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형 법정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존 딕슨 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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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시작부터 결말까지 이렇게 쉬지 않고 몰아쳐주면 할 말이 없지! 아무리 빨리 달리던 고속버스라도 중간에 휴게소에 들르는 법인데, 이 소설은 휴게소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씽씽 달려버린다.

시작부터 매혹적이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에드워드 스티븐슨은 앞으로 자기가 맡아야 할 괴짜 작가의 원고 자료에서 17세기 살인범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다. 수많은 사람들을 독살하고 단두대에서 목이 떨어진 그 사진의 여자는......자신의 아내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아니 완전히 똑같았다. 턱선 바로 아래에 사마귀, 아내가 항상 차고 있는 골동품 팔찌, 그 신비스런 눈동자까지. 자아, 스티븐슨은 이제 어떻게 나올까, 하고 독자가 생각하는 동안 자연사인 줄 알았던 마일스 노인이 사실은 살해당했단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투항하고 싶어지는 엄청난 이야기의 시작이다.

이렇게나 완전하게 불가능해 보이는 사건에다 복잡한 스토리을 읽다 보면 도대체 이 작가가 이걸 어떻게 수습하려고 이러나 하고 걱정이 되어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심장이 쫄깃쫄깃해진다. 거기다 왜 결말까지 이렇게 복잡하단 말이냐...훌쩍훌쩍 울며 앞부분으로 돌아가서 뒤적뒤적 결말과 맞춰보는 이 미천한 독자. 훌쩍훌쩍. 저한테 왜 이러세요.

눈물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목적지. 버스에서 내려 찬 공기를 들이마시며 나 이제 버스 안 타도 되는 거지, 하며 안심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버스운전사가 우렁차게 소리친다.

잘못 왔습니다! 여기가 아니니 다시 버스에 올라타 주세요!”

이런 젠장...저한테 정말 왜 이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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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가 보낸 편지 -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윤해환 지음 / 노블마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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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타고나는 것이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왜냐하면 이 작가는 재능뿐만 아니라 노력까지 가졌기 때문이다. 그 흔적이 촘촘하게 짜여져 하나의 단단한 방갓을 만들어냈다. 그 방갓은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고 살짝 벗어 내려 놓은 방갓 사이로 수줍게 웃고 있는 여인네의 따뜻함을 지녔다. 요즘 젊은 작가들 중에서 작품 속의 시대배경을 이렇게나 잘 녹여낸 작가가 있을까. 배경이나 풍경 묘사, 곳곳의 장소와 건물, 자잘한 소품, 생활상, 등장인물들의 찰진 대화가 이 시대 배경 속에 내가 녹아드는 듯하다. 아- 황홀한 경험.

 

이런 배경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캐릭터가 확실하니 자연스럽게 인물에 대한 이해를 동반하고 쉽게 감정이입이 된다. 똘똘한 셜록키언 카트와 순수함 하나로 똘똘뭉친 김내성, 뭔가 알 듯 모를 듯한 매력을 물씬 풍기며(분명 매우 육감적인 몸매를 지녔을 것 같다) 내성보다 더 시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내성의 아내 영순 이외에도 주인공들 못지 않은 조연들의 연기(이 소설은 영상화하기 딱 좋은 속도감을 가지고 있다)도 볼만? 읽을만? 하다. 특히 제일 좋았던 부분은 김내성과 영순이 토닥토닥 옛스러운 어투로 나누는 대화부분. 아- 사랑스럽다.

 

감정이입으로 보자면 문장 또한 빼 놓을 수 없다. 일견 감정적으로 보이는 듯 한데 그것이 배경이나 인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 오히려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다만 추리소설적 측면으로 보자면, 추리적 요소들 - 범인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나 생각의 전환을 불러오는 반전 - 이 조금 임펙트가 부족하나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그런 작은 것들은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잘 짜여진 구성과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의 따뜻함(일본 미스터리의 인위적인 따뜻함과는 확실히 다르다. 한국 미스터리의 따듯함을 찾아낸 소설이랄까)이 어우러져 다음엔 또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까 절로 궁금해진다.

 

독자에게 잘 만들어진 방갓 하나쯤 선사하는 이런 소설, 올 겨울 손난로 대신 어떠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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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1
유시주.이희영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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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우리는 정말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는가?

가끔 나는 자신을 좌파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우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행태와 정신이 너무나 똑같은 것에 말없이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자신들의 이념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희생은 필요하다고 믿는다든지, 노무현 대통령 당선 당시 이회창을 찍은 사람들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던 내 대학동기의 편협함, 5년 후인 지금 분명히 대통령 당선자는 이명박인데 주위에 아무도 이명박을 찍은 사람이 없는 이 아이러니(자기방어를 위해 우리 나라에서는 꼭 비밀선거가 지켜져야 한다는 이 쓰디쓴 아이러니).

이 어디에도 나는 우리가 정말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의 234페이지를 발췌해본다.

p234 - 적과 동지가 뚜렷이 구분되었던 흑백의 시절 ‘회색분자’‘배반자’‘사쿠라’는 확고한 신념 없이 이쪽과 저쪽을 기웃거리는 ‘기회주의자’, 명명백백한 적을 앞에 두고 쓸데없는 고민과 문제제기로 아군의 전열을 흩트리는 ‘내부의 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말은 넘쳐나지만 소통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민주화는 되었지만 민주적 가치는 충분히 사회화되지 못한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회색분자’‘배반자’‘사쿠라’가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오해와 비판을 무릅쓰고 양쪽을 오가는 ‘회색분자’, 절대적이라고 간주되는 것들을 향해 이의를 제기하는 ‘배반자’, 목적을 같이하면서도 다른 방법론을 주장할 수 있는 ‘사쿠라’는 억압된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현실의 다양한 모습을 반영하는 주체이다. 흑백의 경계를 허무는 ‘회색분자’‘배잔자’‘사쿠라’가 더 많아져야 갈등의 폭이 넓어지고, 극단적 대립이 줄어들며, 소통의 공간이 넓어질 수 있다.

이 책은 사회 여러 분야의 남녀노소를 불문한 사람들을 만나 실생활에서 경험하고 있는 생생한 민주주의에 대해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깊이 분석하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책보다 더욱 생생하게 여러 분야에서 몸소 체험하는 민주주의의 실태를 가감 없이 드러내 준다. 다음과 같은 식이다.

p45.민주화 이후에도 별로 좋아지지 않았거나, 오히려 나빠졌다고 느끼는 것들에 대해 구술자들은 그 반대의 질문에 ‘표현의 자유’를 꼽았던 만큼이나 분명하게 '1순위‘생각을 밝혔다. 양극화, 분배정의, 상대적 박탈감,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그것이다.
“민주화가 이만큼 진행됐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미래가 과연 행복한가. 아니면 적어도 예측할 수 있을 만큼, 우리가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을 만큼 제대로 우리가 아는 리듬으로 가는가. 이거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설명할 수 없는 분노, 그게 제일 많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 모든 사람이 너무 원한에 차 있고, 저도 그렇겠지만, 저도 건드리면 어느 날 그럴 것도 같지만, 길에서 만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전과 달리 너무 이렇게 응축된 분노를 갖고 있다고 할까요?(...) 그런 사고들은 굉장히 많이 나왔잖아요. 뭐, 지하철에서 그냥 너무 원한에 차서 남을 밀어서 떨어뜨린다거나, 통제 안되는 슬픔, 이런 것들이. 그게 안타까워요. 보여요. (...) 저 혼자도 취직을 못하는데, 학생들의 취직을 걱정해주는...... 학생들한테 ‘그렇게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슬픔이 어떨 때는 굉장히 심하게 전이가 되면서 힘들 때가 있어요. 그러니까 취직을 못할 거라는 불안. 특히나 지방대 학생들, 지방대 인문계 졸업생 생각할 때 우울한 거는 거의 말할 수가 없어요.(서영선)”
인문학 전공자인 서영선 씨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98년에 돌아왔다. 시간강사, 강의전담교수를 거쳐 직듬은 한 사립대학 지방 캠퍼스의 비정년 전임교수이다. 비정년 전임교수는 대개 전임교수 급여의 50~80% 수주느이 급여를 받고, 임용된 지 최대 6년이 지나면 퇴직해야 하는 ‘계약직’이다. 스스로를 ‘비정규직’이라 일컫는 서영선 씨의 어조에는 자조와 냉소가 짙게 배어 있었다(......) 그는 학생들에게서 자신에게로 슬픔이 “전이”된다고 하지만, 앞뒤 맥락을 살피면 사실 그 반대의 방향으로 전이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2년짜리 계약직으로 머잖아 그마저도 그만두어야 할지 모르는 처지에 대한 좌절감과 무력감이 “취직을 못할 거라는 (학생들의) 불안”으로 ‘투사’된 것이다. 나아가 그가 길에서 만나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서 “설명할 수 없는 분노”와 “통제 안되는 슬픔”을 느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똑같은 ‘투사’의 과정이다.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남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옳은 것이다, 라는 건 사실 주입식 교육으로 생긴 하나의 정보일 뿐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는데, 실제 여기 살고 있는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분노’와 ‘통제 안 되는 슬픔’으로 방황하고 있다면 그것은 과연 민주주의이고 좋은 것인가. 아니, 대한민국은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는가.

‘민주주의’는 단지 하나의 낱말일 뿐이다. 그것이 어떤 낱말로 불리든, 국민이 불안하지 않고 현실적인 수준으로나마 자신의 꿈을 조금씩 펼쳐갈 수 있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라고 나는 생각한다. 꿈. 사람은 꿈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고? 진짜 민주주의는 이런 냉소적인 말로 자신을 달래며 야근을 하는 사회가 아니라, 꿈만으론 살아갈 수 없다 해도 꿈을 꿀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는 사회가 바로 민주주의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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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 대산세계문학총서 31
미셸 뷔토르 지음, 권은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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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변경 - 미셸 뷔토르 / 권은미 옮김 / (주)문학과지성사

로마행 기차의 유령 - 이 책의 맨 뒤에 옮긴이는 이 작품을 설명하면서 이 작품을 읽으려는 사람은 많은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고 혹시 다 읽은 사람이라면 무척 힘들게 읽었을 거라는 왠지 동정조의 코멘트가 있다. 그리고 보면 세상을 살다보면 참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야할 책이나 몸을 비비 꼬며 보아내고야 마는 영화가 종종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최소한 나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이 책 문장의 속도는 ‘흥미진진’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아주 멀지만.

이야기는 아주 아주 단순하다. 40대 중반의 주인공 남자가 내연녀를 데려오려고 로마행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그 남자의 내면을 매우 세밀하게 추적하는 것이 전부다. 특히 남자의 내부가 과거와 현실과 역사와 환상으로 소용돌이치며 '변경‘되는 과정을 아주 세세하게 표현했다. 파리에서 로마까지 가는 동안 지나가는 역의 이름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남자는 내부의 소용돌이로 즐겁다가도 괴롭고 괴롭다가도 환상을 보고 다시 번민하고 고민하고 온갖 풍경을 직접 손으로 만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끼고 같이 동승한 기차의 승객들에 대한 끊임없는 상상을 펼친다.

이 모든 것들이 무척 ‘흥미진진’하게 들렸다면 그건 사실 거짓말이다. 이 소설의 문체는 ‘흥미진진’을 허용하지 않는다. 프루스트에 맞먹는 무척 세밀하고 긴 묘사와 좀체 끝이 보이지 않는 문장의 길이가 독자를 괴롭히고 결국은 완독을 포기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바람피우는 남자의 심경의 변화”라는 것이 줄거리의 전부이므로 읽을거리로 보았을 때 별 가치가 없다고 평가절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 소설을 혼자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힘은 어디에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모르겠다......(참 무책임한 대답). 남자는 항상 1등칸을 타고 다니는 제법 자리 잡은 회사원이다. 그런 그가 이번 여행에는 3등칸을 선택했다. 어쩌면 고통이 예견된 선택. 그의 불편함은 몸의 불편이 아니라 마음의 불편이라는 걸 남자는 아직 모르고 있다. 하지만 3등칸을 선택했을 때부터 이미 남자는 아내와 이혼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애인을 데려오지도 못할 거란 걸 몸을 불편하게 함으로써 스스로 결정해 버렸다. 그는 어떠한 불편도 감수할 수 없는 소심한 인간일 뿐이다. 그의 ‘흥미진진’한 심경의 변경은 그런 면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내가 반한 건 이 작가가 그것을 어찌나 세밀하게 그려내는지 어느새 내가 불편한 3등칸 좁은 좌석에 몸을 구기고 내연녀를 찾아가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몸서리치며 침착함을 잃지 않는 우아한 부인을 생각했고 젊고 싱싱한 검고 긴 생머리의 애인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느새 둘 다 잃지 않으려는 남자의 이기적인 욕심이 내 목을 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마지막 장을 넘기고는 이 남자의 구질구질함을, 남자 부인의 냉담함을, 남자 애인의 바람 같은 애정욕구를 야금야금 비웃고 말았다.

남자는 이번 로마행에서는 절대로 애인을 자신이 부인과 살고 있는 파리로 데려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사업차 애정차 앞으로도 그는 얼마나 많은 로마행 기차를 탈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는 로마행 기차의 유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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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 2004 공쿠르 단편문학상 수상작
올리비에 아당 지음, 함유선 옮김 / 샘터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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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해 겨울도 그리 추울 것 같진 않다. 항상 겨울 초입에 우두커니 서면, 내가 기다리는 매서운 추위는 올해도 오지 않을 거라는 불안으로 두리번거린다. 길에서 두리번거리는 사람을 보면 내 텅 빈 가슴이 공명하여 부르르 떤다. 그럴 때마다 까칠까칠한 손바닥으로 가슴을 세게 누른다.

올리비에 아당의 소설집 <겨울나기>는 이런 사람들이 가득하다. 나 같은 사람들이,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막상 추위가 닥치면 얼굴이 빨갛게 되어 어쩔 줄 모르면서, 올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죽을 것 같이 매서운 추위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렇게 무서운 겨울을 나고 나면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은 없을 것 같은 기대감이 그런 기다림을 품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무섭도록 매서운, 죽을 것 같이 고통스러운 겨울을 나도 봄, 여름, 가을이 꿈결같이 지나고 나면 다시, 우리에게는 겨울이 찾아 온다. 당연한 것처럼. 아니 당연하게도.

아직 겨울이 오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 회사에 가는 버스 안에서, 두통이 지독한 머리를 차가운 바닥에 대고 누워서, 늦은 아침밥을 먹는 일요일 식탁 앞에서. 여자들과 남자들이 모두 힘겹게 한밤중의 눈 쌓인 터널 같은 겨울을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었다. 그들은 영원히 소설 속에서 걸어 나오지 못한 채 그렇게 계속 터벅터벅 걸을 것이 분명했다. 어디에도 입구가 없고 어디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으니까. 카프카의 소설에선 밖으로 나가려는 자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오려는 자는 입구를 찾지 못한단다. 그래서 벌레가 되어 말라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이유 없이 체포된다. <겨울나기>의 사람들은 그런 면에서 오히려 더 숨막힐 듯 거북하다. 그들은 카프카의 사람들처럼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지 않는다. 대신, 언제나처럼 같은 쳇바퀴를 돌리고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회전하며 터벅터벅 걷는다. 어디가 처음이고 끝이며 어디고 입구이고 출구인지 도무지 안개에 싸인 듯 희미하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머리 위 하늘이 전부였다. 그 한 조각의 하늘 외에 다른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하늘이 모든 것이다. 세계는 언제나 그것뿐인 것이고 변화라고는 그저 해가 떠 파란 하늘이 되었다가 해가 지고 검은 하늘이 되는 게 전부다. <겨울나기>의 사람들은 모두들 각자 그 한 조각의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사람이 희망임을, 나는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이들이 남편에게, 아내에게, 직장상사에게, 아이들에게, 모든 타인에게 느끼는 감정들이 지금은 비록 무섭도록 쓸쓸해도, 그 쓸쓸함이 결국은 타인에 대한 애정에서 오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일말의 감정도 없으면 아무런 번민도 하지 않을 테니까. 다 미워해서 그러는 거다. 다 사랑해서 그러는 거다. 다 속상해서 그러는 거다. 다 그리워서 그러는 거다. 그렇게 작고 소소한 감정들이 사람들의 가슴속에 둥둥 떠다니는 걸 상상하면 나는 그만 <겨울나기>의 이 숫기 없는 사람들을 몽땅 끌어안고 싶어진다.

연상의 여인을 사랑했던 소년은 이런 시를 쓰지 않았던가.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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