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참 길다. 간단히 줄여말하기엔 뭔가 심심하고 그렇다고 길게 다 말하기엔 숨 넘어가고. 편의상 줄여서 말하겠다. <홍반장>은 사실 그다지 재미없다고 들었다. 본 사람들의 입에 따르면. 하지만 난 <결혼은 미친짓이다> 와 <싱글즈> 이후로 엄정화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사실 가수로서도 성공한 그녀이지만 - 지금은 왜 판 안내나 몰라 - 가수로서의 그녀보다는 배우로서의 그녀가 더 맘에 든다. 정말 다재다능한 그녀야. 다 뜯어고치고 무대에서 야한 동작 취해가며 후끈 달구는 그녀이지만 -하긴 뭐 스크린에서도 후끈 달구기는 마찬가지구나 - 난 그런 그녀가 좋다. 채연이나 이효리, 아이비, 미나 등의 여가수들이 음악보다 몸으로 승부하려는 전략을 쓰는 것을 비난하는 나이지만 엄정화에게만큼은 넓은 아량(?)을 베풀게 된다. 이런 불공평한 인간 같으니라고!! 라고 해도 할 말 없다.   난 엄정화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으니깐. 아니 나이도 많고 자연산 미녀도 아닌 다 뜯어고친 미년데 그래도 좋다고? 그래 그래도 좋아. 이상형으로서 혹은 여자로서 좋다기보다는 인간으로서 그녀가 좋다. 니가 그녀를 만나봤어? 아니. 그래도.

  <싱글즈> 와 <결혼은 미친짓이다> 이후 배우로서의 그녀의 캐릭터는 쿨한 녀자로 자리매김한 듯 하다. 알거 다 알고 오히려 남자를 구워 삶아 먹으려는 그녀. 2005년 개봉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도 그러한 쿨한 매력이 발산되었고,  <홍반장>에서는 노출씬은 없었지만 그녀의 쿨함은 여기서도 충분히 발휘되었다고 본다. 그녀가 맡는 역할은 대부분 지적이고 전문직업을 가진 응큼 女다. 그리고 이것은 영화가 아닌 그냥 일반 티비 프로그램에서 비춰지는 그녀의 실제 성격이나 모습과도 잘 일치된다.



* 일당 오만원. 반나절 부어가며 치과자리 알아봐 줬으니깐 복비 내놔. 12500원. 왜냐면 일당 오만원인데, 반나절이면 이만오천원. 집주인 아줌마 반, 당신 반, 그러니깐 만 이천 오백원. 복비야 복비. 이렇게 싼 복비가 어딨어.



* 이 장면은 내가 못 본거 같은데... 어디있었지? 어쨌든 홍반장은 온갖 허드렛일 마다않고 일당만 주면 다 한다.

  큰 병원에 있다가 잘리고 모은 돈이 얼마 안돼 한적한 바닷가 시골마을에 치과를 차린 그녀. 도시에만 살다 시골에 왔으니 적응 안되시고, 그녀를 옆에서 도와주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홍반장. 이 마을 반장이다. 본명 홍두식. 어릴 때 부모님 두 분 다 여의고 마을에서 받아줘서 공동투자로 교육시키고 대학 졸업 후 3년간 이 마을 떴다가 다시 돌아온 뒤 마을 반장이 되었다. 그는 못하는 일이 없어, 중국집 배달, 페인트 칠, 인테리어 디자인, 지붕수리, 슈퍼마켓 캐쉬어, 정육점 알바 온갖 일을 다 한다. 정해진 직업 없이 일당 5만원에 무슨 일이든 하는 잡부(?).

  둘이 홍반장네 집에서 술 마시다 잠들어버리고, 아침에 몰래 나오려다 아침청소하는 동네주민들에게 발각되어, 둘이 잤다는 소문이 퍼져버렸다. 헉. 안잤는데?! 같이 자긴 했지. 그런데 아무일 없이 잤지. 하지만 사실과는 달리 동네엔 이미 둘이 잤다는 소문이 다 퍼져버렸고. 난감. 뻘쭘. 이를 어째. 이 동네에서 어떻게 살아?! 하지만 내가 누구? 윤혜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 나중엔 결국 홍반장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버리지만 말야.

  그렇게 특별한 사건이나 진한 감동은 없지만 쪼물쪼물한 여러 요절복통 사건들과 일상을 비추는 영상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엄정화를 보는 재미를 빼고나면 별로인 영화이지만, 난 엄정화를 보는 맛에 괜찮게 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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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2-2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랑 입장이 같군용.. 내일도 하루쟁일 봐야지..

마늘빵 2005-12-24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하핫. 라주미힌님도 주말이 비됴보는 날?? 전 오늘만 그랬구 내일은 연극보러가요.

하이드 2005-12-25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도 이 영화 보고 싶다.

미미달 2005-12-25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재미있게 본 영화예요. 김주혁의 캐릭터가 정말 잘 어울리는 듯

마늘빵 2005-12-25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다들 안자고 머하삼??? ㅋㅋ 시간이 늦었는데. 일찍 자야 클마스가 길어져요.

어릿광대 2005-12-25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아직 안 본 영화라는. 근데 홍반장의 반장은 형사 반장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마늘빵 2005-12-2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우리나라에선 영화를 낼 때마다 온 국민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감독이 있고, 영화를 낼 때마다 꾸사리 먹는 감독이 있다. 전자에는 박찬욱, 곽경택, 봉준호, 강제규 등이 뽑히고, 후자에는 김기덕 그리고 이 영화의 감독인 홍상수가 뽑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희한한 것은 국제 머머 영화제에서 상을 제일 많이 받는 감독이 누군고 하면 후자인 김기덕과 홍상수 감독이다. 물론 전자의 박찬욱 감독도 복수 3부작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긴 했지만서리. 국내와 국외에서 사랑을 받는 박찬욱은 이상할게 없다쳐도, 국내에선 욕먹고 국외에선 칭송받는 김기덕과 홍상수는 뭐니.

  그들이 왜 욕을 먹는가. 두 감독이 만드는 영화의 공통점은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지극히 남성중심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화에서 여자는 남자의 사랑의 대상이기보다 성적인 대상으로 자주 비춰진다. 그것은 실제 감독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이미 다 만들어져 감독의 손으로부터 떨어져 버린 작품에 대한 보는 이들의 새로운 해석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감독의 의도가 어떻고 이건 이렇게 해석해야되고 하는 식의 깊이있는 토론을 거치지 않은 채, 극장 좌석에 앉아 영화를 감상하는 일반인들로 하여금 충분히 불쾌감을 심어줄 수 있는, 심어줄 소지가 다분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럼 난 어떻게 보느냐? 나도 그렇게 본다. 두 감독의 영화에서는 모두 여자는 남자의 섹스의 대상으로 치부되며 너무나도 지극히 남자의 늑대적 본성만을 앞세운 장면들이 곳곳에서 드러나 불쾌감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또다른 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남자들의 머리 속 상상의 장을 장면으로 표출한 솔직한 영화로 해석할 수도 있다. 까발려 놓고 이야기해보자. 그런 상상(어떤거? 저 감독의 영화를 보면 알아) 한번쯤 안해본 남자들 있는가? 흠. 없을 수도 있지 머. 그런데 솔.직.히. 난 아니다. 내가 부도덕한 위인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난 그런 상상 머리 속에서 해본 적 있고, 그게 한 두 번도 아니다. 지금 홍상수 감독을 변호하자는 건 아니고, 그렇게 영화를 달리 해석해서 볼 수도 있다 라는 또 하나의 관점을 제시해주고자 하는 것일 뿐.

 홍상수 감독의 대표적인 영화로는 <극장전> <생활의 발견> <오 수정> <강원도의 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 있는데 모두 다 알려진 영화들이고, 이 영화들이 그가 오버에서 내놓은 모든 영화다. 언더의 생활은 잘 모르겠고. 내놓은 모든 영화들이 상업적으로 대박을 터뜨린 그런 영화들은 하나같이 없지만 - 왜냐면 그것은 관객이 그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관객이 들지 않는 그의 영화는 대박이 날 수가 없다 - 잘 알려진 영화이다.

  그의 영화는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들을 가까이서 살펴봄으로써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는 매우 천천히 진행되고, 별다른 기승전결이 없다. 높낮이도 없어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흥분과 감동, 슬픔을 선사하지도 못하고, 밋밋하게 그저 일상을 뒤따라가며 찍어 보여줄 뿐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남자가 7년전의 각자의 첫 사랑을 떠올리며 찾아가고 이전을 떠올리며 어떻게 그녀와 섹스를 할까 속으로 궁리할 뿐. 카메라는 그 두 남자를 쫓아가며 찍을 뿐이다.



* 이 장면 이후 유지태의 손은 그녀의 치마로 들어간다. 그녀는 말한다. "하지 말랬잖아요!!!" 유지태는 말한다. "못들었어요..." 이어서 그녀는 말한다. "그냥 안고만 있었으면 같이 놀 수도 있었을텐데... " 바로 이런 대사들이 홍상수가 욕을 먹는 이유다. 영화의 말미에 유지태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술자리에서 진실게임을 할 때, 한 여학생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섹스는 언제했고, 누구랑 했고, 느낌은 어땠어?"  그리고 여학생은 순순히 말한다.

"이틀전에 했고, 술마시다가 남자가 원하는 거 같아서 했고, 느낌은 그냥 그랬어요."

홍상수가 욕을 먹는 이유다.

 

  그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영화의 의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꿈과 현실의 관계에 관한 영화이며, 사랑의 환상에 대한 영화이다. 사랑이란 바닥날 수 없는 주제이며, 사랑을 하면서 가장 강한 욕구를 느끼고 모든 환상을 경험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라고. 그것이 사랑의 꿈과 현실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지, 사랑의 환상을 다루고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쨌든 감독의 의도는 그러했다 라고 하니깐 그렇게 받아들이는 수 밖에. 그것이 사랑의 환상인지, 섹스의 환상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개봉한지 얼마 안된 영화 <애인>의 노출 장면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성현아. 그녀는 이 영화에서도 두 남자의 성적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사랑의 대상으로(?!). 성현아는 이 영화로 해외 어느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녀의 연기는 나도 인정. 그녀는 영화 속에서 이런(어떤?) 역할을 자주 맡게 되는데 그 역할들이 그녀의 캐릭터와 썩 잘 어울린다. 이게 그녀를 욕하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말하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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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12-25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상수 감독 영화는 너무 사실적이어서 기가막히고, 헛웃음이 나오죠. 근데, 사람들이 욕도 하나요? ^^;
보고 나오면 소주 한잔 마셔줘야 할 것 같은

마늘빵 2005-12-25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은 별로 안좋아하던데요. 홍상수랑 김기덕. ^^ 그쵸. 홍상수 너무 사실적이고 때로는 그 사실을 너무 넘어서기까지(?) 하지 않나 싶어요.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많이 비난을 받죠.
 

   장장 두시간 오십분의 러닝타임. 콜린파렐, 안젤리나 졸리, 안소니 홉킨스 의 빵빵한 출연진. 하지만 영화는 개봉 당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의 입소문따라 그다지 화려하지도, 많은 것을 보여주지도, 감동을 주지도 못했다. 두 시간 오 십분이 너무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

  외국 영화 배우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나조차도 알고 있는 콜린 파렐와 안젤리나 졸리, 안소니 홉킨스를 등장시키고도 이 정도 밖에 안되는가 싶은 영화다. 콜린 파렐은 사실 많이 알려진 배우는 아니지만 영화 <폰부스>와 <데어데블>로 나의 마음을 사로 잡은 배우다. 젊은 탐크루즈라고 여길만큼 외모에서 느껴지는 인간다움과 부드러움, 그렇게 튀는 배우는 아니지만 서서히 다가와 스크린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풍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알렉산더>의 주연을 고르고 있을 때, 그를 지목하고 그의 금발과 연기에 필받았다고 하는데 사실 이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이전작에서 느껴지는 그만의 매력이 발산되지 못했다는 느낌만 받았다. 안젤리나 졸리 역시도 마찬가지. 아직 젊디 젊은 그녀를 콜린 파렐의 어머니 역할에 맡긴 그 설정 자체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는데 졸리만의 매력은 알렉산더의 어머니 역할로는 부적합하지 않았나 싶다.



* 알렉산더 역의 콜린 파렐. 그의 금발과 수려한 외모는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알렉산더의 카리스마를 확인하기에는 역부족.



* 아니 이게 누구? 섹시의 대명사 안젤리나 졸리가 아닌가? 그러나 그녀 역시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로는 부적합했다는 생각. 그녀는 머니머니해도 섹시로 승부를 봐야해. 여기선 그녀의 섹시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효리하테 장희빈 역할 시켜봐 어울려? 알렉산더 엄마를 장희빈에 비유하는건 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 알렉산더 대왕의 마지막 전쟁. 여긴 인도? 코끼리를 탄 부족과 알렉산더의 무적의 군대가 맞붙었다. 그리고 알렉산더는 여기서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이 전쟁을 치루기 이전까지의 장장 7년에 걸린 대 장정. 병사들은 죽어나고 지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알렉산더를 원망하고 증오하지만 그의 부상으로, 그리고 그의 회복으로 병사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그리고 이 전쟁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실제 역사속의 인물 알렉산더가 걸어왔던 길을 영화로 만든 것일 뿐.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 한다는 의미 외에 이 영화를 통해 다른 무엇을 느끼기는 힘들 듯 하다. 엄청난 엑스트라와 물자를 동원해서 치룬 스케일 큰 전투 장면에서 전쟁의 잔인함과 참혹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영웅이야기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사랑 조차도 이 영화에서는 별다른 감동을 선사해주지 못한다. 이래저래 관객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없으니 당연히 역사속 인물 알렉산더의 다큐멘터리 역할을 해주는 것  밖에. 다큐멘터리 치고는 참 재밌고 실감나는 영화지만 스케일 큰 전쟁 영화로는 그다지 아니올시다 이다.   이와 비슷한 류의 영화들, <트로이>, <킹덤 오브 헤븐>, <킹 아더> 에 비해서 좀 떨어진다.

  세계사 시간에 배우는 알렉산더의 대장정과 업적들. 그것을 영상으로 확인하는 작업 뿐 그 이상 아무 것도 없다.

하나. 알렉산더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토록 기나긴 세월 동안 수많은 병사들의 죽음을 담보로 한 채 타국을 정벌했던 것일까. 전쟁에 지친 병사들은 묻는다. 이 전쟁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더냐? 부와 명예다. 그렇다면 그 부와 명예는 누구를 위한 것이냐? 당신을 위한 것이냐? 한 왕국의 야망으로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다. 누구는 자식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누구는 인생의 노년기를 전쟁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뭘 위한 전쟁인가. 아무리 좋게 봐도 알렉산더의 야망 그것 말고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정벌을 설명하지는 못할 듯 싶다.

둘. 알렉산더는 정벌하는 곳 마다 그곳의 지배자를 존중해주고, 그들의 문화를 인정해주었다. 즉 이전에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편견, 타민족은 야만족이다 라는 생각을 뒤집었다. 그래서 전쟁에서 이기고도 야만족을 대우해주는 바람에 아군 진영으로부터 미움을 받기도 했다. 알렉산더는 그것을 그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라 말했다. 그들은 분명 알렉산더가 지배하기 이전의 삶과 다른 삶을 살았고, 그리스 식의 교육을 받았다. 이것을 해방이라 볼 수 있는가. 지금 미국이 타국을 침략하고 그네들의 문화를 그곳에 뿌리내리게 하는 문화적 식민 작업과 알렉산더의 그것이 다를 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늘의 미국도 이라크를 침략하면서 그들을 독재자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억압받는 이들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지만 과연 그러한지는 지금의 이라크를 보면 알 수 있을 터. 알렉산더는 그리고 미국의 부시는, 타국의 이민족들을 '해방시킨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받아들이는 그네들도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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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오웰의 '1984년'과 매트릭스의 만남, 이퀼리브리엄

"매트릭스는 잊어라" 라는 문구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인 영화 포스터. 하지만 한국인으로서 그 뜻을 알지 못하고는 쉽게 기억하기 힘든 저 제목 '이퀼리브리엄'은 홍보용으로는 부적합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걸 우리말로 번역해서 '평온'이라고 하면 그건 그냥 원래 제목을 놔두느니만 못하다.

  사실 이 영화를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듯 하다. 지난주 주말에 티비에서 밤12시에 해줬다고 하는데 나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그 전에 비디오를 빌려다 봤다. 예전에 군대에서 휴가 나와 극장에서 본 영화이기도 하지만 본지 꽤 지났기에 다시 봤지만 내용은 생소했다.

  나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조지오웰의 <1984년>이 머리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1984년>을 영화로도 봤고, 책으로 본지라 그 줄거리와 충격이 머리속에 오래도록 남아있다. 뭐 레포트나 논문을 쓰면 으레 나오는 현재 사회는 과거 사회에 비해 어떻게 변했고 어떤 병폐가 있다 라는 식의 서문과 다를 바 없는 내용이지만 그것을 소설화, 영화화 한 작품은 그 표현력이 매우 빼어났다. 원작이 <1984년>은 아니었지만 너무나도 흡사했다는 면에서. 



* 이 화려한 존 프레스턴의 총술. 이걸 영화 속에선 '건카타'라고 한다. 최단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총술. <매트릭스>이후 액션은 끝났다라고 생각했지만 이 영화 속 액션은 또다른 놀라움을 선사해준다.



* 존 프레스턴의 건카타에 순식간에 쓰러지는 클레릭들.

  <이퀼리브리엄>은 '감정'이 없는 사회를 다루고 있다.  인간은 '이성'과 '감성' 두 가지 영역을 모두 갖고 있는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사회는 '감정' 이 없다. '감정'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것들 또한 이 사회에서는 없어진다. 피카소의 추상화를 비롯하여, 아름다움과 추함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 거울, 음악, 미술, 예술적 가치가 있는 모든 작품들과 물건들은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우리의 감정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감정을 없애기 위해 하루 세번씩 꼬박꼬박 프레지움이란 약을 주사놓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마치 로보트와도 같이 딱딱한 메마른 사람들로 변한다. 감정이 없으니 당연지사. 하얗게 창백한 얼굴을 하고 아무런 감정 없는 딱딱한 말투는 가족 사이라고 해서 달라질건 없다. 그러나 이를 거부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을 칭해 '반군'이라 하고 이들은 주어진 약을 먹지 않고 몰래 버리거나 숨겨놓으며 '감정의 제거됨'을 거부한다. 또 이들을 잡는 이들이 있었으니 '클레릭'이었다. 이들은 군인, 경찰과 같은 존재들이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이 두 그룹들간의 싸움이다. 총사령관 하에 클레릭은 반군들을 색출하고 반군들은 이들에 대항하고... 극중 한 클레릭 존 프레스턴은 그의 파트너가 범죄현장에서 책을 하나 들고 증거물수집과에 넘기지 않는 것을 보고 그를 의심하게 된다. 결국 그가 투약을 거부하고 책을 읽고 있는 현장을 목격 그를 사살한다. 그러나 그를 사살한 존 프레스턴이 결국 나중에는 자신이 죽인 동료와 같은 행동을 하게 된다. 그와 사랑에 빠졌던 여자를 대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동정, 안타까움, 분노 등등의 감정을 지니게 되면서 그는 반군에 협력하게 된다. 그리고 끝내 존재하지도 않는 총사령관의 얼굴을 한 부총령관을 사살함으로써 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람들에게 '감정'을 되찾게 해준 것이다.

  조지오웰의 <1984년>은 이와 비슷하다. 감정을 느껴서는 안된다. 사랑에 빠져서도 안된다. 그러나 소설속의 주인공은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결국 그녀와 사랑을 나누던 현장을 목격당해 끌려간다.

  '감정'이 없는 삶이란 과연 가능할까. 영화에서 존 프레스턴이 사랑한 반군 여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삶이란 당신에게 어떤 것인가?" 존 프레스턴은 '국가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말을 꺼내는 그 조차도 자신이 사는 목적과 의미에 대해 의심을 한다.
 
  우리는 신문기사와 저녁뉴스에서 사회의 무질서와 혼돈의 현실상을 볼 때마다 '감정'을 절제하고 '이성'으로써 해결해라 라고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한다. 또 그것이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또 그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감정이 없이 이성만으로 된 사회는 너무나 메마르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린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슬픔, 기쁨, 분노, 동정, 연인 등의 감정을 느끼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 좋아함과 사랑 등의 긍정적인 감정도 있지만, 증오함과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도 존재한다. 긍정과 부정이라는 양 갈래로 나누었지만 엄격히 어느 하나가 긍정이고 부정이라고 단언하지는 못한다. 때에 따라서는 분노가 우리에게 긍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하고 사랑이 부정적인 요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감정을 통해 살아가고 삶이란 곧 감정의 표출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감정이 제거된 사회의 단면을 지켜봄으로써 새삼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으로써 행동해라' 라고 한 절대진리의 명제처럼 보이는 문장이 왜 이렇게 거짓으로만 느껴지는건지.

다음은 에롤 파트리지(숀 빈)가 존 프레스턴에게 죽으면서 낭송한 시이다.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 William Yeats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and the dark cloths
Of night and light and half-light
I would spread the cloths under your feet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하늘의 융단을 소망하며 - 윌리엄 예이츠

금빛 은빛 무늬 든
하늘의 수놓은 융단이
밤과 낮과 어스름의
파란, 침침한, 검은 융단이 내게 있다면
그대의 발밑에 깔아 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은 오로지 꿈뿐: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아 드렸으니: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

p.s 중학생 아이들에게 이 영화의 의미에 대해 말해주기는 어려울 듯 하다. 이 영화를 보여주면 전반부의 지루한 장면들엔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후반부의 화려한 존 프레스턴의 총술에 주목하며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그저 영화의 의미를 배제한 채 재밌는 영화로서 보여줌이 좋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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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12-20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예이츠의 시가 죽입니다.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 캬~
영화줄거리를 보니 '트래블러'란 최근에 나온 책도 생각나네요.

플라시보 2005-12-20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이 영화 비디오로 빌려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어제 가 보니까 동네 비디오 가게가 말도 없이 이사를 갔더라구요. 이제 어느 비디오 가게를 뚫어야 할지..쩝

마늘빵 2005-12-20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 ^^ 비됴에선 저렇게 해석하진 않았는데 어떻게 해석하건 캬~ 소리 하오죠. '트래블러'는 뭔가요. 그거 검색해봐야겠네요.

플라시보님 / 주변에 비됴가게 없어진데 많아요. 저희 집 근처에도 한군데 밖에 없다는. 훔. 세군덴가 있었는데 다 없어지고. 재밌습니다.

바람구두 2005-12-20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아프락사스님!
그런데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을 단순히 "평온"이라고 보기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철학 용어로는 의지(意志)의 자유를 주장하는 비결정론(非決定論)으로서의 "균형설"을 의미하거든요. 백과사전에 나오는 말을 옮겨 보면 이 영화의 제목으로서 단순히 "평온"이 아니라 좀 더 철학적인 제목이란 걸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상반(相反)하는 두 동기(動機)가 같은 힘과 가치에 의해 균형상태에 있을 때, 의지는 어떠한 외적 원인에 의해서도 제약·규제되지 않고 자유롭게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하며 의지의 자유를 주장한다."... 어때요?

그런 점에서 저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이퀄리브리엄"은 서로 대조적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해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일종의 결정론이니까요. 그리고 존 프레스톤(John Preston)이란 이름은 종교개혁 당시 급진적 청교도 신학자의 이름이자,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이란 동방의 전설 기독교 왕의 이름하고도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좀 더 생각해볼 일이긴 하지만...

마늘빵 2005-12-20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바람구두님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진 못했는데요. 그에 대해선 자세히 아는 바가 없어서요. ^^ 덕분에 많이 배웁니다.
 
놀이터 옆 작업실 - 홍대 앞 예술벼룩시장의 즐거운 작가들
조윤석.김중혁 지음, 박우진 사진 / 월간미술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중학교, 고등학교 도덕시간에 '진로적성' 단원에서 그렇게 배웠다. 직업을 선택할 때는 돈, 명예, 사회적 지위를 떠나 자아실현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배우기는 그렇게 배웠으되, 사회로 내던져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는다. 또, 지금 나에게 배우고 있는 나의 사랑스런 제자들도 책에선 그렇게 말하지만 그들에게 "너의 직업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 "그 직업을 택하는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그들은 여지 없이, 절대 다수가, '돈'이라고 대답한다.

  모든 것이 돈에 의해서 움직이는 세상이다. 돈은 곧 신이다. 얼마전 신문에 이런 기사가 나기도 했다. 아무리 밤을 새고 일이 고되도 좋으니깐 연봉이 높았으면 좋겠다고. 자기는 직장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연봉을 최고로 고려 할 것이라고. 현재의 자신의 직장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현 직장인들이 그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중학생이 생각하는 직업의 최고 가치나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나 최고 가치는 돈으로 수렴된다.

  그런데 <놀이터 옆 작업실>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삶은 이와 다르다. 그들은 마치 인생을 달관한 듯 하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것이요, 계속 없더라도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는 등 그들은 위에 언급한 저들과 달리 너무나도 지나치게 돈을 천시하는 듯하기까지 보인다. 돈 니가 뭔데?! 난 그런거 필요 엄떠!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정말 교과서에서 말하고 있는 자아실현을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것이고, 이 일을 함으로써 나는 나의 존재감을 맛보므로 내가 해야할 일은 이것이다. 벽에 그림을 그리고, 점토를 가지고 이쁘장한 장식품을 만들고, 남들이 필요 없다고 버린 천조가리로 쌔끈한 가방을 만들어내질 않나, 이들이 하는 짓(?)을 보자면 마술사가 따로 없다. 그들이 즐기는 그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그 일은 대부분 이렇게 손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같은 돌맹이를 봐도, 같은 나무를 봐도, 같은 벽을 봐도, 같은 흙을 봐도 남들과 다르게 본다. 남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 그것들을 통해 생각을 하고, 머릿속으로 이미 작업을 시작한다. 아 저것은 무엇이 되겠구나, 저걸 가지고 이렇게 하면 이런 이쁜 예술작품이 탄생하겠구나. 처음부터 예술작품을 만들으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저절로 끝에가선 예술작품이 되었다.

  "원석이 매력적인 이유는 똑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다는 거에요. 가공하지 않은 거니까 모양이 전부 제각각이죠. 전 원석을 하트 모양이나 이상한 모양으로 다듬는 건 싫어요. 그냥 원석 그대로의 모습을 어떻게 잘 보여줄 수 있을까만 생각해요."

 '책은 무언의 물체가 아니다. 책 속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까? 어렸을 땐 커다랗게 높은 나무를 바라보면서 저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를 상상했다. 나무 속에는 어떤 생명들이 자라고 있을까. 나란히 꽂힌 저 책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나는 책을 숨쉬는 하나의 생명이라 생각하고 책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관해 상상했다. 나무 등걸의 형상으로 향이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수제 종이 작업 후 책 속에도 나이테가 자라고 있지 않을까. 나이테가 마치 태아가 자라는 것처럼 크고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이들이 삶을 달관해있는 것 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돈을 벗어나 자아실현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이 하는 일을 통해 - 대부분 손으로 하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 넓은 생각의 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손으로는 작업을 하고 있지만 머리 속으로는 생각을 하고 사유를 하고 있다. 그들은 철학자다. 플라톤이나 칸트, 데카르트, 라깡 아마 이름도 못들어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철학자의 이름과 그들의 이론을 한톨도 모르더라도 그들 각각은 이미 철학자다. 철학자는 철학의 역사를 알고 있고, 자신의 독특한 이론을 가진 사람만이 철학자가 아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사유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그들 자신이 이미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철학자'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다. 도대체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으며, 누구로부터 그런 영향을 받았던 것일까. 법정스님에게 '무소유'라고 배웠던 것일까. 도에 이른 스님처럼 삶을 달관한 그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은 그저 부럽기만 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들이 나중에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현실적인 걱정도 든다.

  그러나 그들이 하고 있는 작업 자체는 그 자체로서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작업이며, 나중에 그들이 무엇을 하든, 무엇이 되든 간에 그들의 삶의 토양을 가꾸는데 일조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마음껏 즐겨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이들이여. 그리고 이곳 놀이터로 모여라. 함께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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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12-2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귀차니즘 때문에 계속 미루고 있다가 이제서야 올렸어요. 읽은지는 오래됐는데

BRINY 2005-12-20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여러분들께서 계속 리뷰를 올려대시면 사고 싶어지잖아요~

마늘빵 2005-12-21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부추기는건지도 몰라요. 짜고서.

히피드림~ 2005-12-2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장 좋기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 일이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랐을때 돈도 함께 따라오는 건데...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몇 안되는 거 같죠? 그래두 전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왠지 부럽네요.^^

마늘빵 2005-12-22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러게요. 좋아하는 일 하다가 어느 정도 수준에서 돈 버는 거(박지성, 이영표) 그게 제일 좋은거 같아요. 너무 젊었을 때부터 돈돈 하다가는 평생 돈의 노예로 살기 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