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세계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공동토의)(4)
가라타니 : 후쿠모토는 생산협동조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맑스도 생산협동조합이라는 것을 대단히 중시하여 『자본론』속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맑스는 재밌는 말을 하고 있는데 주식회사란 자본주의 내부에서의 자본제의 양기(揚棄)라고 하고 있다. 결국 자본가 자체가 사라져 가며 주식자본으로 대신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 마디로 말하면 자본과 경영의 분리입니다. 이것이 자본제 생산 속에서 나온 「부정의 부정」이라는 것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한편으로는 같은 「부정의 부정」으로서 생산협동조합이 있는 것입니다. 맑스는 코뮤니즘의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생산협동조합은 몰락했습니다. 그것은 주식회사와의 경쟁에서 진 것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영국의 산업자본 자체가 경공업에 근거한 것으로 독일과 같이 국가적인 자본에 근거한 중공업의 단계에서 몰락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 이후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협동조합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맑스는 그것을 사유제를 폐기하고 개체적 소유를 재건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예전은 이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유제의 폐기가 왜 개체적 소유의 확립이 되는가. 사유제라는 것은 절대주의적인 국가에 의해 주어진 권리로 이른바 국유제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유제는 세금을 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유제를 폐기하여 국유화하는 것이 코뮤니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맑스는 그것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사유제가 국유재산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유재산의 폐기란 국가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편, 개체적 소유는 협동적 소유 속에서 가능하게 된다. 이것이 코뮤니즘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점은 엥겔스 이후의 맑스주의에는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내 생각에서는 맑스는 역시 생산중심주의에서 사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소비협동조합보다 생산협동조합을 중시했다. 그러나 맑스도 말했지만 생산협동조합은 기업 속에서 기업에 대해 대항하는 경우는 그 자체가 주식회사로 전화하던가, 기업에 패배하던가 어느 한 쪽입니다. 후쿠모토가 말하고 있는 문제는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하지만, 농민조합을 만들고 임업조합을 만들려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본에 대해서는 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리적으로는 소비자조합이 선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소비자운동이나 소비조합은 아니며, 소비협동조합을 형성하고 그것이 생산자협동조합을 조직해 간다고 하는 과정이 아니라면 자본에는 저항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미국에 갔을 때 들은 얘기입니다만, 뉴욕 등의 슬럼가에서는 흑인은 항상 최하층입니다. 게다가 거리에 있는 상점은 지금도 대략 한국인이 하고 있다. 혹은 동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하고 있다. 그러나 흑인은 그런 상점을 경영한 적이 없다. 따라서 사회복지는 받는다 해도 그들 자신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다. 어째서 그들은 소비협동조합으로서 상점을 경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가를 물었다면, 말콤 X가 하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전에 살해되어 버렸지만 만약 소비협동조합이 가능했다면 상점의 경영은 흑인이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흑인이 생산협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민운동의 성과로서 사회복지가 충실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어떤 사태도 개선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잘 될 전망이 없으며 단지 PC를 말하거나 사회복지의 더욱 충실을 목청 높여 외칠 뿐입니다.
자본의 운동은 잉여가치의 실현에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파는 것에 의해 달성되는 것으로, 잉여가치 실현의 최후의 장소에 서 있는 것이 소비협동조합입니다. 소비협동조합의 편에서 기업을 여러 가지 형태로 규제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소비협동조합의 큰 어소시에이션이 형성된다면 기업 자체를 생산협동조합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의 관점은 잉여가치는 정보적 차이라는 것에 관계하는 것입니다. 예전의 상인자본은 공간적인 차이에 의해 잉여가치를 얻었다. 이른바 자연적인 차이입니다. 예를 들면 차(茶)가 재배되는지 재배되지 않는지는 지역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을 유럽에 가지고 간다는 것에 의해 그 가치체계의 차이로부터 잉여가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산업자본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기술혁신에 의한 차이입니다. 결국 시간적인 차이입니다. 제3세계는 원래 후진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적인 차이화 속에서 후진성을 강요받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기술적인 정보를 모두 공개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신상품을 개발하기 위한 신기술은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알게 되는 것이지만, 그 짧은 시간적인 차이가 특별 잉여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공개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자본은 그런 것을 할 리가 없다. 그러나 소비-생산협동조합은 모든 지식을 공개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 예를 들면 근대과학의 특성은 지식의 공개성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 만인에게 공유된다는 것, 그것이 테크놀로지와 다른 것입니다. 산업자본 간의 경쟁이 기술혁신을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더라도 공개성이 있다면, 과학이 이미 그런 것처럼, 기술혁신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본의 이윤율의 문제가 그것을 억제한다. 예를 들면 10년을 사용할 수 있는 전구를 개발하는 것은 용이하지만,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자본도 하지 않는다. 소비-생산협동조합이라면 그것이 가능하다. 근대과학의 원칙에서 말한다면 인류가 획득한 지식은 인류가 공유해야 하며 그것이 코뮤니즘입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기밀로 둔다면 이윤을 낳을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해 버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적 소유권의 문제와 관계가 되지만, 나는 지적 소유권에 반대합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학회에서 발표하기 전에 우선 특허를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대과학의 정신에 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