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프란치스코 - 호르헤 베르고글리오와의 대화
교황 프란치스코 외 지음, 이유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2월
절판


교회는 최근 몇 십 년간 노동의 비인간화를 고발해왔습니다. 우리는 자살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심각한 경쟁 관계에서 실패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일을 단순히 기능적인 측면에서 봐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의 중심이 이익을 내는 것이나 자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이 존재하는 겁니다. -59쪽

성직자이건 평신도이건 가톨릭 신자라면 모두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매우 지혜로운 신부님 한 분이 제게 말씀하시길, 지금 우리는 우리 안에 든 99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선한 목자의 비유와 정반대 상황에 당면해 있다고 하셨습니다. 현재 우리 안에는 단 한 마리 양이 있을 뿐이고 99마리 양이 길을 잃었는데 찾아나서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현재 교회가 기본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일이 규정을 완화하거나 제거하는 일 또는 무언가를 용이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찾아 거리로 나서고, 신자들 각자의 이름을 알 정도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가톨릭 신자의 사명이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자신들에게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129-130쪽

교회가 교구의 일만 처리하는 데 급급하고, 지역사회에만 틀어박혀 산다면 골방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생기는 일이 똑같이 발생하게 됩니다. 신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위축되는 것이지요. 아니면 곰팡이가 피고 습기로 눅눅해진 밀폐된 방과 같은 상태가 됩니다. 자기참조적인 교회에서 자기참조적인 인간에게 나타나는 편집증과 자폐증상이 똑같이 나타나게 됩니다. 물론 길거리로 나가면 길거리에서 뛰놀던 옆집 아이와 같이 사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사고를 당해 고통받는 교회가 병든 교회보다 백 번 낫다고 생각합니다.
관리주의적인 교회로 전락해 작은 신자 집단만을 지키려고 하는 교회는 장기적으로 병든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집에만 칩거하고 있는 목자는 진정한 양치기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다른 양을 찾아나서는 대신 우리 안에 있는 양들의 털만 매만져주는 미용사일 뿐입니다.
-130-131쪽

노동은 결과를 도출해내고 개인에게 숭고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며 자신이 신이 되어 뭐든지 창조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184쪽

우선, 사람 간 만남의 문화란 과연 무엇인가를 심층적으로 숙고해야 합니다. 간단하게 말해 타인이 나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을 가정하는 문화입니다. 그리고 개방적인 태도로 편견 없이 경청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타인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상대방이 왜 나와는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을까라는 생각이나 그 사람은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191-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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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 철학이 묻고 심리학이 답하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실
로랑 베그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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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기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타인의 입장에 서서 타인의 마음을 가장할 수 있다. 그래서 남들이 생각을 상상할 수 있고 우리가 그들에게 바라는 생각과 실제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가늠할 수도 있다. 시각 차이의 전제가 되는 타인의 내면에 대한 의식을 ‘인지적 공감’이라고 한다. -29쪽

다리에서 누군가를 밀어버린다고 할 때에는 감정의 프로세스를 관장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지만, 선로 변경 스위치를 누른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 영역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따라서 감정이 개입할 때에는 "사람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것은 부도덕하다."는 거대 원칙에 입각한 판단이 나오고, 감정이 개입하지 않을 때에는 "한 명보다는 다섯 명"이라는 공리주의적 판단이 우세할 수 있는 것이다.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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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4-01-10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심오한 이야기인것 같네요.
그리고 늦었지만 이프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O^

마늘빵 2014-01-18 07:51   좋아요 0 | URL
네! 이제 봤네요. 카스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의롭게 말하기 - 폴리티컬 코렉트니스 Political Correctness
박금자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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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어에 관한 한 보수주의자다. 학습 제도를 통해 배운 언어, 언어 규칙, 맞춤법, 좋은 말, 제대로 된 글쓰기는 우리 마음속에 새겨져 내재화된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꾸중과 칭찬, 벌과 상을 통해 학습한 언어 지식이나 언어 규칙이 자의적으로 틀려먹은 것이라는 생각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마스터해낸 나의 업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캐머런)-20쪽

단어는 정치적 힘을 갖는다. 그래서 ‘단어를 누가 정의하는가?’는 중요한 문제다.(로빈 레이코프)
-49쪽

미국의 신좌파가 1970년대에 ‘political correctness’를 집단 안의 코드 언어로 사용했을 때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 예를 보기로 하자.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이 단어를 썼었다.

-바른 노선에 따라 바른 말만 하여야 한다는 자신들의 규칙을 조롱할 때
-누구도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그 누구도 전적으로 올바를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할 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라는 말은 다음의 경우에 야유로 사용했다.

-쓰레기 로맨스 소설을 읽는 동지를 보았을 때
-누구인가가 아첨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
-동지가 부적절한 성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고 그 사실을 고백할 때 -57쪽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서느 흔히 (pc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답변이 나온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차별과 편견을 보이지 않고 어느 정도 존중하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62쪽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거나 차별받는 그룹을 배제하거나 하찮은 존재로 만들거나 모욕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표현이나 행동을 피하는 것.("온라인 옥스퍼드 영어 사전"의 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정의)
-63-64쪽

말이 가진 독보적인 역할 때문에 사람들은 말에 관심을 갖는다. 모든 넓이와 깊이의 사람 생각과 노력을 담아내는 것은 언어다.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관점도, 문학도, 우리 삶의 방식도 결국은 말로써 표현한다. 우리는 선조들의 생각도 언어를 통해 이해하며 우리 앞날의 계획도 언어로 세운다. 지구 밖으로 우주선을 보낼 때도, 먼 미래를 위해 타임 캡슐을 묻어 둘 때도 커뮤니케이션의 상징으로 언어를 사용하여 우리가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쪽지를 넣어 둔다. 우리가 사회를 알기 위해 사용하는 것도 언어이고, 사회 사이, 인간 사이에 일어난 갈등과 문제를 풀 때 사용하는 것도 언어다. 언어에 의해 영향 받지 않는 사회는 없다. 언어 연구로 혜택 받지 않는 사회도 없다. 물론 언어는 장벽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장벽을 없애기 위한 해소의 커뮤니케이션도 바로 언어로 한다.(사람들은 왜 그렇게 말에 관심이 많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데이비드 크리스털의 답)

-78쪽

정치적 올바름 운동가들은 ‘말은 생각을 만든다.’는 강한 워프주의에서 한 발 물러나, 언어는 생각과 편견을 다듬는 형삭기라고 발언하며 운동을 펼쳤다. 언어란 의사소통의 수단이며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라는 언어학 개론의 첫 문장만 믿고 사회가 변화되기를 기다리는 대신,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어 사회 변화를 이루려면 언어부터 바꾸는 것이 실천 가능하기도 하고 효율적이라고 믿고 운동을 펼친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 운동가들이 언어란 생각의 형삭기라면서 운동을 펼치자,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피할 수 없이 더 정치적인 운동이 되어 갔다. 반대자들은 곧장 "언어를 누구 마음대로 바꾸려 하는가, 감히 내 생각을 바꾸려 하는가."라고 반응했다. 반대자들 역시 언어는 생각의 형삭기라는 언어관을 믿고 보인 반응이었다.
-84쪽

주요 교육 출판사인 맥그로힐 출판사가 지킨 스피치코드 가이드라인의 중요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정치적 올바름의 언어 코드를 적용한다.
-기록은 다문화주의를 확대하는 축복의 연장선 위에 있어야 한다.
-우리 회사 제품은 사람에 대해 공정하고 균형 잡힌 표명을 해야 한다.
-노인을 묘사할 때 ‘aprons(앞치마)’, ‘canes(지팡이)’, ‘rockers(흔들의자)’, ‘orthopedic shoes(교정 신발)’, ‘wheelchairs(휠체어)’ 같은 어휘 사용을 피해야 한다.
-‘codger(괴팍한 노인)’, ‘geezer(괴짜 노인)’, ‘old maid(늙은 하녀)’, ‘senile(노쇠한)’, ‘spinster(노처녀)’는 금지어이다.
-PC어인 ‘physically challenged(육체적 결함에 도전하는 사람)’, ‘differently abled(다르게 능력 있는 장애인)’ 사용을 권장한다.
-100쪽

으르렁 말은 무엇인가?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교 총장과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을 역임한 의미론학자 하야카와가 "행위에서의 언어"(1941)에서 제시한 용어이다. 하야카와는 논쟁적인 이슈에 관한 대중의 논의는 언어를 가장한, 원초적인 기호 같은 은어와 속어로 얼룩진다는 점에서 주목하여 적대감을 드러내는 단어나 은어를 으르렁 말, 호감을 드러내는 단어나 은어를 가르랑 말로 구분했다. 어떤 말이 으르렁 말인가? 하야카와는 히틀러가 사용했던 공포 조성의 말, 인종차별의 말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연설가와 언론의 편집인들이 겉으로는 지적인 논의를 하는 것처럼 가장하지만 혐오감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좌파’, ‘파시스트’, ‘우익’ 등이 또 다른 으르렁 말이라고 꼽는다.
-104쪽

실상, 언어는 본질적으로 생각과 행동의 매개자다. 행동은 구상의 세계에 있지만 언어는 추상과 구상 사이의 세계에 존재한다. 구상의 세계에 있는 행동은 누구의 눈에도 잘 띄고 그 행동이 가한 물리적 상처는 측정이 가능하다. 눈으로 보이고 의학으로 쉽게 확인된다. 그래서 어떤 행동이 ‘나쁜 행동’인가 구별이 쉽고 ‘나쁜 행동’은 법률제도가 확립된 이른 시기부터 처벌해 왔다.
반면, 언어는 추상과 구상 사이의 세계에 존재한다. 그리고 화자, 청자,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해석된다. 자연히 어떤 언어가 ‘나쁜 언어’인가 판단이 쉽지 않다. 또 언어가 가하는 마음의 상처도 측정이 쉽지 않다. 눈으로 보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 마음의 병을 연구한 의학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아 의학은 물리적 상처만큼 마음의 상처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다. -123쪽

오웰처럼, 정치 담화에서 완곡어에 반대하는 사람을 오웰리안이라고 부른다. 오웰리안들은 프랑스 정부가 알제리 전쟁 기간 동안, ‘전쟁’이라는 단어 사용을 기피한 것을 반대한다. 프랑스 정부는 ‘전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알제리가 프랑스와는 독립적인 하나의 국가라는 것을 인정하는 격이었으므로 당시 ‘전쟁’이라는 단어 사용을 피했다.
1991년의 걸프 전쟁 때, 오웰리안의 비판을 크게 받은 완곡어는 ‘collateral damage(부수적인 손상 또는 피해)’다. 연합군은 군사 목표물을 공격하였으나, 공격으로 민가가 파손되고 일반 시민들이 죽자, 그 사태를 설명하는 데 ‘부수적인 손상 또는 피해’라는 표현을 썼다. 오웰리안들은 즉각 비판했다.
-131쪽

편견과 오염을 피하기 위해 제시된 대안어는 종종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다시 오염된다. ‘오염의 트레드 밀’이라 불리는 현상이 있다. 사회에서 받아들여진 새 단어의 의미가 시간이 가면서 다시 하락하는 현상이다. -135쪽

PC가 제안하는 대안적 이름은 차별이나 편견이라는 현상을 덮어버리려, 완곡어를 사용하자는 것만은 아니다. 다른 각도에서 이름이나 단어의 대상을 바라보도록 새 이름을 제안하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이름과 단어에 대해, 그리고 차별적인 이름으로 불렸던 사람과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도덕적, 정치적 판단을 다시 하기를 바란다.
-136쪽

"1984년"을 읽고 뉴스피크어에 섬뜩할 필요는 없다. 오웰도, 많은 오웰리안들도 간과한 것은 사람들에게는 창조적인 상상의 힘, 창조적인 언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인 힘, 언어적인 힘이 아무리 강해도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읽고 듣고 이해하고 해독하지 않는다. 매번 의사소통 행위에서 사람들은 언어를 실제 세계의 현상과 연결해 보기도 하고 말하는 자의 의도도 추측해 보고, 주어진 단어의 의미도 검증해 가며 문맥에 따라 이해와 해석을 달리한다. 어떤 단어도 고정된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사람들은 언어가 전적으로 고정된 기호가 아님을 안다. 사람들의 창조적 상상의 힘이 있는 한, 현실 세계에서 오웰이 창안한 뉴스피크어란 성공하기 어렵다. 그 사실을 공산주의 사회의 사례는 증언한다.
-147쪽

PC어의 의미 변화 실제 과정은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만 잠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의미 변화의 실제 과정은 다음의 셋 중 하나를 거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큰 의미 변화는 대체로 이 중 하나의 변화를 거친 것으로 이해된다.

공생적 변화
미디어가 개입된 변화
오웰적인 변화
-173쪽

PC는 언어를 사용하는 방식과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하다. 그러나 어떤 PC어에도 공통점이 있다. 단어를 만들거나 해석을 가하거나 의미를 제어할 힘을 가지지 못했던 그룹이 제안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자신들의 세계관과 경험을 표상하기 위해 새 언어를 고안했다. (로빈 레이코프)
-177쪽

최근 들어 정치언어학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레이코프 교수는 "PC어가 왜 필요한가,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한다. "우리 인간은 사회적이기도 하지만 원래 논쟁적이다. 이제 PC어가 없으면 사람들은 만족해하거나 행복해하지 않는다. … 사람은 스스로에게 이름 붙일 권리, 자신의 이름을 지을 권리가 있다."
-181쪽

PC는 단어를 사용할 때 사람들을 너무 민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너무 멀리 갔다고 생각한다. 단어란 원래는 죄가 없다. 결백하다. (데이비드 크리스털)
-209쪽

정치적 올바름은 공과 과를 가지고 있다. 언어에서의 차별과 편견을 없애려 노력했다는 커다란 공 이외에 어떤 공적이 있을까. 적어도 넷 이상이라고 생각된다. 첫째, 유럽중심주의로 대표되는 문화 엘리트주의 대신에 문화 상대주의가 들어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둘째, ‘대안적’, ‘다문화적’, ‘다양성’ 같은 긍정적인 용어를 도입함으로써 이 세상에 긍정적인 가치관이 퍼지는 데 기여했다. 셋째, 편견으로 바라보았던 금기 영역을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중략) 넷째, 이전에는 없던 ‘윤리적인 삶’이라는 개념과 표현을 도입함으로써, 사회에 영향을 주었다.

-217-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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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 사회 이매진 시시각각 2
김영선 지음 / 이매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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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답게 살려고 일을 하는데, 도대체 왜 일을 할수록 더 비인간화되는가?" -9쪽

자본, 곧 기업과 국가의 거대한 폭력과 제도에 순치된 노동자들은 내면의 트라우마(상처)를 안고 두려움에 떨며 일한다. 이제 노동은 유일한 삶의 원리인 것처럼 내면화되고 말았다. 체제 동일시 또는 강자 동일시라는 생존 전략이 마침내 노동 동일시로 귀결되고 만 것이다.
자신만의 멋진 삶, 인간다운 삶이 존재할 텐데, 이제 사람들은 그런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단지 노동 안에서, 그리고 그 연장에 불과한 소비 안에서 자신을 찾으려고 한다. 일종의 착각이자 행위 장애다.
-11쪽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장시간 노동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장시간 노동은 체력을 회복할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힘들게 한다. 가족 관계를 해친다. 아이의 숨결을 느끼는 즐거움을 빼앗는다. 사회관계 또한 빈약하게 만든다. 공동체 참여를 어렵게 한다. 가만히 멈춰 서서 여유를 즐길 시간을 박탈한다. 우리의 정신과 상상력을 좀먹는다. 장시간 노동은 이렇게 우리의 삶 자체를 팍팍하게 만든다.
-16쪽

우리는 지금 가만히 멈추어 서서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혼자 있을 시간이
타인과 관계를 맺을 시간이
창조적인 일을 할 시간이
즐거움을 주체적으로 즐길 시간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그저 근육과 감각을 움직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구상하고
기획할 시간이 필요하다
-폴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중에서
-18쪽

발췌)
장시간 노동은 우리의 삶 하나하나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첫째, 장시간 노동으로 자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둘째, 자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남는 시간에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기획하기가 여의치 못하다.
셋째, 그나마 남는 시간은 ‘상품 집약적’이고 ‘시간 집약적’ 여가로 채워진다.
넷째, 장시간 노동으로 일상 관계는 항상 불균형하다.
다섯째, 장시간 노동은 여가 생활을 여지없이 파편화한다.
마지막으로 과로 사회에서 휴가는 단순 피로 회복 도구에 불과한 박카스 휴가에 그친다.
-27~30쪽

"국제 사회조사 프로그램"(2008) 자료를 이용해 국가별 노동관을 분석한 결과 미국(자아 실현형), 프랑스(보람 중시형), 일본(관계 지향형)하고 다르게 한국의 노동관은 생계 수단형으로 나타났다. ‘일에 관한 흥미’, ‘기술 향상의 기회’, ‘일에 관한 만족도’, ‘직장에 관한 충성심’ 등 모든 항목에서 점수가 낮았다. 노동이 삶을 풍부하게 하기는커녕 그저 먹고살기 위한 생계 수단이 된 현실을 보여준다.
-41~42쪽

장시간 노동 관행이 계속되는 원인은 복잡다단하다. 첫째, 뼛속 깊이 뿌리박힌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원인으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저임금 구조’와 ‘장시간 노동 신화’를 들 수 있다. 둘째, 작업장 맥락에서 ‘성과 장치’와 ‘노동자 분할’은 장시간 노동을 추동하는 핵심 요인이다. 셋째, ‘생산성 담론’은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며 강력한 힘을 행사해왔다. 최근 경쟁력 담론으로 진화해 장시간 노동을 영속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반면 시간 권리를 향한 ‘대항 담론’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상황 조건으로서 경제 위기 이후 불어닥친 ‘상시적 구조 조정’은 자유 시간의 가치를 여지없이 파편화했다.
-59쪽

간혹 잔업과 특근이 ‘스스로 원해서’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잔업과 특근은 날품팔이이에게 사실상 ‘강제된’ 노동이나 다름없다. 기본급이 워낙 낮아 생계를 보충할 수단으로 마지못해 잔업과 특근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 탓이다. ‘강제된’ 노동이라고 표현한 더 중요한 이유는 기본급이 워낙 낮아 잔업 수당이나 특근비를 줘도 회사의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회사 처지에서는 돈 몇 푼을 더 주더라도 공장을 가동시키는 편이 비용이 덜 든다. 관리자는 "이럴 줄 모르고 회사 왔냐?"는 식으로 정시 퇴근하려는 노동자를 힐난한다. 아예 잔업이 취업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경우도 많다.
-136쪽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스럽게 동요하는 노동 세계에 내몰려 정상적인 개인사를 포기해야 하는 모습을 일컬어 ‘위험사회’로 진단한다.
-138쪽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그 길은 자유 시간이 풍부한 사회다. 자유 시간이 양적으로 풍부할 뿐 아니라 자유 시간의 가치와 권리가 온전히 발휘되는 사회다. 자유 시간의 가치가 권리의 기반 위에 서고, 좀더 실질적인 민주화를 특징으로 하는 사회다.
-1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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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나라 - 갑을관계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배해왔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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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갑을관계는 원초적으로 역지사지를 거부한다. 갑에겐 역지사지 대신 "내가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너도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답이 예비돼 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각개약진의 이데올로기다. 적진을 향해 병사 각 개인이 지형지물을 이용해 개별적으로 돌진하는 걸 뜻하는 용어인 각개약진은 한국적 삶의 기본 패턴이다. 협력과 연대로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조차 혼자 또는 가족 단위로 돌파하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는 뜻이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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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13-12-26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오랜만이군요. ㅎㅎ 잘 지내시는거죠.

사회적인 문제조차 혼자 또는 가족만으로... ... 아 - -

마늘빵 2013-12-27 15:50   좋아요 0 | URL
앗, 제가 뜸하게 들어와서 댓글을 이제 봤네요. ^^ 저도 오랜만이어요.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인용 글이 포함된 꼭지 제외하면 딱히 볼 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