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시 생각하라


-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을 앞두고 사망재해 최악의 기업 명단을 발표하며


4월 28일은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220만 명, 하루에 5,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기업의 이윤 추구 행위에 의해 희생되고 있다. 이는 그 어느 전쟁에 의한 희생자수보다 많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처참한 현실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 평가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공식적으로 한국은 '산재 왕국'이다. 노동부의 공식 통계로도 2006년 한 해에만 2,454명의 노동자들이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하루에 7명의 노동자가 죽는 꼴이다. 이러한 통계 수치가 말해주는 바는 명확하다. 그것은 한국이 산재사망 예방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조치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고, 과로로 인해 노동자들이 죽어갈 정도로 노동시간이 길다는 것이다.


특히 건설기업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각하다. 한국의 건설기업은 관료, 지역 토호 등과 유착하여 환경을 파괴하고 부동산 가격을 올릴 뿐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와 생명을 앗아가는 데도 으뜸이다. 2006년 한 해에 건설업 단일 업종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가 542명이다. 이는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의 41%에 달하는 수치이다.


이번 사망재해 최악의 기업 명단에도 8개의 굴지의 대기업 건설회사들이 1위부터 6위까지를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고급 아파트를 신축하며 광고를 때려 부어 왜곡된 부의 이미지를 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대기업 건설회사들은 광고 이미지와는 달리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기업이었다. ‘세상을 가치 있게 사는 방법’ 운운하며 ‘힐스테이트’라는 아파트로 입주하기를 광고하는 현대건설은 사망 노동자수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하며 그들이 말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이편한세상’을 광고하며 아파트를 브랜드화하는 데 앞장섰던 대림산업은 ‘그 편한 세상’이 노동자의 죽음 위에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고 있다. 사회공헌활동을 강조하는 SK건설은 협력업체의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면서 번 돈으로 체면치레를 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래미안’의 삼성물산, ‘자이(XI)’의 GS건설, ’롯데캐슬‘의 롯데건설, '엑슬루 타워‘의 풍림산업, ’아이파크‘의 현대산업개발 등 톱스타를 동원하여 광고 공세를 펴고 있는 거의 모든 고급 아파트 단지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다수 죽어갔다. 건설업 이외의 산업에서 명단에 포함된 기업은 현대중공업이 유일한데, 이는 현대중공업이 노동자의 죽음을 먹고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무분규와 노사상생의 협력 관계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하청업체 노동자의 죽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대기업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들먹이며 다양한 사회 공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지만, 정작 윤리적 기업이 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알려진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것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노동자를 죽음의 자리로 내몰면서 사회에 몇천 억을 기부하는 기업이 결코 윤리적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한 기업은 오히려 몇 푼의 기부금으로 노동자를 죽인 대가를 치르려는 비윤리적 기업일 뿐이다.


산재사망은 기업에 의한 살인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범죄 행위이다. 한국의 굴지의 기업들은 괜한 돈 들여 언론에 광고하며 ‘사회적 책임’ 운운하는 2중성을 버리고, 땀 흘려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명과 그 가족의 행복을 뺏지나 말 일이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면 번지르르한 이미지만 만들지 말고, 그 돈으로 자신들이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의 생명과 권리부터 보장하라.


2007. 4. 26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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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454명이 산재 사망... 절반은 비정규직"
민주노총 울산본부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맞아 자료 분석
텍스트만보기   윤성효(cjnews) 기자   
▲ 매년 4월 28일은 '세계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27일 저녁 울산에서 추모 문화제를 열었다. 사진은 최근 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재사고로 인해 사망한 노동자가 쓰고 있던 안전모에 피가 묻어 있는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2002년 ILO는 전세계적으로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사람이 매년 200만명에 달한다는 통계를 낸 바 있다. 이는 1일 평균 500명, 1분당 3명이 사망하는 꼴이다. 전쟁희생자수가 연간 65만명이라는 데 그 수의 3배를 넘는 수치다.

한국은 현재 OECD국가 중 산재 사망사고 1위라는 부끄러운 기록을 갖고 있다. 울산에서도 매년 평균 현대중공업 4명,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3명 등 산재사망 사고가 있었으며 산업재해 다발지역이라는 오명을 앉고 있다."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28일)을 맞아 노동자 건강권 강화 목소리가 높다.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는 27일 저녁 현대백화점 산삼점 앞에서 '4ㆍ28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 울산추모제'를 열었다.

이날 추모제에서는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이 마련한 산재사업장(현대중공업) 현장 사진과 노동만평, 산재사망 노동자 영정 사진전이 열렸고, 조광한 울산산추련 공동대표와 하부영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장 등이 연설했다. 이어 산재 환자의 증언과 추모시 낭독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산재사망사고 여전히 줄어들지 않아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노동부 등의 자료를 종합해 '울산지역 산재발생 현황'을 이날 발표했는데, 산업현장에서 산재(사망)사고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의 산업재해 발생현황을 보면, 1998년 재해자수는 1865건에 재해율 0.78%이었고, 1999년에는 1953건에 0.84%, 2000년에는 2755건에 0.98%이었는데 2001년부터는 더 늘어나고 높아졌다. 2001년 3091건에 1.09%, 2002년 3485건에 1.15%, 2003년에 3979건에 1.25%, 2004년에 3925건에 1.23%, 2005년에 3475건에 1.15%, 2006년(10월)에 2653건에 0.79% 등.

사망재해도 마찬가지인데, 울산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2006년까지 매년 60~95명까지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2006년 우리나라 산재 사망 노동자는 2454명에 달하며, 산재노동자 중 절반 이상이 노조로 조직되지 못한 영세업체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집중되고 있다"면서 "이는 산재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장의 노동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로서 비정규직의 확대와 산재증가는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2454명이 산업재해로 죽었다"

먼저 울산본부는 ▲정부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강화할 것 ▲노동자들이 다쳤을 때 필요한 치료를 모두 받을 수 있도록 할 것 ▲노동자들을 다치거나 죽게 했을 때 기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할 것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이 우선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요구했다.

4월 28일이 '전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제정된 것은 태국 장난감회사 '바트 심슨'에서 인형을 만들던 1993년 4월 10일에 발생한 화재로 188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 사건과 관련이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96년 4월 28일 뉴욕 UN센터 앞에서 미국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촛불을 켜고 분향을 하고 산재 사망 노동자들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리게 되었다. 1996년 첫 추모행사가 개최된 이후, 국제자유노련(ICFTU)과 국제노동기구(ILO)가 4월 28일을 공식적인 추모의 날로 제정한 것이다.
2007-04-28 09:56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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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킨 ‘유해 무근’ 해명불구 의혹
[2007.05.0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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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킨도너츠가 최근 자사의 제품제조과정에 위해 요소가 있다며 문제를 제기한 용역업체의 생산직 직원과 합의를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달 30일 던킨도너츠 등에 따르면 자신을 던킨도너츠 서울 구로공장에서 근무한 생산직 직원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지난달 23일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게시판에 “(던킨도너츠가) 빵에 철가루가 들어있다는 소비자의 항의를 받자 재료에서 자석으로 철가루를 분리해낸 후 그대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같은 주장은 던킨도너츠 서울 구로공장이 지난달 25일 수입식품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아 금천구청으로부터 영업정지 2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은 상황과 맞물려 던킨도너츠의 도덕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 글을 올린 사람은 실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5년 넘게 던킨에서 도너츠를 생산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던킨도너츠와 배스킨라빈스31을 운영하는 ㈜비알코리아측은 해당 글을 올린 사람을 협력업체 Y산업의 직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는 이어 “제품 원재료가 불량해 반품을 건의했지만 본사 관리팀에서 반품처리 없이 사용하라고 지시했다”며 “이와 함께 제품 후렌치크로울러 포장지에는 사용해서는 안되는 합성 항산화제(TBHQ)가 들어 있어 지난해 10월 전량 긴급 회수하기도 했다”고 폭로했다.

이와 관련, 던킨도너츠측은 이 직원이 부상을 당한 뒤 산업재해를 신청하는 과정에 회사가 미온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이같은 주장을 게시판에 올린 것으로 파악했다. 따라서 회사측이 산업재해신청서에 긍적적인 의견을 첨부해주고 대신 게시판 글을 삭제하는 선에서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측은 “문제가 된 후렌치크로울러는 판매율이 떨어져서 생산을 중단한 것 뿐”이라며 “해당 글을 올린 사람과 이미 악의적인 글을 올리지 않겠다고 합의 했다”고 말했다.

회사 관계자는 “직원의 주장이 사실무근이지만 허위주장이라도 유포될 경우 입게 되는 피해를 우려했다”며 “해당 관청에서 조사했지만 문제가 없어 이미 일부 포털에는 관련 글들의 삭제를 요청한 상태”라고 말했다.

회사측은 철가루 분리 후 사용의 경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합성 항산화제는 미국에서 들여오는 원료에 함유됐을 수는 있지만 워낙 소량이어서 당국의 조사에서도 검출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회사측과의 합의 이후 문제의 글은 토론게시판에서 삭제했다. 그러나 원문은 구글 DOCS에 저장되어 누리꾼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누리꾼들은 폭로 내용이 사실일 경우 엄청난 파장이 예상되는 데다 회사측의 주장대로 사실무근일 경우 회사가 보는 피해가 큰 데도 불구하고 이를 서둘러 봉합하려 한 회사측의 태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이디 레이블루를 사용하는 한 네티즌은 “정식으로 사실확인을 해 공지해도 시원찮을 판에 개인 블로그의 글부터 삭제 요청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비알코리아를 성토하고 나섰다.

비알코리아는 지난 1985년 샤니와 배스킨라빈스 인터내셜널사와 합작투자 계약 후 93년 또 다시 던킨도너츠에 대한 계약을 체결, 5월 현재 327개의 던킨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비알코리아측은 서울 구로공장 2개월 영업 정지에 대해 관세사의 실수로 행정이 누락된 만큼 문제가 없다며 서울행정법원에 영업정지처분 취소 소송과 함께 효력정지 신청을 제기해 놓은 상태다.

/shower@fnnews.com 이성재 백인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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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러시아 민주주의의 아버지

지난주에 세상을 떠난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에 관한 기사를 하나 더 옮겨온다(지난주에는 주로 부고기사들이었다). 프레시안의 이 기사에서는 현대 러시아의 '최악의 지도자'였던 옐친의 과오들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적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고르바초프의 사회주의 개혁노선이 쿠데타와 뒤이은 옐친의 급진주의 노선에 의해 좌초당한 사실을 항상 유감스럽게 생각해왔는데, 기사에 따르면 미국의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지난달 러시아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보리스 옐친이 아니라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정당하게 평가했다고. 사실 그런 대목이 눈에 들어서 스크랩해놓는 기사이다.

프레시안(07. 05. 01) 옐친이 '러시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옐친은 정녕 러시아 민주주의의 아버지인가? 지난 달 23일 사망한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서방 언론, 특히 미국 언론들의 과장된 평가가 줄을 잇고 있다. 언론들은 옐친을 '소련을 붕괴시키고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가져온 인물'이라고 치켜세우며 그의 생애를 반추하고 있다. 한국의 언론들의 평가도 미국적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경제 개혁은 실패했다' 혹은 '영욕의 삶을 살았다'며 균형을 잡긴 했지만, 그가 1991년 강경 공산주의 군부 쿠데타 당시 탱크에 직접 올라갔던 일에 대해서는 '맨주먹으로 쿠데타를 저지했다'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지난번 페이퍼에서도 지적했지만, 옐친은 이 이미지 하나로 10년을 집권했다).


  
옐친 전 대통령이 러시아 정치사에서 한 획을 그은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1991년 6월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1999년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하기까지, 의회를 포격하고 알짜배기 국유기업들을 마구잡이로 민영화하는 등 9년여 동안 옐친이 보여줬던 소위 '충격 정치'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너무나 멀었다.
  
민주주의에 반하는 옐친의 정치의 1991년 12월 소비에트 연방 해체 결정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의회와의 협의는커녕 법적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은 채 소련 해체를 선언해버렸다. 소련의 해체가 아무리 역사의 대세였다고 할지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한 독단적 결정은 국민들을 아연케 하는 것이었고 이후 보여준 비민주적인 정치행태의 시발점이 됐다.
  
소련의 해체 과정에 대해 미국의 정치평론가 스티븐 코헨은 지난해 시사잡지 <네이션>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의 사회적 합의 및 헌법 중시 태도로부터 이탈한 것"이라며 '위로부터의 변화'라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짜르식 전제정치와 다를 바 없는 일이었다고 혹평했다. 옐친의 그같은 조치는 또한 그에 앞서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의해 6년간 실시된 글라스노스찌(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과정에서 이룩한 민주개혁을 뒤흔드는 것으로 대중들의 분노를 샀다.
  
1992년 초부터 시작된 옐친의 이른바 '충격 요법' 정책도 러시아 국민들을 고통스럽게 만든 것이었다. 미국의 경제학자들, 특히 하버드대 경제학자들에 의해 사실상 강요되고 클린턴 미 행정부에 의해 지원을 받은 이 정책은 물가 통제 장치를 없애는 동시에 대규모 국유기업들을 민영화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옐친 주변의 '젊은 개혁가'들에 의해 의욕적으로 추진된 이 정책은 그러나 결과적으로 러시아 경제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 또 서민들의 화폐 자산의 가치를 추락시켜 러시아 국민들의 절반 가량을 빈곤선 아래로 떨어지게 했다. 그러나 서구의 언론들은 이를 가리켜 '개혁'이라고 선전했다.

1993년 10월 옐친이 의회 건물에 탱크로 발포했던 일은 철권통치를 방불케 했다. 옐친은 자신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1991년 쿠데타 당시 자신을 비호했던 의회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반대파를 제거한다는 명목이었다. 이 사건으로 187명이 목숨을 잃었고 5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합법적 선거에 의해 선출돼 행정부로부터 독립적 자세를 견지했던 러시아 의회가 이후 정부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 형성된 러시아의 헌법적 질서는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러시아 대통령이 정당하고 독립적인 선거를 통해 수립된 의회에 대포를 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와 대부분의 미국 언론들은 옐친의 '치어리더'로 활약했다. 당시 미국의 한 고위 관리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턴 행정부는 옐친이 더 폭력적이더라도 그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4년부터 시작된 체첸 공격도 마찬가지였다. 공격을 멈췄던 1996년까지 수만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헌법에 보장된 연방주의는 공공연히 조롱당했다. 또 핵무기를 가진 국가에서 일어난 첫 번째 내전이라는 위험천만한 전쟁으로도 기록됐다. 러시아의 전투기와 탱크가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에 폭격을 퍼부을 때 클린턴 대통령은 옐친을 링컨 대통령과 비교하며 찬사를 쏟아냈다.
  
영국에 망명한 러시아 억만장자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등 소수의 올리가르히(과두재벌)에 의해 자금을 조달받고 친(親) 옐친 언론의 도움을 받아 치른 1996년 대통령 선거 운동은 불법과 탈법으로 점철됐다. 옐친은 "배당을 위한 융자"라는 악명높은 합의를 통해 자신에게 선거자금을 대주는 올리가르히들에게 러시아의 중요한 경제적 자산 통제권을 나눠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미국 언론들은 이를 '시장개혁'이라고 불렀으나 러시아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그같은 조치는 또 러시아의 올리가르히를 재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러시아의 한 저널리스트는 이를 두고 옐친은 '러시아 민주주의의 아버지'가 아니라 '올리가르히의 아버지'라고 비난했다.


  
1998년 8월 실시한 루블화 평가 절하와 채무 상환 유예(디폴트), 은행 계좌 동결 조치 등의 정책은 서민들의 저축을 또다시 몰수한 셈이 됐고 1991년 이후 형성된 중산층을 몰락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옐친 치하의 러시아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만을 가져오는 반동적인 정치에 불과했다. 러시아인들의 70% 가까이가 권위주의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답했던 지난해 여론조사는 옐친의 유산이 러시아 민주주의에 얼마나 해로운 것이었는지를 반증한다.
  
올리가르히에게 러시아의 재산을 독점토록 한 '경제개혁' 역시 씻을 수 없는 실정이다. 유엔개발계획(UNDP)는 1999년 보고서에서 "구 소련에는 현재 사상 유례 없는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으나 미국을 위시한 서방 언론들은 이를 깡그리 무시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다수 국민이 고등교육을 받은 주요 산업국가가 이룩한 수십년간의 경제 개발 결과를 해체하는 현상이 현대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고 평가했으나 미국의 언론들은 옐친과 그의 '젊은 개혁가들'을 찬양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이에 대해 <로이터> 통신의 한 기자는 "고통이 편집됐다"고 촌평했다.
  
일각에서는 옐친의 충격요법적 경제개혁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옐친이 무모한 정책을 추진하던 당시에도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러시아의 경제학자들은 옐친의 정책이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시장경제로의 보다 점진적인 이행을 목표로 하는 '제3의 길'을 주장했다. 시간은 그들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옐친의 유산을 물려받은 푸틴에 의해 러시아는 더 가난해졌고 양극화는 더 심각해 졌다(*양극화가 심각해진 건 사실이지만 더 가난해졌다?). 푸틴이 권좌에 오르자마자 했던 일은 옐친을 부패 혐의로 기소하지 말라는 포고령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지난달 27일 "언론의 건망증이 심한 건 알겠지만 1985년 소련의 지도자가 된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진정한 러시아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기억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며 "옐친은 언론 검열 철폐, 시장 개혁, 자유선거를 실시한 고르바초프 개혁의 최대 수혜자였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 역사상 최초로 도입된 자유선거에서 옐친이 러시아 대통령으로 당선된 반면, 옐친은 자신의 부패에 따른 징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심복인 푸틴을 후계자로 지명한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언론이 옐친을 '러시아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극찬하는 것은 그가 서방의 입맛대로 행동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관측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고르바초프에 대한 인색한 평가, 나아가 푸틴에 대한 적개심은 민주주의보다는 러시아의 이익을 지키려는 이들의 독립적인 태도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옐친의 비민주적인 정치행태를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행정부가 '옐친 개혁'의 후원자가 됐던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를 대세로 굳히려 했던 미국의 조바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옐친 사후 나타난 미국 언론, 그리고 우리 언론의 태도는 그같은 서구우월적 시각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황준호 기자) 

07. 05.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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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세계자본주의에서 코뮤니즘으로(공동토의)(4)

 

가라타니 : 후쿠모토는 생산협동조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맑스도 생산협동조합이라는 것을 대단히 중시하여 『자본론』속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맑스는 재밌는 말을 하고 있는데 주식회사란 자본주의 내부에서의 자본제의 양기(揚棄)라고 하고 있다. 결국 자본가 자체가 사라져 가며 주식자본으로 대신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한 마디로 말하면 자본과 경영의 분리입니다. 이것이 자본제 생산 속에서 나온 「부정의 부정」이라는 것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한편으로는 같은 「부정의 부정」으로서 생산협동조합이 있는 것입니다. 맑스는 코뮤니즘의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생산협동조합은 몰락했습니다. 그것은 주식회사와의 경쟁에서 진 것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영국의 산업자본 자체가 경공업에 근거한 것으로 독일과 같이 국가적인 자본에 근거한 중공업의 단계에서 몰락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 이후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협동조합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맑스는 그것을 사유제를 폐기하고 개체적 소유를 재건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예전은 이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유제의 폐기가 왜 개체적 소유의 확립이 되는가. 사유제라는 것은 절대주의적인 국가에 의해 주어진 권리로 이른바 국유제인 것입니다. 따라서 사유제는 세금을 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유제를 폐기하여 국유화하는 것이 코뮤니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맑스는 그것을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사유제가 국유재산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사유재산의 폐기란 국가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편, 개체적 소유는 협동적 소유 속에서 가능하게 된다. 이것이 코뮤니즘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점은 엥겔스 이후의 맑스주의에는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내 생각에서는 맑스는 역시 생산중심주의에서 사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소비협동조합보다 생산협동조합을 중시했다. 그러나 맑스도 말했지만 생산협동조합은 기업 속에서 기업에 대해 대항하는 경우는 그 자체가 주식회사로 전화하던가, 기업에 패배하던가 어느 한 쪽입니다. 후쿠모토가 말하고 있는 문제는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하지만, 농민조합을 만들고 임업조합을 만들려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자본에 대해서는 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리적으로는 소비자조합이 선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소비자운동이나 소비조합은 아니며, 소비협동조합을 형성하고 그것이 생산자협동조합을 조직해 간다고 하는 과정이 아니라면 자본에는 저항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미국에 갔을 때 들은 얘기입니다만, 뉴욕 등의 슬럼가에서는 흑인은 항상 최하층입니다. 게다가 거리에 있는 상점은 지금도 대략 한국인이 하고 있다. 혹은 동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하고 있다. 그러나 흑인은 그런 상점을 경영한 적이 없다. 따라서 사회복지는 받는다 해도 그들 자신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다. 어째서 그들은 소비협동조합으로서 상점을 경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가를 물었다면, 말콤 X가 하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전에 살해되어 버렸지만 만약 소비협동조합이 가능했다면 상점의 경영은 흑인이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 흑인이 생산협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민운동의 성과로서 사회복지가 충실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어떤 사태도 개선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잘 될 전망이 없으며 단지 PC를 말하거나 사회복지의 더욱 충실을 목청 높여 외칠 뿐입니다.


  자본의 운동은 잉여가치의 실현에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파는 것에 의해 달성되는 것으로, 잉여가치 실현의 최후의 장소에 서 있는 것이 소비협동조합입니다. 소비협동조합의 편에서 기업을 여러 가지 형태로 규제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소비협동조합의 큰 어소시에이션이 형성된다면 기업 자체를 생산협동조합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의 관점은 잉여가치는 정보적 차이라는 것에 관계하는 것입니다. 예전의 상인자본은 공간적인 차이에 의해 잉여가치를 얻었다. 이른바 자연적인 차이입니다. 예를 들면 차(茶)가 재배되는지 재배되지 않는지는 지역에 의해 결정된다. 그것을 유럽에 가지고 간다는 것에 의해 그 가치체계의 차이로부터 잉여가치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산업자본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기술혁신에 의한 차이입니다. 결국 시간적인 차이입니다. 제3세계는 원래 후진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적인 차이화 속에서 후진성을 강요받았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기술적인 정보를 모두 공개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신상품을 개발하기 위한 신기술은 얼마 지나지 않으면 알게 되는 것이지만, 그 짧은 시간적인 차이가 특별 잉여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공개해 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자본은 그런 것을 할 리가 없다. 그러나 소비-생산협동조합은 모든 지식을 공개하는 것을 취지로 한다. 예를 들면 근대과학의 특성은 지식의 공개성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 만인에게 공유된다는 것, 그것이 테크놀로지와 다른 것입니다. 산업자본 간의 경쟁이 기술혁신을 가져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더라도 공개성이 있다면, 과학이 이미 그런 것처럼, 기술혁신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본의 이윤율의 문제가 그것을 억제한다. 예를 들면 10년을 사용할 수 있는 전구를 개발하는 것은 용이하지만,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자본도 하지 않는다. 소비-생산협동조합이라면 그것이 가능하다. 근대과학의 원칙에서 말한다면 인류가 획득한 지식은 인류가 공유해야 하며 그것이 코뮤니즘입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기밀로 둔다면 이윤을 낳을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해 버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적 소유권의 문제와 관계가 되지만, 나는 지적 소유권에 반대합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학회에서 발표하기 전에 우선 특허를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근대과학의 정신에 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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