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Mephistopheles님의 "대학생일까? 노조원일까?"

아 ㅋ 사실, 학점은 가르치는 사람의 재량권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는데, 학점이 취업에 직결되는 이상, 학생들은 이를 집단 행동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죠. 사실 대학 당국이 내세울 수 있는 해결책은 전공과목이든 교양과목이든 절대평가로 바뀌고, 학생들을 설득해낼 수 있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도 성대 수학과라면 전공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있는 학생들이 많을 것 같은데. 사실 알 수 없죠. 모두들 자기의 과에 대한 자부심이나 열정이 없다면, 대학은 그저 취직 준비소이니까, 이 '돈 내고' 취직 준비 (학원)다닌다는 마인드라면 당연히 돈 까지 냈는데, 취직도 못 시켜주는 학교 젠장! 이라고 할 법합니다. 우울한 현실이네요. 저도 소집해제하면 강의 나갈 것 같은데, 학생들이 '수업'이 아니라 '학점'만 집착한다면, (그것도 열심히 안 하고) 울적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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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파란여우님의 "이젠 책을 읽자"

옹~ 논쟁이 '흐지부지'되버린 것 같아서 쫌 아쉽네요. 결국 세의 집결과 운동의 형태로 나아갔으면 했는데. ㅋ 이렇게 말하면서도 방관자적 입장으로 왜 '그들'은 그런 걸 안 할까. 라고 중얼거리고만 있는 것은, 역시 제 직접적 관심사나 이해관계와 몇 단계 유리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직도 저는 '정체성'과 운동은 긴밀히 연결된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요즘은 그 문제에 대해서 계속 고심하고 있습니다. 정체성은 '어느정도' 선택가능하지만, 그 '선택가능함'을 강조하면, '정체성'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여러모로 논쟁을 옆에서 지켜보고 때로는 조금 거들기도 하면서, 저한테는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었다는 면에서 유익했어요. (허. 이런 멘트로 마무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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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이 빠진다. 내 첫번째 즐찾은 로쟈님, 두번째는 마태우스님, 네번째는 부리님.

조금 너무 빨리 알라딘을 떠나서, 수련하시는 것 같은데,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마태우스님만의 유머로 돌아오실 것을 믿는다.

따우님, 평범한콸츠(여대생님), 정군님, 마태우스님, 부리님 까지.. 내가 즐찾했던 분들.

인터넷의 '가상'공간 속에서 '아이디' 뒤이기는 했지만, 마태우스님의 진솔함과 탈권위적인 모습은 따뜻했었는데.

알라딘의 상징, 알라딘에 들어오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

마태우스님의 침묵 -마태우스님이 빨리 돌아오시기를 바라며. (이 글을 보시면 마태우스님이 미소라도 지으실 수 있을까요. 마태우스님 힘 내세요. :)

 

마태우스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마태우스님은 갔습니다.

 

중복리뷰 논란에 지치고 친우들의 떠남에 홍콩다녀오셨다는 핑계로, 차마 떨치고

 

습니다.

 

알라딘의 대주주로 언제나 알라딘을 지키고 이끌던 그의 모습은 이제 점점 희미

 

한 과거로 알라디너들의 담소속에서만 남아있게 될까요.

 

 

내 두번째 즐찾이자 알라디너 만인의 즐찾인 마태우스님의 서재는 알라디너의 운

 

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포복절도하는 님의 페이퍼에 감동받고, 꽃다운 님의 직찍에 눈멀었습니다.

 

 알라딘도 사람이 모인 곳이라, 이런저런 이야기 나와도 나름 알라디너들의 주장

 

이라고 받아들였으면 했지만,  마태우스님의 서재폐쇄는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마태우스님은 언제나처럼 돌연 부끄러운 미소와 알라디너들을 쓰러트리

 

는 페이퍼와 함께 돌연 돌아오실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

 

겨서 새 희망(希望)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

 

니다.

 

아아, 마태우스님은 갔지마는 우리는 마태우스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마태우스님을 부르는 알라디너들의 노래는 님의 침묵(沈默)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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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7-01-16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마태님이 좋았는데...; 잠시 떠나가신다니... 아쉽네요.;

기인 2007-01-17 0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빨리 돌아오시길.. :)
 
 전출처 : 릴케 현상님의 "알라딘에서 살기"

ㅋ 산책님의 글이 제가 지적한 부분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은데, 하나의 운동으로서 끌어가려 했던 것 같아요. 결국 조합주의 운동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겠죠. 이를 바탕으로 자본에게 요구하는 것. 결국 문제는 그렇게 강요/요구 할 수 있는 힘이 있을까의 문제. 그리고 무엇이 책-소비자/서평-생산자에게 '이득'이 되느냐는 순전 물질적 기반 문제로 논의가 나아가야 한다고 보았고, 이제 논쟁이 뜸해졌지만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지금처럼 가다가는, 이것이 조합주의 같은 운동의 형태로 제출될지는 의문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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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찾하고 있는 사람은 45명. 그 중 알라딘에서 활발히 글을 쓰시는 분들은 30명 정도. 댓글은 가끔 달지만, 흥미로운 글들은 빼놓지 않고 읽는 편이다. 얼마전 논란이 되었던 리뷰 도용(표절)과 불량 리뷰에 이어 이번에는 중복 리뷰가 논란이다. 그야말로 '알라딘 마을' 논란이 순식간에 퍼져나간다.

오늘 아침에 매너님, iamx님, 위서가님의 글들을 볼 때는, 분명 타당한 문제제기 부분이 있었고, 생각해 볼 문제가 있었다. (계속 반말로 씁니다;; 지송 ^^; )

그 중 핵심은, 중복 리뷰가 결국 인터넷 서점들의 다양성을 헤쳐서 소비자에게 피해가 된다는 점. 이것을 잘 논증한다면, 정말 중복 리뷰가 나쁜 것인지를 납득시킬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중복리뷰 반대측 주장에 대한 다른 부분의 문제제기는 이미 '너무' 많이 되어 왔다고 생각하기에 내 나름의 문제제기이다. 나는 iamx님의 '이상'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한정한다.)

iamx님은 '다양성'이라는 것 자체로 너무 추상적으로 나아가서 '이상적'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알라딘 마을에서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고, 매너님은 또 침묵 중이며, 위서가님은 댓글로만 글을 쓰고 있다. 위서가님의 초기 댓글은 나름 논리도 있고 그렇게 씨니컬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글이 씨니컬해지고 비아냥되고 있어서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를 통해 재미를 느끼는 듯 하다.

결국 문제는 중복 리뷰가 정말 다양성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한 사실판단의 문제 (통계수치 등)가 우선 판단되어야 한다. 매너님은 얼마 있으면 yes24/알라딘/교보 등에 올려진 서평의 50%이상이 같아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데, 이것이 정말인지 수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이렇게 된다는 사실 제시가 이루어진 이후에는, 그러한 다양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비자에게 피해가 갈지를 논증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지 추상적으로 '다양성'은 그 자체로 보존되어야 될 것이라는 이야기 말고 다른 것은 무엇일까? 중복리뷰가 지금처럼 (또는 지금보다 더 많이) 활성화되어 yes24/알라딘 등지의 동일한 리뷰가 50%이상이 된다면, 정말 인터넷 서점들은 우수 리뷰 확보에 덜 신경을 쓸 것인가? 지금까지 인터넷 서점들이 가격/배송/리뷰 확보 등에서 경쟁을 했는데 앞의 두 전자는 비슷해진 상황에서 리뷰 확보만이 경쟁상황이었고, 이러한 경쟁을 바탕으로 리뷰어들과 인터넷 서점 이용자들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그럼 인터넷 서점들은 중복 리뷰 때문에 어짜피 리뷰를 다 올리니까 별로 신경을 안 쓰고 혜택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럼 이를 막기 위한 일종의 소비자(책을 산다는 입장에서)/생산자(리뷰를 쓴다는 입장에서) 조합의 형태로 각 인터넷 서점들을 각기 전유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인가?

iamx님 말대로 알라딘은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 위주로 구성되고 인문/소설 쪽이 주로 강하고, yes24는 또 다르고. 물론 이런식으로 형성된다면 리뷰를 보고 책을 고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편리'할 것임에는 분명하고, 이것이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여지도 크다. 하나의 '세력'으로 결집될 수 있는 것이며, 지금도 영향력 있는 몇몇 서평가들의 차원이 아니라, '알라딘 마을'이라는 집단 자체가 특정 분야의 책들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일 것이다. 물론 알라딘이 어떤 '성향'을 지닌다는 것은 말그래도 '성향'이고 '정도'의 문제일 터이기는 해도 말이다. (요즘 워낙 책 읽는 사람들 적다고 난리인데, 그 사람이 그 사람들인 사람이 모여서 커뮤니티를 만들고 서로 '교류'하며 서로 '추천'하는 책을 읽게 된다면? 지금도 그런 영향력이 존재하는데, 보다 '특성화' 된다면.)

그리고 물론 그러한 '집단'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언론에도 소개된 '비평고원'이나 각 대학/대학원 스터디 모임 등은 분명 특정 종류의 '성향'을 공유하고 '관심'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다. 그런데 이 집단은 영향력도 작고, 집단의 규모도 작고, 무엇보다도 물질적 기반이 없다. 결국 iamx님의 주장을 극단화시킨다면 이러한 집단-경향성이 알라딘등의 인터넷 서점을 '전유'하자는 주장과도 상통한다. 물론 다수이기 때문에 이러한 특성이 보다 광범위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하겠지만. 인터넷 서점의 '색깔화'는 결국 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색깔이라는 것은 '흑-백' '적-청'이 아니라, 분명 스펙트럼이다.)

그런데 방법이 문제다. 일부 '영향력 있는 리뷰어'들을 '설득'해서 이러한 중복리뷰를 안 하게 한다고 해도, 다수의 '영향력 적은 리뷰어'들의 중복리뷰는 어떻게 금지시킬 것인가? 이는 제도적으로 허용되고 있는 데, '소비자/생산자'(앞서 말했듯 책-소비자, 서평-생산자를 일컬음)의 이익을 위해서 인터넷 서점 측에 요구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를 들어주면 얻게 될 인터넷 서점의 이득은 무엇일까?(또는 인터넷 서점에게 들어주도록 강제할 수 있는 '우리'의 힘/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만약 우리가 이를 단계적으로 하나의 인터넷 서점에서부터 시작한다면, 다른 인터넷 서점들은 리뷰에 대한 보상제를 약화시키면서 배송이나 가격면에서 경쟁력을 얻게 된다면, 결국 우수 리뷰에 집중한 서점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뒤떨어지지 않을까?

iamx님이 원하시는 이상적인 인터넷 서점들의 특색화와 다양화는 이상적으로 보았을 때 괜찮고 흥미로운 제안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실현될 수 있으려면, '일단' 중복리뷰에 대한 제도적 금지 장치가 도입되어야 하고, 이의 방법으로 '영향력 있는 리뷰어'들에 대한 '설득'이라는 방법은 효과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일단' 중복리뷰에 대한 제도적 금지 장치가 어떻게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각 인터넷 서점들의 특색화와 다양화로 가는 데에는 갈 길이 멀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이는 중복 리뷰에 대해 찬성을 하는 사람들의 주된 근거인 '잘 안 알려진 책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는 소중함'보다 왜 더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일까? 또 사람들이 자신의 글에 대해서 지적 재산권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인터넷 서점에서는 이를 다른 인터넷 서점에 게시할 권리를 부여했고, 이를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있는데 이를 정말 반박할 수 있을까? (이런 지점에서 위서가님은 냉소적으로 말했듯이 FTA문제와 통하는 지점이 분명 있다.)

이런 지점들에 대해 매너님/iamx님/위서가님이 대답해 주신다면, 나는 설득될 것이다. 그렇다면 분명, '다양성'은 추구되어야 할 것이며, 우리가 '중복 리뷰'를 '자발적'으로 중지시키는 것을 통해 이것이 지양될 수 있다면 당연히 우리는 이를 해야 할 것이고, 또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iamx님이 처음 지적한 것처럼, 책을 선택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여지는 분명 있다. 사실 이런 주장을 더 극단적으로 밀고나간다면 (be radical!) 알라딘은 진보적인 인문서, 소설, 사회과학서만 팔고, 다른 인터넷 서점은 다른 종류만 팔고 이런식으로 될 수 있다. 유명한(이제 거의 유일한?) 사회과학서점 '그날'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 그 곳에는 거의 '특정 종류'의 책들만 판다. 그런식으로 인터넷 서점이 형성된다면 (그리고 iamx님의 주장을 극단화하면 결국에는 이곳에 도달하게 되는데) 정말 '다양성'과 '개체성'이 확립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도록 어떻게 강제할 수 있고, 무엇 때문에 우리의 '요구'는 강제될 수 있을까?

결국 내 질문을 요약하자면 이것이다. '다양성'은 좋다. 그런데 중복리뷰가 다양성을 정말 헤치고 있는가? '중복리뷰'를 막으면 다양성은 '회복'(또는 '지향')될 수 있는가? 또 '다양성'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 '소비자/생산자'에게 좋은가? 그리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좋다면, '중복리뷰' 차단을 어떻게 '실현/물질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내 생각에 이는 일부 '영향력 있는 리뷰어'들에게 '중복리뷰'를 하지 말라고 '설득'시키는 활동으로는 갈길이 멀어보인다는 것이 문제 제기였다.

특히 위서가님은 댓글로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어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씨니컬한 반응만 강조되고 있어서) 자신의 생각을 독립된 페이퍼로 정리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진정 다른 이들을 설득시키고 싶다면. 위서가님은 이미 알라딘의 '착한 사람들'은 설득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나를 포함해서 많은 이들이 위서가님이 독립된 페이퍼를 쓰면 우호적인 시선은 아니더라도, 비판적으로 읽게 될지라도 꼼꼼하게 읽을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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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X 2007-01-13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족하실 만한 답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방 청소부터 먼저 좀 하겠습니다…)

마늘빵 2007-01-13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문제 지적해주셨습니다.

2007-01-13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annerist 2007-01-14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야마는 돈 문제 였습니다만. =)

기인 2007-01-14 0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amx님/ 넵 ^^ 어쨌든 님의 문제제기는 분명 소중합니다. 그런데 님이 계속 사과하셨지만, 처음의 방식은 아쉬운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프락사스님/ 옷 ^^; 감사합니다. 논의 지점이 너무 한정되고 고정되는 것 같아서, 그리고 iamx님의 '다양성' 문제에 관심이 가서 문제를 확대시킨 것 같습니다;;
속삭이신 ㅇ님/네. 그 '자유'라는 것이 생산자/소비자의 실질적 피해를 입히게 하고 자본의 요구대로 되는 것이라면, 또 우리는 '자유'롭게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감정적'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동감합니다. ^^
매너님/ 네. ^^ 사실 매너님보다도 iamx님의 글에 대한 문제제기가 컸습니다. 매너님의 '돈'에 대해서는 페이퍼에도 썼듯이 너무 많이 이미 문제제기 된 것 같고요. ㅎ 그래도 글 부제를 'iamx님과 위서가님께'로하면 매너님 섭섭해 하실까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