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itournelle > * 20대 젊은 보수주의자들의 현황 1

* 프레시안(2007. 5. 2) / 영한나라당이 아닌 영삼성?

   
  '영한나라당'이 아니라 '영삼성'? 
  [20대 보수화? 그 이면①]"학점 4.5로도 부족해" 

올해 초 몇몇 언론에서 소위 '20대 보수화' 경향을 다뤘다. 과거 '한나라당 반대' 입장이 다수를 차지하던 20대에서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50% 가까이 되는 현상을 보인 것이 계기였다. 이들 기사를 보면 20대 '보수'가 윗 세대의 '보수'와 같은지 다른지, 그래서 궁극적으로 이들이 올 연말 치러지는 대선에서 실제로 한나라당을 지지할 것인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20대 보수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지난 2002년 대선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2002 한일 월드컵의 여세를 이어받은 '20대 열풍'은 인터넷에서, 광장에서 정치적 지형의 변화를 이루는 데 일조했었다.
 
  이처럼 정치적 관심에 일차적 초점이 맞춰진 '20대 보수화' 담론은 정작 20대가 보수화됐다면 왜 보수화됐는지, 보수화됐다는 이들의 생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들의 변화가 한국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인지는 포괄하지 못했다.
 
  <프레시안>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전경련과 대기업의 지원을 받는 동아리인 '영리더스클럽'(Young Leaders' Club·YLC), '인재제일' 등의 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을 만나봤다. '대학'이란 공간에 대기업이 직접 만들고 후원하는 동아리가 보편화됐다는 사실 자체가 대학생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도 사회생활에 대한 간접 경험, 취업에 직ㆍ간접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지식과 인맥 등 좀 더 '현실적인 요구'로 변했다. 물론 이들 대학생이 서울 소재 대학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 세대와 달라진 의미의 '대학 생활'을 자발적이면서 적극적으로 영위하고 있는 이들을 통해 달라진 20대들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었다. 이 같은 판단에 기반해 YLC, 인재제일 등 동아리 활동을 하는 이들을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가상의 대학생의 일상을 그려봤다. <편집자>
 
  '삐그덕.'
 
  4월 마지막주 어느날 한 대학 단과대 과방. 05학번 Y 군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중간고사 마지막 시험이 방금 끝났다. 그렇지만 Y 군의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다. 5월에 있을 영리더스클럽(Young Leaders' Club·YLC) 학술제 예선이 마음에 걸리기 때문.
 
  '대학과 기업을 잇는 징검다리'로서의 동아리 활동
 
  다음주까지 제출해야 할 전공 과목 리포트도 있지만 Y군에게는 학술제가 더 신경쓰이는게 사실이다. 리포트는 매주 내지만, 전국단위 YLC 학술제 우승은 1년에 한 번뿐이다. 또 YLC 학술제 우승은 취업할 때 이력서 경력란에 한줄 더 쓸 게 생기는 일이다. 이날 저녁, 같은 학교 YLC 회원들 몇명과 학술제에 대한 얘기도 할 겸 모이기로 했다.
  

YLC(www.ylclub.net)


   
▲ ⓒYLC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매년 주최하던 대학생 캠프인 YLC(Young Leaders' Camp)가 모체가 돼, 지난 2002년 창설된 전국 규모의 대학생 연합 동아리.
 
  시장경제 원리를 익히기 위한 강연, 포럼, 학술제 등이 주요 활동이다. 회원들은 한 학기동안 필수포럼, 열린강연회 등 프로그램에 참가한 뒤 '준회원'으로 승격되며 정회원이 되기 위해선 경제, 경영, 근현대사 과목을 듣는 'ALP(Advanced Learning Program)'를 수료해야 한다.
 
  전경련을 매개로 기업인뿐만 아니라 교수, 정관계 인사들과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최근 창립 6주년을 맞아 발간한 활동자료집에 미래에셋 강창희 소장, 미래문화포럼 복거일 대표, 홍익대 김종석 교수, 이화여대 주철환 교수 등이 축사를 써주기도 했다.
 
  필기시험, 면접 등을 통해 매 학기 200여 명의 신입회원을 선발하며, 전국적으로 600여 명 정도의 회원이 활동한다. 수도권 3개 지부(안암, 신촌, 관악)와 전국권 4개 지부(경남, 경북, 전라, 충청)가 있다.
 
  전경련은 1년에 2번 열리는 총회를 비롯해 열린강연회, 필수포럼, 운동회, 학술제, 취업박람회 등 활동과 관련된 경비를 전액 지원하며, 열린강연회 초청 강사 섭외에도 도움을 준다. 활동 성적이 우수한 회원에게는 해외 산업 시찰 기회도 준다.

  "누나,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여기 계세요?"
 
  두 학번 선배인 C 양이 과방에 앉아 있었다. 기업 인턴십 등 각종 활동으로 늘 바쁘게 사는 그는 Y군에게 '롤 모델'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C 양은 YLC 활동을 마친 선배이기도 했다.
 
  "저녁에 L 기업 이사님 인터뷰가 있는데, 그 전에 그 분 책 좀 훑어보고 있어."
 
  C 양은 이날도 변함없이 '열공(열심히 공부하다) 모드'였다. 최근 삼성이 운영하는 대학생 웹진 '인재제일'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한껏 바빠진 모습이었다. Y 군 역시 다음 학기에는 C 양을 통해 알게된 '영삼성 열정운영진'에 지원해볼 생각이다.


   인재제일(www.injaejeil.co.kr)

  
▲ ⓒ프레시안 

  삼성인력개발원이 운영하는 대학(원)생 격월 웹진. '대학과 기업을 잇는 징검다리'라는 주제 아래 1989년 종이잡지로 창간됐으며 1998년부터 웹진으로 운영돼 오고 있다. 삼성 취업정보, 기업문화, 과학기술 소개, 대학 과학동아리 탐방 기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약 15명의 대학생들로 구성된 '학생기자단'이 제일기획 등 삼성 소속 회사와 함께 기획회의를 하고 취재활동을 한다. 한 학기당 60만 원의 장학금과 함께 원고료가 지급된다.
 
  이밖에도 기업이 운영하는 대학생 웹진으로는 LG '미래의 얼굴'(http://future.lg.co.kr), 현대 '영 모비스'(http://young.mobis.co.kr) 등이 있다. 모두 대학생들이 기자로 활동하며 소정의 장학금과 원고료를 지급한다.


  
 영삼성(www.youngsamsung.com)


   
▲ ⓒ프레시안 

  2005년부터 삼성이 운영하는 20대 포털사이트. 삼성 채용정보를 비롯해 외국어, 아르바이트, 생활·문화 정보 등 취업과 연관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영삼성 기획 및 운영은 매학기 10여 명으로 구성된 '열정운영진'이 맡으며 사이트 모니터링, 취재 및 기고 등 활동을 한다. 운영진들은 소정의 활동비(학기당 120만 원) 및 해외 배낭여행비를 지급받으며 삼성그룹이 주최하는 활동에 참여하면 지원을 받는다.
 
  현대자동차 역시 지난 2003년 개설한 대학생 커뮤니티 사이트 '영현대'(http://www.young-hyundai.com)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 또한 현대자동차 홍보단, 리포터, 탐방대원 등의 각자 역할을 맡은 '열정운영진'이 주축이 돼 활동하고 있다.

  하긴 Y 군이 YLC에 가입하게 된 것도 C 양 덕분이었다. 그는 3학년이 되는 Y 군에게 "너도 이제 '스펙'(학점과 영어점수 등)에 도움이 되는 대외 활동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자극을 줬다. "열정만 있으면 된다"는 YLC모집 포스터를 보고 마음 놓고 있던 Y 군에게 "신입회원 경쟁률이 10대 1이 넘는다"며 긴장의 끈을 늦춰선 안 된다고 조언한 것도 C 양이었다. 신입생 모집시험 문제 수준이 만만치 않다는 것. C 양의 말대로 모집시험에서는 '원이 엔보다 평가절상된 것에 대한 해결방안을 써보라'는, 평소 상식으로는 쓰기 힘든 문제가 출제됐다.
 
  '복학생 마인드(제대 뒤 학업에 열중하는 대학생들을 두고 이르는 말)'로 준비한 덕택에 Y군은 필기시험 며칠 후 합격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학술제로 고민하고 있던 차에 마침 작년 학술제에서 우승했던 C양을 과방에서 만난 Y군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누나, 누나 땐 도대체 어떻게 준비했어요?"
 
  "불평등한 미국과 평등한 아프리카? 선택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학술제 준비? 벼락치기 한다고 뭐가 되겠니. 이것저것 상식 준비를 충실하게 해놓으면 될 거야. 기초적인 경제학 원리라든지, 한미 FTA라든지…."
 
  "FTA! 안그래도 YLC 강연에 오시는 분들마다 강조하던데, 당연히 알아둬야겠죠?"
 
  Y 군은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지었다. 그간 YLC에서 GE 코리아 이채욱 회장, 제프리 존스 전 미상공회의소장 등의 강연을 차곡차곡 들어오지 않았던가. 지난 3월에는 한미FTA체결지원단에서 일하고 있는 국제변호사가 강연을 하기도 했다. 오는 6월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 강연도 있을 거라고 들었다.
 
  "미국이 초강대국이 된 것은 과감하게 농업을 버렸기 때문이죠. 농업인구가 50~60%일 때 미국 토지 대부분은 농장과 초목이었지만 농업인구가 대거 제조업으로 이동하면서 지금은 농업인구가 3%정도라고 들었어요. 그들이 미국인들에게 충분한 양의 농산물을 제공하는 걸 봐도 제조업 중심의 정책이 성공적이었단 걸 알 수 있죠."
 
  "어느 교수님이 묻더라. 불평등한 미국이 좋은지, 아니면 평등한 아프리카가 좋은지. 난 당연히 불평등한 미국을 선택할거야.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고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으니까. 개방화가 대세인데 우리에게 다가온 개방의 기회를 그냥 날려보내는 건 아깝잖아."
 
  "사회적 약자?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끌어안으면 된다"
 
  "그거 완전히 '파시스트'같은 발상이잖아."
 
  생뚱맞게 대화에 끼어드는 B 군의 말에 C 양과 Y 군이 동시에 돌아봤다. 지난 학기 B 군과 같이 독서 토론를 했던 C 양은 B 군이 뭘 말하려는지 알 듯 했다. 지난해 여름 제대한 B 군은 복학한 뒤 취업 준비에 힘쓰는 다른 동기들과는 달리 집회에 참가하고 토론 모임에도 열심이었다. 그런 B 군을 두고 학과 내에서는 '독특한 선배'라고 불렀다.
 
  "지금 네 말은 어른들의 이분법과 똑같아. 시장경제 찬성하면 다 '보수'니? 전경련에서 지원받는 YLC를 '보수 단체'라고 하지만 우린 그 안에서 우리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자체적으로 외국어 스터디 모임, 봉사활동 모임을 열어. 자기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능력있는 사람이 노력한 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아?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까?"
 
  "그런 신자유주의적인 생각으로 사회가 좋아질 수 있을까? 그럼 일할 능력이 없는 중증장애인들처럼 사회적 약자들은 어떡하고? 생존에 위기를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면 사회는 더 불안해지는 거 아냐?"
 
  "글쎄. 한국 사회의 위기는 오히려 사회적 재분배를 너무 강조해서 온 것이 아닐까? 정치인들이 복지를 중시하고 세금을 많이 걷겠다고 하니까 국민들이 씀씀이를 줄이고 그만큼 생산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가 복지에 관심 없는 건 아니라고.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이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은 필요하지. 그렇지만 무조건 세금을 많이 낸다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는 건 아니잖아."
 
  "도대체 언제까지 아둥바둥 살아야 하나"
 
  B 군과의 논쟁은 결국 접점을 찾지 못한 채 끝났다. 과방을 나와 YLC 회원들과의 약속 장소로 향하는 Y 군의 시야에는 교정을 가로질러 시끌벅적 어딘가로 향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중간고사가 끝난 기념으로 '쫑파티'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저 애들도 넋 놓고 있다간 곧 후회할 텐데.'
 
  잠시 '쫑파티'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던 Y 군은 혼자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다시금 생각이 복잡해진다. 얼마 전 모두가 부러워하는 유명 대기업에 취업한 한 선배의 푸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회사에 가보니 서울대 출신인 나도 괴리감을 느끼더라. 우리 사무실에서 국내 대학 출신은 나 밖에 없더라고. 여기 말고도 대기업들 요즘 해외파 많이 뽑지. 우스개 소리로 '한국에서 대학 나온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라고 말하기도 하거든. 취업 성공했다는 여기 사람들도 걱정이 없는 게 아니더라고. 빠르면 30대 후반, 늦어도 40대에는 다시 무엇을 해야 할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 잘난 선배가, 취업한 다음에도 힘들어하다니…. 대체 '스펙'은 어느 정도로 좋아야 하고 언제까지 이렇게 아둥바둥 살아야 하는 거야?' 교문을 나서는 Y 군의 발걸음은 따뜻하게 내리쬐는 봄날 햇살과 상관없이 계속 무거워진다.

 


   "도태되는 게 두렵다"
 
  "학내 활동만으로는 내가 도태되는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요즘 대학생들의 활동이 '탈학교화' 추세인 건 사실이다."
 
  인재제일 기자로 활동한 A(23) 양은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경쟁에서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꼽았다. "학점 4.5를 맞아도 뭔가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이력서를 다채롭게 채워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A 양은 "삼성이라는 메리트가 컸고, 이력서도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한 뒤 바로 일하고 싶은데 교양과 전공과목 들어서는 그럴 수 없다"면서 "그래서 기업체 활동에 관심 많이 갔다"고 덧붙였다.
 
  생명과학을 전공하면서 "취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경영학을 부전공으로 택한 YLC 회원인 D(25) 군은 "동아리에서 자유시장경제에 대해 주로 배우는데 이공계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용"이라면서 "합리적 사상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고 밝혔다.
 
  또 다른 YLC 회원인 E(23) 양은 "(전공)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고 인맥도 쌓을 수 있어서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취미, 개인적 관심사 등을 이유로 동아리를 선택하던 선배 세대들과는 확연히 다른 '동기'들이다.
 
  이들은 이같은 연합 동아리 외에도 경력을 쌓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A 양은 워싱턴 견학 준비도 하고, 언론고시팀에서 공부도 하고, 학교의 리더십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있고, E 양도 '경영 컨설팅'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 입장에선 사회가 뻔히 보여"
 
  YLC 전 회원이면서 한나라당 정책 제안 활동을 하기도 했던 F(23) 양은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 입장에서는 사회가 뻔히 보인다"고 말했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활동을 해도 '출발선'부터 다른 이들을 따라 잡을 수 없는 '현실'이 뻔히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조기유학 등 갔다온 사람들 보면 별로 아둥바둥 사는 것 같지 않는데 왜 한국 학생들은 그렇게 열심히 살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A 양도 "사법시험 붙은 이들 중 20% 이상이 외국어고와 강남8학군 출신이라고 들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학력 제한이 없다는 이유로 가장 확실한 신분 상승의 통로로 여겨졌던 각종 고시의 합격생도 이제 대한민국 인구의 1%가 조금 넘는 강남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지적.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은 이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됐다.
 
  그래서 이들이 바람직한 사회에 대해 "능력있는 사람이 노력한만큼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라고 대답하는 것은 이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의 변화를 감안하면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아둥바둥해야 하는 '경쟁적 현실'에 '바람막이' 하나 없이 내팽겨쳐진 상태다. '대학'이란 간판이 어느 정도 이상의 직장으로 가는 디딤돌 역할을 하던 시대는 이미 끝난 지 오래다.
 
  양극화 현상이 기업들간에도 뚜렷이 나타나 임금, 직원 복지, 고용 안정성 등의 측면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 이상이다. 따라서 공무원이나 공기업이나 대기업 정규직이 되기 위해선 남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취업 준비 모드'로 일상 생활을 전환해야 한다. 소위 대학 본연의 '진리 탐구'나 추구하고 있다간 '비정규직'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더군다나 이같은 '취업시장'에서 경쟁이 반드시 공정한 것도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인맥'과 '빽'으로 안되는 게 드물다는 것, 또 강남 출신 등은 상류층은 이미 동원할 수 있는 많은 자원을 갖고 있어 경쟁에서 선두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계급의 대물림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능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의 의미는 이런 현실 속에서 해석돼야 한다.
 
  이들도 '현실의 변화'를 꿈꾼다
 
  하지만 이들이 '한줄 세우기'가 익숙한 현재의 한국사회의 질서를 긍정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A 양은 "지금 한국사회는 일을 선택할 때 재미와 자부심보다 안정성, 수입, 명예를 고려한다. 외국의 어떤 놀이터 수리공의 사례를 봤는데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참 대단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명함을 내밀 때도 삼성과 중소기업의 느낌 자체가 다르다. 이런 인식의 재배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D군은 "인종, 종교, 국가를 떠나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회"라고 말했고, 또 다른 YLC회원은 G(24) 군은 "누구든지 희망을 가질 수 있고 희망을 좇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회"를 원했다.
 
  이들은 부와 명예라는 단 하나의 잣대를 강요하는 현실을 넘어서서, 인종ㆍ성별ㆍ종교 등 차이를 '차별'이 아니라 그야말로 차이로 인정하는 사회, 가정 형편 등 현실을 떠나 누구든지 미래에 대한 꿈을 품을 수 있는 사회 등을 내다보며 현 사회체제와 인식의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무섭게 적응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들이 '보수화'됐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 역시 과거의 여느 세대와 마찬가지로 사회 변화를 꿈꾸고 있었다. 이들이 꿈꾸는 변화가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느냐는 것은 비단 이들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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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무서운 아이들의 탄생과 소설적 표현

* 한겨레(2007. 5. 3)  / 세상이 무서웠던 ‘무서운 아이들’
‘앙팡 테리블’이란 표현 탄생시킨 장 콕도의 대표작
동성연인 요절 뒤 아편중독 치료하며 3주만에 써
현실과 유리된 채 벌이는 미성숙한 사랑과 파국
한겨레  최재봉 기자
» <앙팡 테리블> 장 콕토 지음.오은하 옮김. 뿔 펴냄. 9500원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들)이란 오늘날 특정 분야에서 어른 뺨치게 놀라운 능력을 보이는 젊은이를 가리키는 숙어로 흔히 쓰인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의 기원은 프랑스의 시인 겸 소설가 장 콕토(1889~1963)의 동명 소설(1929년작)로 거슬러올라간다.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 소리를 사랑한다”(<귀­칸 5> 전문)의 그 콕토 말이다.

콕토는 시와 소설뿐만 아니라 평론, 연극, 영화, 그림 등 예술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영화에 대한 그의 기여는 그가 디자인한 칸영화제의 종려나무잎 로고로 남아 있다. 그가 자신의 문하생이자 동성 연인이기도 했던 레이몽 라디게(1903~1923)가 요절한 뒤 자기 학대와 아편으로 고통을 달래다 요양원 신세를 지게 되고, 아편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3주 만에 쓴 소설이 바로 <앙팡 테리블>이다.

<앙팡 테리블>의 중심 인물은 사춘기의 두 남매 엘리자베트와 폴. 열네 살짜리 중학 자퇴생 폴과 그보다 두 살 위인 누나 엘리자베트는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신 뒤 둘만 남는다. 가정부 할머니의 너그러운 보살핌 아래 일종의 ‘독립’을 구가하는 그들의 집에 역시 고아인 폴의 친구 제라르가 들어온다. 어른들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이 무중력의 공간에서 세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놀이에 빠져든다.

“별난 사람들과 그들의 반사회적인 행동은 그들을 추방한 다원적인 세계에는 하나의 매력이다. 하지만 점점 사람들은 이 비극적이면서도 유쾌한 영혼들이 호흡하는 태풍의 무서운 기세와 속도에 놀라 괴로워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처음에는 어린애 같은 행동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장난으로밖에 보지 않는다.”(83~84쪽)

장 콕토의 문장은 뜻밖에도 논리적이고 분석적이다. 아편 중독과 자기 학대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나저나 아이들의 놀이 혹은 장난이란 무엇? 설명을 위해서는 소설의 첫 장면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한다. 아직 학교에 다니던 시절, 허약한 폴은 동무들 사이의 눈싸움에 휘말렸다가 입과 가슴을 연달아 눈뭉치에 맞고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그를 쓰러뜨린 것은 그가 우상처럼 숭배하는 학교의 우두머리 다르즐로이고, 쓰러진 그를 부축한 것은 남 몰래 그를 흠모하는 동급생 제라르다. 달려온 학생주임에게 제라르는 다르즐로가 눈뭉치 안에 돌멩이를 넣었노라 고발하고, 그런 제라르를 향해 폴은 “너 미쳤어?”라고 항의한다.

애정을 욕설로 위장하는 남매

“왜냐하면 폴이 다르즐로를 좋아하는 것처럼 제라르가 폴을 좋아하도록 만든 폴만의 특별한 매력은 그의 허약함이었기 때문이다. 폴의 시선이 불꽃 같은 다르즐로 녀석에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심성이 곧고 강한 제라르는 폴을 지켜보고, 감시하고, 보호하며 그 불꽃에 타지 않도록 막아줄 작정이었다.”(21쪽)

 

다르즐로-폴-제라르로 이루어진 애정의 삼각형은 제라르가 폴 남매의 집으로 들어오면서 변형을 겪는다. 학교 시절 폴을 사랑했던 제라르는 이제 사랑의 대상을 엘리자베트로 옮긴다. 그런데 폴과 엘리자베트는 단순한 남매 사이를 넘어 거의 쌍둥이 또는 그림자 같은 애증의 관계를 맺고 있다. 제라르는 일종의 침입자였던 셈.

“이 방은 그들(=폴과 엘리자베트)이 한 몸을 가진 두 사람처럼 생활하고, 씻고, 옷을 입고 하는 거북이 등껍질 같은 곳이었다.”(39~40쪽)

미성숙하고 불안정한 남매는 서로에 대한 애정을 거친 욕설과 몸싸움으로 위장한다. 그들은 일과를 치르듯 다투고 토라지며 서로를 저주한다. 관찰자이자 조연인 제라르까지 더해서 기묘한 애정의 공동체를 이룬 세 아이는 휴양지에서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자신들보다 어린 아이들을 놀려 주는 등의 장난을 즐긴다. 그렇게 무위의 세월은 흘러간다. 폴과 엘리자베트는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겉으로는 증오하는 척한다.

»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들)이란 관용어를 낳은 장 콕토의 소설 <앙팡 테리블>은 소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불안정한 시기를 다루었다. 사진은 에드바르트 뭉크의 그림 <사춘기>.

이상·배수아 작품 떠올리게 해

“미래를 위한 계획, 공부, 직책, 정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 등은 호강하는 개가 양 지키는 일을 신경 쓰지 않듯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신문에서 그들은 범죄 기사를 읽었다. 그들은 틀을 흐트러뜨리는 종족, 뉴욕과 같은 병영에서는 퇴역당하고 파리에나 가서 살아야 할 그런 종족에 속했다.”(86쪽)

이 영원한 어린아이들의 무리에 또 하나의 ‘아이’가 합류한다. 그새 모델 일을 하게 된 엘리자베트의 직장 동료 아가트가 그다. 중요한 것은 아가트가 폴의 첫사랑이었던 다르즐로를 닮았다는 것. 이제 사랑의 삼각형은 사각형으로 진화(?)한다. 제라르는 여전히 엘리자베트를 사랑하지만, 폴은 새로 등장한 아가트를 사랑하고 아가트 역시 폴을 사랑한다. 폴과 엘리자베트의 사랑/증오는 여전하다.

이런 상황이 끔찍한 파국으로 치닫기 전, 모순이 부드럽게 해소될 여지가 없지는 않았다. 엘리자베트가 미카엘이라는 부유한 유대인 청년과 결혼한 것. 그러나 새신랑이 첫날밤을 치르기도 전에 자동차 사고로 숨지면서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던 다르즐로가 제라르를 통해 폴에게 독약 한 덩이를 건넨다. 이번의 ‘선물’은 지난날 그를 쓰러뜨린 눈뭉치 이상으로 치명적이다. 폴과 아가트의 사랑을 질투한 엘리자베트는 거짓과 모략으로 둘 사이를 떼어 놓고 아예 아가트를 제라르와 결혼시키며, 뒤늦게서야 진실을 알게 된 폴이 다르즐로의 독약을 삼키자 엘리자베트 역시 권총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쏜다.

파국으로 마무리되는 소설의 결말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킨다면, 폴과 엘리자베트의 치명적인 사랑은 <폭풍의 언덕>을 떠오르게도 한다. 한국문학으로 시선을 돌리면, 미성숙한 ‘어른 아이’를 즐겨 다루었던 배수아씨의 초기 소설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로 시작되는 이상의 시 <오감도­제1호>는 어떨까. 시의 중후반부쯤에는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라는 표현도 보이거니와, ‘무서운 아이’가 곧 ‘무서워하는 아이’라는 통찰은 정확히 <앙팡 테리블>의 핵심을 짚은 것이 아니겠는가. 이 가엾은 아이들은 무엇보다 삶과 세계가 무서웠던 것. 그 무서움이 거꾸로 남들을 무섭게 만드는 식으로 나타났던 것. 1910년에 태어나 1937년에 요절한 이상은 장 콕토의 소설을 읽었거나 적어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오감도­제1호>를 <앙팡 테리블>과 관련해서 읽어 보는 독법은 어떠할까. 엉뚱한 상상일까.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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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와 정보사회(1)

* 자율평론 제 2호

 

이글은 닉 위데포드의 'Autonomist Marxism and the Information Society'를 번역한 글이다. 닉 위데포드는 현재 미국에서 자율주의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인물중의 하나이다. 그는 이글에서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하에서 자율주의가 등장하게되는 배경을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네그리를 중심으로한 이러한 자율주의가 탈근대 사회이론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전문이 번역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다음호에 후반부가 완역되어 실릴 예정이다. 미숙한 번역이라, 영어본을 링크시켜야 했으나 불행히도 인터넷 상에서는 이 글을 찾아 보기가 어렵다. 이 점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 역자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와 정보 사회(1)




닉 위데포드



이 논문은 컴퓨터화된 자본과 탈근대적 문화의 시대에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적절성을 주장한다. 대략적으로 말해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는 노동계급의 자기-활동성을 그것의 중심에 놓는 맑스주의의 전통(깊은 역사적 뿌리와 폭넓은 국제적 확산의 전통1))을 나타낸다. 하지만 아마도 그것의 가장 발전된 동시대적 표현은 1960년대와 70년대 동안 이탈리아 노동자들, 학생들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의 투쟁의 발생이며, 내가 여기서 초점을 맞출 점은 라니에로 판찌에리, 마리오 뜨론띠, 세르지오 볼로냐, 마리오로사 달라 꼬스따, 프랑코 베다디, 안토니오 네그리와 같은 혁명적 지식인들의 저작 내에서 공식화 되었다는 점이다.2)1979년 이탈리아 신좌파의 소요가 붉은 여단에 반대하는 반-폭동이라는 구실 하에 폭력적으로 진압되었을 때, 이 혁신적 이론체의 발전은 돌연 중단되었고, 그 후에 그 신좌파의 입장이 갖고 있는 이교도적인 방향(신자유주의자, 소비에트형식의 노멘클라투라, 사회민주주의자들같은 것에 대한 증오)은 심지어 좌파 내에서 조차 그 이론을 위해서 은밀한 실존을 확보했다.3)그러나 그 이론이 원래 기초하고 있던 운동의 파괴에도 불구하고,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끈은 새로운 변이를 겪으면서, 그리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면서 계속 발전하였다.4)

사실상, 이탈리아 자율주의적 전통을 파헤치는 나의 목표는 고고학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나는 이 이론들이 만일에 혁명적인 좌파들이 있다고 가정해 보면 그들의 전망을 둘러싼 오늘날의 논쟁에 중심적인 쟁점을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특별히, 그것들은 우리가 자본주의적 발전의 변별적인 새로운 시대(‘후기-산업주의’,‘포스트 포디즘’,‘탈근대 자본주의’와 같은 문구로 폭넓고 다양하게 논의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전망에 직면한다. 이 국면의 두드러진 특징은 공장 자동화, 지구적 이동성 그리고 사회감시의 전례없는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정보기술(컴퓨터와 통신) 자본이 방대하게 배치되고 있다는 것에 일반적으로 동의되고 있다. 지난 20년간에 걸쳐, 일부 이탈리아 자율주의자들의 작업, 특히 네그리의 작업은 이 거대한 정보적 기구의 의미에 더욱 많은 주의를 기울여 왔다. 그들의 분석을 특히 중요하게 만드는 점은 단지 자본주의적 지배의 도구로서 뿐만 아니라 노동계급 투쟁의 잠재적 자원으로서 지식과 소통의 새로운 형태에 관하여 열어놓은 전망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네그리와 그의 동료들이 논의되는 것은 >정보사회>에 대해 전복적인 반-해석자로서이다. 이러한 독해는 하이테크놀러지에 대한 여타의 매우 다른 맑스주의적 반응들 간의 쟁점을 그리고 새로운 사회운동과 탈근대적 문화에 대한 일부 유행적인 분석들간의 쟁점을 필연적으로 다룬다(그리고 실로 이탈리아 자율주의자들의 작업에 대한 독해가 맑스에 대한 하나의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독해라는 점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것의(비유행적인) 논지는 >맑스를 넘어선 맑스>(네그리 1984)까지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지속적인 연구가 공동체와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적으로 대안적인 시각으로 정보화시대 자본과 직면할 수 있는 21세기 코뮤니즘의 재구축을 향한 길을 열었다는 점이다.

정보사회와 자본의 승리


자본의 지구적 승리에 대해 최근의 유행하는 찬사 내에서, 두가지 주제가 서로 얽히면서 상호옹호하고 있다. 그것은 정보사회의 부흥과 맑스주의의 붕괴이다. 우리는 하이테크놀러지가 컴퓨터와 커뮤니케이션 체계의 편재(遍在)에 의해, 과학기술의 전례 없는 속도에 의해, 지식기반의 경제에 의해 특징 지워지는 문명화의 새로운 단계를 향하여 지구를 끌고 가고 있다고 이야기된다. 사회주의권의 불명예스런 붕괴는 지금 출현하고 있는 현실을 따라 잡을 수 없는 절망적인 맑스주의 세계관내의 의고주의의 탓(고성능 기계의 시대에, 상징적 데이터의 물질적 중요성을 가려버린 ‘토대/상부구조’의 시대에, 늘-확산되고 있는 전자 매체의 억압에 예속된 ‘프롤레타리아 독재’시대에 ‘노동가치론’을 고수한 대가)으로 돌린다(예를 들어, Brzezinski 1988; Toffler 1990; Ohmae 1991). 반대로, 북아메리카, 일본, 유럽의 선진 자본주의는 그것의 기업체, 개방성 그리고 민주주의의 덕택으로, 정보화 시대의 풍요한 이득을 뿌리고 거둬들이기에 적합한 독특한 사회의 형태로 간주된다.

그러한 생각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60년 후반, Daniel Bell(1973), Zbigniew Brzezinski(1973) 그리고 Peter Drucker(1968)와 같은 이론가들이 처음 ‘탈산업’사회, ‘전자기술시대’ 사회, ‘지식’사회의 도래를 예고했을 때, 그들의 연구는 자본주의가 격렬하게 그것의 내부적 모순에 압도되고 말 것 이라는 맑스주의적 테제에 대한 반박으로 명백하게 짜여졌다. 기술적 성장에 대한 무한한 지평을 선언하면서, 그들은 산업주의의 변천을 넘어 풍요함과 안정성의 화려한 새로운 세계로의 평화로운 진화를 예견했다. 반면, 신좌파와 학생운동이 연합된 탈산업사회이론의 좀더 비판적인 흐름이 있는데(알랭 투랭의(1971) ‘프래그램된 사회’에 대한 반-과학기술 중심주의적 생각과 같은), 두 판본은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쇠퇴하고 있는 중공업의 시대의 더러운 유물로 간주하면서, 근본적으로 맑시즘과 결별하였다.

70년대 경제적 위기의 예기치 않은 회귀는 맑스주의를 단순한 유행으로 취급하려한 그러한 미래학이나 격앙된 맑스주의자들을 간단히 고사시켜 버렸다. 그러나 수년 내에 탈산업주의의 기본적인 명제들은 배가된 힘으로 소생하였고, 현재 그것은 ‘정보 사회’라는 일본식의 상표를 달고 다시 출현하고 있으며, 정신적 삶과 생물학적 삶의 기본적 요소들을 재구성하기 위해 극소 전자학과 유전공학의 놀라운 능력에 집중되었다. (Bell 1979; Beniger 1986; Dizard 1982; Masuda 1980; Nora and Minc 1981; Oettinger 1980; Porat 1977,1978). 국가와 기업 후원자들에 의해 길러지면서, 초소형 컴퓨터의 대중판매에 끌려가고, 토플러(1970; 1980; 1990)나 내스벳(1982)과 같은 인기인들에 의해 넓게 확산되면서 정보기술 비트의 매력은 1980년의 문화 속으로 스며든다.

‘사회주의로부터 사회적 변화의 언어를 빼앗기 위한’(Webster and Robins 1981, 250) 손쉬운 방법으로 제공된 ‘정보 혁명’의 개념과 상승하는 신자유주의와의 즉각적인 절합이 있다. 국내적으로, ‘피할 수 없는’ 과학 발전의 요구가 기술적 변화에 대한 노조의 저항을 호되게 꾸짖기 위해 전개된 반면, 국제적으로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대한 주장은 시장의 지구적 재조직화에 사활적인 요인이 되었다. 1990년대, 냉전 승리에 격앙되어 실리콘선동가들은 테크놀로지가 마침내 계급 갈등의 유령을 몰아내 새로운 행성의 질서의 비젼을 창조하기 위한 『역사의 종말』(후쿠야마 1992)의 기대와 융합하였다.

미래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이러한 상을 가로질러 하나의 붉은 선이 그어진다

자율적 테크놀러지와 자율적 노동자


정보화사회이론은 정보기술을 미래의 경제, 문화 그리고 정치를 추진하는 주요한 추동자로 제시하는 ‘자율적 테크놀러지’(Winner 1977)의 교의이다. 만일 어떤 맑스주의가 그러한 결정주의와 논쟁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는 확실히 그 전제 안에 부분적으로 연루되어 기 때문이다. 생산력을 시대착오적인 사회관계를 가차 없이 분쇄하는 역사의 동력으로 인식하는 ‘과학적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그 자체를 진보의 행진을 만드는 기계에 대한 족쇄로 묘사하면서, 그들의 논리를 전유하여 반발하는 대항이론에 답하는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몇몇 탈산업주의적 스승들이 >멧돌은 당신에게 봉건영주들의 사회를 제공하며, 증기동력은 당신에게 산업자본가들의 사회를 제공한다>는 맑스(1963, 109)의 아포리즘을 너무나 잘 배웠을 뿐인 과거 사적 유물론적 학생들이었음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그리고 그들은 초소형 컴퓨터와 통신위성에 기반한 새로운 시대를 외삽하듯이 추론해 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5)

그러나 자율주의적 맑스주의는 인간의 자율성과 관계가 있지 기계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생산력의 기술적 진보가 아닌 창조하는 자들과 전유하는 자들 사이의 갈등에 집중하는 맑스주의이다. 그것의 핵심에 노동과 자본의 관계, 즉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고 자본가의 잉여가치를 뽑아내기 위해 산노동력을 팔 것을 강요받는 노동자들의 착취관계에 대한 맑스의 정통한 분석이 놓여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정교화하면서 대부분의 서구 맑스주의자들은 단지 지배적이고 냉혹한 자본의 논리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어왔다.6)

자율주의자들이 재발견한 것은(물리에가 그것을 전후 맑스주의내 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라고 칭할 만큼 놀라운 것은) 맑스의 분석이 자본의 힘이 아닌 노동의 힘을 긍정하였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계획의 수동적 객체이기는 커녕, 노동자는 생산의 능동적 주체이며, 자본이 끌어내야만 하는 기술과 혁신 그리고 협동의 원천이다. 더욱이 노동하는 주체는 능동적일 뿐만 아니라, 적대적이다. 자본은 >절대적>으로나(노동일을 늘임으로써), >상대적>으로나(노동의 강도나 생산성을 향상함으로써) 착취를 최대화 할려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일상의 실천과 조직된 투쟁 속에서 그들 자신의 매우 다른 계획들을 끊임없이 개시한다. 단지 노동력으로 환원시키는 것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충분한, 충만한 삶을 추구하면서 그들은 임금 수준을 올리거나 노동일의 기간이나 속도를 줄임으로써 자본에 도전하는 대항논리를 전개시킨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생산한 가치를 되찾기 위한 그들의 이러한 노력은 단지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노동력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의 정치적 명령에 대한 타격이다. 그들이 가리키는 전망은 자본으로부터 노동의 분리이다. 궁극적으로 자본은 노동을 필요로 하지만, 노동은 자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생산의 근원으로써의 노동은 임금 관계없이도 살 수 있다. 그것은 잠재적으로 자율적이다.

이런 전제로부터 자율주의자들의 가장 독특한 교의 즉, 마리오 뜨론띠가 처음 공식화 했던(1979) >투쟁의 역전>에 대한 교의가 나왔다. 이는 실제로 자본주의적 발전의 동력을 제공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투쟁임을 제안한다. 자본은 그 자체의 원초적 본체로부터 새로운 기술들과 조직을 짜내면서 일방적이고, 비분할된 자기-함의적인 논리에 따라 전개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은 불가결하고 적대적인 병합된 타자의 항상적인 압력에 반작용하면서 내적적대에 의해 추동된다. 자본이 그 스스로 발전하여 완성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 것은 이런 적들 내의 점점 커가는 힘들을 제압하고, 분쇄하여 좌절시키기 위해서 이다.

중심적 심급은 기술적 혁신을 이루고자 하는 그것의 충동이다. 판찌에리는 훨씬 뒤의 테크놀러지 비판에 전조가 되는 선구적인 논문에서 객관적이고, ‘진보적인’ 경향성으로서의 기술-과학적 발전에 대한 좌파적 관점들과 단호하게 관계를 끊는다. 오히려『자본』에서 기계류에 관한 초기 도입부의 장으로 돌아가, 그는 자본주의가 끊임없는 기술적 혁신을 노동계급에 맞서는 ‘무기’로서 의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생산 과정내에 포함된 산 혹은 ‘가변’자본에 비교하여 죽은 혹은 ‘불변’자본의 비율을 증가시키려는 경향성이 전자가 잠재적으로 경영진이 전장에 휩슬려 있는 전복적인 요소이며, 그 전복적 요소는 각각의 지점에서 통제되고, 파편화되고, 축소되고, 궁극적으로 제거되어야만 한다는 사실로부터 정확하게 발생한다고 주장했다.7)

단순하게 기술적 합리화의 과정을 승인하는 것은 이 과정 내에서 강화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적 합리성이다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는 기술적 변화가 노동계급을 위한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기회를 열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자율주의자들은 이런 장내에서의 용감한 실험가들이다). 그러나 이는 그러한 변화가 자동적으로 해방이다는 개념을 거부하는 것이다. 기술적 발전이 ‘기계의 사회주의적 이용’에 어떤 가능성을 끝까지 지지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노동계급의 불복종이 ‘총체적으로 전복적인 성격’을 실현 한다(Panzieri 1980, 57; 1976, 12)는 정도만큼 만이 포착될 뿐이다.

정보 기술 대 대중 노동자; 신-러다이트 운동


이런 전망으로부터, 정보 테크놀러지의 확산은 선형적이고 보편적인 과학적 진보로서가 아니라 자본과 노동사이의 투쟁의 순환내에 하나의 계기로서 나타난다. 전투원들의 상대적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자율주의자들은 단지 노동에 대한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분할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문화적 환경, 조직 형태들 그리고 정치적 방침에 의해서 결정된 ‘계급 구성’의 개념(각각의 편의 내부적 통일성, 자원들, 의지의 척도)을 도입한다.8)

노동계급의 응집력이 성장함에 따라, 자본은 그것에 반대하는 조직화를 ‘해체시키기’위해 경제력, 기술력 그리고 국가권력을 배치하는 공격적인 재구조화로 대응해야만 한다. 그러나 자본은 잉여가치의 원천으로서의 집합적 노동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신의 적을 완전히 파멸시킬 수 없다. 각각의 공격은, 아무리 성공적이라 할지라도, 노동력의 ‘재구성’을 그리고 새로운 능력들, 전략들, 조직형태들을 지닌 노동의 상이한 층위들에 의한 새로운 저항의 출현을 수반한다. 한번 형성되고 끝난 존재라기보다, 노동계급은 항상 증대하는 갈등의 ‘이중적 나선’ 속에서, 서로가 뒤쫓고 있는 노동 계급 재구성과 자본주의적 재구조화의 부단한 변형의 동학 내에서 계속적으로 개조된다(Negri 1980, 174).

‘정보 혁명’의 중요성을 파악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런 나선내의 세 번의 연속적인 전환에 대한 역사적 관점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전문 노동자’(20세기의 1사분기에 러시아 볼셰비즘과 평의회 운동의 핵심이 된 고도로 숙련된 공장 노동자들)의 시대이다(bologna 1976; Moulier 1986; Negri 1992). 이런 혁명적 운동의 위협에 직면하여 자본은 노동력의 탈숙련화와 전위적 행동주의의 제거를 목표로 생산의 급격한 재구성에 착수했다. 이 기획의 구성요소는 노동과정의 조직화와 관련하여 테일러리즘, 노동일과 임금의 구성과 관련하여 포디즘, 경제 정책과 관련하여 케인즈 주의, 정부와 관련하여 자율주의자들이 “계획자 국가”(포괄적인 사회적 경영을 목표로 하는 정부적 복지 프로그램과 산업 전략들)라고 칭하는 것의 도래이다(Negri 1988, 205). 이런 조치들을 통하여, 자본은 서구에서 자국 내부의 반체제적 세력들을 봉쇄하고, 이차대전 뒤에 축적의 ‘황금시대’를 위한 조건들을 안정화 시킨다.

그러나 이런 재구조화는 새로운 노동계급 주체를 창출하였다. ‘대중 노동자’는 이탈리아 상황의 피아트의 피고용인들에 의해 그밖에 영국의 포드, 프랑스의 르노, 미국의 GM의 자동자 노동자들에 의해 전형화된 산업 생산의 핵심에 있는 거대한 공장들내에 집중된 반-숙련 조립라인의 노동자들로 구성되었다. 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에 케인즈 주의의 제도화된 한계내에 임금 요구를 억제하는 것에 대한 혹은 기계화된 대중 생산의 비인간적 조건을 묵인하는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거부는 계획자 국가의 안정성과 전후 안정의 의문을 제기케 하는 파업과 사보타지, 그리고 결근의 파고를 명백히 하였다.

이러한 호전성에 대응하여, 자본은 그 자신을 다시금 재구성하였다. 레이거니즘과 대처리즘에 의해 전형화된 이런 대항 공격은 몇가지 요소들과 결합하였다. ‘계획자국가’는 복지조항이 긴축에 의한 훈육을 지지하여 폐지되었고, 화폐정책이 실질임금 하락을 유도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맡았으며, 가혹한 조치들이 노조에 맞서 제도화됨에 따라 ‘위기 국가’에 길을 비켜 주었다. 동시에 기업들은 네그리가 ‘사회화, 제3영역화, 파편화’라고 명명했던 것을 달성하기 위해 재조직되었다(Negri, 1978, 254). 생산의 초점은 탈중심화되고 산업 공장으로부터 분산된다. 경제의 ‘연성’ 부문과 ‘서비스’부문의 비약적인 발전이 있고, 자본은 노동계급 경직성의 완고함을 회피하기 위해 지리적 이동성과 시간적 유동성의 극대치를 추구한다.

정보과학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여기서이다. 네그리에 의하면, 1970년대에 컴퓨터화와 원거리 통신에 의해 전제된 두드러진 중요성은 ‘자본 요소들의 유통과 재생산을 통제하는 도구와 과정들의 혁신’을 위한 기업적 욕구와 관련이 있으며 ‘사회화된 노동자의 테크놀로지적 통제’내에 포함된 ‘확산된 기계화’와 관련이 있다(1978, 235, 254). 하이테크놀로지는 ‘소수-노동자 공장’의 전망을 가져옴으로써 대중 노동자의 보루를 침식한다. 즉 원거리 통신은 값싸고 유순한 노동의 유용성에 따라 조절의 국내적 분산과 국제적 분산을 가능케 한다. 그리고 컴퓨터화는 산업 현장에서 감시와 분리를 강화할 뿐만 아니라 사무직 노동의 착취를 강화를 위해 필연적인 자동화와 감시의 새로운 수준들을 허용한다(Murray(1983)를 보라). 정보화 사회의 장밋빛 상 아래에는 ‘노동 비용의 통제와 축소’라는 뚜렷한 목표가 놓여 있다(Negri 1978, 254).
그러한 분석은 자율주의자들에게 결코 독특한 것이 아니다. 사실상, 노동계급에 대한 신자유주의자들의 공격 속에서 정보과학의 역할에 대한 자각은 의사(擬似)맑스주의의 신-러다이즘이라는 영향력있는 노선을 발생시켰다. 대체로 ‘노동 과정’에 기초한 전망들은 ‘노동의 단순화’에 대한 브래이버만의 획기적 연구로부터 유래되었지만, 미디어 연구의 중요한 흐름들과 함께, 이런 연구는 새로운 테크놀러지를 탈숙련화와 ‘정신 관리’(Schiller 1976)를 위한 도구로서 나타나도록 하였으며 19세기 기계-파괴자들(e.g. Noble, 1983, 1984; Webster and Robins 1986)의 저항전통을 적어도 지적으로라도 되살리도록 하였다.

이런 전망은 정보화사회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활력있는 해독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심각한 한계들을 갖고 있다. 작업장 문제들에 관해서 테크놀로지적 혁신에 대한 비타협적 의심은 이미 명백하게 탈인간화하고 있는 산업 노동 형태의 옹호(그리고 아마도 낭만화)를 초래할 수 있다. 보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노동계급 구성원들이 실질적인 기쁨과 이용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혹은 좀더 전복적인 목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의 새로운 배열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신-러다이즘은 혁명적 가능성을 위한 맑스의 연구가 교화, 감시 그리고 자동화의 전능적인 테크놀러지에 의해 지배된 정보과학적 디스토피아의 악몽같은 비젼에 길을 열어준다는 급진적인 비관주의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자율주의자들의 분석, 그리고 사보타지를 노동자들의 힘의 표현으로 보는 그들의 찬사는 신-러다이즘과 강력한 유사성을 갖는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분석의 실질적인 변별점이 완전히 다른 방향에(자본의 정보적 재구성이 노동계급의 분열의 계기일 뿐만 아니라, 재구성의 계기이다는 일부 이론가들에 의한 대담한 주장에) 놓여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대중 노동자’의 죽음이 새로운 혁명적 주체(‘사회화된 노동자’)의 탄생과 중첩된다는 생각은 70년대말부터 가장 최근의 저작들에까지(1978; 1980; 1988; 1989) 그리고 이제 우리가 살펴볼 탐구에 이르기까지 네그리의 핵심적 이론이었다.9)

사회적 공장과 사회화된 노동자


초기 정보사회론의 공통된 주장은 후기산업적 생산으로의 전환이 그것과 더불어 테크놀로지적 변화의 부산물로서, 인공지능적 테크노크라시에서부터 전자적 목가주의에 이르기 까지 여러 가지 애매하고 모순적인 형태들이 예견되는 ‘후기-자본주의적’사회적 조직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보다 최근의 판본들은 시장에 대한 갱신된 이데올로기적 존경심의 찬사 속에서 이런 노선의 생각들을 약하게 한다. 그러나 흉악한 맷돌의 컴퓨터화된 체계로의 대체는 역사적으로 산업공장과 관련된 사유재산, 기업권력 그리고 임노동의 가혹한 성운내에서 최소한 일부 유의미한 완화를 허용할 것이다는 믿음이 남아있다.

자율주의자들의 관점은 정반대이다. 네그리에 따르면, 자본의 ‘정보적’ 재구축화는 맑스가 ‘자본하에서 노동의 형식적 포섭’에서부터 그것의 ‘실질적 포섭’으로의 이행을 이야기 한 『자본』의 ‘미출간된 여섯 번째 장’에 암시된 상황을 나타낸다. ‘포섭’은 노동이 자본의 가치 추출과정에 통합되는 정도를 나타낸다. ‘형식적 포섭’에서(대략 산업혁명의 초기 단계)자본은 장인적 생산이라는 이미 존재했던 양식에 대해 임노동의 형태를 부과할 뿐이다. 그러나 다음 국면, 즉 ‘실질적 포섭’에서, 노동의 대대적인 재조직화로 잉여가치를 발생시키려는 충동은 규모의 경제와 협력으로부터 수확을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과학은 체계적으로 산업에 활용된다. 테크놀러지적 혁신은 영구한 것이 되고, 착취는 시간의 ‘절대적인’ 확장보다는 생산성의 ‘상대적인’ 강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소비는 ‘생산을 위한 생산’의 탐닉으로 새로운 산업을 부추기는 새로운 욕구의 양성에 의해 조직된다.

네그리에 의하면, 산업공장의 쇠퇴는, 자본 너머로의 도약을 의미하기는 커녕, 맑스의 예언적인 설명이 암시하는 것보다도 더 깊고 광범위한 ‘실질적 포섭’의 국면을 나타낸다. 탈산업화와 대중노동자의 소멸은 그것의 다른 얼굴이 새로운 지대 속으로 자본주의적 조직화를 가속적으로 전개하는 것인 그러한 과정의 한 측면일 뿐이다. 과학적-테크놀로지적 하부구조내의 간접노동은 작업장에서의 직접노동만큼 중요하게 된다. 유통(마케팅, 소매업, 금융 그리고 은행업)은 정확하게 생산과 맞물리며 그 자체가 이익 추출을 위한 주요한 장소가 된다. 노동력의 재생산은(그것의 교육, 여가 활동, 훈련, 그리고 생명공학이 발전하면서, 그것의 수정과 착상까지) 완전히 상품화된다. 이런 모든 발전들은 초기에 출현한다. 그러나 이제 정보테크놀러지의 통합력과 계산력이 트랙킹에 의해 조성되면, 그것들은 강렬함과 상호연결의 새로운 정점에 도달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생산의 집중처(공장)를 잉여가치 추출을 위한 특권화된 장소라고 말할 수 없다. 그 대신에 자본의 거대한 신진대사내의 마디들이 확장되어간다. 우리는 배아기 단계의 현상과 마주친다. 1960년대에 뜨론띠(1973)가 ‘사회공장’이라는 이름으로 최초로 식별하였고, 그것의 좀더 진전된 형태로 자율주의자들은 ‘광범위한 공장’, ‘벽이 없는 공장’(Negri 1989, 204) 혹은 ‘정보 공장’(Collectif a Traverso 1977, 107)으로 명명한다.

‘사회화된 노동자’라는 테제는 단순한 ‘공장주의’가 적절치 않다는 점과 생산에서 이전에는 주변적으로 이해되었던 모든 기능들이 완전히 자본의 유통 속으로 통합되어 가는 맥락 속에서 노동력의 본성을 재규정하려는 시도이다.10)
네그리의 관찰에 따르면, 대체로 페미니스트운동, 청년운동 그리고 학생운동에 의해 드러난 이런 조건들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부터의 이행을 표현하는 계급 개념 어휘들의 혁신을 요구하였다.


공장의 직접생산으로 대량화된 노동계급으로부터 이제 생산과 재생산의 전(全)주기에 걸쳐 확장된 새로운 노동계급의 잠재성을 재현하면서 사회적 노동력으로의 이행을 표현하는 계급 개념(사회 및 전체로서의 사회적 노동에 대한 자본주의적 통제의 더욱더 폭넓고, 더욱더 탐색적인 차원들에 좀더 적합한 개념)(Negri 1988, 209).




그런 언어는 테크놀로지적으로 선진 산업내에 자리를 잡은 ‘새로운 노동계급’이라는 말레의 초기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네그리의 이론은 기술적 노동자중에서 선별된 지식인계급의 출현을 개념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모든 분야에서 기술-과학으로 뒤덮인 체계에 의해 요구된 노동력의 일반화된 형태의 출현을 개념화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다르다.

‘대중 노동자’가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일한다면, ‘사회화된 노동자’는 은행 사무원, 건강관리 노동자, 보조 교사(그러나 자동차 공장, 펄프공장, 강철공장를 포함하여 노동의 전영역이, 오늘날 흘러가는 경향이 있는 두드러진 특징을 가리키는 사례들)와 같이 경제의 ‘연성’부문 혹은 ‘제3의’ 부문에서 출현한다. ‘대중 노동자’는 거대한 산업 공장으로 집중됨으로써 ‘대량화’되는 반면, ‘사회화된 노동자’는 가치창출의 훨씬 더 분화되고 확장된 체계내에 참여함으로써 ‘사회화’된다. 왜냐하면 그의 생산성이 노동의 이런 복잡한 분할 내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며, 그의 노동에서 하나의 중심적인 요소가 소통적이고 협조적인 작업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추상적이고 디지털화된 작업들이 직접적으로 생산적인 지적활동이 되는 정보과학적 체계의 정교한테크놀로지적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반면, 동시에 새로운 사이버적 프롤레타리아트화의 정보저장소를 형성하면서 전통적으로 정신노동을 육체노동으로부터 구획 지웠던 특권들을 잠식한다(Negri 1989, 89-101).

사회공장으로의 통합은 생산의 직접적인 장소를 넘어 뻗어 나간다. 유통과 재생산 부분에 대한 자본의 식민지화는 여가활동, 교육, 건강관리, 복지가 기업적 이익의 종합적이고 사회적인 조건들을 유지하려는 세밀한 감시와 조절에 점차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장을 넘어 경제적 전략으로 활동성을 철저하게 병합하는 것은 착취의 시간적 척도가 노동일이 아닌 삶 전체로 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네그리는 말한다(1988, 219). 이런 자본의 계산법의 확장과 정교화에 직면하여 우리는 실제로, 그가 관찰한, ‘맑스를 넘어서게’ 되며, 사회화된 노동자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수행자 혹은 행위자에 대해서 말하기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맑스주의적 별칭을 유지함으로써 그는 시간과 창조성의 이 포괄적 조직화를 지배하는 원리가 여전히 노동착취임을 강조한다.(1989, 84).

사회화된 노동자에 대한 네그리의 이론은 매우 논쟁적이다는 점이, 심지어 그가 폭넓게 유사한 정치적 기원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조차도 그러하다는 점이 즉각 유념되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공장외부에서 사회체(the body of society)로 맑스의 혁명적 주체의 증가에서 ‘몰의 부족’(1980)으로 사회적 갈등의 확산에 대한 중요한 자율주의적 분석을 제공했던 볼로냐는 노동력의 재구축화로부터 발생하는 복잡성을 단 하나의 장대한 이론적 구축내에 포함시키려는 네그리의 시도를 맹렬하게 비판한다.11)

더욱이, 이런 ‘새로운’ 노동계급 주체에 대한 네그리의 열정적인 발견은 종종 일부 ‘오래된것’(‘대중 노동자’의 투쟁들)의 계속된 회복력을 과소평가하거나 기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완고한 자본의 관점에서 매우 불순한 영국과 미국에서의 석탄 광부들의 전투성에 대해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제적 요소들이 인정되는 반면, 우리는 네그리의 테제들이 받아들여져왔던 것 보다 더 폭넓게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함이 없는 구축물이어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대체로 실리콘 자본의 옹호자들에 의해 점령되어온 영역속에 전투적이고 혁신적인 탐침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미주


1) 이런 전통을 채택하는데 있어서 나는 클리버(1979)를 따르는데, 그의 저작은 영어권 내에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에 대한 이론적 입장들과 역사적 전개의 중대한 지도 그리기를 구성한다. 그는 여기서(그의 저작 속에서: 역자) 논의된 이딸리아적 조류의 저작들이 어떻게 미국 존슨-포리스트 경향과 프랑스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그룹의 저작에 의해 중첩되고, 이해되는가를 보여준다.

2) 이딸리아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에 대한 이런 개관적인 설명은 필연적으로 그 주제들의 복잡한 역사를 왜곡한다.특히, 그것은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공장 투쟁들 주변에 초점을 맞춘 초기 이딸리아 오페라이스모 혹은 ‘노동자 주의’와 아우토노미아라는 폭넓은 사회적 운동 속에서 등장한 후기 흐름들과의 관계를 다루기에 부족하다(#scants). 뜨론띠와 판찌에리는 전자에는 속하나 후자에는 속하지 않는다. 실제로 뜨론띠는 그의 저작을 대체로 구축했었던 네그리와 같은 아우토노미아 이론가들과 정치적으로 결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두를 ‘자율주의적 맑스주의’로 분류하는 그들의 사고의 노선 속에서 충분한 연속성을 발견한다. 이딸리아 신좌파에 대한 핵심적인 영어권 분석은 라이트(1988)인데, 그는 오페라이스모와 아우토노미아간의 차이를 강조하며, 운동내의 논쟁들과 투쟁들에 대한 흥미있는 분석을 준다. 또 다른 이론적이며 역사적인 소개들은 Cleaver(1979), Ryan(1989), Moulier(1986; 1989), Negri(1980), Moulier(1986; 1989), Piotte(1986), Bologna(1986), Lotringer and Marazzi(1980), Lumley(1990)를 포함한다. Tahon과 Corten(1986)의 논문은 가치있는 회고적 자산을 제공한다. 중요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 저작선은「레드 노트」(1970)와 Negri(1988)이다. Balestrini(1989)의 소설은 아우토노미아의 흥망성쇠에 대한 생생한 그림을 제공한다.

3) 두가지 사례면 충분할 것이다. 독자들은 서구맑스주의 국가에 대한 Perry Anderson의 주기적인 레포트들(1976; 1983)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Bottomore의 훌륭한『맑스주의 사상사전』이건 간에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에 대한 모든 언급들이 경솔한 것임을(in vain) 볼것이다.

4) 네그리와 그의 동료들의 최근 저작의 주요한 전달수단은 프랑스 저널인「Futur Anterieur」이다.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은 두개의 북아메리카 저널은「Zerowork」(현재 폐간됨)와「Midnight Notes」이다.

5) 테크놀로지적으로 동시대적인 결정 주의적 맑스주의를 위해서는 Cohen(1978)을 보라. 정보화사회이론에 대한 맑스주의의 영향은 Bell(1973)과 Toffler(1983)속에서 분명하다.

6) 아마 틀림없이, 이러한 경향성은『자본』을 저술했던 맑스 그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였지만 임노동에 관한 그의 기획된 책은 그렇지 않았다. 그 결과는 자본이 자본주의 내부의 경쟁을 통해 그 자신의 내부적 논리를 무차별적으로 전개시키면서,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힘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전망이다. 노동자들은 자본의 착취적 기계의 바퀴들 간의 수동적이고 객체적인 기반으로 나타난다. 이 기계는 확실히, 자기 파괴적인 것이다(‘이윤율 하락’의 법칙과 같은 냉혹한 법칙에 의한 재난에 이르게 한다). 결국에, 노동자들의 비참함은 거대한 전환의 계기 속에서 프롤레타리아 반란과 같은 절망의 상태에 다다른다. 그러나 기계는 그 자신의 파괴를 향하여 치닫는다. 그러한 전망의 정치적인 결과는 다양하다. 한편에서 그것은 혁명의 불가피성 내에서 목적론적인(치명적으로 잘못된)믿음을 생성시킨다. 또 다른 한편에서, 경제 붕괴의 ‘법칙’이 예정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심하는 한에서, 그것은 자본의 비젼을 그것의 일차원적 질서내의 모든 대립을 흡수할 수 있는 지난(至難)한 져거너트(juggernaut)로 기른다. 두가지 견해는 맑스로부터 혁명적 불꽃의 모든 스파크를 소멸시켜, 호전성 대신 운명론을 대체한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일면적’ 측면에 관해서는 Negri(1984), Thompson(1978), 특히 Lebowitz(1992)를 보라.

7) 물론, 이런 관점의 자원은 맑스(1977, 563)이다. 즉, ‘자본을 노동계급의 반란에 맞서는 무기로서 대신하려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1830년대 이래로 만들어진 발명의 완전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Cleaver(1981)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자율주의적 맑스주의 이론의 중요한 것을 설명해 준다.

8) ‘계급 구성’의 개념을 위해서는 Cleaver(1992; 1979), Moulier(1986, 48-56; 1989, 41), Negri(1988, 209), Ramirez(1986, 136),「Zerowork」(1975, 3-4)를 보라)

9) Wright(1988, 306)의 지적에 따르면, ‘지적 노동의 프롤레타리아트화와 거대화로 묶여진 계급적 표상’을 가리키는 ‘사회화된 노동자’라는 용어는 Romano Alquati의 학생운동에 대한 분석에서 처음으로 주조되었으며, 그 뒤에 Negri에 의해 발전되었다. 사회화된 노동자에 관한 네그리의 주장의 예견은 Beradi에게 있어서 기술-과학적 노동(1978)으로서도 존재한다.

10) 이런 정식화에 대해 필수적인 서문은 가정에서 여성의 비임금 노동의 자본주의적 경제로의 통합으로 분석한 Tronti(1973)의 저작뿐만 아니라 Dalla Costa and James(1972)의 저작이다. 또한 Cleaver(1978)를 보라.

11) Bologna와 다른 그의 이딸리아 동료들에 의한 Negri의 ‘사회화된 노동자’테제에 대한 비판의 흥미있고 유익한 요약을 위해서는 Wright(1988, 287-339)를 보라. 그러나 네그리의 ‘사회화된 노동자’에 대한 설명은 10년의 과정동안 발전해왔음을 유념해야만 한다. 그것의 가장 최근의 판본(1989; 1992)은 그것의 최초의 발표(1978)보다 훨씬 더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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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소수성의 정치학과 혁명

지난주에는 북커진이라는 새로운 형식 책(혹은 잡지)이 출간됐다. 혁명(Revolution)의 머릿글자를 딴 잡지 'R'이 그것인데, 매호 주제별로 묶인다는 첫호의 주제는 '소수성의 정치학'이다. “주변화가 지배적 척도에 의한 존재의 부차화를 가리킨다면 소수화는 그 척도로부터의 탈주를 가리킨다.”는 기획의 변 자체는 별로 새로울 게 없지만 그것이 한 권 분량의 책으로 출간되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거기엔 '물질적 노동'이 관여하기 때문에. 관련리뷰와 책을 낸 출판사 그린비의 유재건 대표와의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7. 05. 05) 권력·자본으로부터 탈주… 소수의 가치를 실험하다

“다수는 상대적으로 큰 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표준의 결정을 의미한다. 백인, 성인, 남성 등 다수성이 지배의 상태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의 상태가 다수성을 뜻한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다수성과 소수성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수적으로 우세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가치 척도’를 쥐고 있기 때문에 ‘다수적 지위’를 차지한다. 반면 그 척도에서 벗어나 있는 자들은 비주류, 즉 소수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 척도에 의해 억압받고 차별받는다.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여전히 ‘진행형’인 한국 사회에선 이같은 ‘소수성’이 다양한 형태로 양산되고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을 위해 공유수면에서 추방당한 어민들, 안보를 명목으로 삶의 터전에서 추방당한 평택 대추리의 농민들, 법체계에서 추방당한 이주노동자들,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추방당한 중증장애인들….

도서출판 그린비와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공동 기획한 반연간 인문사회지 ‘R’는 이처럼 권력과 자본에 의해 추방된 타자들에 주목한다(R는 alter(다른)+Revolution(혁명)이라는 뜻이다). 이들은 그간 ‘전체’를 위해 희생이 불가피한 ‘일부’로, 정상에서 벗어난 ‘예외’로 취급됐다. 그런데 이 ‘일부’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져서 우리 사회의 대다수 ‘대중’의 형상이 됐다. “전체를 위해 희생해야 할 ‘부분들’이 사실상 전체이고, ‘정상’에서 벗어난 ‘예외’가 정상을 이루는 것”이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의 연구원이 평택 대추리의 철거된 건물 위에 ‘모두가 소수자’ 라는 의미를 담은 깃발을 꼽고 있다. <도서출판 그린비 제공>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추장’인 고병권씨는 총론격인 ‘주변화 대 소수화:국가의 추방과 대중의 탈주’에서 이같은 문제의식을 여실히 드러낸다. 지난 10년간 권력과 부의 영역에서 대중들은 지속적으로 추방당해왔다. 그는 이를 ‘주변화’(Marginalization)라고 정의하면서, 이 ‘마진’(Margin)의 사전적 의미(주변, 한계, 이익, 여백 등)에서 많은 것을 읽어낸다. 첫번째 의미인 ‘주변’은 권력과 부의 영역에서 부차화된 대중의 지위를, ‘한계’는 대중들의 삶이 처한 상황을, ‘이익’은 권력과 자본이 주변화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점을, ‘여백’은 이같은 주변화가 정치권에서는 전혀 사고되지 않는다는 점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는 그러나 ‘주변화’와 ‘소수화’(Minoritization)를 구분한다. “주변화가 지배적 척도에 의한 존재의 부차화를 가리킨다면 소수화는 그 척도로부터의 탈주를 가리킨다.” 책은 바로 여기에 주목한다. 권력과 자본은 대중들을 추방하고 주변화하지만, 대중들은 그만큼 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탈주하고, 다른 삶을 실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희선의 글 ‘새만금의 노모스’에선 새만금 어민들의 삶과 투쟁이 기존 법의 소유권 개념을 어떻게 뒤흔드는지를, 신지영의 글 ‘대추리의 코뮨주의’에선 “올해도 농사짓자”는 농민들의 투쟁이 재화를 독점하는 국가적 공공 개념의 모순을 어떻게 폭로하는지 보여준다.

‘이주노동자와 이동’ ‘중증장애인, 비인간의 탈인간 되기’ 등의 글도 대상만 다를 뿐 소수자와 탈주의 새로운 가능성을 얘기한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다. 책 말미를 장식하는 진은영 시인의 글은 짧지만 의미심장하다. “소수는 모든 사람이다. …소수자는 우리가 특별히 만나야 할 어떤 인물, 어떤 계층이 아니다. 그는 기준에 벗어나는 모든 순간을 만들어내는 우리 자신이다.”(김진우 기자) 

한겨레(07. 05. 04) "사회이슈 깊이 파고든 ‘책잡지’랍니다”

처음 유재건 그린비 출판사 대표를 인터뷰하겠다고 했을 때 그는 손사래를 쳤다. “제가 나설 자리가 아니고, 한다면 당연히 고병권씨가 해야죠.”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대표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래도 출판사에서 이런 독특한 잡지를 낼 용기를 냈다는 것 자체가 이야기해볼 만한 주제 아닌가요?” 그는 거듭되는 설득에 넘어가고 말았다. “쑥쓰럽네요.” 그래도 여전히 그는 주인공은 ‘수유+너머’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야기의 주제는 그린비 출판사가 펴낸 잡지 (아르)다. 이 잡지의 품목명은 특이하게도 ‘부커진’이다. “북(책)과 매거진(잡지)을 합성한 말인데요, 1980년대에 자주 나왔던 ‘무크’(매거진+북)를 뒤집어놓은 꼴입니다. 그 시절 무크라는 게 단행본 형태로 된 부정기 간행물이었잖습니까? 무크가 잡지의 성격이 강했다면, 우리가 내는 부커진은 책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보면 됩니다. 기존 잡지가 주제 하나를 깊이 있게 파고들기 어려운 점이 있는데, 단행본 책 형식을 취해 그 깊이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이 ‘책-잡지’는 일반 단행본 책처럼 독자적인 제목이 있다. 이번에 나온 첫 호의 제목은 ‘소수성의 정치학’이다.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발견되는 소수성의 문제를 이슈로 삼았습니다. 새만금 문제라든가 한-미 에프티에이 문제, 평택 미군기지 문제, 장애인 문제 같은 이슈들을 소수자의 관점에서 접근한 거죠.”

이 책-잡지의 특이함은 ‘부커진’이란 이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통상의 잡지나 무크가 일인 대표 편집위원 체제로 굴러가는 것과는 달리, 이 잡지는 매번 편집인이 바뀐다. 이번호 편집인은 고병권 대표다. 그가 고병권 대표를 자꾸 앞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번 대표 편집인이 바뀔 예정인데, 해당 이슈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열정적으로 그 이슈를 이야기할 사람이 편집인을 맞는 게 옳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수유+너머’가 기획을 주도했다고는 해도, 출판사의 적극적 참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저희 출판사와 ‘수유+너머의 연구원들이 함께 고민해서 이슈를 잡았습니다. ‘소수성의 정치학’이라는 주제 아래 쓴 글들은 ‘수유+너머’ 연구원들이고요, 저희는 이슈로 묶은 글 외의 다른 글들을 책임진 셈이죠.”

유 대표가 이 잡지를 처음 생각한 것은 5~6년 전이었다고 한다. 대중과 만나는 접점을 넓혀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던 것이다. “기획을 구체화한 것은 1년 전쯤입니다. 지난해 사회적 이슈가 많았잖아요? 한-미 에프티에이 반대 시위나, 평택미군기지 반대시위에 ‘수유+너머’ 사람들과 함께 나갔죠. 지난해 5월에는 ‘수유+너머’ 회원 20여명이 새만금에서 평택을 거쳐 서울까지 20여일간 도보행진을 했는데, 거기에 저희 출판사 사람들이 잠시 동참하기도 했고요. 그 무렵 잡지를 만들자고 합의했던 거죠.”

혁명(Revolution)의 영문 알파벳 첫 글자를 딴 제목 ‘아르(R)’의 의미는 고병권 편집인이 쓴 ‘창간사’에 소개돼 있다. “모든 혁명은 첫 글자 ‘R’만을 필요로 한다. 혁명이란 완성할 수 없는 것이어서가 아니라, 매번 새로 쓰지 않는 혁명은 혁명이 아니기에 그렇다. 우리는 과거 혁명이 제 자신의 철자를 계속 이어가려 할 때마다 단호하게 미래 혁명의 첫 글자 ‘R’을 쓴다.” 다시 ‘아르’(R)의 의미는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R’을 쓴다. 너무나 오랫동안 발전해온 ‘발전’과 결별하기 위해, 너무나 선진화된 ‘선진’과 결별하기 위해 ‘R’이라고 쓴다. 우리에게는 발전론 자체가 낡은 과거다. 아니 반대로 말해도 좋다. 발전론과 결별한 우리에게는 어떤 과거도 충분히 미래적이다.” 말 그대로, 탈근대적 혁명을 꿈꾸는 전사들의 선언문이다.

이 전사 동맹에 가담한 유 대표는 이 동맹이 열린 동맹임을 강조했다. “이 잡지를 저희(그린비와 ‘수유+너머)가 시작하기는 했지만, 저희들만의 소유물로 남겨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능하면 다양한 연구자들이 이 매체를 통해 여러 목소리를 내줬으면 합니다. 반드시 정치적 입장이 같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우리 시대의 중요한 이슈들을 제기한다면, 그게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고명섭 기자)

07. 05. 05.

P.S. 반년간 문예지인 <작가와 비평>의 작년 하반기호 주제도 '타자-마이너리티-디아스포라'였다. 아마도 요즘의 가장 유행하는 주제가 아닌가 싶은데, '소수성의 정치학'이란 주제도 그런 면에서 보자면 '소수적' 주제는 아니다. 거기서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소수성의 아포리아'이다. 들뢰즈의 정의를 따라 어떤 표준 혹은 '지배적 상태'를 다수성이라고 한다면, '소수성'은 언제나 상대적으로만 규정될 수 있다. 따라서 “소수는 모든 사람이다"는 규정은 아포리아적이다. 그것이 참이라면 "다수는 모든 사람이다"라는 반대적 규정 또한 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소수이면서 다수이다(장애인이 '소수성'이라면, 정상인은 무어라고 규정되는가? 혹은 우리는 알고보면 저마다 '장애인'이라고 규정해야 하는가?). 나는 차라리 그러한 이중성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나, 라고 생각한다(<소수성의 정치학>에 실린 글들은 모두 '소수성의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을까?). 언제나 '다수성'을 전제하며, 그에 따라 대타적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탈근대적 혁명'의 기획은 그 유예의 기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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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일본사상사와 지식의 고고학

새로운 저자들을 만나는 일은 어릴 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던 일 만큼이나 신나는 일이다(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물론 책으로 사귀는 저자들은 '일방적인 면식'이라는 점에서 '우리, 친구 아이가?'라고 고집하기엔 멋쩍지만. 지난주에 그렇게 사귄 친구에 '고야스 노부쿠니'가 있다.

 

 

 

 

이번에 <일본근대사상비판>(역사비평사, 2007)이 번역돼 나온 저자는 1933년생이니까 나이 지긋하다. 알고보니까 역사비평사에서는 아예 고야스 노부쿠니의 '사상사연구' 시리즈를 기획하고 <동아 대동아 동아시아>(역사비평사, 2005), <귀신론>(역사비평사, 2006)에 이어서 이번에 세번째 책을 출간한 것인데, 앞으로 <한자론>,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을 정밀하게 읽다>가 더 나올 책으로 목록에 올라와 있다(<야스쿠니의 일본, 일본의 야스쿠니>(산해, 2005)는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다. 역자는 <일본근대사상비판>과 마찬가지로 김석근 교수).

 

 

 

 

일본 사상사에 관하여 한 저자의 책이 이렇듯 집중적으로 소개되는 것은 마루야마 마사오에 이어 두번째가 아닌가 싶고, 실제로 고야스 자신이 마루야마의 사상사를 비판/극복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후쿠자와 유키치 다시 읽기' 프로젝트에서도 암시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의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을 정밀학 읽다>는 마루야마의 <'문명론지개략'을 읽는다>(문학동네)를 막바로 염두에 둔 것이기 때문이다(마루야마 책은 역자와 출판사도 '옮긴이의 글'에 나와 있지만 근간 예정인 책인 듯하다. 그런데 정작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은 왜 소개되지 않는 걸까?). 요컨대, 일본의 근대와 근대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후쿠자와-마루야마-고야스'의 핫라인을 읽어둘 필요가 있겠다. 물론 현재로선 미래를 기약할 수밖에 없는 독서계획이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1996년에 출간된 저자의 <근대적 지식의 고고학>을 증보해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역자에 따르면 저자가 시도한 것은 "일본 '근대'의 '지', 특히 일본에서의 근대적 지식과 학문에 대한 근원적 비판, 다시 말해 일종의 '지식고고학적'적 탐구라 할 수 있"다. 근대적 국민국가는 "국제정치 내지 정치사적으로 근대 세계시스템 내에서 '주권국가'라는 독립된 행위자로서 공인받는 것이라면, 사상사적으로도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근대적 지식의 형성을 수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책의 부제가 '국가-전쟁-지식인'인 것은 이와 관련된다(저자는 이전 타이틀인 '근대적 지식의 고고학'이 메시지를 훨씬 더 잘 전달해준다는 뜻을 역자에게 전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물론 '지식의 고고학'은 푸코의 방법론이며 그러한 탈근대적 입장을 통해서 "근현대 일본사와 일본사상을 비판적으로 '해체'해가면서 동시에 '재구성'해가고 있"는 것이 고야스의 작업이라고 한다. 우리도 지식경영서들 틈에 지식고고학 책 한두 권쯤은 가져도 좋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고야스의 책과 함께 주문했던 책은 피터 버크의 <지식>(현실문화연구, 2006이다. 피터 버크의 <이미지의 문화사>(심산, 2005)를 최근에 집어들었던 사정과 연관이 되는데(같은 역자의 작품이기도 하다), 국역본은 제목에 덧붙여 '그 탄생과 유통에 대한 모든 지식'이란 장황한 부제를 달고 있지만 원제는 <지식의 사회사: 구텐베르크에서 디드로까지>이다. 그냥 '지식의 사회사'란 제목이 더 섹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아직 구입하지 않은 책으로 눈길을 끄는 건 제임스 버크의 <지식혁명이 남긴 위대한 유산>(청아출판사, 2001). "서구 지성사와 발명사의 '다이제스트' 판"이라고 하는데 미더운 저자인지는 모르겠다.  

07. 05. 05.

P.S. <일본근대사상비판>에 대한 알라딘의 소개는 "<에도 사상사 강의>, <방법으로서의 애도> 등으로 국내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고야스 노부쿠니의 지식 고고학 저서. 원래 제목이었던 <근대적 지식의 고고학>에서 잘 보여지듯이 동아시아의 세계화 과정에서 일본 제국을 실현한 일본, 그 속에 형성되 있던 지식에 대한 탐구를 담고 있다."라고 돼 있다.

첫문장은 알라딘의 것인지 출판사 홍보자료의 것인지 모르겠지만 "<에도 사상사 강의>, <방법으로서의 애도> 등으로 국내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이란 표현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나는 혹시나 해서 여기저기 검색해보았지만 <에도 사상사 강의>나 <방법으로서의 애도>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다. 그럼 어떻게 해서 '국내독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것이 되나? 나는 '국외독자'인가? 게다가 <방법으로서의 도>는 <방법으로서의 에도>의 오기이다. 사실 '애도'란 말에 이끌려서 저자의 홈피까지 들어가봤지만 그가 낸 책은 <方法としての江戸>(2005)였다. 애도까지는 아니지만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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