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트'는 우리말로 '미끼'로 해석된다. 영화 <베이트>는 연방은행에서 도난당한 4천 2백만 달러상당의 금괴를 되찾기 위한 미끼로 사용된 앨빈에 관한 이야기다. 새우를 훔쳐 유치장에 들어간 좀도둑 앨빈은 같이 유치되었던 용의자가 숨지자 같이 감방에 있었다는 이유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미끼가 되어버린다.

미국식 일반 다른 범죄영화들과 크게 다를바 없는 소재에 내용도 그다지 흥미롭거나 새롭지 않다. 미국 범죄영화에서 은행에서 금괴 훔친 놈이야 숱하게 등장하는 것이고, 몸안에 첨단 컴퓨터 칩을 집어넣은 것도 그다지 신기하지 않다. 단지 좀 다르다 싶은 것은 아무것도 모른채 미끼가 되어버린 앨빈을 가운데 놓고 추격전을 벌이는 경찰과 도난범의 싸움이 다른 범죄영화들과 차별되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도 초점을 어디다 두었느냐만 다를 뿐이지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느 새로운 요소는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비디오 영화를 벗어나지 못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보긴 했지만 비슷한 아류의 영화들을 왜 계속해서 만들어내는지 모르겠다. 큰 흥행을 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실패할 우려도 없기 때문일까? 보면서 다소 좀 짜증났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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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이 살아 움직이는 공포. 이 소재는 <더 헌팅>이 아닌 다른 영화에서 먼저 봤던 기억이 난다. 영화제목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 영화 역시 집 자체가 공포의 대상이 된 영화였다.

서양의 공포영화들은 대개 흡혈귀나 늑대인간 아니면 기타 다른 괴물이나 끔찍한 살인마들의 등장으로 공포를 자아내거나 최근의 영화들에서 보이는 집 자체가 공포가 대상이 되거나 큰 저택과 같이 폐쇄된 공간에서의 폐쇄공포를 자아내는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동양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어떤 상황에서 느껴지는 상황설정의 공포나 평소 아무렇지도 않던 친구나 동료 등 자연스러운 존재의 공포의 대상으로의 전이와는 공포생성의 근본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힐 하우스'는 130년전 섬유공장을 소유해 막대한 돈을 번 크레인 공작이 지은 큰 저택이다. 그는 마을의 최고미인과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기기를 바랬지만 아이는 모두 사산됐다. 알려진 이야기는 여기까지. 낡고 오래된 이 저택으로 불려온 사람들은 매로우 박사가 불면증 연구를 하기 위해 지원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매로우 박사의 연구는 '불면증'이 아니라 '공포'였다. 집에 관한 전설을 알지 못한 매로우 박사는 진실 반, 농담 반을 섞은 이야기로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지만 사람들은 실제로 공포심에 떨게 되고 지원자 중 한 사람인 넬이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넬은 서재 문서를 통해 이 집 주인인 크레인과 결혼한 여자의 친척이 된다는 것을 알고, 이 집에 얽힌 이야기에 하나하나 접근해 간다. 크레인은 자식이 없자 섬유공장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집으로 불러내 가둬놓은 것이다. 이 큰 집이 아이들로 가득차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영화 <더 헌팅>은 이런저런 컴퓨터 그래픽 효과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다. 줄거리가 빈약하다고나 할까? 우리영화 중에서도 효과는 대단했지만 줄거리는 영 아닌 대표적인 영화가 있지 않은가? 이름하여 '용가리'. 하지만 용가리에 비할만큼의 컴퓨터 그래픽 효과는 아니었고 그다지 규모가 큰 SF나 액션도 아니었기에 이 영화가 재미없음에 대한 관객들의 불만은 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소재는 괜찮았지만 공포물 치고는 참 무섭지도 않고 쟤들 뭐하나 할 정도로 부적절한 상황에서의 배우들의 오버액션은 역시 줄거리의 허술함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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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에 대한 어떤 사전지식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접해 처음에는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 파악하기는 커녕 어떤 장르의 영화인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영화 앞부분에 등장하는 네 명의 남자들과 어떤 괴한(?)들과의 총격전 장면은 영화 장르를 '액션'으로 규정짓게 만들지만, 곧이어지는 문밖을 지키는 나머지 두 동료들의 이해못할 지원행위(?)는 '코미디'영화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도 만든다. 역시 영화 장르는 '코미디 액션'이었다. 그런데 코미디 액션치고는 전반부는 너무 진지했고, 후반부는 너무 우스꽝스러웠다.

역시 코미디 액션의 문제는 영화에 등장하는 살인장면들이 재미삼아 이루어진다는데 있다. 그래서 이 영화 역시 이전에 본 다른 코미디 액션 영화와 같이 '18세이상 관람가'로 규정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다지 볼 건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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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면을 볼 때부터 이 영화 참 오래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알아보니 제작년도가 1977년니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만들어진 영화다. 그렇게까지는 생각지 않았는데 이 영화의 나이가 내 나이보다 많다는 데에서는 약간 의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오랜 작품으로 알려져 내 머리 속에 영화 제목은 익숙해 있는 상태였다. 영화에서 미지란 UFO를 일컫는 것인데 이를 둘러썬 어떤 음모가 있다거나 스릴,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볼만 했다. '재미'는 없었지만 화질 떨어지는 오랜 영화치고는 참 많은 것을 보여주려했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마지막에 돔 형태로 생긴 산 뒤로 숨어들어간 두 남녀가 지켜보게 되는 장관은 정말이지 영화 제목 그대로 '미지와의 조우'였다. 소형 유에포들이 비행장에서 군인들과 마주하게 되고 곧이어 산보다도 더 큰 대형 유에포가 등장해 지구인과 5개의 음으로 대화를 나눈다. 음을 연주하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는 마치 완성된 하나의 피아노곡을 듣는 느낌이 든다. 외계인과의 대화 언어로서 피아노의 5개음을 채택한 아이디어도 신선했고 지구인과 우주인이 만나는 장면도 지금은 다소 진부하지만 그 시초가 이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p.s.
요즘과는 제목 짓는 방식이 참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지와의 조우' 는 이런 유에포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어울릴 법한 너무나 솔직하고 객관적인 제목이다. 요즘 같으면 '안녕 유에포' 이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쩌면 성업성에 찌들은 요즘 영화들보다 때묻지 않은 제목짓기방식인 '미지와의 조우'가 더 순수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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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투 다이(first to die)>는 베스트셀러 작가 제임스 패터슨의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제임스 패터슨은 추리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생소한 이름이다. 그는 셜록 홈스를 비롯한 윗대의 유명한 추리소설 작가들이 사용한 추리수법 이외의 스릴, 액션, 로맨스 등을 배합하여 신선한 추리소설의 장르를 개척한 인물이다.

이 작품은 작가가 2001년부터 구성해 만든 '여성 살인 클럽' 시리즈 중의 하나로서, 1부와 2부로 나뉘어져있으며, 도합 3시간이 넘지만 지루하지 않은 영화이다.

신혼여행중인 부부만을 노리는 연쇄살인사건. 강력계 여성형사 복서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여성 살인 클럽'을 만들어 살인사건의 단서를 확보해나가는데 결국 복서는 여러 증거물을 통해 추리소설 작가가 범인이라고 확정하고 그를 체포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범인은 그가 아니었던 것. 복서는 추리소설 작가의 미출판된 소설의 내용을 본딴 실제 범행으로 인해 그가 범인이라 추정했지만 실제 범인이 그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된 것. 다시 증거를 검토해가며 그의 전 처가 살인범이라 여기고 그녀를 감시하나 그녀는 이미 다른 이로부터 살해당한 후. 그녀를 살해한 것은 추리소설 작가의 두번째 부인이었던 것이다. 결국 사건은 그녀를 범인으로 지목한 채 그녀가 죽음으로써 종결되지만, 가만히 집에 앉아 작가의 추리소설을 읽던 복서는 사건의 진상을 알아버렸다. 두번째 부인은 작가의 지시에 의해 살인을 저지르기는 했지만 꼭두각시였던 것이다. 하지만 체포현장에서 그녀를 자극함으로써 자신이 궁지에 몰릴 것처럼 꾸며 그녀를 범인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는 신문에 오르내린 명성으로 세배의 값으로 이후의 소설을 계약하고 명성을 얻는다. 하지만 복서의 깨달음으로 대면한 그와 복서. 다툼끝에 작가는 복서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보통의 추리소설이나 영화의 반전은 한번으로 족하다. 하지만 이 영화(소설)은 세번의 반전을 이룬 셈이다. 범인이 '작가->이혼녀->재혼녀->복서'로 바뀜으로써 3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가 않다. 관객으로서는 결코 예상할 수 없는 결말이기에 더욱 그렇다.

어린 시절 추리소설을 즐겨 읽던 나로서는 그때의 그 긴장감을 다시 느낄 수 있어 반가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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