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철학과 교수 서동욱과 그의 제자였던 시인 김경주의 만남. 민음사 인문 인플란트 반비에서 나온 첫 책, <철학 연습>의 릴레이 두번째 강연이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빗속을 뚫고 애써 간 강연회는 실망스러웠다. 전체적으로 산만하고, 앞에 청중들은 왜 있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시간이었다.

  서동욱 교수의 발제지와 말은 칠판에 판서를 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어려운 문장으로 채워져 있었고, 시인 김경주는 역할이 없었다. 사회를 본 문학평론가 분이 가장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미리 짜여진 대본에 맞춰 서동욱 교수와 번갈아가며 말을 주고 받았다. 북콘서트 느낌을 살리려고 기획한듯 기타와 아코디언이 함께 했는데, 강연의 시작과 끝 공연은 괜찮았지만, 강연 중간중간 짧은 인용문을 서동욱 교수가 읽을 때마다 작게 들리는 선율은 오히려 인용문의 메세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도록 했다. 연주자 탓이 아니라 무대의 기획자 탓.  

  무척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아 이런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다음 강연회가 제대로 준비가 될 듯하여 솔직한 소감을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이렇게나 많은 게스트가 필요치 않고, 서동욱 교수 한 명이면 족하다. 만일 사회자가 필요하다면 출판사 담당 편집자가 하면 제격이고,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서동욱 교수 혼자서 진행하면 된다. 서동욱 교수가 칠판에 판서를 하거나 아니면 말을 무척 쉽게 해야 한다.  

  청중은 고등학생부터 연세 드신 분들까지 다양하다. 눈높이를 어디에 맞출 것인가 고민된다면, 대학 초년생에 맞추면 된다. 알라딘 공부방 강연은, 강연자의 스타일에 따라 파워포인트를 준비하거나 발제지를 나눠주는 여러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기본적으로 알라딘 엠디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사회 정도만 있고, 나머지는 강연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책을 출간하고 홍보를 하고,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 또는 이미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자리라면, 오늘과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된다. 출판사에서 고민 많이 해주시길.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은빛 2011-06-0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부턴가 북콘서트가 유행처럼 많던데,
행사를 기획하는 입장에서 좀 더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면 좋을 것 같네요.

마늘빵 2011-06-02 22:14   좋아요 0 | URL
네, 북콘서트가 유행인가봐요. 근데 이거 잘못하면 이도저도 안 될 수도. 무엇보다 강사의 메세지에 초점을 맞추어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변화경영연구전문가'라는 직함을 가진, 구본형. 이름은 많이 접했지만, 사실 타이틀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공병호와 비슷한 행보를 걷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공병호와는 아주 거리가 멀고, 박원순과 비슷했다. 박원순이 사회의 변화에 촛점을 맞춘다면 구본형은 개인의 변화에 촛점을 맞춘다. 그러나 개인이 변화함으로써 사회도 변화할 수 있다. '변화경영연구소'라는 곳에서는 기업의 구성원과 개인을 대상으로 여러 강연을 하고, 꿈벗, 연구원 등의 직함을 단 사람들이 그와 함께 자신과 사회를 변화시켜나가고 있었다. 소수의 연구원과 꿈벗, 그리고 트위터러, 블로거가 모였고, 그들에게서 자극을 받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어, 평범함으로부터 비범함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평범함은 단지 아직 누군가의 속에 있는 개화하지 않은 것을 지칭한다는 말, 그리고 그것이 터져나올 때 누구나 비범함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말. 자기를 실현하고자 하나 평범함에 머물러 있는 이들이 현재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딜 수 있는 삶에 대한 태도와 과정에 대한 이야기. 두껍지 않은 책에서 많은 부분에 밑줄을 긋게 된다. 문장은 추상적이고 간결하지만 시적이며 내면을 깊숙이 파고든다.

자리의 성격은 조금 애매했다. 저자의 강연, 그리고 소수의 독자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인 줄 알았지만, 그보다는 자유롭게 식사를 하며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 출판사가 마련한 자리지만, 출판사는 자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되 자리의 주변에 머물러 있었고, 저자와 그의 연구원, 꿈벗이 주도하는 자리였다. 그들 중 일부는 수년전 저자를 만나 멀쩡한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다. 아직 무엇인가를 준비 중인 사람도 있고, 이미 회사를 그만두고 책을 다섯 권이나 낸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백수가 아닌 1인 기업가이자 자기 삶을 실현하는 사람들이었고, 이들이 내게는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자리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관찰자가 되었다.

살인을 하지 않는 한 잘릴 일이 없는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작던크던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생활을 유지해주는 회사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항상 꿈꾼다. 이 회사를 박차고 나가 홀로 무엇인가를 이루겠다고. 기본적인 의식주 생활과 문화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리를 보존하는 것이 안정적이겠지만, 스스로 그만두고 새로운 꿈을 꾸며 실현하는 이들이 있다. 꿈을 실현하는 과정은 고되다. 십년 또는 1만 시간을 견딘 후에야 잠재된 씨앗은 싹을 틔우고, 모습을 드러낸다. 어떻게 하면 경쟁에서 살아남는가를 이야기하는 다수의 자기계발서들보다 개인의 내면에 눌린 꿈을 발견하고, 발현하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책이 '자기계발'이라는 본분에 더 적합하지 않겠나. 삶의 활력과 자극을 원한다면, 충분히 제공받을 수 있을 것.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nine 2011-05-1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대학 입학 전에는 조금이라도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꿈꾸고, 일단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을 꿈꾸고, 그렇게 직장에 들어가고 나면 그 직장을 그만 두고 나오는 것을 꿈꾸며 살고...우리의 진짜 꿈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마늘빵 2011-05-13 12:43   좋아요 0 | URL
네, 타인을 모방하는 삶을 살지 않으려 애썼던 저도, 인생의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하게 되네요.

2011-05-13 1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14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진이 2011-05-1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이분이 공병호와 비슷한 행보를 걷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다행입니다. 책 한번 읽어 봐야 겠네요..

마늘빵 2011-05-18 22:58   좋아요 0 | URL
네, 공병호와 비교하면 오히려 실례가 된다는. 책 생각보다 아주 좋았습니다. 자극도 받았고, 문장도 남는 게 많습니다.
 


  알라딘 공부방 5기. 경제 강연 시리즈,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 편.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총수입 증가분보다 총지출 증가분이 줄어 들었다. 그러나 지출보다 수입을 늘리는 이유는, 그동안의 적자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국제 기구에는 현 정부가 5조 원의 흑자를 보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거짓이다. 국민연금 기금이 흑자 안에 포함되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에서 국민연금을 전체 재정에 포함하는데 매년 30조 원가량을 흑자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당장 지출값은 적지만 언젠가 (국민들에게) 지출될 돈이기에 포함시키면 안 되는데, 이를 포함시켜 전체 재정이 흑자가 되는 구조이다. 사실상 재정으로 잡으면 안 되는 돈으로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오건호 선생님에 따르면, 다른 어느 국가도 국민연금과 같은 종류의 것을 국가 재정 안에 포함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수입이 아니라 당장 지출되지 않는 돈이라는 것. 어차피 나가야 할 돈인데 임기 기간 동안 내는 통계 수치에서는 이를 포함하여 봐라, 이 정부는 과거의 적자 구조를 흑자로 돌려놓고 있다,는 식으로 홍보를 하는 것이다. 비단 이 정부만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과거 정부는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거니까. 국민연금을 포함해 5조 원의 흑자를 보고 했고, 이 연금이 매년 30조 원가량의 흑자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면, 국가는 사실상 5조 원의 흑자를 본 것이 아니라, 35조 원의 적자를 본 것이다. 

  "2010년 대비 2011년 재원 배분 증가율을 보면, 엘엔디(대기업 연구) 분야, 지방교육교부금, 환경, 국방, 공공행정, 외교, 통일 분야에서 강하게 나타난다. 지방교육교부금은 법으로 정해져 있는 부분이다. 토목(에스오씨) 부문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정부 지출만 잡힌 것으로, 민간 지출로 돌려서 땅을 파고 건설하는 추세이다. 복지 부문은 자연적으로 4.5%가량이 증가하였는데, 이는 물가를 감안한 것. 보건복지노동 부문에서의 복지 수치는 GDP 대비 수치가 중요하다. 2009년 이래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사실상 복지는 증가한 것이 아니라 줄어든 것으로 봐야 한다. 2009년까지는 계속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이런식으로 현 정부가 대외적으로 보고하는 정부의 수입, 지출 내역에 대해 사실적으로 분석하셨다. 사람들은 통계나 수치를 믿지만, 그것만큼 거짓된 것도 없다. 어떤 항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니까. 임의로 숫자를 고치는 '조작'은 아니지만, 이 또한 원하는 수치를 얻기 위한 조작으로 봐야 한다.  

  "OECD의 복지 계산법과 대한민국의 계산법이 다르다. 보금자리 주택 건설, 융자금 등은 계산해서는 안 되나, 한국에서는 이를 잡고 있다. 국제 기준에 어긋나는 내역을 올려 망신을 당한 사례도 있다. GDP 대비 복지 순위는 멕시코에 이어 끝에서 두번째인 7.5%이다. 고령화 정도에 따라 복지 지출 정도를 비교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고령화 정도를 감안하면 지금보다 7%가량 증가시켜야 한다. 금액으로 따지면 약 90조가량이다." 

  "조세 구조상 직접세가 간접세보다는 크지만, 복지 국가 기준으로 봤을 때 아직 멀었다. 현 정부 들어 간접세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현재는 직접세와  간접세가 6:4 정도 비율이나 8:2 정도가 되어야 바람직하다. 직접세를 늘리고, 간접세를 줄여야 한다. 한편, 삼성의 세율이 무척 낮다. 비과세로 감면되기 때문이다. 조세 감면의 문제로, 알엔디 업종(대기업 연구)의 세율이 전체적으로 낮다. 소득세는 GDP 대비 4%인데 OECD는 9% 정도로, 복지 국가를 위해서는 소득세와 사회보험료를 거두어야 하는 상황이다."  

  어떻게 하면 복지 국가가 될 수 있는가? 현 정부는 우리도 이미 복지 국가로 들어섰다,라고 말하지만, 복지 부문은 과거보다 더 줄어들었다. 대외적으로 내미는 거짓된 수치를 통해 현 정부는 복지를 외치지만, 사실상 복지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느끼는 체감 복지 정도는 턱없이 낮다는 것. 우리는 진정 복지 국가로 가길 원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복지 국가가 되기 위한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지금의 정부 재정 구조로는 복지 국가는 요원하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 부자들과 기업에서 직접 거둬들이는 '직접세'비중을 지금보다 많이 높여서 재원을 충당해야 하며, 국민들도 지금보다 세금을 더 내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 

  "재원을 확보해야 할 부분은 소득세, 고용주의 사회보장기여금이다. 여기에서 90조 이상을 얻어야 복지 국가가 될 수 있다. 지출 내역을 수정함으로써 개선이 가능하다. 토건, 건축 비중을 줄여야 한다. 진보신당이 계산한 복지 국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은 59조, 민노당은 54조 이상이다. 민주당도 대선을 앞두고는 약 30조 가량의 금액을 잡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소득세를 거둬들여야 하는데, 이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복지 국가로 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복지 마인드이기도 하지만 복지 비용이다. 제대로 된 복지를 위해서는 상당한 돈이 필요하며, 어디에선가는 이를 충당해야 한다. 직접세를 통해 부자와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들이는 방식과 더불어, 전체 국민에게도 부과해야 하는데, 조세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 일단 모든 사람들이 복지 국가를 원해야 하고, 원한다면 비용 마련을 위해 개인돈을 내놓을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데 마음으로는 원하지만 정작 자기 돈을 내놓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다. 마음과 돈의 사이에는 틈이 벌어져 있다. 과연, 우리가 돈을 내면 진짜 복지 비용으로 전액 지출되는 것이냐,는 물음이 그것. 정부와 기관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는 것. 이를 깔끔하게 해소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신뢰를 쌓는 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자기가 내는 세금이 복지 비용으로 모두 지출된다는 보장이 있어야 개인이 지지해도 지지할 것이다. 복지를 원하지 않는 자와 복지를 원하지만 내 돈 나가는 것은 싫다는 자를 포함하면 이 수가 엄청날 것이다. 과연 부자와 기업은 또 순순히 내놓을까? 

  선생님께서는 복지 비용을 마련하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고 하신다. 하나는, 일단 부자와 기업에게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부자와 기업이 순순히 내놓도록 국민 전체에게 일괄적으로 복지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이다. 부자와 기업에만 내라고 하면 안 내니까 모두가 부담하는 것이다. 단, 소득, 수입 대비 부담하는 비율은 각기 다를 것이다. 전자는 국민 전체에게 부과하지 않으니 사람들의 호응은 좋겠지만 기업과 부자들이 반발한다는 단점이 있어 후자가 낫지 않냐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다수의 저항을 받기보다는 부자와 기업 소수의 저항을 받고 일반 국민들에게는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이 더 낫지 않을까. 또는, 부담을 주더라도 개인이 내놓을 수 있는 아주 적은 금액을 부과하거나. 예를 들면, 적십자에 내는 비용같이 말이다. 

  복지 국가를 원하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중첩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 '복지 국가'라는 단어가 곧 '빨갱이', '좌파'라는 딱지와 곧바로 연결되지도 않는 것 같다. 보수, 우익 정부도 '복지 국가' 운운하는 마당이니 이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저항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 대다수가 원하는 복지 국가라면, 사람들은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무엇을 택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모두가 많이 내거나, 아니면 부자와 기업이 많이 내거나. 이렇게 물으면 아마도 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돈 나가는 것은 꺼리기 때문에 후자를 택할 것. 그렇게 여론을 조성해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라딘 인문학 스터디 5기. 경제 강연 시리즈, 신용불량자가 넘쳐도 대출 광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 편. <대출 권하는 사회>의 저자 김순영 선생님께서 강연하셨다. 이 책은 후마니타스에서 나왔는데, 이 출판사는 사회과학 분야에서 나오는 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거나 고쳐 쓴 책들을 많이 낸다. 이 책도 김순영 선생님의 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신용카드를 발급 받을 수 있는 자격이 특정 계급에게로만 제한되어 있다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누구나 발급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이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이후 발생하는 또다른 사건과 연결되어 있다. IMF 구제 이후 경제 지표는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왜 2003년말의 신용불량자 숫자는 급증하였는가? 이 당시에 약 110만 명 정도가 증가하였다. 신용카드 때문에 신용 불량자가 2003년 때부터 늘어난 것이다. 2003년부터 신용불량자 수는 약 230만~260만 명 가량이고, 신용카드가 아닌 다른 이유로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이 약 110~120만 명 정도이다."  

  "현금 서비스 한도를 풀어서 한 달 천만 원까지 개인에게 대출을 해줄 수 있게끔 제도가 변경되었고, 규제가 풀리자 개인들은 큰 금액을 대출받아 사용하기 시작했다. 본인의 현재와 미래 자금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책임도 물론 있다. 개인의 신용이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아무에게나 신용카드를 발급해주면서 신용카드 소지자가 많아졌고, 당시 현재 인터넷 가입 때처럼 현금을 쥐어줘가면서 카드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는 카드사들 간의 치열한 경쟁탓이었다."  

  "신용카드 이용실적을 살펴보면, 카드로 구매한 금액, 할부  금액보다 현금 서비스의 실적이 70%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신용카드의 본래적 역할보다 대출과 현금 서비스 카드 역할을 하게 되어, 신용 불량자를 양산하게 된 것이다. 신용카드사가 연계를 맺은 업체의 수수료 등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고 카드를 소지한 개인에게 1년 기준 카드 유지비를 받는다. 신용카드 경쟁이 치열해지며 광고비 지출도 커졌고, 특히, 삼성 카드의 경우 97년 이후 다른 카드사들이 광고비를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더더욱 금액을 늘려나가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신용불량자'에 대해, 그들이 자신들의 경제적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소비를 하거나 대출을 받는 등 개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신다. 개인의 실수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 결과를 개인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개인보다는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준 카드사와 은행, 정부의 잘못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 쓸 수 있는 사용 한도를 무한정 올려놓고, 열심히 쓰라고 독려하는 환경에서는, 소비가 곧 미덕인양 자신의 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단 쓰고 보자는 사고방식이 팽배하게 된다. 은행과 카드사와 정부의 합작품이고, 이윤은 은행과 카드사가 다 가져간다. 그들이 대출 한도나 서비스 한도를 높이고, 사용을 독려하는 것은 기업 이익을 올리기 위함이다. 절대, 사용자 개인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자. 

  " 할부와 현금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보면 돈이 없는 사람들이다. 신용카드가 사실상 대출 카드의 역할을 하게 되고, 이자 비율이 높아 개인의 경제적 상황이 더더욱 악화되었다. 카드사의 광고비는 이러한 수익에서 지출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대출을 받음으로써 수익이 더욱 커지는 순환 고리를 가진다."

  "카드사는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는가. 아니다. 카드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타 카드사와의 경쟁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연체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구나 발급해준 것은 수수료와 이자 수익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약 28% 가량의 이자 수익 비율은 일본의 사채보다도 더 높다. 조건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발급해준 까닭은 강박적 채권 추심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강박적 채권 추심에 대해서는 영화 <똥파리>에 나오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일단 조건 불문하고 돈을 빌려줬는데, 돈을 쓰고나서는 갚을 능력이 안 됐고,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 빌려준 기관이나 개인은 채무자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들을 보낸다는 것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사채뿐만 아니라 카드사나 은행도 이런 것이 가능하다는 것. 정부가 등록금 대출에 대해서도 이를 적용하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생들에게 등록금을 대출해주고, 졸업하고 나서 갚으라 했는데, 갚지 못하면 강제 추심을 하겠다는 것. 이래놓고 교과부는 알바를 할 필요가 없어요, 든든 학자금 제도가 있잖아요, 이러고 있다.

  "은행권 카드사와 전업 카드사 두 부류가 있는데, 화장품, 보험은 길에서 다 가입하고 구매하는데 왜 신용카드 발급만 아무 조건 없이 해주면 안 되는가, 하고 김대중 정부 당시 규제개혁위원회가 의문을 제기하면서 양쪽 모두 무한정 발급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규제개혁위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기관명과 그들의 주장이 얼핏 일치하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이 신용카드 발급에 대해 규제하는 것을 반대했다.규제개혁위원회의 일원 중 엘지카드사 등 재벌계 카드사 임원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 재벌계 카드사는 은행권 카드사보다 홍보의 수단이 부족했던 상황이었다. 은행만큼 영업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길에서 홍보를 하려고 했고, 그것을 위원회가 허락한 것이다." 

  마이클 무어가 만든, 미국까는 영화들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한국에서도 곳곳에서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다. 규제를 강화해야 할 기관이 규제를 완화하고 있는 상황. 그 안의 임원들을 보면, 굳이 더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이해 관계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다른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반대되는 기관에 몸담은 것이다. 법조계에서 흔히 볼 수 있지 않나. 판검사 하다가 기업 변호인단에 들어가 있고, 국세청에 있다가 기업에서 세금 업무 맡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를 여러 개 만들고, 카드깡을 하고, 카드 비용을 대출롤 돌려주겠다고 하는 업체를 거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어떻게든 돈을 빌리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경로를 밟게 되는 사람들이 갚아야 할 비용은 점차 늘어나고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금액이 된다. 이때가 되면 범죄나 자살로 이어진다. 문제는 이자다." 

  "김대중 정부가 이자 제한법을 폐지하였으나 최근 대부업계의 경우 44%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200%이상의 고금리를 적용하는 사채업체들도 있다. 원금 100만 원 미만이면 20%, 100만 원 이상이면 15%로 제한한 일본에 비하면 사채업의 천국인 셈이다. 미유키의 소설 <화차>에서 이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일본 사채업체들이 한국을 시장으로 삼는 이유는, 일본보다 한국의 이자 제한폭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15~20% 받느니, 한국으로 와서 44%의 이자로 수익을 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 이 업체들은 한국의 이자율이 66%일 때 많이 들어왔다. 지금은 (돈을 빌리는 사람 입장에서) 그보다 나은 상황이라고 하나 현실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사채업 광고를 텔레비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한때는 연예인들도 사채 광고에 나왔는데 지금은 이미지 관리상 이를 피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대안으로 만든 것이, 무대리 같은 사례. 사람 대신 재밌고 웃긴 캐릭터를 등장시켜 친근하게 만드는 것. 광고 카피도 '친구 친구 러시앤캐시'아닌가. 우리는 당신의 친구이고, 쉽게 돈을 빌려준다는 것. 그러나 돈을 빌린 이후엔 텔레비전 광고의 이미지가 아닌 현실과 맞닥뜨리게 된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하는데, 제1, 제2금융권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는 이들은 결국 이들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신용카드에 대한 소득공제 폭을 줄이고, 체크카드 공제폭을 신용카드보다 높게 설정했는데, 이는 신용카드를 한 장씩은 다 가지고 있고, 제일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화낼 만한 조치이지만, 신용카드보다 체크카드 사용을 권하는 면에서는 바람직하다. 다만, 기왕에 체크카드 사용을 권하려면 신용카드 공제폭을 줄이지 말고 유지하는 한편 체크카드 공제폭을 기존보다 높이는 방향으로 나갔어야 하는데, 유리지갑 직장인들에게서 세금을 많이 충당하고, 덜 돌려주려는 정부 입장에서 그렇게 하지 않은 것. 이에 대해서는 화내는 것이 당연하다. 세금은 저소득 직장인들이 아니라 고소득 직장인과 부자들에게서 거두어야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단 한 분을 봤는데, 그 분은 한 번 만들어봤더니 자기가 제한 없이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잘라버렸다고 한다. 확실히 결제가 쉽기 때문에 사고픈 물건이 있을 때 더 고민하지 않고 카드를 사용하게 되는 경향은 있다. 그러나 가급적 체크카드를 사용하려고 한다. 공제폭이 신용카드보다 커서가 아니라-그 공제나 이 공제나 어차피 얼마 못 받거나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갚아야 할 돈의 액수가 커지고 뒤로 밀리면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일단 잔고가 없을 땐 신용카드를 쓰더라도 잔고가 다시 생기면 '선결제'를 하는 방식으로 총 금액을 줄여나가고 있다. 그래야 카드값 내는 날 타격을 덜 받게 된다.  

  카드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강의를 들은 다음 날 카드사에 전화해 한 장을 없애긴 했지만, 아직도 내겐 세 장의 카드가 있다. 그 중 한 장에 몰아 사용하는 경향이 있고, 나머지 두 장은 예비용이다. 요샌 신용카드 할인이나 혜택이 적용되는 부분이 많아 없애기는 힘들다. 개인이 스스로 절제하여 사용할 수 있다면 가지고 있는 것도 괜찮지만, 그렇지 않고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면 아예 카드를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현금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망각하라.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또 문자가 왔다. "수수료 없는 대출, 땡땡 실장입니다. 고객님은 현재 700만 원 이상 가승인 상태입니다." 매일 몇 건씩 받는다. 댓가 없이 줄 거 아니면 보내지 말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라딘 경제 강연 - 부동산 계급 사회 

  * 알라딘 공부방 6기가 진행 중인데, 이 강연은 5기 경제 시리즈 강연이었다. 이제서야 후기를 남긴다. 

  부동산 계급 사회. 손낙구 선생님의 책으로, 출간 당시부터 화제였다. 판매량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슈였다. 이슈와 판매량은 비례하지는 않는듯 하다. <미친 등록금의 나라> 강연 때도 강연자가 책 판매가 저조하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손낙구 선생님께서는 손수 만든 피피티 자료를 마련해 시각적으로 집중이 잘 되도록, 그리고 쉽게 전달되도록 애쓰셨다.  

  "한국의 건설업 비중은 선진국의 5% 이내로, 전체 14위이다. 남한 인구의 40% 정도가 월세든 전세든 세살이를 하고 있으며, 인구의 5% 정도가 전체 부동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도표를 보여주셨는데, 최고 집부자 한 사람은 1083채의 집을 가지고 있다고. 이 사람뿐만 아니라 상위 3% 가량이 엄청나게 집을 보유하고 있었다. 99채의 집을 가진 사람은 숫자 100을 채우기 위해 한 채를 더 가지고 싶어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 분은 도대체 몇 채를 목표로 삼고 있는 걸까. 이렇게 상위 5%가 집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니 아무리 집을 많이 지어봐야 소용이 없다. 집은 많은데 세사는 사람들은 더 늘어나고 있는 현실. 

 "한국 노동자의 임금은 중국 노동자의 열 배 수준이며, 부동산은 사십 배에 달한다. 결혼 비용은 약 1억 7천만 원이 들고, 그 중 4분의 3 정도가 주택비용이다. 부동산 때문에 노후 비용이 부족한 상황이며, 서울의 일반 직장인이 33평 집을 사려면 57세까지 한 푼 쓰지 않고 벌어야 가능하다." 결혼 비용을 보고  놀랐다. 이 돈이 없어도 결혼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평균적으로 그렇단다. 혼자 살아야 하나. 가끔 연봉, 집, 재산, 학력 등의 평균을 산출하여 기사화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아래 달린 댓글들을 보면 어디서 조사했냐, 어느 나라 얘기냐,류의 것들이 많은데, 이같은 통계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는 '평균의 폭력'으로 다가간다.  

  "외환위기 이후 시중은행 여섯 개가 외국 자본에 넘어가면서 가계 대출이 급증하였는데, 회수 기간이 빠르고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빌려줄 수 있는 대출이 주택담보 대출이었다. 따라서 주택담보 대출자가 급증하였고, 은행의 정책이 결과적으로 부동산 과열을 조장한 셈이 되었다." 부동산이 과열되면, 그 다음은 뭘까? 시나리오를 전개해 보자. 대출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이 세를 놓게 되면, 이들은 세 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많은 세를 받아내려 할 것이다. 전세금, 월세금이 올라가고, 사람들은 전세자금, 월세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시 대출을 받는다. 결국 은행이 승리하는 구조다.  

  손낙구 선생님은 부동산으로 계급을 나누는데, 자신에게 이 기준을 적용하여 나는 몇 계급에 속하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자신의 계급을 올리기 위해 분투하기보다는 이러한 계급을 없애려고 해야 할 것이다. 높은 계급에 속했다고 좋아할 것도 아니고, 낮은 계급에 속했다고 우울해 할 필요도 없다. 계급과 그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양극화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자료로 사용하면 된다. 그리고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보증금 5천만 원 이상 셋방살이 하는 가구가 4계급에 속하는데, 이들은 100만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보증금 5천 이하의 셋방살이라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봤을 때 4계급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면 된다.  

  "한국에만 있는 전세 제도 때문에 향후 부동산의 향방을 알 수가 없다. 대개는 자기 자본을 50% 가량은 가지고 시작하기에 은행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은행이 부도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은행이 부도나진 않겠지만, 개인은 2년마다 올라가는 전세금을 보충하기 위해 끊임없이 은행에 빚을 더 져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갚아야 할 금액과 기간은 늘어나고, 갚지 못하면 현재보다 작은 집, 또는 전세라면 월세로 전환을 해야 한다.  

  "독일의 민간 택지에 사는 인구가 한국보다 많다. 그러나 13년 동안 월세가 두 번밖에 오르지 않고, 적정 임대료 상한선을 정해 올리지 못하도록 한다. 동네마다 세입자 노조 대표가 있어 정부 공무원과  집주인, 세입자가 삼자대면하여 가격을 정한다. 세입자 조합마다 인권 변호사가 자문을 한다. 약자는 가능한 한 보호하도록 하고, 65세가 넘으면 현재 머물고 있는  집에서 십 년 이상 살 수 있도록 한다. 월세를 3개월 이상 안 내거나 집의 기물을 부수면 나가야 한다." 한국과 비교하면 천국이다. 네덜란드와 싱가포르의 사례를 보자.  

  "네덜란드 공공임대주택의 34%가 집주인이 공무원이다. 소득에 따라 가격이 내려간다. 하지만 정부의 부담이 커지고 공급을 위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은 5% 정도.", "싱가포르 전체 국민의 92% 가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다. 과거에 독재 정권이 압류를 하여 80%의 땅이 국유화되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건축업을 하여 국민에게 싸게 넘기는 구조다."  

  독일과 네덜란드, 싱가포르의 사례 모두 이상적으로 보인다. 각각 시스템은 다르지만. 손낙구 선생님께서는 독재자가 강압적으로 압류를 한 것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하고-싱가포르의 사례를 말씀하실 때 어떤 청강자가 '좋은 독재자'라는 표현을 썼던 것 같다-, 네덜란드의 사례도 정부의 부담이 커서 힘들 것 같다고 하신듯. 개인적으로 볼 때 독일 시스템이 참 괜찮다. 월세든, 전세든 상한선을 두어 올리게 하고, 한 번 올리면 향후 수 년 간 올리지 못하게 한다. 세 드는 자, 집주인, 정부 공무원이 나와 회의를 하여 가격을 책정하는 시스템도 괜찮다. 이 모두가 합리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마, 한국에서 이리되면 집주인과 공무원이 결탁해 뇌물을 주고받고 가격을 이미 정한 뒤 세입자와 회의하여 상한선 폭을 크게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독일은 인권 변호사에게 자문까지 구한다니 참으로 이상적이지 않은가. 

  '재개발'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삶을 참으로 피폐하게 만든다. 집을 가진 자들은 자신의 재산을 불리기 위해 재개발, 뉴타운 하자고 하고, 집을 소유하지 못하고 세든 자들은 아무런 의견도 내지 못한다. 국가가 지정한 땅에 포크레인이 들어서고, 철거 용역이 들어간다. 국가와 있는 자는 제 이익에 따라 목소리를 내지만,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그들이 하자는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중심에서 변두리로, 변두리에서 더 변두리로 밀려난다.  

  내가 사는 동네도 재개발 예정지다. 며칠 전 한 주민이 전단지를 돌렸다. 재개발 하지 말자고 외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세든 사람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 주변 지역과 비슷한 가격으로 집값을 더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의 흐름에 지식이 없어 그 원리는 모르겠지만, 재개발을 하자고 하든, 하지 말자고 하든, 모두 제 돈을 불릴 생각을 하고 있다. 살고 있는 집에 언제까지 머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올해까지겠지. 이곳은 중심가의 변두리다. 난 이제 변두리의 변두리로 가야 할까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