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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보는 마르크스
조너선 울프 지음, 김경수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11월
평점 :
품절
입대 한 뒤 자대배치 받기 바로 전이었다. 궁금증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변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책은 마음대로 볼 수 있나요? 듣기로는 고참들이 책 못보게 한다고 하던데..." 상대는 대답했다. "그럼 되고말고. 다 되니까 걱정마라." 그래서 내가 추가질문을 던졌다. "마르크스 책도 되나요?" (한참 뜸을 들이더니, "...... ...... 왜 하필 마르크스를 보려고 하지?" 군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나는 실제로 보지도 않을 거면서 반공주의 교육의 선두가 되었던 군대에 일부러 이런 질문을 던졌다. 재밌잖아. 반응도 궁금하고. 나 싸이코냐고? 흠. 약간 그런가봐.
내가 군대에 간 것이 2001년 12월이었고 제대한 것이 2004년 1월이었으니 세월이 많이 흐르진 않았다.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시대의 변화를 절감할 만큼의 세월은 아니다. '마르크스'라는 이름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되려 1980년대에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마르크스를 읽던 시절이었으니까.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마르크스는 이름만 들어봤다. 대학 강단에서는 마르크스를 다루지 않았다. 우리 학교만 그런건 아닌 듯 했다. 강단에선 독일철학과 그리스철학이 강세를 이루었고, 가끔 영미철학과 프랑스철학이 논의되기도 했다. 마르크스는 그가 철학사에 남긴 업적에 비해 너무나 지나친 홀대를 받고 있었다. 왜? 마르크스를 억압하던 1980년대 대학강단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그 하나일테고, 전공자가 많지 않다는 것도 하나일테지. 마르크스는 언제나 한편으로 뜨거운 감자였고, 한편으로 구석에 내던져진 못생긴 돌덩이였다.
왜 그런데 지금도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는가? 마르크스의 인기를 실감하지 못하겠다고? 그런 분은 지금 바로 인터넷 서점으로 달려가서 검색 목록에 '마르크스'라고 쳐보시길. 엄청난 책들이 검색될 것이다. 또한 그 책들 중 다수는 판매량이 엄청날 것이다. 보통 3000부 이상 정도 찍히면 손해보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직접 책을 썼던 어떤 철학자로부터 들은 말. 마르크스라는 이름으로 낸 책들은 손해를 보기는커녕 오히려 돈벌이를 톡톡히 해주고 있다. 마르크스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 흥행코드이다. 마르크스가 죽은지 한참 지났고 소련이 붕괴한지도 한참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의 생애를 다룬 책들, 마르크스의 저작들이 계속해서 씌여지고, 번역되고 있다. 아니 도대체 왜? 실패한 혁명을 노래한 주인공인데.
<한권으로 보는 마르크스>는 이 물음에 대해 대답해준다. 왜 지금도 맑스를 읽어야 하는가? 라는 영문원제를 달고 있는 이 책. 새로운 한글제목보다는 영어원제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마르크스의 사상과 생애를 소개한 책들은 널렸다. <자본론> <독일 이데올로기> <공산당 선언> 등의 책들이 새로이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마르크스 평전> 과 같은 책도 나왔다. 수많은 마르크스 서적이 나와있는데 이 책은 그 많은 책들 틈을 사이에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마르크스를 접하기는 쉽지만 - 책이 널려있다는 점에서 - 마르크스를 읽기는 쉽지 않다. 대학 학부시절 마르크스에 관심은 있었지만 마르크스를 읽지 않은 건 어렵기 때문이다. 칸트나 헤겔도 어렵지만 마르크스도 어렵다. 아니 뭐 쉬운 철학자가 어디있겠냐만 그래도 어렵다. 누가 가르쳐주는 것도 아니고 혼자 읽어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겁먹고 안읽었고 졸업했으며 세월이 꽤 흘렀다. 사실 지금도 마르크스는 내게 어렵다. 이 책은 나 같은 이들을 위한 책이다. 마르크스를 접하고 싶지만 어려워서 떨고 있는 이들을 위한 책. 마르크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가장 간단하게 압축적으로 보여준 책이라는 생각이다.
제 1장 서문, 2장 초기 저작들, 3장 계급 역사 그리고 자본, 4장 왜 여전히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참고문헌과 '깊이읽기'를 위한 안내'까지 총 5장으로 나누어져있다. 서문에서는 마르크스의 생애를 위주로, 그리고 한장씩 뒤로 넘어가며 그의 초기저작에서 후기저작으로, 또 경제, 정치, 종교, 소외 등의 그의 철학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개념들을 짚어가며 간단하게 살펴보고 있다. 쉽게 썼다고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난 아직도 그의 이런 개념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감히 이 책을 읽고 마르크스를 조금 알았어요, 라고는 말 못하겠다. 이 얇은 책 한권을 읽더라도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야지, 그냥 소설책 읽듯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해선 마르크스를 알 수 없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 넘어오는 단계를 설정하고, 자본주의의 병폐를 지적한 마르크스. 자본주의와 공존했지만 맑시즘을 기초로 한 舊 소련사회는 미국의 자본주의에 졌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병폐는 분명 드러나고 있고, 이런 시점에서 마르크스는 주목받고 있다. 그의 지적이 모두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 자본주의를 비판한 최초의 철학자이고 마지막 철학자였다는 점에서 그는 의미가 있다.
"철학자들은 세계를 오직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해왔다. 문제는 그것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마르크스의 묘비명이자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의 글)
많은 철학자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해석을 해왔고, 또 그것이 철학이 해야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대개는 해석으로 그쳤고, 철학은 현실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마르크스 또한 새로운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다. 그러나 그는 나아가 현실의 문제를 지적하고 변화시키려고 했다. 그는 실천한 철학자이다. 구름 둥둥 추상적인 이야기만 하는 철학자가 아니라 바로 이 땅의 현실 속에 잠재되어 있는 혹은 드러나고 있는 문제들을 지적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한 철학자이다. 그래서 그는 철학자이면서도 정치학자, 경제학자로도 불리우는 것이다. 그가 건드리지 않은 분야는 없다. 종교, 정치, 경제, 사회, 사상 등 거대한 영역들을 하나 둘 점령해나갔다.
왜 우리는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가? 마르크스가 모두 옳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저자는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며 마르크스의 사상과 생애를 소개하며 그를 비판하기도 한다. 마르크스에게 있어 부족한 점은 무엇이고, 어떤 점에서 그의 의견이 틀렸는가를 이야기한다. 결국 마르크스의 가장 거대한 이론들은 입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사유 마저 폐기할 순 없다. 입증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폐기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옳았건 그르건 간에 그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검토해봐야할 철학자이다.
"위대한 철학자들이 작품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오로지 자신들이 바로 진리를 발견했거나 발견 직전에 있다고 정열적으로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철학 작품의 중심부에는 언제나 진리를 향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결과물의 가치는, 실제로 그 작품들이 이 목표를 성취했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논외로 하면, 진리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있다. 이런 방식으로 이해할 때, 마르크스의 저작들은 다른 어떤 것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P142-143)
그는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