅎ 근데 나중에 보면 스테아가 부당한 전쟁을 비판하면서 자기만 편하게 있을 수는 없다고 공군에 지원했다가 결국 죽잖아요. 맨날 엉뚱하고 장난스럽고 이상한 발명이나 하고 그랬던 사람이 결정적일 때 자기 목숨을 걸고 그런 선택을 하는 게 멋있었어요. 두 눈이 클로즈업되는데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눈빛이 어찌나 진지한지 그 때 반했던 거 같아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6-04-24 20:43   좋아요 0 | URL
스테아 이야기.... 전 몰랐어요.
사람이 괜찮네요. 철학이 있네요.

저도 만화 구입할까봐요. 그 눈빛 보구싶어요~~~

저, 내년에 이 이벤트 하면,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으로 제인에어와 캔디캔디를 함께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ㅎㅎㅎ 사랑이 샘솟습니다.

건조기후 2016-04-25 01:19   좋아요 0 | URL
저는 저런 류의 사람들에게 잘 반하는 것 같아요 ㅎ 본인이 생각하는 가치와 어긋난 일이 벌어졌을 때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더구나 전쟁처럼 목숨을 담보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는.
지금 생각해도.. 어린 눔이 참 멋있었어요 ㅎㅎㅎ

다락방 2016-04-27 16:26   좋아요 0 | URL
저도 캔디캔디..를 봐야 하는걸까요...

건조기후 2016-04-27 16:4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재밌어요 다락방님. 꼭 추억팔이가 아니라도 재밌습니다. ^^
 

<목련꽃 브라자>라는 시를 다른 곳에서 접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소에 시를 거의 읽지 않아서 그 시도 처음 봤고 시인의 이름도 처음이었지만(자유경제원이 주최했다가 똥 된 이승만 찬양시 공모전 심사위원과 종친이네 싶어서 역시 비호감은 유유상종인가 ;; 이런 생각은 솔직히 잠깐 했..;) 이렇게 심한 비난을 받을 정도로 수준 이하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소녀에서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 2차 성징이 시에 담지 못할 소재는 당연히 아니니까. 이 시는 변해가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느끼는 뭔가 낯설고 신기하고 대견한 아버지의 기분을 표현한 거라고 하지만 어떤 형태의 아름다움이든 그 자체로 찬가의 대상이 되어온 것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다.

 

물론 쓰레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는 된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고 기다리는 그 짧은 시간동안 시에 함축된 의미를 생각하며 문학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시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무식쟁이인 게 아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박힌 시를 별 생각없이 후루룩 읽어 내리다보면 앞가슴이나 브라자같은 단어들이 눈에 띄기 마련이고,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추행 성폭행 사건들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고, 지하철의 음습한 공기마저 피부로 느껴지면 즉각적으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그 분노의 감정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딸을 둔 부모나 여성들의 입장에서는 특히. 이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소아성애자다 관음증환자다 별별 이야기들이 오가지 않았을까.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불쾌함을 주는 시를 썼다고 해서 그것이 시인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어야 할 의무같은 건 시인에게 없으니까. 앞가슴, 브라자같은 단어를 시어로 끌어다 쓸 자유도 얼마든지 있다. 오로지 그런 단어를 썼다는 이유로 시가 쓰레기로 전락하는 것도 아니고, 유명작가가 그런 단어를 쓰면 괜찮고 무명시인은 쓰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알고 보니 이름있는 작가였다고 해서 갑자기 졸작을 명작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예술을 명성으로만 바라보는 그 자신이 쓰레기지 작품이 쓰레기였다가 훌륭해지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까, 무엇에 관해서든 그렇지만, 특히 문학이나 그림같은 예술작품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시어 한 두 개, 단편적인 성적 묘사만을 가지고 편파적인 기분에 휩싸여 작품 전체를 재단해버리는 어리석음을 늘 경계해야한다. 아니면 본인의 감상에 대해 다른 누구라도 설득을 할 정도의 내용을 가지고서 평가하거나.

 

분노하는 대중도 선정적인 시어를 쓴 시인도 아무런 잘못을 한 게 없다. 잘못이라면 그 시를 그 곳에 걸어둔 당사자이지 뭐 달리 책임을 물을 대상이 없다고 본다. 간단한 것이다. 나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충분히 예상되는 시를 (그다지 밝은 이미지도 아닌) 지하철에다 게재하기로 결정한 그 공무원의 정체가 정말 궁금하다. 다른 시인도 많고 같은 시인의 다른 작품도 많았을텐데 왜 굳이 저 작품을 지하철에다 걸어놓은 걸까? 좋은 시를 대중도 함께 느껴보고자 하는 취지까지는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시를 선별하는 판단기준에 현실적인 감각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한다. 담당 공무원은, 본인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시와 불특정다수가 다니는 공공장소에 걸어두기에 적합한 시를 전혀 구별하지 못 하는 멍청이거나, 애초부터 불순한 의도를 가졌던 변태거나, 그냥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거나 셋 중 하나일 것이다.

 

적재적소라는 게 있다. 이 시가 국문학과 강의실에서 언급되었거나 어느 백일장에서 사춘기 라든가 하는 제시어와 함께 소개되었다면 충분히 문학으로서의 훌륭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불필요하게 대중의 감정을 소모하게 하고 또 시인의 작품을 이렇게 엉뚱한 방식으로 망쳐놓는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시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경상남도 시골의 할머니들이 고령의 나이에 처음 한글을 깨치고 쓴 시라고 한다. 나는 이 시를 접한 그 몇 초 동안 솟구쳤던 무수한 감정들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렇게 시를 모아 낸 시집의 제목은 <시가 뭐고?>이다. 당시 시 선정위원 중 한 분은 할머니들의 시를 읽고 "이 땅에는 시 안 쓰는 시인이 참 많다"고 말했다고 한다. 촌부의 작품이라고 해서 졸작이라고 비난할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맞춤법이 틀렸다고, 운율미가 없다고 욕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내가 담당자였다면 이런 시를 선택했을 것 같다. 왜 칠순 팔순에 한글을 처음 배웠는지를 생각하면 내가 겪지 못한 역사의 단면이 어렴풋이 그러나 먹먹하게 떠오르면서 많은 것을 '공부하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한 줄 한 줄 우리나라 여성들이 엄마로써 딸로써 갖는 정서들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처음 깨친 한글로 처음 표현하는 저 마음들에 역사도 문화도 철학도 모두 담겨있다... 부부가 함께 봐도 할 이야기가 참 많고, 아이들과 같이 읽어도 해줄 말이 참 많고, 아이들이 배울 것도 참 많다. 아니, 어른들도 배울 것이 많은 작품들이다.

 

한 획 한 획 얼마나 정성들여 썼는지가 눈에 보이는, 저 어린아이같은 글자들을 보고 가슴이 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어린아이같은 글자에 담긴 더 어린아이같은 마음을 함께 느끼지 못 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워낙 각자도생하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집에서 자랐고 엄마와도 그다지 친밀하지 않아서 보통 딸들이 갖는 엄마에 대한 감정들에 잘 공감을 못하지만 저 시를 읽자마자 눈물이 저절로 쏟아졌다. 하물며 우리 집처럼 특수한 케이스가 아닌 일반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겠지. 아이고. 또 보니 눈물나네.

 

이 책 보관함에 담아놓고만 있었는데 생각난 김에 장바구니로 옮겨야겠다. 왜 이 책을 잊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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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족 2016-04-2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하고 싶던 이야기예요.

건조기후 2016-04-21 17:43   좋아요 0 | URL
국민 세금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 일 좀 신중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런 것도 다 사회적 비용인데...

별족 2016-04-22 05:13   좋아요 0 | URL
음, 제가 하고 싶던 이야기는 공무원의 무신경,이 아니라, 공공장소 게시물에 대한 것, 불편함에 대한 것입니다.
가끔 공무원취급당하는 처지라, 공무원에 대해서 `국민세금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란 표현은 음, 불편합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고, 언제나 그 다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 불편하다고 말했을때 수용하고 변경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 갈등이 얼마나 사회적인 비용을 초래했는지는 실감하지 못하는 처지라서, 저는 유레카님이나 건조기후님과 이런 얘기 할 수 있어서 좋아요^^

건조기후 2016-04-22 13:58   좋아요 0 | URL
네... 제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도 다르지 않아요. 무언가를 공공장소나 대중에 노출하게 될 일이 있을 때 (공공기관이든 일반회사든) 담당자들은 자기가 하려는 일이 결과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에 대해서 좀 신중하게 생각해줬으면 하는 거였어요. 지하철에 시를 게재하는 일은 공무니까 공무원을 비판한 게 됐는데

본질은 특정직업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이를테면 일종의 게이트키퍼라고 할까 콘텐츠를 선택할 권한을 가진 담당자가 본인의 그 취사선택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들을 가정해보는 정도의 주의는 기울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에 대한 비판이었어요. 그리고 시를 선택하는 일이 후속반응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저렇게 번지수 잘못 찾은 건 충분히 욕먹을 만하다고 생각해요. ;

네 물론 사람이 실수는 할 수 있고 저도 정말 이불 속에서 하이킥할 짓을 참 많이 하고 살긴 합니다만 ;; 저런 판단을 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실수라기보다는 업무의 성격과 맞지 않거나 능력이 부족한 거라고 생각해요... 암튼 지하철 시가 이제 바뀔 거라고 하니까 다행이긴 하네요.

아 그리고 국민 세금 먹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이게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서요. 내 돈 내고 내가 불편하고 괴로워하는 상황을 볼 때마다 저는 참 그렇더라고요.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받는 돈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하고(정당한 보수인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공인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는 뜻이지 세금이나 축내는 것들.. 뭐 이런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4-21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시가 뭐고 > 라는 책을 선물 받고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오타 작렬하는 시를 보며 감동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는데 읽는 내내 감동했습니다..


이 시집 무진장 추천합니다..

건조기후 2016-04-21 17:45   좋아요 0 | URL
우왕... 곰곰생각하는발님은 이런 시집을 선물로 받는 멋진 분이었던 것이지 말입니다 ㅎ 저 오타들이 더 감동인 거 같아요.

cyrus 2016-04-21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들이 쓴 시를 읽어보고 싶군요. 좋은 시집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건조기후 2016-04-21 17:4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빨리 받아서 읽고 싶어요. ^^
 

최근 2년간 자기 전에 항상 팟캐스트를 들었다. 그 중에서도 <노유진의 정치카페>를 무지 열심히 들었는데, 나중에 딱히 듣고 싶은 게 없을 때는 들었던 걸 또 듣고 또 듣고 그랬다. 타이머 설정을 안 하고 잠들 때가 많았는데 자다가 깨면 막 귓가에서 세 아저씨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고 ㅋㅋㅋ 그 목소리들도 익숙해지니까 잠결에 듣는 것도 좋아지더라. 이런 ㅋ

 

어제 업로드된 100회차를 마지막으로 <노유진의 정치카페>는 끝이 났다. 처음엔 정의당 홍보방송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새 각 정당을 아우르는 정치평론방송이 되었다. 기본적으로 재미있었고, 정보를 얻는 차원에서든 의견을 듣는 입장에서든 청취자들에게 매우 유익했다. 우리가 내막을 잘 모르고 읽는 단순한 기사들이 실은 얼마나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그리고 있는 것인지를 소위 선수들의 썰로 듣고 있자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거 같다. 

 

막방이니 당에 대한 불만도 좀 얘기하자고 했는데, 결론은 언제나 문제인 대중정당으로서의 고민이었다. 미스터리긴 하지. ;; 나도 잘 모르겠다. 이번 총선결과를 보면 국민들은 적당한 정당만 있으면 제3의 세력에게라도 표를 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 정의당은 지금까지 그 마음을 제대로 받아내질 못했는지. 정말 정의당 정도의 노선도 너무 좌익이라서 국민들이 빨갱이당 지지하는 것 같아 못 하는 걸까. 아니면 매번 하는 얘기처럼 소수정당에 관심없는 언론때문에 인지도가 너무 낮아서 그러는 걸까. 역사적 경험탓에 대체로 보수적인 성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이해는 되지만 시대흐름과 변화를 담대하게 받아들이면 결국엔 본인들에게도 이득이 될텐데... 나는 당원도 아니면서 이런 생각하면 갑갑하다.

 

어쨌든 방송은 끝이 났고, 그들은 수많은 정치적 논란으로 방송소재를 만들어준 대통령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이제 노회찬은 20대 국회의원이 되었고, 유시민은 출판사와 계약으로 유럽 역사여행을 간다고 했고, 진중권은 대학교 수업도 하나 더 늘고 책도 써야해서 더 바빠질 거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토록 시간이 금인 분들이 무상으로 노동과 지식을 제공한 2년이었다. 출연자들에게는 돈 안 되는 방송이었지만 말했듯이 시간이 금인 분들이어서 그 시간을 나눠받는 청취자들도 금을 얻은 거 같다. 많이 즐거웠고 많이 배웠다. 감사합니다, 노유진. so long...

 

이 즈음에 이 책을 읽었다. 뜬금없는 글쓰기 특강 ㅎㅎ 유시민의 책은 웬만하면 읽으려고 하는 나지만, 글쓰기 특강같은 책까지 굳이 사서 봐야할까 싶던 와중에 머그컵 준대서 홀랑 주문했던 책. 그러고보니 책을 산 것도 꽤 오래 전이구나. 컵 때문에 산 거지만 또 들였으니 읽긴 해야겠어서 약간 억지로 시작했는데, 금세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기본적으로 글을 재미있고 읽기 쉽게 쓰고 뜬구름잡는 소리가 아닌 합리적 의견, 객관적인 근거로 다양한 지식과 정보까지 맛있게 섞어서 쓰는 분이라 '굳이 이런 책까지' 싶은 책마저도 읽는 보람이 있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고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에게 당연히 지침이 될뿐더러, 직업적인 글쓰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도 블로그, SNS 등등 일상적으로 문장을 쓸 일이 많은 상황에서 좀 더 논리적이고 간결하게 글을 쓸 수 있다면 내 의사표현이 보다 정확해지고 소통도 원활해질 수 있으니 나름의 효용이 있을 것이다. 추천하는 책들도 메모해뒀다가 읽어보면 좋겠고. 근데 이런 목록같은 거 볼 때마다 느끼지만 여전히 안 읽은 책이 참 많기도 하다...

 

유시민이 욕을 많이 먹긴 해도, 또 왜 욕을 먹는지 알아도, 그의 삶의 이력을 쭉 떠올리면 사람이 멋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참 멋이 있다, 사람이. 현실주의자같으면서도 이상을 꿈꾸는 몽상가 기질이 다분하고, 기회주의적이라고 하기엔 잃지 않는 원리원칙이 있다. 최근에도 방송 들으면서 조금 놀랐는데, 평소 성향을 보면 야권의 승리 혹은 발전을 위해 어느 선까지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인데, 이번에 박영선이 단독으로 공천된 지역구에 천호선을 (표적)공천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자(실제 여론조사에서 천호선이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고) 전직 당대표를 그런 식으로 자객으로 내보내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현재 당적은 아니지만 더민주를 잘 알고 더민주의 앞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인사로서 빼고 갈 사람은 빼기 위해 그런 전략을 충분히 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의외였다. 독야청청 입바른 소리만 따박따박 늘어놓는 것 같아도 언제나 직접 행동하고 노력했던 삶 역시 존경스럽다. 열린우리당이 한심하게 실패하고 난 이후에도 정당을 만들어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멈추지 않았고 친노 중의 친노 중의 친노로 대구에 출마해 강고한 지역주의 진앙지를 깨보려 노력도 했었다. 이런 모든 신념과 도전이 그의 대중적 인기에 비해 혹은 바로 그 대중적 인기 때문에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는 거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친필이 새겨진 컵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커피나 음료랑은 어울리지가 않아서 책상 위에 두고 연필꽂이로 쓰고 있는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하루 한 문장이라는 문구도, 유시민이라는 이름 석자도. 짧은 글인데도 괜히 부지런하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들고, 이 사람처럼 끊임없이 읽고 쓰며 노력하는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한다. 근데 보니까 하루 한 문장! 옆에 있는 마션컵의 문장이 완전 ㅈ됐다 구나. 하루 한 ㅈ돼라도 아니고, 물론 하루 한 ㅈ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만. 암튼 컵 두 개를 붙여 놓으려면 손잡이 때문에 ㅈ문장이 적힌 쪽이 뒤로 가야해서 몰랐는데, 방금 문득 깨달았다.

 

뉴스를 보고 있는데 진주시 수국면이라는 곳에서 사전투표 중 비례투표용지가 177장 모두 새누리당을 찍은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해명하기를, 바로 옆에 있는 다른 면에서 투표한 용지와 섞여있던 것을 분류하는 과정에 착오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한다. 투표함을 통째로 바꿔치기 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3명씩 조를 짜서 서로 감시하면서 투표하게 했던 것도. 참 생각할수록 어이없고 웃긴다. 셋이서 나란히나란히 표 찍고 ㅋㅋㅋ 에휴... 아무리 존경하는 국가원수라도 부정선거까지 존경하지는 말지... 사리분별없는 집단들.

 

수국면 하니까 수국이가 생각난다. 조정래의 <아리랑>에 나오는 미모의 독립투사... 그 시절 대다수의 여자들은 결국 <아리랑>의 그녀들과 같았을까. 수국이 엄마처럼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깡마른 가슴팍에 삭이고 살거나, 수국이 언니 보름이처럼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의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팔자로 살거나, 수국이처럼 자연스럽게 독립운동을 하거나... 아니면 또 자기도 모르게 일본군의 노예로 살고 있거나. 그 시절 이런 삶을 살지 않았다면 그건 그가 정상적으로 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 자들의 후손이 지금까지도 정상적으로 살고 있지 않으면서 권력을 쥐고 있는 것이 이 나라 최대의 해악이고... 사라져야할 집단들.

 

그 대표적인 집단 중의 하나가 바로 요 며칠 핫한 전경련 아닌가. 어버이연합 지원이라니 하는 짓거리가 딱 친일파의 후예들답다. 치졸하게 이간질하고 돈푼 풀어 용역 동원하는 일제 부역자들의 특장기를 훌륭하게 이어받은 모범 자손들. 기득권들을 왜 꼭 친일파로 매도하느냐며 이런 말하는 사람들 참 한심하다고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니가 지금 그런 소리를 하는 것 자체가 세상이 잘못됐다는 걸 증명하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어차피 받아들이지 못 하고 괜히 싸움만 될까봐 웃고 말았다. 저런 말에 그냥 웃어야 하는 이런 마션컵 문장같은 세상이 아주 혁명적으로 바뀌진 않겠지만 최소한 저 말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 것인지를 대다수가 인식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제발 꿈이다...

 

* 수국면이 아니라 수곡면이었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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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6-04-21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공감합니다~♥

건조기후 2016-04-21 10:12   좋아요 0 | URL
이것저것 엮여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도저히 잠이 와서 다 못 썼어요 ;; 그런데 순오기님은 새벽 4시까지 주무시질 않은 거예요, 일찍 일어나신 거예요? 어느 쪽이라도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시는 순오기님 ^^

순오기 2016-04-21 13:08   좋아요 0 | URL
초저녁에 잠들었다 깨어나 일 좀 하다가 잠이 안와서 알라딘 로긴...
결국 6시 30분이 넘어 잠들었는데 모닝콜 누르고 다시 잠들었다가 8:24분에 깨어나 식겁...
어제부터 산림청 교육이라 스케줄 비웠는데 나는 안가서
사흘간 구청으로 출근하는데 10분쯤 지각했어요.ㅠㅠㅋㅋ

건조기후 2016-04-21 13:57   좋아요 0 | URL
지각 ㅎㅎㅎㅎㅎ 순오기님과 정말 안 어울리는 단어네용 ^^:
하는 일이 많으시니 잠도 시간을 쪼개서 주무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

다락방 2016-04-21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유시민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또 누군가 욕을 하면 그걸 듣는 편이었는데, 최근에 [청춘의 독서]읽고 완전히 인식이 바뀌었어요. 유시민 좋아하는 친구에게 `그동안 몰라봐서 미안해, 귀 기울이지 않아서 미안해`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그의 책들을 차곡차곡 읽어볼 생각입니다.
저는 팟캐를 듣는 게 하나도 없고, 이것도 듣지는 않을테지만, 어제 본 시사인에서도 노유진의 책에 대한 얘기가 있길래 그건 사서 읽어볼까 해요.
이 페이퍼 보니까 아직 읽지 못한 아리랑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건조기후님 이 페이퍼 명품 페이퍼에요. 아주 좋아요!

건조기후 2016-04-21 10:16   좋아요 0 | URL
저는 청춘의 독서는 아직 안 읽었어요. 거기서 다루는 책을 반 정도라도 읽고 봐야할 거 같아서 그냥 뒀는데.. 안 그래도 다락방님 그 페이퍼 보고 이 책 읽어야지 했는데 아직입니다 ; ㅎㅎㅎ

2년 동안 애청했던 방송이 없어지니까 엄청 허전해요. 책보다는 방송이 훨씬 생동감있고 세 분 서로 갈구는 것도 웃기고 막 말 겹치고 이런 것도 되게 재미있지만... 시간이 워낙 엄청나서 권해드리기도 쉽지 않네요. 하하.

아리랑은 저도 다시 한 번 읽고 싶어요. 언제 실천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길이가 워낙 엄청나서 나 자신에게 권하기도 쉽지 않아요. ㅎㅎㅎㅎㅎ

마키아벨리 2016-04-21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유진의 정치카페가 끝나고 시사통도 한달간 쉬는 기간이라 갑자기 출퇴근 시간 뭘들어야할 지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건조기후 2016-04-21 13:5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많이 허전허전하네요.
 

내 평생 월간항공..같은 생소한 잡지를 돈 주고 사보게 될 줄이야. 평소 자기 일에 대해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친구가 어느 날 자기 인터뷰가 실렸다며 시간나면 한번 보라고 툭 한 마디. 짧은 기사였지만 20년지기의 또 다른 모습을 마주한 시간은 감격스러웠다. 일상적인 모습에만 익숙해져있던 누군가의 이면, 내가 알고 있던 범위가 아닌 전혀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된다는 것. 그래서 내가 알던 것보다 실은 훨씬 더 멋진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것. 행복한 일이다. 무엇보다 이런 사람의 친구라는 것이,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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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하기 1

 

화이트데이에 을 보내주신 분 덕분에 식사량이 팍팍 늘었던 지난 주. 원래 김을 엄청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김 맛 짱이라서 보내주신 두 통을 며칠 새 홀랑 다 먹었다. 삼삼하면서도 짭조롬하고 고소한 것이 완전 밥도둑 ㅜ

 

한 통을 다 먹고 났을 때, 빈 용기를 버리려는데 이 원통이 철로 만들어진 거라 꽤 쓸만해보였다. 맛도 좋은 것이 포장용기까지 재질 좋고 탄탄해서 어딘가에 요긴하게 쓰일 듯하여 재활용하기로 결정. 당장은 쓸 곳이 없지만 일단 깨끗이 씻어 두려고 원통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스티커를 떼기 시작했다.

 

난 좀 이런 찌질한 짓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서 ㅋㅋ 마음에 드는 포장박스나 케이스가 있으면 겉에 붙어 있는 테이프라던가 스티커를 떼는 일에 온 신경을 초집중하고 심혈을 기울여 무슨 작품이라도 하나 만들어내듯 정성을 쏟는다. 스티커가 접착면이 너무 강하거나 찐득거리는 것, 스티커 자체의 종이질이 얇거나 약한 것은 뚝뚝 끊어져서 깨끗하게 떼어내기가 힘든데, 이 스티커는 접착력은 센 것 같아도 스티커 재질이 쫀쫀해서 잘 떼어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힘 조절을 잘 못해 접착면인 안쪽과 글씨가 적힌 바깥쪽이 포 떠지듯 마구 분리되어 찢겨나가면서 실패. 덕지덕지 붙은 거 일일이 제거하느라 뒷처리를 한참 했다.

 

아씽 잘 될 것 같았는데... 오기가 나서 아직 개봉하지 않은 나머지 한 통의 스티커를 떼기 시작. 이번엔 정말 조심스럽게 가장자리 부분을 손톱으로 잘근잘근 긁어가며 적당히 힘을 가해 조금씩 옆으로 당기면서 뜯어냈다. 조금만 빨라도 아까처럼 안쪽과 바깥쪽이 분리되는 사태가 발생하니 종이의 장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천 천 히 천 천 히 움직이기. 스티커가 도중에 한 번 찢어지기라도 하면 수습난망이기때문에 힘이 골고루 들어가도록 균형도 잘 잡기. 찌직, 찌직, 1초가 영겁의 시간인 듯 세상이 정지해버린 듯 오로지 스티커 떼기에 정신통일하사불성의 집중력을 쏟은 결과,,, 얍, 성공!

 

음하하하하하하하. 정말 찌질하고 기분 좋구나.

 

밑에 작은 조각이 따로 떨어진 건 다시 한 번 감각을 살리기 위한 연습용으로 해본 거. ㅋ 사진은 스티커를 떼자마자 찍은 거라서 자세히 보면 지저분한 잔여물이 조금 남아있지만 지금은 깨끗하게 정리돼서 곱게 보관된 상태. 철로 만들어진 거라 표면에 자국도 전혀 안 남고 아 정말 좋다 좋아. 그런데 김이 무거워봤자 얼마나 무거울 거라고 이렇게 튼튼한 통을 썼을까? 나같은 사람 위해선가. ㅎ

 

어딘가에 쓰일 것 같아도 딱히 용도도 없고 결국엔 군것질거리나 사다 넣어둘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뿌듯한 건 뿌듯한 거. 요즘 한약 먹는 중이라 군것질은 거의 끊다시피 줄이고 있기는 한데 이것저것 쟁여두는 건 또 좋아하는 성격이라 뭐든 채워놓긴 채워놓게 될 거다. 지금도 책장 곳곳에 박혀있는 (이것처럼 재활용한) 케이스마다 쿠키며 초콜릿이 그득그득.. 초딩도 아니고 무슨 주전부리들을 이렇게 방구석에 쌓아 놓는지 ㅉ 약 때문에 못먹으니까 더 사재기에 집착하는 거 같다. 여기엔 과자말고 초콜릿 사다 넣어둬야지. 통 색깔이 초콜릿이랑 잘 어울린다.

 

김통에서 스티커 떼고는 신나서 먹을 거 채울 생각만 열심열심. 이러고 있다. ㅎㅎㅎ

 

 

 

 

재활용하기 2

 

<스노우맨> 미니북 케이스 만들기. 요 네스뵈 신간 이벤트로 받은 미니북을 책장 앞쪽에 세워두니까 예쁘긴한데 뭔가 아쉬워서 계속 눈에 걸렸다. 케이스가 있으면 좋을텐데 적당한 게 없고, 만들까 하다가 딱히 재료가 없어서 잊고 있었다. 그러다 마트에서 배달된 8개들이 칫솔세트 안에 파티션으로 투명한 판때기가 하나 끼워져있는 거 발견. 오예 이거야 하고 낼름 꺼내들었다.

 

판때기를 데스크보드에 대고 미니북의 가로 세로 높이 길이에 맞춰 칼로 약하게 선을 그어가며 재단을 한다. 클리어파일같은 PP재질이라 자꾸 미끄러지려고 해서 힘이 많이 들어갔다. 손목 나가는 줄.. 모서리 부분은 각이 잘 잡히도록 여러 번 더 그어주고 가장자리 잘라내서 접착제로 붙이면 끝,

 

완성. ㅎㅎㅎㅎㅎ 투명했던 접착제가 마르고 나니 허옇게 변해서 아주 깨끗하진 않지만 어차피 표지부분이 아니라서 티도 별로 안 난다. 눈에 걸렸던 거 해결하고 나니 속 시원하고 뿌듯뿌듯.

 

 

작은 소년의 공식

 

김통 스티커를 떼고 칫솔 포장재로 케이스를 만들던 와중에 읽은 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소설이었다. 요 네스뵈와 해리 홀레에 흠뻑 취했던 탓인지 스토리가 심심할 정도로 밋밋했지만 읽다보니 은근히 빠져들었다. 어릴 때 뤼팽에 한 번 반했었던 이후로는 장르소설을 거의 안 읽었는데 최근에 다시금 마력에 젖어들어가는 듯.. 이런 책이 눈에 자꾸 들어온다.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과학을 기반으로 한 냉철한 추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숨 쉴 틈 없이 휘몰아친다"는 책소개글이 무색하게 개인적으로는 전혀 박진감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는 도중에 유가와 교수가 사건의 핵심이 되는 지점들을 포착하는 순간은 의외로 짜릿했다. 관망하듯 주변을 맴돌며 사물과 사람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맥락을 연결해내는 그의 능력은 얼마나 탁월한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크고도 정확한 그림을 그려내는 혜안 역시 섬세하고 완벽했다. 현재의 사건과 16년 전 사건에 얽힌 배경에는 공감이 되지 않아서 작가의 이름 앞에 붙은 '미스터리의 제왕'이라는 수식어는 잘 와닿지 않았지만,

 

물리학 교수가 말하는 한여름의 방정식은 따뜻했다. 자기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쪼갤 수 없는 소수에게 항상 1이라는 숫자가 있어주듯이, 아무도 지워줄 수 없는 기억을 갖게 된 교헤이에게 언제나 함께 할 것이라는 유가와는 작은 소년의 든든한 성장 공식이 되어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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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3-2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조기후님에게 이토록 귀여운 면이 있었다니요! >.<

건조기후 2014-03-25 09:57   좋아요 0 | URL
결혼도 안 했는데 이미 알뜰주부..가 되어버린 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슬퍼져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