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환아...안녕. 나 경희야.
나 지금 혼자있어.
아빠가 급하게 서울가셨거든.
뭐냐면...너 웃으면 않돼.
나 떠나면...내 장례식.
영화에서 나오는것처럼... 멋지게 해달라고 했거든.
드레스도 맞춰 달라고 했으니까... 아마 돈 좀 드실꺼야.
사람들한테... 내 마지막모습 잘 보이고 싶었어.
특히... 너한테.
취직시험은 잘봤는지 걱정돼.
너 자꾸 나보러 내려와서 시간 많이 뺏겼잖아.
우리 좀 어색해서 별 말도 못했지만.
난 너무 좋았어... 옛날 생각나서... 넌 어땠어?
난 참 복이 많은 아이같애.
생각해보면... 모두 즐거웠던 기억들뿐이야.
손만 까딱해도 웃어주던 사랑하는 수인이.
사진을 찍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해준 사랑하는 지환이.
지환인... 자상하구... 친절하구.
일방적인 내 키스도 받아주고.
좀 창피한 얘긴데... 나 그때 너무 좋았어.
아... 이말은 지우고 싶은데.
몰라...힘들어.
내 장례식때 와줄꺼지?
너 꼭 와야돼... 보고싶기도 하고
찾아오는 남자한명 없으면
동네사람들이 날 얼마나 불쌍하게 생각하겠어.
참... 나 너한테 할말있는데.
이거 말하면 너 화낼지도 몰라.
그때 니가 수인이한테 주라고 했던 쪽지말이야.
그거 내가 찢어버렸어.
아... 계속 미안했는데... 말하고 나니까 시원하다.
용서해줄꺼지?
수인이한텐 직접 만나서 사과할께.
지환아...사랑해.
널 전에두 사랑했구...지금도 사랑해.
안녕...지환아...안녕.
영화 "연애소설中" 이은주씨의 나래이션
-이은주씨 유서 전문…“엄마 사랑해, 오빠 미안해”-
엄마 사랑해. 내가 꼭 지켜줄꺼야. 일이 너무나 하고 싶었어.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게 되버렸는데 인정하지 못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 힘듦을 알겠어…
엄마 생각하면 살아야 하지만 살아도 사는게 아니야. 내가 꼭 지켜줄꺼야. 늘 옆에서 꼭 지켜줄꺼야.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았어. 혼자 버티고 이겨보려 했는데… 안돼… 감정도 없고… 내가 아니니까. 일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어. 맨날 기도했는데 무모한 바램이었지. 일년 전이면 원래 나처럼 살 수 있는데 말야.
아빠 얼굴을 그저께 봐서 다행이야. 돈이 다가 아니지만 돈 때문에 참 힘든 세상이야. 나도 돈이 싫어. 하나뿐인 오빠. 나보다 훨씬 잘났는데 사랑을 못받아서 미안해. 나 때문에 오빠 서운한 적 많았을꺼야. 가고 싶은곳도 많고 하고 싶은것도 많았는데. 먹고 싶은것도 많았는데.
가족끼리 한 집에서 살면서. 10년뒤 쯤이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다 해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가장 많이 가장 많이 사랑하는 엄마,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내가 꼭 지켜줄게 꼭 지켜줄게-.
마지막 통화, 언니…고마웠고 미안했고 힘들었어. 마지막 통화 언니-꼭 오늘이어야만 한다고 했던 사람. 고마웠어-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날 사랑해줬던 사람들-만나고 싶고 함께 웃고 싶었는데…일부러 피한게 아니야. 소중한 걸 알지만 이젠 허락지 않아서 미안해.
* 오늘 새벽. 죽음과 문학, 자유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글 좀 끄적이다가, 받아두었던 카이스트를 보았다. 해리포터7님께서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던, 이은주의 노래방씬이 있는 회였다.
극중 이은주는 집이 가난해서, 무리하게 돈을 벌면서도 취직과 장학금 문제 때문에 공부도 매우 열심히 하는 모범생으로 나온다. 언제나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면서,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에 시간을 빼길 틈도 없다고 말한다.
실재 이은주가 자살한 문제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집에 빚이 많았고, 이은주는 우울증을 앓았고.
극중 이은주랑 썸팅이 일어나는, 그리고 실재로도 이은주랑 사귀었던 김정태(김정현)은 이은주에게 자신이 이은주를(극중 구지원)을 싫어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3가지로 든다. 구지원이
1. 시를 싫어해서
2. 음악을 싫어해서
3. 사랑을 싫어해서
그러면서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를 외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대학교 1학년때, 시각매체예술입문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미학과 수업이었다. 강사 선생님께서 첫 시간에 이미지와 죽음에 대해서 강의하셨다. 이미지는 원래 죽음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아니 이미지 자체는 죽음이라고. 별다른 말씀은 안 하셨지만, 이미지라는 것, 고정된다는 것, 과 죽음이라는 것 사이의 공통점. 그리고 죽음을 피하기 위한 것, 혹은 죽음에 맞서는 것. 이미지.
그리고 그 선생님은 자주 휴강을 하셨다. 일주일 휴강을 하신 후, 다른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강의를 시작하셨다. 선생님은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암 말기에 강단에 서신 거였다. 후배인 그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선생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미학을 공부하며 교수자리에 관심없이 자유롭게 살다가 암에 걸려 돌아가신.
그냥 그 선생님이 생각난다.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졸업"을 설명하시던 것. 죽음과 이미지 말씀하시던 것.
제본한 교재를 쌓아두고 돈 내고 가져가라고 하셨는데, 애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가져가고 돈 놓고 가니까 허탈한 표정 지으시던 것. 같이 수업듣던 동기 한명이, "저렇게 파시면 안되는데"라고 하면서 순진한 사람같다고 한 것 등.
이미지와 죽음. 죽음은 이미지를 남긴다.
이은주가 노래방에서 열정적으로 헤드뱅잉을 하면서 '밤이면 밤마다'를 부른다. 그녀의 열정, 노력, 재능. 슬픔, 기쁨, 끼, 부끄러움, 막막함, 절망, 희망, 그리고 또 우울.
일찍 죽은 사람들, 일찍 죽은 예술가들, 자살한 사람들, 자살한 예술가들. 이른 나이에 자살한 예술가. 우리는 그들을 잊지 못한다. 그 고독을, 그 외로움을, 그 안타까움을. 그 이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