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 (아바 서재) &gt; 마이리뷰</title><link>http://blog.aladin.co.kr/abba/category/9130</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10 Aug 2026 23:41:06 +0900</lastBuildDate><image><title>아바</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64521193.JPG</url><link>http://blog.aladin.co.kr/abba/category/9130</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아바</description></image><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석기시대 유적 답사의 기쁨 - [나의 한반도 석기시대 순례기 - 선사 박물관과 유적지에서 찾는 인간적 삶]</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17212273</link><pubDate>Sun, 12 Apr 2026 18: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1721227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137203&TPaperId=1721227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79/10/coveroff/k77213720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137203&TPaperId=1721227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의 한반도 석기시대 순례기 - 선사 박물관과 유적지에서 찾는 인간적 삶</a><br/>오선민 지음 / 북드라망 / 2026년 03월<br/></td></tr></table><br/>노동뿐 아니라 생각도 대신해주겠다는 세상에서의 답사란  『나의 한반도 석기시대 순례기』는 한반도 석기시대 유적지 답사를 통해 ‘인간의 오래된 삶에서 오늘의 삶을 사유’하는 책이다. 오선민 작가는 구석기(공주, 단양, 연천)의 ‘돌’, 신석기(양양, 시흥, 창녕, 부산)의 ‘토기(흙)’, 신석기(울산, 울진, 제천) 암각화, 묘지, 동굴의 ‘영성’을 중심으로 답사를 한다. 수도권 아파트값이 천장 없이 고공행진하고 코스피가 6000을 돌파하며 이대로 있다가는 벼락거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이때, AI가 일상의 풍경을 구석구석까지 바꿔놓는 동시에 나와 일자리를 두고 다투고 있는 이때, 한가하게 역사시대도 아니고 수천, 수만 년 전 돌 조각, 흙 파편, 암각화를 보겠다는 것은 무슨 배짱인가? 게다가 복잡한 머리를 식히러 한적한 교외 박물관을 살짝 둘러보고 본격적으로 맛있는 만두전골에 향이 좋은 로스터리 커피를 즐기는 여유도 아니고 50권이 넘는 참고 문헌을 읽고 범인이라도 추적하듯 ‘이어지는 질문을 따라서 답도 없이 두루 돌아다니면서’(P.18) 할 일인가? 도대체 석기시대 사람들이 ‘오늘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상관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 책을 읽으면서 선사시대 의식주 해결의 어려움과 지난함이 먼저 들어왔다. 주먹도끼 하나 만들려면 알맞은 돌을 고르고 깨고 다듬어야 하고, 추위를 피해 옷이라도 걸칠라치면 일단 뼈바늘을 만들고 바늘귀를 뚫을 도구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서, 동물 피부 가죽을 벗겨 무두질하고 잘라야 한다. 또 독성이나 영양을 알아야 채집도 할 것이다. 현대를 사는 나는 이 얼마나 편하고 풍족한지 새삼 느끼며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선사시대를 현대의 편리함 등을 ‘기다리는 궁핍하고 위태로운 시공간’(P.11)으로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 쓸데없는 것이 연예인 걱정, 재벌 걱정, 그리고 선사시대 사람 걱정이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내 생활을 보고 의아한 점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선사시대의 유물에서 의식주 해결의 어려움과 지난함을 떠올리는 것은 나의 ‘시선’을 보여줄 뿐이다. 기계와 사람을 시키고 편리해진 나는, 그렇다면 그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남는 시간이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늘 쫓기듯 허덕이고 있는 나 역시 기계와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다. 시키거나 시키는 일을 하는 일 말고는 없을까. 선사시대라는 좁고 작은 문으로 기꺼이 내 몸을 밀어넣어 오늘의 나를 만나봐야겠다.   &nbsp;  만드는 사람을 보며 비로소 보는 소비하는 사람  오선민 작가도 선사시대 사람이 아니기에 답사를 통해 기존의 관념이 부서지는 경험을 적고 있다. 부서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꺼이 부서질 마음과 상상력이다. 기존 관념이란 실용이라는 목적을 기준점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그 관념은 굳이 왜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만든다. 그리고는 아차차 자신의 시선을 비로소 느낀다. 주먹도끼라는 완성품을 위한 인내를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 보람을 생각하는 ‘여유’로 상상(p.29)한다. &lt;수양개선사유물전시관&gt;의 최대 규모의 석기를 보고 생산력 높은 공장을 떠올리다가 &lt;국립중앙박물관&gt; ‘분장놀이’에서 이익 없이도 정성을 쏟는 예를 보고 보상이 아니라 그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DNA(P.64)를 떠올린다. 손 많이 가는 신석기 갈대집의 유지 보수를 해치워야 하는 ‘일’로 생각하다가 수고 속에서 느끼는 보람(P.150)을 상상한다. 신석기는 ‘자기만의 방’이라는 여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방이 필요한 ‘이유’가 없었음(P.176)으로 바꿔 생각해본다. 이렇게보면 선사시대는 돈이 없어서, 혹은 돈이 있어도 해결되지 않는 무거운 짐을 진 시대가 아니라 발로 뛰고 손으로 만들고,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관찰력과 솜씨가 발휘되는 생각이 폭발하고 구현되는 시대로도 상상할 수 있다.   소비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만드는 수고로움을 안해도 되는 복받은 사람으로 여길 수도 있다. 수고롭지 않음을 목표로 하면 그렇다.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한 지식, 솜씨가 없어도 돈을 벌어 소비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대 공장에서 만들고 쇼핑몰에서 팔더라도 더 추적해보면 누군가가 집, 밥, 옷을 만들고 있다. EBS 극한체험에서 본 10시간을 서서 멍게를 손질하는 분 덕에 내가 멍게를 먹을 수 있고, 오선민 작가가 언급한 이제는 힘든 일을 다 마다해 외국인들이 맡고 있는 멸치잡이, 멸치털이만 봐도(P. 158)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모르고 있었을 뿐 여전히 나는 누군가의 노고 없이는 먹고 살 수 없다. 사서 먹을 때는 모른다. 선사시대를 공부하고 답사한다는 것은 나의 의식주를 비롯한 삶이 어디서 오는지 떠올리게 하는 일이다. 내가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br> 다시, 생각하는 사람으로  책을 읽고나서 정말 손발을 최대한 덜 쓰고, 생각을 덜 하는 것이 과연 내가 바라는 바인가 묻게 되었다. 지금 전쟁이 한창이다. 전쟁으로 직접 고통받고 있는 이란 사람들보다 당장 급락과 급등을 반복하는 주식, 다금바리도 아닌데 시가로 판매되고 있는 기름값이 걱정이라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중 하나다. 그 생각을 하면 그런 내가 무섭다. 하지만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나는 아무 상관없는 사이인가? 육탄전이나 창과 방패로 내 눈앞에서 싸우면 피부로 와닿겠지만 지금은 지상전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미사일 버튼을 눌러 초토화가 영화처럼 비현실적으로 생중계되는 세상이다.   이 책은 창던지개 장식에 드러난 비실용과 상징을 통한 사냥감에 대한 사냥꾼의 야심과 미안함을 설명하고 있다. 창을 더 멀리 던질 수 있는 일종의 팔 길이 연장이자 속도 증강 장치에 왜 굳이 장식을, 그것도 사슴이 새를 낳는 모양을 넣었을까?(P.118) 당연히 석기시대 원작자에게 의도를 물을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소비와 가성비라는 관념을 조금 내려놓고 그때 그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해볼 수는 있다. 왜냐면 호기심은, 잊고 있었지만 인류의 아주 오래된 DNA이니까. 다행히도 나에게는 아직 그런 DNA가 있는 것 같다. 내 가시거리 바깥에 있는 사냥감을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은 무척 실용적이지만 동시에 윤리적인 부하를 조정할 필요도 있는 일이었다. 많은 악행은 의도를 필요로 하지 않고 다만 무지를 필요로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싶어졌다. 내가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어디서 오고 있는지, 어디고 가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얼마나 뭘 모르고 있는지, 그 무지가 벌이고 있는 일들까지도.  박물관을 가는 것은 과도한 긴장과 무게를 덜기 위한 기분 전환만으로도 좋은 일인 것 같다. 사전 정보 없이 전시 설명을 읽어가며 유물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궁금함을 사전 장착하고 해석의 길을 따라 참고서처럼 지참해서 여기저기 질문을 품으며 관람하는 것은 더욱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인간이란 무릇 호기심 많고 손발을 움직이며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만들며 살 때 기쁨을 느끼는 존재라는 점을 환기시켜준다. 단순히 소비하는 것보다 손발을 쓰고 머리를 써서 연결을 생각해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는 점과 함께.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박물관 갈 때 필수템이 아닌가 생각한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79/10/cover150/k77213720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791045</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누구의 무엇이 될 것인가? -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16092903</link><pubDate>Mon, 23 Dec 2024 12: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1609290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934221&TPaperId=160929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175/27/coveroff/k47293422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72934221&TPaperId=1609290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a><br/>오선민 지음 / 북드라망 / 2024년 11월<br/></td></tr></table><br/>디테일의 미학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를 모두 봤다고, 여러 차례 봤다고,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런 그라도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을 읽는다면 아마도 그런 장면이 있었나, 그런 의미가 있었냐며 영화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오선민 작가가 미야자키 감독의 영화를 훨씬 많이 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주요 이유는 횟수가 아니라 ‘시선’에 있다. 그 시선은 몇 번이나 반복 재생해도 웬만해서는 보이지 않는 사소한 디테일을 향하고 있다. 그 디테일은 나, 인간, 주인공, 목적 중심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세상과의 연결 고리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내가 놓쳤던 영화 장면을 재생해 본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lt;이웃집 토토로&gt; 자매가 엄마를 보겠다는 목적이 무산되자 마루에 완전히 뻗어버린 것, 그 아이들 곁에서 간다네 할머니가 빨래를 같이 개키자고 한 장면을 다시 본다. 목적을 가진 기다림의 고통,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작고 사소한 배려의 힘을 생각해 본다. &lt;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gt;의 치히로가 온천장에서 몰래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다. 큰 몸의 무의 신이 치히로를 가려줘 위기를 모면한 장면을 다시 본다. 치히로의 모험은 드러난 하쿠의 호의 이외에도 의도하지 않은 무의 신의 도움, 또 눈에 보이지 않은 수많은 것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lt;마녀 배달부 키키&gt;의 2층 하숙집을 다시 본다. 이제야 라떼 다해본 고생담쯤으로 치부하느라 보이지 않았던 키키의 어둑한 방, 우울한 모습이 보인다. 모두 나에게 그저 목적지로 가는 길에 만난 엑스트라, 우여곡절 정도로, 자세한 내용은 기억에서 삭제된 장면이었다.   나는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소중한 순간과 디테일을 사소하다는 이유로 놓치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책을 읽고 다시 영화를 재생하며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묻는다. 많은 것을 띄엄띄엄 보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nbsp;  만물의 의존, 일상의 철학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은 미야자키 감독의 영화 11편 전(全) 편을 ‘일상의 애니미즘’으로 해석한 책이다. ‘일상의 애니미즘’에서 ‘애니미즘(animism)’은 인간 이외의 존재에도 혼이 있음을 인정하는 사고이다. 애니미즘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만물이 서로 의존하며 존재한다. 오선민 작가는 &lt;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gt;에서 가마 할아범의 일터를 사물 중심으로 묘사한다. 거기 낡은 시계, 오래된 도자기, 하도 많이 봐서 뚱뚱하게 부푼 책, 자주 사용하는 칫솔, 재떨이 꽁초가 있다. 미야자키 감독은 그 사물 하나하나가 할아범의 살아온 세월, 그의 됨됨이를 말해준다고 한다. 그 사물들이 없는 할아범은 그 할아범이 아니다. 오선민 작가는 정리된 테이블을 보면 그 테이블을 정리했을 누군가, 또 누구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누군가는 썼을 세면대, 수건을 통해 공간에 참으로 많은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알든 모르든 만물과 할아범은 서로 의지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누군가가 고치고 닦았을 집기, 책상 위에 놓인 사소한 사물이 많다. 몰랐지만 나도 만물과 서로 의지하고 있다.   &lt;마녀 배달부 키키&gt;의 도입부는 키키가 바람 부는 언덕에 누워 라디오를 듣는 장면이다. 오선민 작가는 이 순간 바람이 불 때 만물이 어떻게 의존하는지 사운드에 주목한다. 하늘의 구름이 이동하고, 호수에는 잔물결이 만들어지고, 키키 주위의 꽃이 각자의 무게로 흔들리고, 머리카락과 치마도 제멋대로 움직인다. 풀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 벌레 날갯짓 소리까지 한데 섞이는 순간이다. 이렇게 보면 키키라는 인간이 바람 부는 언덕에서 라디오 듣는 것에 불과한 장면이 아니다. 그곳은 모든 것들이 모든 방식으로 서로 의존하는 애니미즘 현장이다.  ‘일상의 애니미즘’에서 ‘일상’은 무슨 의미인가? 오선민 작가는 영화의 사건이 ‘일상’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벌어진다고 한다. 바로 요리하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책 읽기이다. 지구를 구하고 아픈 엄마를 걱정하고 친구를 저주에서 벗기려고 해도 식음을 전폐하고 전투력에 불탄다고 될 일이 아니다. 먹고 자고 치우는 일상을 보내지 않고 해낼 방법이란 없다. 지금, 여기라는 일상에서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수는 없다.   최신작 &lt;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gt;에서의 일상은 책 읽기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울던 마히토는 사라져버린 새엄마를 돕기 위해 낯선 길을 간다. 자신의 욕망만 붙잡고, 자신만 생각하던 마히토가 함께 있는 누군가에게 시선을 향한 것은 책을 읽고 나서이다. 마히토가 읽은 책은 친구 때문에 울고 웃으며 어떻게 훌륭한 사람이 될지 고민하는 내용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많이 아는 ‘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나와 연결된 누군가와, 어떤 일도 겪을 수 있는 커진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 중심이 아니라 만물이 의존하는 관계로 들어가는 힘은 특별한 곳에 있지 않다. 일상에 있다. <br>  반복해서, 많이, 계속 쓴다  애니미즘의 세계에서 나는 ‘누구’가 아니라 ‘누구의 무엇’으로 존재한다. 만물이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미야자키 감독의 영화를 ‘그대들은 누구의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탐구로 해석한다. 책의 맨 마지막 &lt;보론&gt;에는 미야자키 감독이 미리 정한 시나리오를 그림과 영화로 구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미야자키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자기만의 기술을 ‘반복해서 그린다, 많이 그린다, 계속 그린다’로 간단히 정리한다. ‘반복, 많이, 계속’은 동어 반복이 아니다. 차이가 있다. 자신이 찾아야 할 이미지를 발견할 때까지 ‘반복’하고, 이렇게 포착한 이미지를 ‘많이’ 그려서 정교화하고, 여기에 ‘계속’ 디테일을 붙이는 다른 그리기이다. 그림을 그려가면서 장면을 수정하는 동안 콘티는 매번 바뀐다. 그의 영화가 압도적인 디테일은 있지만 전지적인 조감도는 나오지 않는 이유라고 한다. 그의 머리에서 나온다고 해도 집단적 전승이라는 조건에서 벗어날 수는 없고, 창작자는 방아쇠를 당긴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미야자키 감독이 ‘누구의 무엇’인지도 매번 마주치는 만물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변하고 있다.   오선민 작가는 21년 그림 동화 인류학을 시작으로, 22년과 23년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와 『신화학』 해석서, 이번 신간까지 ‘만물의 공생’을 주제로 글을 썼다. 해석한 책과 영화는 다르지만 ‘누구의 무엇’이 되는 주제를 일관되게 탐구했다. 그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로 23년 5월부터 매주 11회 인문공간세종에서 &lt;달살롱&gt; 특강을 진행했다. 또 23년 8월부터 35주 연속 북드라망 블로그를 통해 감독의 전(全) 작품을 배경, 사건, 캐릭터로 나누어 연재했다. 이어 수정을 거쳐 이 책을 썼다.  나는 매주 &lt;달살롱&gt; 특강을 듣고, 매주 북드라망 연재를 읽었던 운 좋은 독자이다. 우연한 기회에 나는 그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읽은 100여 권이 넘는 책을 봤다. 미야자키의 에세이는 물론, 지브리 먹방, 미야자키의 비행과 숲, 지브리 사람들, 미야자키가 영향받은 작품,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 히사이시 조의 생각, 미야자키가 그린 콘티 모음집이 망라된 책이었다. 나는 그가 받은 인세보다 참고 도서 책값이 더 들었겠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그는 이 책들을 읽고, 정리하며 따로 공책에 수없이 이런저런 도표로 그렸다. 미야자키 감독은 대충 떠오르는 심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오선민 작가도 어쩌다 드는 느낌으로 글을 쓰지 않았음을, 나는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나는 영화를 많이 보고, 글을 여러 번 썼는데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는 했다. 그의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며 ‘많이’와 ‘여러 번’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그가 처음 &lt;달살롱&gt;에서 했던 생각을 이번 신간에 그대로 구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참고 도서 참조, 특강, 연재, 수정을 거치며 반복해서, 많이, 계속 썼다. 특강, 연재, 여러 책 집필을 통해 인간 이외의 타자까지 경유한 시선으로 계속 탐구했다. 책을 쓰는 동안 만났던 무수한 타자를 통해 그와 신간은 ‘누구의 무엇’이 되고 있다. 진행형이다. 이 책이 선보이는 디테일은 그런 시선에서 나왔다. 책은 서점에, 디테일은 이 책에 있다. 만물의 의존에 대한 디테일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175/27/cover150/k47293422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1752738</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자연과 더불어, 곡선 건축(출처 : 인문공간세종) - [건축가 없는 건축 - 토속건축의 짧은 소개]</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15361883</link><pubDate>Wed, 06 Mar 2024 23: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1536188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920741&TPaperId=1536188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6/45/coveroff/89559207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920741&TPaperId=1536188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건축가 없는 건축 - 토속건축의 짧은 소개</a><br/>Bernard Rudofsky 지음, 김미선 옮김 / 스페이스타임(시공문화사) / 2006년 12월<br/></td></tr></table><br/>  『건축가 없는 건축』은 1964년 3달간 뉴욕 소재 Moma(Museum of Modern Art)에서 열린 전시회 작품집이다. 건축가 ‘없는’ 건축은 기원전 3,000년 전부터 기원후 1,800년 이전, 약 5,000년의 건축 역사를 다룬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남짓 건축을 우리가 아는 ‘건축’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책은 그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가진 또 다른 건축 이야기이다. 이 책에 나오는 건축물은 작가 미상이며 공동체의 공동작업에 의한 것으로서 건축가라는 개인이 중요하지 않다. 현대 건축이 편리, 안전, 저비용 고효율을 위해 방해물(자연환경)을 불도저로 밀어서 평탄화시키고 그 위에 비슷한 유형의 건물을 올리는 것과 다르다. 자연이 만든 지형지물을 그대로 둔 채로 인간이 필요한 것을 이용한다. ‘건축가 없는 건축’은 자연을 ‘정복’하기보다 자연환경과 ‘더불어’ 있는 건축이다.   화폐는 조개에서 지금의 전자 화폐로 ‘진보’했다기보다 조개로 ‘관계’를, 화폐로 ‘등가교환’을 하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건축은 지형지물을 더불어 사는 존재로 보는 작가 미상의 건축에서, 뭐든 지을 수 있고 방해가 되면 밀어버릴 수 있는 건축가의 건축으로 진보한 것이 아니다. 건축가 있는 건축이 진보라면 그 전에 있던 건축물은 자연으로 만들어진 동굴로 들어가거나, 보이는대로 나뭇가지 몇 개를 땅에 ㅅ자로 교차시키고 그 위를 대충 짐승의 가죽이나 덮어 씌우거나, 바닥이나 파서 겨우 몸을 보호하던 낙후한 건축이 된다. 건축가가 있고 없고는 자연환경과 ‘더불어’있느냐 ‘정복’하느냐라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산간 오지 높고 높은 곳에 어떻게, 누가, 왜 자재를 나르고 건물을 지었는지 경이롭다. 둘러보면 세상 어디에도 직선은 원래 없다. 곡선만 있을 뿐이다. 이 책은 곡선의 자연환경을 ‘직선화’하기 이전, 자연과 더불어 있던 곡선의, 아주 오래된 ‘다른 건축’ 이야기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6/45/cover150/89559207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64512</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신화, 해석을 기다리는 식탁 - [신화의 식탁 위로 - 레비-스트로스와 함께하는 기호-요리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14771269</link><pubDate>Mon, 24 Jul 2023 16: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1477126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834101&TPaperId=147712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106/1/coveroff/k3028341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834101&TPaperId=1477126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신화의 식탁 위로 - 레비-스트로스와 함께하는 기호-요리학</a><br/>오선민 지음 / 북드라망 / 2023년 07월<br/></td></tr></table><br/>이 책은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을 해석한 책이다. 신화를 요리해서 식탁에 올린다고? 머선 말이고? 신화가 뭐길래 요리를 할까, 그리고 아주 오래된 이야기, 신화를 왜, 지금 읽어야할까? 이 책을 읽어보니 신화에는 시공간, 인종, 성, 나이를 막론하고 인류의 원형적 무의식이 담겨 있다고 한다. 신화는 뒤죽박죽 산발적인 이야기, 무슨 말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와 내용으로 되어 있다. 꿈이 개연성이나 기승전결이 없는 것처럼 신화도 그렇다. 저자 오선민 선생님은 신화의 언어는 단어와 의미가 일대일 대응이 아니라 맥락과 상황에 따른 해석이 요구되는 기호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인류는 무의식적으로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도록 신화라는 이야기를 통해 균형을 맞추려 했다는 것, 그렇기에 신화는 대대로 내려오는 윤리학 지침서라고 해석한다.  먹는 것을 생각하면 맛있는 것, SNS에 올려진 화려한 이미지, 비싼 음식이 떠오른다. 내가 떠올리는 ‘먹을 것’은 나만 허겁지겁, 탐욕스럽게 먹는 혼밥의 이미지이다.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인류는 ‘먹을 것’에 대해 누구와 어떻게 먹고 나눌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신화의 핵심은 ‘치우침이 없는 것’이다. 그만큼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그냥 내버려두면 특정한 쪽으로 치우치고 말 것이고, 치우치면 우주의 질서가 무너질 것이라는 역설이 담겨 있기도 하다. 신화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공간 외에도 이 시간 전후,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공간 너머로 시야를 확대하고, ‘나’로의 편중이 아니라 나와 연결된 수없이 많은 관계들의 집합체인 우주 차원의 질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이 말하는 신화의 ‘치우치지 않음’을 위한 윤리는 멀리 있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문득 내가 욕망하는 맛있는 것 이면의 수많은 버려진 음식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바빠서 손질할 여유가 없다는 이유, 맛없다는 이유, 배가 불러서 더 맛있는 것을 먹을 자리가 없다는 이유 등 나의 효율과 취향에 따라 많은 음식들이 너무 쉽게 외면받고 버려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당에 가면 서빙 인건비에 밀려 가득 담겨 식탁에 올랐다가, 위생의 이름으로 음식이 무더기로 버려지는 문제, 한편에서는 음식물 쓰레기 매립지 선정을 둘러싼 사회적인 다툼을 보고 모두 남 이야기인 것처럼 지적질하고 현실을 개탄했다. 생각해보니 각자의 ‘나에의 몰입과 편중’이 만든 작은 불균형들이 모여 우주의 균형이 뒤흔들리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먹고 나누고 있을까. 신화를 통해서, 이 책을 통해서 생각해본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106/1/cover150/k3028341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1060194</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종교, 신비를 감지하는 감수성(출처 : 인문공간 세종) - [오강남의 생각]</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14481579</link><pubDate>Tue, 04 Apr 2023 2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1448157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2244&TPaperId=1448157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96/94/coveroff/893232224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322244&TPaperId=1448157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강남의 생각</a><br/>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22년 06월<br/></td></tr></table><br/><br>이런 게 종교라면  나는 비종교인이다. 대학 다닐 때 학생 식당이든 어디든 내가 혼자 있기만 하면 어김없이 달려들어 성경공부를 권하는 사람들의 공격적이고 집요한 전도 방식, 예수천국 불신지옥 같은 단선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가톨릭은 다르겠지 하는 마음에 서른 즈음에는 성당에 다닌 적도 있는데 성당 앞 온갖 소원 내용이 담긴 포스트-잇을 읽어보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모 빌딩 203호가 몇 달째 비어 있으니 임차인을 구해달라거나(월세를 내리면 간단할 것을) 늘푸른 고등학교 3학년 몇 반 아무개가 무슨 대학 무슨 과에 합격 하게 해달라거나(기도를 안한 애는 그 이유로 불합격해도 좋은가) 하는 아주 구체적이고 기복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서로 사랑하게 해달라거나 힘든 이웃에게 힘을 달라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하나님이 공인중개사나 입학 컨설턴트도 아니고 무척 머리가 아프거나 바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 중인 이슬람 국가 아프가니스탄에 기독교를 선교하러 간 기사를 접하고는 해당 교인들의 행동이 무모하거나 무례하게 느껴졌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에도 신천지 등 교회가 집회를 강행해서 교회를 집단감염의 진원지로 만들고 광화문의 기독교인 집회가 정치 권력을 행사하는 과격한 교회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도 나에게 종교에 대한 혐오를 강화시켰던 것 같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코로나가 왔다는 말을 들을 때면 이러면 하나님은 뭐가 되나 한숨이 나왔다. 헌금을 둘러싼 지저분한 이권 싸움, 교회를 목사 아들에게 증여하는 등 신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쓰는 흔한 소식도 종교 혐오에 한몫했던 것 같다. 신에게 복을 빌고 한편으로 신의 겁박에 두려움으로 떨며 자기만 옳고, 자기만 잘살자고 하는 것이 종교라면, 종교가 왜 필요한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오강남 선생님의 책을 읽고보니 나처럼 뜨악한 경험을 통해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유럽, 미국, 우리나라 등 전세계적으로 종교인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비종교인이 60%가 넘는다고 한다. 선생님은 『오강남의 생각』에서 편협하고 기복적인 종교를 비판하고 종교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말씀하신다. 문제는 애꿎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며 그 의미를 호도하는 자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이 문제라기보다 신에 대한 인간들의 낡은 생각이 문제이다. 진정한 종교란 서로 미워하고 자기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서로 엮여 상호작용하고 있는 신비를 깨닫는 감수성으로 비움이라는 자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한다.     <br>상호 연관이라는 우주의 신비  오강남 선생님은 주위를 둘러보면 만물이 서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 서로 연결된 것이 바로 우주의 신비라고 한다. 그 예로 먹는 밥 하나에도 벼를 키우기 위한 땅, 물, 공기, 해, 농부, 농부의 조상, 농기구,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과 쇠붙이, 그 쇠붙이를 만들기 위한 광부와 불 등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든다. 쌀 한 톨에 온 우주가 다 들어 있고, 내 속에도 우주가 다 들어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는 신비로움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나 혼자 산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리학자이자 깊은 종교심을 가졌던 아인슈타인도 지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간접적이고 여린 그림자로만 다가오는 아름답고 숭고한 신비로움을 감지하는 것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경험이라고 했다. 종교의 핵심은 만물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모두가 하나이며 우리는 그것의 일부임을 아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참된 종교인이라면 나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감사하다는 ‘얌체 감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참된 종교인은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고, 이때 자비(compassion)는 영어로 함께(com) 아파함(passion) 즉 ‘공감능력’을 뜻한다. 나와 세계가 연결되어 있고 나도 그 세계의 일부분이라면 ‘나 혼자에게만’ 행운이 찾아오고 불행은 비켜가라 빌 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갈 방식을 찾고 공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다. 이 지점에서, ‘어느 누구도 외딴 섬일 수는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종교란 나의 행복과 안위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이도 외딴 섬일 수 없이 서로 연결된 망에 있음을 감지하는 감수성을 갖는 것이다.   &nbsp;  정보(information)대신 변화(transformation), 비움  오강남 선생님은 종교의 문자주의를 청개구리식 해석이라고 비판하고 시대적, 문헌적 맥락을 파악할 것을 말씀하신다. 예를 들어 ‘날마다 죽노라’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덤을 오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영적 죽음과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삶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만약 성경을 문자 그대로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면 단순히 동성애만 반대할 것이 아니라 성경에 서 지시한대로 동성애자들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성경은 동성애뿐만 아니라 다른 행위들도 금지하는 조항이 많은데 선별적으로 다른 조항은 무시하고 동성애만 금지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맥락이 중요한데 성경이 명한 동성애금지는 당시 어린아이들을 돈으로 사서 성적 쾌감으로 삼던 관행을 금지를 뜻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종교가 상호연결된 우주의 신비, 자기 변화, 비움을 깨닫고 찾는 일이라면 나도 기꺼이, 그리고 절실히 종교를 공부하고 탐구하고 싶어졌다. 불교는 부처라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처라는 스승에게 배우는 종교라는 말도 생각났다. 오강남 선생님은 현실적으로 생각보다 별로 기독교인이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기독교도 예수를 일단 믿으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많이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배우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포도원의 주인 구절 해석처럼 하느님의 나라는 임금 노동자와 같은 방식으로 시간당 노력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배려, 발상의 전환, 가치 전도, 역지사지의 원리가 작동하는 곳일 것이다.  선생님께서 책 들어가는 글에서 처음 인용하신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이 인상 깊다. 오강남 선생님은 우연히 만난 종교를 절대화해서는 안된다고, 어디에 태어났다는 것이 곧바로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특정 종교를 결정하는 이유가 된다면 백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KKK단원이 된 것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반문한다. 종교는 우연히,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또는 어떤 일을 계기로 무조건 거부하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생각”이라는 것을 하며 관찰하고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은 “생각”이 바로 자기변화를 이끌기 위한 감수성을 깨우는 시작이 아닐까.&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696/94/cover150/893232224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6969424</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타인의 시선으로 내 삶을 돌아본다는 것 - [슬픈 열대, 공생을 향한 야생의 모험]</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13813592</link><pubDate>Mon, 01 Aug 2022 01: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138135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838915&TPaperId=138135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795/52/coveroff/k2328389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838915&TPaperId=138135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슬픈 열대, 공생을 향한 야생의 모험</a><br/>오선민 지음 / 북드라망 / 2022년 07월<br/></td></tr></table><br/>이 책은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해석한 책이다. 『슬픈 열대』라는 여행기는 “나는 여행이란 것을 싫어하며, 또 탐험가들도 싫어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행을 통해 자신에게 익숙한 세계관을 외부에서 ‘확인’하려거나 단순한 이국 ‘유람’을 거부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레비스트로스는 여행을 왜 떠나고 거기서 무엇을 얻었을까? 오선민 작가는 ‘왜’, ‘어떤’이라고 목적에 연연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가두는 그물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오 작가는 레비스트로스의 열대 여행이 타인의 시선으로 내 삶을 돌아봄으로써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었다고 해석한다. 여행이란 지금 있는 곳을 벗어나서 어디론가 새롭고 특별한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고 새롭게 ‘해석하기’라는 뜻이다. 오 작가가 지적한대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주관적 경험 양식인 움벨트(Umwelt)를 가지고 있는데 과연 ‘우리가 정말 다른 것을 볼 수 있을까?’ 오 작가는 레비스트로스가 남아메리카 네 부족 중 마지막 투피 카와이브족을 설명할 때는 그들 부족 설명보다 일상과 심상을 클로즈업한 것에 주목한다. 어쩌면 어떤 문명도 그 최고 목적은 자연으로 돌아갈 길을 모색하는 데에 있지 않을까라고 해석한다.   &nbsp;  나도 『슬픈 열대』를 읽은 적이 있다. 『슬픈 열대』는 700페이지라는 두꺼운 분량도 힘들었지만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다는 건지 알 수 없었고, 공간적으로도 열대 이야기는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는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인도, 파키스탄까지 ‘마법 융단’을 타듯 날아다녀서 이해가 어려웠다. 레비스트로스의 본인 이야기, 생각과 원시 부족 이야기가 뒤섞여 있었다. 일몰 묘사나 적도 농무지대 설명은 이 책의 장르가 여행기인지 문학인지 알 수 없을만큼 장르도 혼재되었다. 하지만 시공간, 장르가 뒤섞인 책을 읽으면서 묘하게 계속 읽고 끝까지 읽게 되는 매력이 무엇인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젠체 가르치려 하지 않은 백인 인류학자의 열정이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원시인들을 재단하거나 불쌍해하거나 그렇다고 칭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관점이 좋았다. 하지만 관찰력과 어휘력(특히 명사)이 부족해서 재미있다는 말 이외에 『슬픈 열대』를 설명할 말이 많지 않았다. 『슬픈 열대, 공생을 향한 야생의 모험』을 읽고 &lt;타인의 시선으로 내 삶을 돌아본다&gt;는 주제문을 중심으로 『슬픈 열대』라는 고전을 해석한 책을 토대로 해서 『슬픈 열대』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덕에 해석과 관점의 다채로움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795/52/cover150/k2328389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7955296</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그림동화를 인류학으로 해석하다 - [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 동화』의 인류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12971148</link><pubDate>Sat, 25 Sep 2021 22: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129711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734784&TPaperId=129711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838/99/coveroff/k59273478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734784&TPaperId=129711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 동화』의 인류학</a><br/>오선민 지음 / 봄날의박씨 / 2021년 08월<br/></td></tr></table><br/>이 책을 읽기 전까지 그림동화의 그림이 그림일기의 그림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림동화란 독일 그림(Grimm)형제가 19세기 초반 채록한 독일 민담이라고 한다. 또 동화란 애들 재울 때 읽어주는 이야기, 과자로 만든 집이 나오거나 난데없이 여우가 나타나서 이래라 저래라하고 개구리가 왕자로 바뀌는 등 허무맹랑하고 개연성 없는 이야기, 갑자기 이후로 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로 급마무리되는, 아이들에게나 통할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동화에 이렇게 깊은 뜻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nbsp;보살펴주는 부모는 애초부터 없거나 매우 초반에 죽고 아이들은 고아가 된다. 주인공 아이들은 가도 가도 끝없는 검고 빽빽한 숲으로 다짜고짜 던져져서 온갖 간난신고를 한다. 숲은 배고픔, 추위, 피로로 가득찬 통과의례의 장이 된다. 숲을 나오려면 친구를 사귈 수 있어야한다. 친절하고 착한 친구가 아니라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서로 다른 ‘필요’가 있는 친구이다. 작가는 동화는 반드시 집을 떠나 고생하면서 남과 함께 살아갈 방도를 깨닫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작가에 따르면 현대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되도록 오랫동안 부모 품안에서 보살핌을 받고 최대한 안전하고 튼튼하게 지켜줄 보험같은 부모가 아닌 모양이다.&nbsp;동화는 예쁜 공주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 때의 ‘예쁘다’는 비주얼이 인형같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처지에 연연하지 않고 살길만 생각하는 담대한 소녀를 ’예쁘다‘라고 한다’라는 해석도 재미있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현실에서도 얼굴이 이쁘다고 어이없는 짓만 하고 자기 이쁜 것만 봐달라고 하는 이를 누가 이뻐하나. 현명하고 담대하게 앞 길을 헤쳐나가는 소녀가 멋진 것 같다. 또 동화는 시작과 끝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다루는 동시에 지금이라고 하는 바로 여기를 크게 강조한다는 해석도 흥미로웠다. 내가 품고 있는 두려움이란 것이 주로 ‘내 삶을 규정하고 재단하는 심판의 목소리, 사후 세계, 잊히지 않는 과거의 기억, 그리고 자연 안에 회오리치는 무차별적인 우연’ 등 나의 바깥에서 내 삶을 규정하는 요소들에 불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에 따르면 내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내 배를 때리는 이 차가움, 물고기들의 펄떡거림’이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 내가 먹고 싸는 것, 이 구체적인 순간만이 우리가 정말 예민하게 주시해야 하는 지점이다’&nbsp;이 책의 제목은 &lt;시작도 끝도 없는 모험, 그림동화의 인류학&gt;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지금, 구체적인 순간만 있는 모험 이야기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그림동화는 물론이고 레비스트로스, 마르셀 모스, 스티븐 미슨 등의 인류학 저서와 근대 문학과 그 밖의 많은 인문학 책들이 그림동화 해석을 돕기 위해 등장한다. 작가는 어린 아이들을 키우면서 동화를 읽다가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아이들 덕분에 나도 이런 멋진 해석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정성이 듬뿍 들어간 훌륭한 표지와 목차 디자인에도 박수를 보낸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838/99/cover150/k59273478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8389966</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수련자 작가의 응답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찾은 시간 그리고 작가의 길]</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12592446</link><pubDate>Tue, 04 May 2021 19: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125924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730798&TPaperId=125924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802/15/coveroff/k99273079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730798&TPaperId=125924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되찾은 시간 그리고 작가의 길</a><br/>오선민 지음 / 북드라망 / 2021년 03월<br/></td></tr></table><br/>이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을 한마디로 한다면 ‘이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책이었나!’ 이다. 이 책은 2014년 나온 책의 개정판이다. 나는 이 책의 원판을 2018년에 읽었는데 그 때는 이렇게 재미있었다는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을 손에 잡고 중간 멈춤 없이 끝까지 다 읽었다. 밤은 깊었는데 중간에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뒤에 올 이야기가 궁금했다. 작가의 말대로 개정을 하면서 머리말과 약간의 내용 수정만 있었을 뿐인데 그간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마도 내가 3년의 시간동안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일로 달라졌고 무엇보다 최근에 읽고, 쓰기 공부를 하면서 글쓰기의 태도에 관한 관심이 컸기 때문에 이 책과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게 된 것이 이유 같다.&nbsp;책꽂이에 꽂힌 이 책의 원판을 찾아서 읽어보니 작가는 머리말을 완전히 새로 썼다. 원판에는 책을 쓸 것을 제안 받았을 때 이제 막 백일이 된 쌍둥이 딸들을 두고 책을 쓰려는 급한 마음과 육아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쳐 목표와 의무에 사로잡힌 채 흘려보냈던 시간들, 그러다 문득 그런데 왜 프루스트는 작가가 되려고 했을까? 라는 질문을 해보게 되고, 프루스트가 쓰려던 것은 줄거리(인과)가 아니라 작가의 태도에 관한 것임이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미치고 나서 작품이 전혀 다르게 해석되었다고 한다. 거기서부터 작가는 새롭게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7년 만에 다시 이 책은 출판사를 바꾸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고 작가는 한결 여유로운 어조로 개정판의 머리말을 쓴다. 나는 어쩌면 작가도 개정판 작업을 하면서 7년 전 자신이 쓴 작품의 독자가 되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작가가 이 책에서 강조했던 자신에게 던지는 천 번의 질문, 절차탁마하는 수도승, 수련하는 삶에 대한 깨달음은 깨달음에서 그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 개정판뿐만 아니라 2020년 9월 출간된 『자유를 향한 여섯 번의 시도-카프카를 읽는 6개의 키워드』(나는 이 카프카에 대한 책도 읽었는데 프루스트에 대한 책보다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2021년 중 출간될 예정인 ‘그림동화 인류학’(가제)가 그 응답이다.&nbsp;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기획하고 집필하는 데 14년이 걸렸다. 작가는 머리말에 “프루스트는 소설을 쓰면서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많은 질문들로 가득 차 있었는지를 보려고 했다. 동시에 끝도 없이 매번 달라지는 답들에 기뻐했다.”라고 적고 있다. 작가가 프루스트의 작품을 그렇게 해석한 것은 아마도 그 인용문에서 ‘프루스트’ 자리에 ‘오선민’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넣어도 문장이 성립할 정도로 그가 계속해서 수련자의 태도로 책을 써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가 14년에 버금가는 시간동안 이 책을 고쳐 써서 개정 작업을 한 것은 아니지만 텍스트를 달리해서 그의 생각에 계속해서 하루하루 살을 붙이고 색을 입히고 있는 것 같다. 수련자 작가가 차례로 내놓을 책들을 기다리며 작가를 응원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802/15/cover150/k99273079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8021558</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카프카의 작품을 ‘자유를 향한 글쓰기’로 해석한 한 수련자의 글쓰기 - [자유를 향한 여섯 번의 시도 - 카프카를 읽는 6개의 키워드]</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12049676</link><pubDate>Tue, 06 Oct 2020 17: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120496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633273&TPaperId=120496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127/64/coveroff/k90263327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02633273&TPaperId=120496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자유를 향한 여섯 번의 시도 - 카프카를 읽는 6개의 키워드</a><br/>오선민 지음 / 북드라망 / 2020년 09월<br/></td></tr></table><br/>이 책은 카프카의 소설, 일기, 편지 등 글쓰기를 ‘자유를 향한 여섯 번의 시도’로 해석한 해석서이다. 카프카의 작품은 어느 날 잠에서 깨어보니 벌레가 되지만 왜 애초에 벌레가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고(「변신」),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체포되지만 죄의 내용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소송』). 또 주인공들은 원래 가려던 목적지에서 비켜 나와 길바닥 골목을 헤매 다니기 일쑤다(『성』,『실종자』). 내용에 ‘왜’, ‘목적’이 없고 형식에도 3편의 장편 모두 미완으로 끝나는 등 마무리라는 ‘목적’이 없다.  작가는 카프카의 작품이 무작정 좋아서 읽기를 시작했지만 막상 카프카에 대한 책을 쓰다 보니 각각의 작품에서 반복되는 테마가 충돌하고 문장들을 아무리 맞춰보아도 퍼즐처럼 딱 떨어지지 않아 힘들었다고 한다. 이리저리 붙인 조각들이 이어지지 않아 다 외워버리겠다는 각오로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카프카를 해석한 발터 벤야민, 한나 아렌트, 질 들뢰즈 등의 철학자들의 책, 그 철학자들의 카프카 해석을 해석한 책까지 확장해보기도 하였으나 카프카와는 더 멀어져만 갔다고 한다. 급기야 무릎으로 툭 친 이야기만 며칠째 계속하는 카프카의 일기를 읽고는 카프카는 미쳤고, 자신도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포기하기도 했다고 한다. 책 마무리를 위해 간 프라하에서도 서둘러, 확실하게 마무리하려는 급한 마음에 해도 안될 일에 왜 그런 공을 쏟았는지 원망스러울 정도로 카프카의 작품을 읽었던 수많은 시간이 무용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카프카에 대해 뭔가를 써야한다는 목적을 내려놓자 카프카의 매일같이 고쳐 쓴 글쓰기가 완벽한 문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퇴고가 아니라는 점, 무릎을 끝도 없이 툭치는 이야기는 Ctrl C, Ctrl V가 아니라 무한한 차이가 발생하는 반복이라는 점이 보이기 시작하자 문득 자기 물건이라고는 거의 없는 작은 방에 책상 하나를 갖다 놓고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종이를 마주하여 무술을 익히듯 글을 쓰고 또 쓰고, 또 고쳐 쓰고 있는 수련자, 카프카가 보였다고 한다.  작가는 스스로를 대학원에서 근대문학을 공부한 대한민국 40대 주부로서 아이들의 엄마로 소개한다. 밥, 빨래, 육아, 그리고 카프카의 작품 해석 글쓰기를 병행한 것이다. 작가는 책 서문에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 이후 본문 어느 곳에서도 자기 생활이라고는 내보이지 않는다. 일기에서조차 자기 일이라고는 쓰지 않았던 카프카 작품의 해석서이기에 자기 이야기 부재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어쩌면 작가가 카프카에게서 수련자의 모습을 본 것은 작가 역시 매일 글쓰기를 하는 수련자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 스스로도 카프카 덕분에 프라하까지 왔으면 됐고 정답은 없지만 스스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으면 됐다고 한다. 작가는 카프카의 작품을 자유와 그를 위한 시도로서 유목, 독신, 소송, 측량, 변신, 문학 등 6가지 키워드로 설명한다. 결국 그 키워드들은 글쓰기로 귀결된다. 나는 이 책을 ‘카프카의 작품을 ‘자유를 향한 글쓰기’로 해석한 한 수련자의 글쓰기‘로 부르고 싶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127/64/cover150/k90263327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1276424</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웃기는 소설, 더 웃기는 우리 삶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277698</link><pubDate>Sun, 31 Aug 2003 01: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27769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1049&TPaperId=27769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2/77/coveroff/898431104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311049&TPaperId=27769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a><br/>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08월<br/></td></tr></table><br/>막 웃어제끼다 보면 나중에는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다. 이 책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인 것 같다.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했다가 웃기는 사람이 될 뻔했다. 지하철에서 절대로 읽지 말 것. 하지만 하도 웃어서 눈물이 날 지경에까지 도달하자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더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드빚때문에 회사를 그만 둘 수 없고 좌절과 절망 섞인 회사 생활을 하면서 또 그 스트레스를 먹고, 마시고, 사는 데 쓰기 때문에 다시 카드빚이 생기고..그래서 나는 영원히 회사를 그만 둘 수 없을 것 같다. <br><br>바야흐로 구매자 천국의 시대이므로 나는 소비자일 때만 대우를 받는다. 생산자로서의 나는 그 까다로운 소비자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일신우일신, 발바닥에 땀냄새 가득하도록 뛰어야 한다. '저는 차라리 적게 먹고 적게 쌀래요'하면 사회에서는 소비의 아름다움에 대해 역설한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옷 사세요~ 라는 이야기이다. 사회의 소비 조장은 늘 은유적으로 다가온다. 절대 직설적인지 않다. 프로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포장을 하고 숨을 죄어온다. 너는 프로가 되어야해. <br><br>왜 그렇게 앞만 보고 뛰기만 하는건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갈 데가 있다는 게 행복이라고. 과연 그럴까? 갈 데는 분명이 있지만 거기서 뭘, 왜 하는지도 모르는 건 그냥 인생이 그런거라고 생각하고 잠자코 있으면 되는걸까?<br>삼미의 기록적 패배와 뺑이치듯 사는 우리네 인생과의 비유와 연결. 너무 잘 쓴 소설이다.<br><br>새삼스럽게 이 소설가가 이 많은 끼와 철학을 가지고 매우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어떻게 했으까 싶다. 물론 매우 잘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의 꿈틀거리는 기질을 어떻게 감추고 또 누르고 살았는지 매우 궁금해진다. 이 소설은 어쩌면 그가 회사원에서 소설가로 전향하며 내던진 출사표 같은 느낌이다. 그가 내놓게 될 차기 작품이 벌써부터 무척이나 기다려진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2/77/cover150/898431104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27740</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조선시대 일화 모음집 &amp;#8211; 그러나 그리 친절하지는 않은 - [말이 없으면 닭을 타고 가지 - 선인들의 일화에 담긴 일탈의 미학]</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277697</link><pubDate>Mon, 25 Aug 2003 19: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2776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846566&TPaperId=2776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53/coveroff/8985846566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846566&TPaperId=2776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말이 없으면 닭을 타고 가지 - 선인들의 일화에 담긴 일탈의 미학</a><br/>이강옥 엮어옮김 / 학고재 / 1999년 09월<br/></td></tr></table><br/>'일화'란 만든 이에 따라 평민일화와 사대부일화가 있는데 둘 모두 결국 사대부가 한문으로 기록한 문학이다. 따라서 여타의 구전문학과 구분되고 실제 있었던 일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허구적 서사 문학과도 구분된다. 본격적으로 조선시대 초기부터 발달했다. 즉, 일화는 논픽션 조선 한문문학이다. <br><br>이 책은 엮은이가 &lt;용재총화>,&lt;패관잡기>등 40여편에서 발췌,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의 소개대로 나는 일화를 통해 사대부가 고쳐 쓴 평민일화, 설화와는 다른 서사문학의 모습과 그에 따른 설명을 기대했다. 하지만 이 책은 그야말로 모음집이었다. 장의 마지막마다 해설이 있었지만 1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일화에 대한 각각의 설명은 없었다. 게다가 같은 장에 포함된 여러 일화가 왜 같은 제목으로 묶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도 쉽지 않았다. 내가 너무 친절한 작가들에 익숙해진 탓일까? 아니면 국문과 전공자들만 읽는 참고서를 집어 들고서 불평하고 있는걸까? 내가 보기에는 국문과 학부생들에게도 버겁게 보인다. <br><br>요사이 대중에게 성큼 다가와 묻혀졌던 우리 문화와 역사를 설명하는 책들이 많다. 예를 들면 &lt;나의 문화유산답사기>, &lt;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lt;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lt;조선 뒷골목 풍경> 등 다수이다. 하지만 어느 주제보다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잠재력이 많은 우리 옛 문학은 상대적으로 홀대 받는 듯하다. 나의 이런 개인적인 불평이나 바람이 대표정서도 아니고 또 설사 그렇다 하더라고 그 책임을 이 저자가 져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또 모든 책이 대중적일 필요도,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br><br>다만 국문학자가 쓴 친절한 우리 옛 문학 설명서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국문학자가 아닌 고종석의 &lt;제망매가>, &lt;언문세설>, &lt;감염된 언어>, &lt;국어의 풍경>을 한 번 보자. 우리 옛 것에 대한 사랑과 지식, 그리고 철학이 얼마나 고맙기까지 한지.<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53/cover150/8985846566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5348</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두껍지만 두껍지 않은 세계 단편 추리 소설집 - [마니아를 위한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277696</link><pubDate>Sun, 24 Aug 2003 16: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2776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201227&TPaperId=2776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9/coveroff/89722012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201227&TPaperId=2776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니아를 위한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a><br/>아서 코난 도일 외 지음, 정영목, 정태원 옮겨엮음 / 도솔 / 2002년 07월<br/></td></tr></table><br/>얼마 전 방영된 드라마 '선녀와 사기꾼'을 보면서 사기꾼이 나쁜 직업임에는 틀림 없지만 저렇게 치밀히 계획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어떤 식으로든지 인정을 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사회면 뉴스를 보라. 주식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덜컥 아이를 납치부터 했다가 아이 부모님이 전화를 받지 않자 저녁에 결국 집 앞에 아이를 데려다 주고, 다시 아무 특별한 계획 없이 다음 희생양을 납치한 다음 이번엔 골목길에서 마주 오는 경찰차에 수상한 행동을 해서 바로 잡힌다. <br><br>도대체 이게 뭐란 말인가? 최소한 추리 소설을 한 번이라도 읽고 고민을 했다면 그런 식의 일은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홍콩 영화 등을 보면서 범행 준비를 했다는 자백이 사회를 충격의 도가니를 몰아 넣지만 이것 역시 단순히 그 방법을 그대로 차용하거나 범행 방법이 엽기적이고 폭력적일 뿐이다. 지능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의 성의 있는 범죄와는 거리가 멀다. 죽일 필요도 없는데 사람을 죽이고 결국 자백을 한다. 아니 그럼 끝까지 비밀로 간직할 수 있다고 믿었단 말인가? 그 허술한 방법으로? <br><br>이 책 &lt;마니아를 위한…>은 세계의 유명 추리 소설 작가가 쓴 40여편의 작품집이다. 물론 이 책은 범행 계획서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는 인간 군상들의 입장과 알리바이 속에는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물씬 풍겨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작은 실마리를 탐정이 찾고 범행의 전체 그림을 그려내는 과정은 독자들의 상상력을 끊임 없이 자극한다. 그리고 책 속으로 끌어 당기는 데에 성공한다. <br><br>여기에는 만화책을 읽는 듯한 박진감과 스피드, 프랑스 소설 같은 후반 대반전이 있다. 또 독자가 함께 사건을 풀어가도록 초반 암시가 되어 있는 작품도 있고 현장에 있는 탐정의 눈으로만 감으로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마지막에 해답처럼 실려있는 것도 있다. 또 인도 출신 노동자, 평생을 가난으로 살아야 했던 한 여성 노동자, 빈민 구제소의 아이들, 아일랜드 독립파가 주연 혹은 조연으로 등장하는 등 사회적인 메시지가 담긴 작품도 있다. 또 상속과 치정을 둘러싼 가족간 분쟁이 주제가 되기도 한다. <br><br>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어느 것 하나 플롯이 개연성과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CD 한 장 사면 한 두곡 들을만 하고 나머지 곡은 끼워팔기의 냄새가 역력한데 이 책은 작품성이 검증된 컴필앨범이라고나 할까. 하나도 버릴 작품이 없다. 하지만 책을 사보면 알겠지만 책이 매우 두껍다. 1000페이지 가량 되므로. 따라서 들고 다니지 말고 집에서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분량은 두껍지만 그 읽히는 속도나 재미를 감안하면 그다지 두껍지 않다는 생각이 들거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9/cover150/89722012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928</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16세기 한 양반의 일기 -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 미암일기 1567-1577]</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277695</link><pubDate>Tue, 19 Aug 2003 02: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27769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69326&TPaperId=27769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9/coveroff/8971969326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69326&TPaperId=27769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 미암일기 1567-1577</a><br/>정창권 지음 / 사계절 / 2003년 01월<br/></td></tr></table><br/>이 책은 16세기 양반인 미암 유희춘이 11년간 쓴 일기를 중심으로 작가가 주제별로 현대어로 재구성한 것이다. 유희춘은 그냥 양반이 아니고 기대승, 송순, 이황, 이이, 정철과 교유했고 임금의 스승을 지낸 고위관료였다. <br><br>그의 일기를 토대로 보면 조선시대 전기는 아들과 딸이 제사를 함께 지내거나 장자 상속 대신 자녀균분 상속이 폭넓게 시행되는 등 후기에 비해 남녀차별이 심하지 않았다. 또 대가족제도라 외가, 처가 등이 함께 모여 살고 바깥 출입이 잦은 대감 마님에 비해 일상적으로 많게는 100여명의 식솔을 관리하던 안방 마님의 실세가 대단했다. 즉, 대가족 조선 안방 마님의 ‘곶간 열쇠’ 는 핵가족 시대 현대 부인이 관리하는 남편의 ‘급여 통장’ 을 스케일면에서 크게 압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이 밖에 왕실, 정국 동향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가계 살림살이, 혼례, 제사, 노비 관리 등의 광범위한 내용을 주제별로 다루고 있다.<br><br>그러나 유희춘이 조선의 양반으로 그 당시 민중의 대표도 아닌데다 일기의 특성상 밥 먹고 일하는 매일 되풀이 되는 평범한 일상 &#8211; 그러나 후대에는 중요한 가치가 있는 신변잡기- 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16세기 생활상을 파악하는 데에 이 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책은 작가 정창권이 가부장제가 조선 전반의 조류인 것인 양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전기까지만 해도 여권 존중의 전통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특별한 의도로 이 책을 집필한 것 같고 그 의도는 부인 송덕봉이 유희춘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만 놓고 보더라도 성공한 듯하다 -그 편지는 논리적인 명문이었고 결국 유희춘은 말발에 있어서 부인에게 K.O패를 당한다.- 그래서 이 책은 16세기 생활사 참고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16세기를 살던 조선시대 할아버지의 일기 훔쳐보기로 접근을 하면 맘 편할 것 같다. <br><br>부언컨데 조선 시대의 생활사를 알고 싶다면 이 책보다는 &lt;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가 더 적절할 것이다. 왜냐면 &lt;일상으로..>는 유희춘의 일기뿐만 아니라 신윤복 등의 풍속화나 기타 의복사, 음식사 등을 포괄하는 다양한 문헌을 참고로 하여 기생, 형장, 마마, 호환, 담배 등 10여가지 주제로 참고 문헌을 넘나들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를 포괄하는 우리 역사의 잘못 알려진 오해와 그 진실을 파악하려면 &lt;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lt;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등의 책을 읽는 것도 유익할 것 같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69/cover150/8971969326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6919</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사랑이라니, 선영아 - [사랑이라니, 선영아]</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277694</link><pubDate>Mon, 18 Aug 2003 02: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2776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88197X&TPaperId=2776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1/92/coveroff/897288197x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88197X&TPaperId=2776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사랑이라니, 선영아</a><br/>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3년 06월<br/></td></tr></table><br/>사랑이라니, 선영아<br><br>제목만으로 갖고 싶은 느낌을 주는 책이 있다. &lt;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lt;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lt;저문 강에 삽을 씻고> - 노동자의 고단한 일상을 담담하게 그렸던 이 시집 제목은 얼마전 내가 메신저 대화명으로 썼다가 “너 무슨 화나는 일 있냐?” 심지어는 “너 누굴 죽이고 싶냐?”라는 종류의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상상에서 비롯된 질문이 쇄도하여 의외로 이 시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시가 아니라는 점과 사람들이 평소에 나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를 깨닫고는 소심해져 서둘러 대화명을 바꾼 적이 있다 - &lt;사랑이라니, 선영아>도 평범하지만은 않은 제목이다. 작가는 몇 년전 전봇대와 지하철 광고판을 도배했던 '선영아, 사랑해'라는 광고의 여성 전문 포탈에서 이 제목을 착안했다고 한다. <br><br>이 소설은 소설 제목처럼 대중성을 띈 대사가 많이 등장한다. 이를테면 “공안검사 비트 파는 소리하네……문학도 모르는 것들이 잘난 척하기는(개그콘서트 옥동자)”라든지, “사랑해 선영아.(마이클럽)”라는 사랑 고백. 거기에 주인공이 여자에게 사랑 고백을 거부 당한 후 “어떻게…..사랑이 변하니?(봄날은 간다)”라고 하는 순간은 정말이지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br><br>주인공은 텔레비전, 광고, 영화를 너무 많이 본 인간이다. 또 여자 집 앞에서 술이 진탕으로 취해서 ‘얄미운 사람'을 온동네 떠나갈 듯 불러대고는 사태 진압에 나선 여자에게 놀이터에서 &#8211; 그 여자의 남자동생과 어머니가 멀리서 모니터를 하는 가운데- 하는 기가 막힌 고백..등등 나는 더 말하고 싶지만 더 이상 전개하면 ‘식스 센스’상영관 앞에서 ‘브루스윌리스가 귀신이다’라고 외치는 격이므로 그만 하련다. <br><br>또 막 결혼생활에 접어든 남자를 '달에서 귀환한 사람'으로 그 무게와 중력을 설명하는 신선한 비유를 던진다. 여자에게 결혼이란 '호두'와 같다. 깔려면 힘든데 깐 노력에 비해 허망하리만치 없는 내용물.. 하지만 이 소설이 이렇게 대중적인 대사와 절묘한 비유들로 점철이 된 가벼운 소설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공감가고 설득력 있는 후일담 소설이랄까? 가볍지만 진지한, 무거운 듯 하지만 시트콤 같은 자연스러운 웃음이 가득한 우리네 현실 스케치이다. <br><br>제목 때문에 처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고 김연수라는 작가가 너무 신선해서 동작가의 &lt;굳빠이, 이상>이라는 작품을 그 다음날 바로 사서 읽었다. 두 작품을 읽고 난 후, 이유를 딱 꼬집어 설명하기가 힘이 들지만 소설가 김연수는 저력 있고 기대가 많이 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1/92/cover150/897288197x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9208</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고려청자, 그 이상의 고려시대에 대하여 -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277693</link><pubDate>Mon, 18 Aug 2003 02: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2776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83218&TPaperId=2776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coveroff/9788972783213.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83218&TPaperId=2776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a><br/>한국역사연구회 / 청년사 / 1997년 04월<br/></td></tr></table><br/>고대사는 최대한 우리 역사를 장구한 것으로 생각하기 위하여, 삼국시대는 불꽃 튀는 각국의 각축전과 문화의 번성을 자랑할만하여, 조선시대는 현대 바로 이전 시대로의 가치로 나름대로 잘 알고 있지만 고려시대는 이래저래 시대들틈에 끼어서 그런지 이상하리만치 잘 알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그래서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문익점, 의천, 김황원, 김의민, 신돈, 최영, 이규보 등의 인물들을 열거해두고 이 중 고려사람이 아닌 사람을 골라라 하면 한참을 헤매게 된다. 답은 없다다. 모두 고려사람이다. <br><br>이 책 &lt;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는 대각국사 의천, 지눌, 김부식 등 고려시대 유명인(?)과 유명하지 않은 농민들, 무당들을 비롯한 백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의 서브노트 정도될 것 같다. 예를 들어 팔만대장경을 국사교과서에서는 해인사, 강화도, 대몽항전, 호국 불교, 소금물, 찬란한 문화의 꽃, 목판 인쇄술의 발달 정도의 핵심어휘를 중심으로 설명했다. <br><br>그러나 이 책에서는 팔만대장경이 왜 팔만대장경인지, 제작 비용은 어떻게 감당했는지, 누가 어떻게 새겼는지, 제작 과정의 에피소드, 의의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들어있다. 이렇게 국사시험에 도움되는 이야기와 고려장은 과연 고려시대 장례풍속이었나? 이러저러해서 아닐 것이다라는 주장이 실려 시험에 별 도움이 안되는 이야기도 많다. 이 밖에 이 책은 고려시대 불상, 청자, 삼국유사 대 삼국사기, 풍수지리, 호적, 군대, 신분제도, 남녀차별의 허와 실에 대한 업그레이드 역사를 다루고 있다. <br><br>아쉬운 점은 20여 개의 주제별로 저자가 달라서 문체와 집필 방향의 편차가 있고 때로는 언급했던 이야기가 반복해서 다른 주제에 등장하는 등 일관되지 못한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는 것이다. <br><br>그러나 이 책은 학창시절 국사를 암기에 의존하였다가 이제는 우리 역사에 대한 무지에 새삼 부끄러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 같다. 조카가 고려시대를 물어보는데 고려장과 고려청자 등 ‘고려’라는 단어가 포함된 것만 기억하고 있으면 참 민망하지 않을까? 최소한 나는 역사를 어제를 되새겨 오늘을 생각하는 등의 거창한 개념까지 생각할 수준도 되지 않는다. <br><br>다만 외국 손님이나 어린 조카가 우리 역사에 대해 질문했을 때 꿀먹은 벙어리처럼 얼굴만 화끈거리는 경험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있다. 학창시절 국사 교육이 어째서 문제라는 핑계를 대기에는 좋은 책들이 훌륭한 저자들의 노력으로 너무 많이 나와 있는 것 같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cover150/9788972783213.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296</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무지랭이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 - [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277692</link><pubDate>Thu, 14 Aug 2003 13: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2776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83501&TPaperId=2776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96/coveroff/89727835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83501&TPaperId=2776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 1</a><br/>정연식 지음 / 청년사 / 2001년 08월<br/></td></tr></table><br/>역사는 나폴레옹, 진시황, 세종대왕, 퇴계 이황 등 영웅을 중심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아간 대부분은 지나가는 여인 1, 2, 짐꾼1, 2 등의 엑스트라이다. 이 대부분의 엑스트라의 삶과 문화가 내가 알고 싶은 역사가 아닐까? 역사가 만약 4.19, 5.16, 12.12 이런 식의 숫자와 대통령들의 업적이 중심이라면 딱히 역사 속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느낌도 덜할거다. &lt;일상으로 본 조선시대 이야기>는 조선 시대 보통 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저자의 말처럼 “민란이 일어났을 때 모든 민중이 혁명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며, 전란이 터졌을 때 온 백성이 나라를 구하려고 고군분투했던 것도 아니다.”<br><br>조선 여인들의 평생 소원은 쌍가마(말이 앞 뒤에서 끄는 가마)를 타보는 것이었으며 가마꾼의 숫자와 가마의 모양에 따라 신분이 드러나기도 했다. 오늘날 6기통, 8기통, 몇 cc하는 식이다. 자동차의 배기량과 브랜드로 ‘가오’를 내고 싶은 오늘날과 비슷한 모습이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중과 절을 다 때려 잡았을 것 같지만 공자님이 말씀해 주지 않는 내세가 두렵거나 궁중의 왕자의 탄생을 기원하거나 누가 아플 때 왕실은 부처님을 찾았다. 필요할 때만 교회에 가는 오늘날과 다르지 않다. <br><br>비디오 시작하기 전 불법 복제를 반대하는 광고문 중 “옛날에는 호환, 마마가 무서웠다.”가 있는데 마마는 정말 무서운 병이었고 많이 걸렸던 병으로 정약용은 아들 넷을 마마로 잃었다. 정약용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아버지가 보내주겠다던 소라껍데기를 기다리다가 아이가 끝내 마마로 죽은 뒤 소라껍데기 2개가 도착했는데 그 어린 아이가 죽으면서 한 말 “엄마! 아빠가 돌아오셨더라도 발진이 돋았을까?” 그 자신 뛰어난 의학자이면서 사랑스런 아들의 죽음을 유배지에서 들을 수 밖에 없는 찢어지는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을거다. <br><br>당연히 관복은 유니폼처럼 나라에서 제공하는 줄 알았는데 각자 준비를 해야했단다. 또 과거에 합격하면 한 턱내라고 선배들이 들이닥치는데 대접이 시원치 않으면 행패를 부렸단다. 하긴 신입사원이 되면 안 입던 양복도 사입고 주변 사람들한테 한 턱 내느라 몇 달은 마이너스 통장을 가지고 살기도 하니 뭐 돈 벌기 전에 돈 들어가는 건 진리인가부다. 또 술을 무리하게 먹이거나 모욕을 주는 짖궂은 행동을 하는 등 신참 통과의례를 톡톡히 치루었다고 한다. 매년 3월이면 대학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은 그 역사가 오래된 모양이다. <br><br>율곡 이이가 상소까지 해가면서 이런 관행을 뿌리 뽑으려 했으나 이이가 자리에 있을 때 그것도 관할 부서인 병조에만 잠깐 이 관행이 금지되었을 뿐이라고 한다. 사약이 여태 죽는(死) 약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임금께서 내리신(賜) 약이었다. 이 밖에 얼굴 등에 그 죄를 문신으로 새기는 일종의 주홍글씨 묵형, 참혹하기만 한 태형, 곤장형, 교수형, 참형 등.. 형장의 풍경은 끔찍하기만 하다. <br><br>물론 이렇게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옛 문헌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는 백여권에 달하는 참고문헌을 읽고 이를 영웅 중심이 아닌 무지랭이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으로 재구성했다. 일테면 추사 김정희의 초상화와 백범 김구의 사진 속에서 곰보 자국을 발견한다. 저자의 집필 의도와 노력에 큰 박수를 보낸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96/cover150/89727835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9675</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확 중이나 되어야겠다구요? - [성철스님 시봉이야기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277691</link><pubDate>Tue, 12 Aug 2003 15: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27769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08483&TPaperId=27769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79/coveroff/893490848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08483&TPaperId=27769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성철스님 시봉이야기 1</a><br/>원택 지음 / 김영사 / 2001년 12월<br/></td></tr></table><br/>“머리 확 깍고 중이나 되어야겠다”<br><br>중생활을 우습게 본 말이다. 오죽하면 이런 말을 내뱉을까 싶지만 중은 홧김에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절은 직장인들에게 큰 맘 먹고 들른 자연의 휴식처나 기암괴석에 둘러싸여 풍광 좋은 별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은 관광지 이전에 스님들이 생활하고 수행하는 예불처이다. 따라서 절에서 밥, 반찬도 필요하고 난방, 건물 보수 등의 공사도 필요하다. 그러니 만약 절이 녹차 마시며 큰 스님의 좋은 말씀만 듣고 선문답을 나누는 공기 좋은 곳으로 생각하고 출가를 했다면 무료 파출부가 된 기분일거다. 게다가 매일 새벽, 점심, 저녁 예불을 드린다. 여기에 삼천배, 때론 이만일천배..평소에 과일 사러 가면서도 승용차 타는 사람들은 우선 체력부터 보강한 뒤 출가를 결심할지어다.<br><br>그렇다고 &lt;성철스님 시봉이야기>가 허드렛일 하는 스님이 중심은 아니다. 이 책은 20여년간 큰스님 성철을 곁에서 모신(시봉한) 원택스님의 이야기이다. 원택스님이 바라본 성철스님 정도가 되겠다. 그래서 원택스님이 책 전반부에서는 주인공이고 후반부는 성철스님이 중심이다. <br><br>그러나 내가 불경스러워서인지, 성철스님이 원체 말씀을 별로 안하셔인지 아니면 원택스님이 성철스님이 너무 무서워서 몸을 사리셔서 그런건지 딱히 왜 성철스님이 큰스님인 줄은 잘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성철스님이 큰스님이고 무서운 분이고 과묵하신데다 검소하신 분이다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내가 삼천배를 하지 않고 책상 앉아서 편하게 책을 읽어서 그런가? 오히려 절 생활이 쉬운 게 아니고 세상살이 어디가든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br><br>그렇다고 성철스님 에게~별 거 없네 이런 생각마저 든 것은 아니다. 다만 논리적인 근거가 뒷받침이 된 성철스님의 ‘큰말씀’을 기대했지만 주위 스님들이 큰스님을 추앙하는 현장만 둘러보고 온 기분이다. 하지만 스님들의 수행 과정의 어려움, 화두, 가족들과의 분쟁(?) 해결 등의 이야기가 스님이된 친구가 해주는 이야기처럼 잔잔하게 전해져 와 덕분에 유익한 시간을 보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79/cover150/893490848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7993</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종교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 [천국의 열쇠 - 세계문학 29]</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277690</link><pubDate>Mon, 11 Aug 2003 02: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27769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3303333&TPaperId=2776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4/12/coveroff/8973303333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3303333&TPaperId=27769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천국의 열쇠 - 세계문학 29</a><br/>A.J. 크로닌 지음, 홍준희 옮김 / 하서출판사 / 1991년 11월<br/></td></tr></table><br/>&lt;천국의 열쇠>는 한 천주교 신부가 교단 내부의 배타적, 권위적 문화에 대해 대항하며 하느님의 참뜻을 실천하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천주교 신자이면 상습적으로 죄를 짓고도 일요일만 참회하면 되냐?”, “한평생 가난한 이들의 벗이었지만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단 말이냐?”라는 의문에 대한 잔잔한 답이 될거다.<br><br>주인공 치셤 신부는 가톨릭 교회의 엄격한 교리로 보면 신부도 아니다. 그는 무신론자이면서 페스트 환자들을 온 몸으로 돕다가 죽어간 의사에 천국행을 기도한다. 이를 따지는 수녀에게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처럼 그 의사가 환자를 위해 일하다 죽었노라고 항변한다. 불경하도다!! 감히 무신론자와 그리스도를 비교하다니. 그 수녀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이야기다. 또 교회 확장이라는 지상 최대의 목표를 실천하는 ‘능력 있는’ 신부에 맞서서 이를 신자 매수 행위라며 거부한다. 윗 사람에게 까불기까지.. 그는 노자(老子)의 말을 인용, ‘종교는 많지만 진리는 하나며 우리는 모두 한 형제다’라며 배척적인 종교관을 배척한다. 그 밖에도 파격적인 종교관으로 다른 신부들의 노여움을 사서 급기야 신도 하나 없는, 심지어 성당 건물마저도 없는 중국에 파견을 나가는 등의 시련을 맞이한다. 그러나 그는 말보다 강한 구체적인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 <br><br>과연 종교란 무엇이어야 할까? 아마도 사회적 도리가 어떻고, 도덕적 책무가 어떠니 하고 백 번 떠드는 것보다 당장의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 인정을 베푸는 소박한 실천이 필요할거다. 물론 이것만으로 해야할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박한 실천 없는 교리 암기는 더더욱 참된 종교 생활과 거리가 멀다. 어쩌면 시장에서 다 갈라터진 손바닥으로 장사 하시면서도 열심히 사시고 이웃을 배려하는 무신론자 아주머니가 일요일에 성당이나 교회에 가네하며 떠드는 것으로 죄를 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하느님의 사랑을 더 잘 실천하는 사람일거다. 항상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죄를 짓게 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찔렸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4/12/cover150/8973303333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41246</link></image></item><item><author>아바</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글쓰기가 두려운 것이 어디 이공계뿐이랴 -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abba/277689</link><pubDate>Thu, 07 Aug 2003 01: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bba/2776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316715&TPaperId=2776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9/coveroff/89953563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316715&TPaperId=2776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a><br/>임재춘 지음 / 북코리아 / 2006년 03월<br/></td></tr></table><br/>'개떡 같이 이야기하면 찰떡 같이 알아 먹어라!' 이심전심을 기대하는 말이겠지만 한 편으로 이는 말하는 사람의 표현상 미숙함을 엉뚱하게 듣는 사람의 이해력 부족 탓으로 돌리는 과격한 속담이 아닐까? <br><br>나는 회사에서 메일을 주고 받을 때, 회의를 할 때 통용되는 언어가 한국말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 엉뚱하게도 그냥 일본어나 중국어, 혹은 말갈어 등이 오가도 될 것 같다는 상상을 하며 좌절한 경험이 있다. 원탁에서 진행하지 말고 긴 탁자를 준비해 두고 싶다. 그 탁자에서 대화 대신 서로 각자 준비한 원고를 읽고 내려가면 그만이다. 이렇게 오가는 단어가 엉망이 되어버린 이유는 구성원들이 고집스러워서라기보다 논리적인 글쓰기, 말하기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모여서 살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br><br>작가는 이공계 출신으로서 글쓰기의 애환과 경험을 생동감 있게 그렸다. 하지만 나는 인문계 출신이지만 나를 포함한 수많은 인문계 출신들의 말갈어 통용 현장을 목격해왔다. 그래서 메일이, 회의가 끝없이 길어지고 심한 경우는 결국 담당자와의 취재를 성사해가면서 확인해야 그 본의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야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날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br><br>이 책은 이공계, 인문계 가릴 것 없이 부족한 글쓰기, 말하기 능력의 한계와 그 폐단을 느끼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다만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논리적인 글쓰기의 필요성과 비논리적 글쓰기의 현재에 대한 서술에 비해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쓰고 훈련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상대적으로 간단히 처리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방법론에대해 궁금한 사람은 바바라민토의 &lt;피라미드 프린서플>, 남영신 &lt;나의 한국어 바로쓰기 노트>,&lt;말 잘하려면 국어부터 잘하고 외국말 잘하려면 한국말부터 잘해라>를 더 보면 될 것 같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29/cover150/89953563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293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