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발췌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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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루 짊어진 늙은 걸인처럼 굽은 등

꺾인 무릎으로 노파처럼 기침하는 우리, 욕 뱉으며 진창을 헤쳤다

잊지 못할 섬광에 등 돌릴 때까지

요원한 쉼 향해 무거운 발을 뗐다

잠결에 행군하는 이들, 군화 없는 발이 부지기수건만

피를 신발 삼아 비틀대니 모두가 발을 절었고 모두가 눈이 멀었다

피로에 취하자 고성에도 귀가 닫혔다

지치고 느직한 5.9인치 포탄이 뒤에 떨어진다 해도

 

가스! 가스! 얼른! 무아경에 더듬거리며

어설픈 철모 늦지 않게 꿰었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소리 지르며 비틀대고

불이나 석회에 휩싸인 사람처럼 허우적거렸다…….

부연 창과 짙은 초록 빛 사이로 희미하게

초록 바다에 빠지듯 잠겨드는 그가 보였다

 

꿈이면 꿈마다 무력한 내 눈앞에서

그는 타닥대고 캑캑대고 꼬륵대며 나를 향해 고꾸라진다

 

숨통 막는 꿈에서 함께 걸으며

우리가 그를 던져넣은 수레 뒤편에서

그 얼굴에 박혀 뒤틀리는 흰자위를 볼 수 있다면

늘어진 얼굴이 죄악에 질린 악마 같구나

덜컥일 때마다 피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거품으로 더럽혀진 폐에서 끓어나오는데

암처럼 난잡하고 씹는 담배처럼 씁쓸한

추악한 불치의 상처 무구한 혀에 파였으니

친구여, 그렇게 열띠게 말하지 못하리라

무모한 영광에 몸이 단 아이들에게

그 오랜 거짓,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은

복되고 마땅한 일이라는 말을

 

웨이드 데이비스, <사물의 표면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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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시대가 끝나고 횃불이 아시아로 넘어가는 것은 축하할 일도 비웃을 일도 아니다. 국제적인 위험이 닥친 순간, 인류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참상을 넘어선 암흑기에 들어설 수도 있었던 시기에, 미국의 산업력은 평범한 러시아 군인들의 피와 더불어 말 그대로 세계를 구했다. 미국의 이상은 매디슨과 먼로, 링컨, 루스벨트, 케네디가 예찬했듯 한때는 수백만 명에게 영감과 희망을 줬다.

위구르 수용소를 운영하고, 군대가 무자비한 권한을 갖고 있으며,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감시 카메라를 2억 대씩 둔 중국이 패권을 쥐면 분명 우리는 미국의 세기, 그 호시절을 절절히 그리워할 것이다. 그러나 당장 우리에게 있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의 도둑 정치뿐이다. 위구르족에 대한 중국의 처우를 칭찬하고 그 나라가 행하는 억류와 고문이 꼭 해야 하는 일이라 말하고 화학 소독제를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라는 의료 조언을 건네는 사이 트럼프는 그건 언젠가 기적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태평한 발언을 내놓았다. 물론 그가 가리킨 대상은 코로나 바이러스였겠지만, 다른 이들도 지적했다시피 아메리칸드림을 말한 것과 다름없다.

웨이드, 데이비스, <사물의 표면 아래>에서

 

#사물의표면아래 #너머를보는인류학

#허물어지는미국 #인류학에세이

#한달한권할만한데 #오늘의발췌와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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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한 권 할 만한데?'에서는
7월 22일부터 9월 3일까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 현대사>를 함께 읽습니다.


함께 책을 읽고자 하시는 분들의 문의는 언제나 환영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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