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기계를 사용하는 것은 오히려 기계가 노동자로 하여금 자기 시간의 더 많은 부분을 자본을 위해서 노동할 수 있고, 자기 시간의 더 많은 부분에 대하여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 것으로 관계하며, 타인을 위해서 보다 오래 노동할 수 있도록 하는 한에 있어서만 이다. 이 과정에 의해서 일정한 대상의 생산을 위해 필요한 노동의 양은 실제로 최소한으로 감축되지만, 그러나 그것은 다만 최대한의 노동이 그러한 대상들의 최대한에서 가치 증식되기 위해서일 뿐이다. 여기에서 자본이 -- 전적으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 인간 노동, 힘의 지출을 최소한으로 감축하기 때문에 첫 번째 측면이 중요하다. 이는 해방된 노동에게 도움이 될 것이고 노동 해방의 조건이다.-376쪽
농업이 결코 자본이 시작해서 그것의 본원적인 정착지를 건설하는 영역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생산 국면 내에서의 이러한 중단(농업에서 생산물이 완성되기 전에 생산 자체 내에서의 노동의 중단 -기인)에 기인한다. 이것은 산업 노동의 첫 번째 기본 조건들에 모순된다. 그러므로 농업이 자본에 귀속되고 농경이 산업화되는 것은 반작용에 의해서이다. 한편으로는 경쟁의 고도의 발전을 필요로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화학, 기계학 등, 즉 매뉴팩처 공업의 대발전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농업이 자본에 선행하거나 자본 자신의 미발전된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 양식들에서는 결코 순수하게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발견된다. 방적, 방직 등과 같은 농촌 부업이 농업에 정립되어 있는 -- 그리고 이들 중단에 놓여 있는 -- 노동 시간 사용의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 생산 시간과 노동 시간의 불일치는 일체 노동의 가치 증식, 즉 자본에 의한 잉여 노동의 점취를 직접적으로 방해하는 자연 조건들에만 기인할 수 있다. 자본의 진로에 가로놓여 있는 이 장애들은 당연히 편익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관점에서 볼 때 손실을 구성한다. -339-340쪽
자유 경쟁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은 중간 계급의 예언자들에 의한 자유 경쟁의 찬미나 사회주의자들에 의한 그것의 저주에 대한 유일하게 합리적인 답변이다. 자유 경쟁 내에서 개인들이 순전히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공동의 이익, 또는 차라리 일반 이익을 실현한다고 하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개인들이 자본주의적 조건하에서 서로 압박하고, 따라서 그들의 충돌 자체는 이 상호 작용이 벌어지는 조건들의 재산출일 뿐이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덧붙여 말하자면 자유로운 개성의 소위 절대적 형태라는 경쟁에 관한 환상이 사라지자마자, 이것은 경쟁의 조건들, 즉 자본에 기초한 생산의 조건들이 이미 제약들로 느껴지고 생각되며, 따라서 이미 제약들이고 갈수록 제약이 된다는 증거이다. 자유 경쟁이 = 생산력의 발전의 마지막 형태이고, 따라서 인간적 자유의 마지막 형태라는 주장은 중간 계급의 지배가 세계사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 물론 그저께의 벼락부자에게는 편안한 생각이다. -318-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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