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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물론 영화관이 아닌 케이블 티비로 봤다. 영화관에서 보기에는 참 돈이 아까운 영화다. 물론 로맨틱 코미디를 즐기기는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도 수준차가 있는 법. 이 영화는 나의 기준에서 다소 떨어지는 영화다.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그쯤은 알 수 있다. 그래서 난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이후 비디오로도 빌려보지 않았다. 왜냐면 비디오로 보기에도 좀 돈이 아까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서고 이 영화가 아닌 더 좋은 다른 영화들이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의 순위에서 밀려났던 것이다. 이제서야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물론, 케이블 티비에서 공짜로 해줬기 때문이다.

영화의 출연진은 다소 빵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름을 대면 우리에게 익숙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윤다훈, 송선미, 신애, 오지호, 최윤소 이 정도는 다들 이름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들이다.

어느 시골 마을 열녀문이 세워진 집안의 딸이 몰래 서울로 대학오기 위해 야반도주했다. 하지만 홀로 서울로 온 그녀의 주위에는 갖가지 유혹들이 숨어있는데... 주학은 민서를 일년동안 쫓아다니며 그녀와 함께 잠자리를 할 생각만을 하고, 민서는 어떻게해서는 이를 뿌리치려고 한다. 선배들은 둘을 엮어주려고 이런저런 궁리를 다해보지만 결국 둘만이 섬에 떨궈진 상황에서도 주학은 민서와의 잠자리에 실패한다.

자칭 <색즉시공>의 뒤를 잇는다는 이 영화는 <색즉시공>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집중력을 보이고 있다. 관객을 영화에 몰입시키는 정도도 떨어지고, 극중 배우들의 연기의 어설픔이나 일관된 사건이 없이 여기저기 좌충우돌하는 다양한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 집중력을 저하시킨다. 물론 영화를 보면서 섹스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는 <은장도>는 곳곳에서 '꼴리게'만들지만, 그저 그것 뿐이다. 선후배들이 모두 민서의 시골집으로 내려가 열녀문을 부수는 설정인 영화의 마무리도 그다지 달갑지 않다. 열녀문을 무너뜨리는 의미는 가부장제의 권위주의와 여성억압성을 무너뜨리자는 의미일진대 그것이 열녀문을 무수는 것만으로는 그다지 심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으로서는 그것은 그저 대학 축제 때 무대에 올라와 차력을 통해 메세지를 전달하는 어설픈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불만족스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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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역시 참 오래된 영화다. 근래 본 영화중에 가장 오래된 영화가 아닌가 싶다. 1990년에 개봉했으니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이다. 이번에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한 차례 본 적이 있다. 그때도 역시 케이블 티비를 통해서였지만 너무 오래된지라 다시 한번 보기로 했다.

네바다주의 어느 사막 한 가운데에 20명도 채 안되는 조그마한 시골마을이 위치해 있다. 그러다 사막으로 지진학은 연구하는 대학원생이 오게 되고 그녀는 며칠동안 이 사막에서 지진계를 통해 이상한 진동을 느낀다. 하지만 원인은 알 수 없고....

어느날 이사를 하던 발렌타인과 얼은 철탑에 매달려 죽은 에드거를 발견하게 되고, 소가 갑자기 사라지고, 전화선이 끊기고, 노부부가 차와 함께 사막으로 매몰된 현장을 발견하게 되면서 이상징후를 느낀다. 그러다 거대한 구렁이 같이 생긴 괴물이 땅속을 통해 사냥을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발렌타인과 얼은 냅다 뛰어 절벽으로 괴물을 몰아내 죽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 죽은 것으로 끝날리 없다. 아직 셋이 더 남아있던 것. 이들은 마을에 알려 모두 피신을 하고, 괴물의 특징을 연구하면서 고립된 마을에서 도망칠 준비를 한다.

영화 제목이 <불가사리>인 것은 극중에서 한 마을주민이 이 괴물을 '불가사리'라 지칭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괴물을 지칭하는 이름이 '불가사리'인 것이다. 고립된 사막을 배경으로 하여 땅속 구렁이 같은 거대한 괴물을 등장시킨 발상은 참으로 재미있다. 영화의 재미는 다름아닌 이러한 괴물의 특징에서 비롯된다. 눈이 없고, 땅속으로 헤쳐다니며, 소리와 진동을 통해 대상을 공격하는 괴물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숨죽이고 소리를 내지 않으며 아무리 뛰어도 진동을 느낄 수 없는 사막의 바위를 안전한 장소로 생각해 내게 된다. 보통 공포영화에 나오는 괴팍하게 생긴 무서운 괴물과는 달리 우리에게 친숙한 벌레같은 존재를 좀더 부풀리고 공격적으로 만들었을 뿐인 이 괴물은 영화에 재미를 주는 신선한 발상이다.

영화를 두번이나 봤지만 두번 모두 재밌게 본 것은 시간차를 두고 본 것도 한몫하겠지만 그만큼 영화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번 본다면 좀 지겨울 법도 하다. ^^;

무섭지 않은 공포영화를 좋아한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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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노릇 7개월째 접어들며 이제 낮에 쇼파에 누워 케이블 티비보는 것이 버릇이 됐다. 참 나쁜 버릇 하나 들었다. 해야할 공부는 안하고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내가 항상 못마땅하면서도 항상 그 짓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오늘은 '바람난 가족'을 보았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 등을 만든 임상수 감독은 영화판의 비주류 감독 중 하나이다. 주류와 비주류를 나누는 기준이 모호하고 주관적이지만 난 이 감독을 비주류로 분류한다. 그가 만드는 영화들이 대중의 지지를 얻기에는 변두리적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고, 영화에 나오는 이들이 대부분 일종의 아픔이나 상처를 지닌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바람난 가족>은 임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서는 그래도 어느정도 상업적 성과가 드러난 작품이 아닌가 한다.

<바람난 가족>은 제목 그대로 가족들이 죄다 바람이 난 영화다. 돈 안되고 정의로운 일이라면 도맡아하는 30대 변호사 영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의, 윤리와는 거리가 멀게도 한참 어린 여자와 바람이 났고, 전직 무용수였고 동네 무용학원에서 춤추는 그의 아내 호정은 옆집 고딩와 바람이 나 섹스를 한다. 영작의 어머니는 알콜 중독자로 간암말기 선고를 받은 할아버지와는 섹스를 안한지 15년이 지났고, 이제서야 할머니는 초등학교 동창과 눈이 맞아 섹스를 한다. 온 집안이 다 바람난 것이다.

아마 애초에 임상수 감독은 '가족이데올로기'를 깨자고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가 변해갈수록 우리사회에서 대가족은 핵가족화되었고, 이제는 핵가족마저도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가정이란 그저 선택적일 뿐이다. 씨족사회를 의미했던 가족은 이제 그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합이 되었고, 부부간의 관계에서도 서로를 의무적인 존재로 바라보기 보다는 좋으면 계속 같이 살고 아니면 헤어지고 식의 사고방식으로 맺어진 관계로 변화되었다. 따라서 둘이 사랑해서 결혼했으나 세월이 흘러 아니다 싶으면 다시 깨지고 또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여기서 결혼은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요새는 오히려 동거를 하다 결혼을 한다는 커플이 늘어나는 추세라 한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것은 여기서 적절하지 못해 보인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듯 하다. 옳고 그름은 '가족이데올로기'의 전제에 다름 아니다.

가족 모두가 바람이 난 상황에서 이 영화속의 가정을 어떻게 봐야할지 참 난감하다. 자기 좋은 삶을 찾겠다고 바람이 났지만 결국 상황은 더욱 악화될 뿐이고 바람이 난 개인 스스로도 자기좋아 바람난 것에 이건 아니다 싶은 심정을 지닌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영작과 호정은 깨지지만 둘의 깨짐은 둘의 만족으로 발전하지는 못한다. 가족이데올로기를 깨자구 했지만 결국 가족이라는 틀이 깨지면서 구성원인 개인 또한 상처를 입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쯤되면 영화는 '가족이데올로기'를 옹호하지도 반대하지도 않는 듯 하다.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것은 별 의미가 없어보인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혹은 바람난 이들에게 영화는 각자에게 나름의 메세지를 전달했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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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영화 '사토라레'와 무척이나 닮아있다. '사토라레'가 '왓 위민 원트'보다 늦게 개봉됐다는 점에서 소재의 원조는 '왓 위민 원트'에게 있으나 두 영화를 비교판단하여 우위를 가릴만큼 비슷한 것은 아니다. 소재는 같지만 그것을 영화에서 풀어가는 방식이나 소재를 이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서 별개로 취급해야 한다.

'사토라레'가 한 개인의 마음 속 생각을 모두가 공유한다면, '왓 위민 원트'는 개인이 주변의 여성들의 마음 속 생각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다수와 소수의 시각의 차이를 보인다. '왓 위민 원트'는 한 개인만이 그런 능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투명인간'과도 같다. '투명인간'은 스스로가 보이지 않음으로써 타인을 몰래 관찰하고 그의 행동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생각'을 읽는 '왓 위민 원트'와는 차이를 보이지만 여전히 한 개인이라는 소수가 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마샬은 남성우월주의적 시각을 가진 자기잘난맛에 사는 광고기획자이다. 그런 마샬에게 달시는 경쟁자로 보일 뿐이고 그녀를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날 주위 여성들의 마음 속 이야기를 읽는 능력을 지니게 된 마샬은 달시의 머리 속 생각을 읽게 되면서 달시의 아이디어를 몰래 가로채 승진의 기회를 잡고, 결과적으로 무능력자로 전락해버린 달시를 간접 해고시키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마샬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달시에게 찾아가 달시의 아이디어를 가로챘음을 고백하고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기에 이르게 되고, 달시는 그런 마샬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마샬과의 에피소드는 달시가 중심이지만 달시 뿐 아니라 그의 딸과도 그의 직장에서 관심받지 못하는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한 서류정리 여직원 사이에서도 존재한다. 마샬은 그동안 주위 여성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 혹은 그들의 힘겨운 직장생활의 속감정들을 들춰보게됨으로써 이들에게 좀더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타인과의 소통을 주제로 한 영화로 봐도 무방하다. 소통의 부재가 안겨주는 슬픔과 고통이 우연한 기회에 얻게 된 한 남성의 능력으로 인해 '소통'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 해결자가 '마샬'이라는 남성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모순되게도 '남성주월적'이게 되지만, 그가 '남성'이라는 점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한 사람을 통한 '인간관계에 있어서 타인과의 소통'이라는 주제를 훌륭히 풀어냈다고 볼 수 있겠다.

강력추천한다. 남성우월주의자를 위해서건, 여성을 위해서건, 소통의 부재로 힘겨워하는 이들을 위해서건,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의미있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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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굉장한 영화였다. 내 생애 이렇게 피를 끓게 하는 영화는 처음이었다. 그것은 내가 밴드에서 '드럼'이라는 포지션을 맡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이지만, 꼭 드러머가 아닌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영화를 보고서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터이다. 수백명의 사람들이 대형 운동장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퍼레이드를 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것은 둘째치고라도 그들 각각이 대단한 악기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놀랄만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데본을 맡은 닉 캐논이라는 배우와 그의 선배이자 밴드의 리더인 숀을 맡은 레너드 로버츠가 정말 그만한 드럼실력자인지 궁금하다. 그냥 컴퓨터 그래픽으로는 그렇게 그려낼 수 없을 듯하고, 그저 흉내내기만 하더라도 그만한 연주를 보일 수 없다.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굉장한 드러머인데 이 배우들이 실존하는 드러머일까? 영화를 본 첫번째 의문은 그것이다. 이 둘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모든 이들의 드럼실력이 굉장했다. 그들의 1/10만이라도 따라갈수만 있다면 하는 바램의 목소리와 여태 너는 우물 안 개구리였어, 라는 식의 질책의 목소리가 내 마음 속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울려대고 있었다.

영화 내에서의 로맨스와 선후배간의 갈등, 연습장면 등등도 볼만하지만 마지막 씬인 각 학교간의 대결에서 오랜 숙적인 모리스 모건 대학과 애틀란타 A&T 대학이 동점을 받자 승부를 가리기 위해 드럼라인이 마주보고 대결하는 장면에서는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 영화는 정말이지 드러머라면, 밴드의 멤버라면, 혹은 악기를 배우고자하는 지망생이라면 꼭 봐야할 영화다. 여태 이런 영화를 몰랐다니! 이 영화를 보면 당신의 실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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