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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의 신학 - 20세기 최고의 신학이 교부
김명용 지음 / 이레서원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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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하게 칼 바르트를 칭송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읽기에 부담스러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읽기가 거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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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바꾸는 글쓰기 공작소 - 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만교의 글쓰기 공작소
이만교 지음 / 그린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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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 줄만 쓰다 지친 당신을 위한 필살기? 이건 아니다. 난 아직도 이 책을 다 읽지 못했다. 384쪽이나 되는 어마 어마한 분량을 읽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도 광고를 해 대길레 바로 구입한 책이다. 워낙 글쓰기에 흥미가 많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특히 블로그를 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한 탓에 고민없이 주문했다. 그러나 구입해서 읽어 보니 결코 쉬운 글쓰기는 아니다. 여러 글쓰기 책과 그리 다르지 않다.  

어떤 면에서 매우 탁월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내용들이 산만하고 어디선가 베껴온 내용들을 짜집기한 듯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무슨 이유때문인가 좀더 생각해보니 너무 많은 설명구와 예들 때문으로 생각된다. 간결하고 정확한 내용들로 채워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책은 너무 길고 복잡하다.  

난 벌써 이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글쓰기를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읽기가 상당히 주저되고 벌써 책꽃에 삭혀두고 있다. 충분히 시간이 되면 읽기 위해서다. 대충 끝까지 살펴보기도 하고 중간 중간 필요하다 싶은 부분은 집중적으로 읽기는 했지만 아직 충분히 소화해 내지는 못했다.  

저자에게 부탁드립니다. 이 책의 요약집을 다시 편집해서 내심이 어떨런지.. 너무 바쁜 시간 속에서 이 책을 무료하게 읽는다는 것은 너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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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적 상상력 - 구약연구시리즈 24
W.브루지만 지음, 김쾌상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1981년 11월
품절


오늘 우리들의 의식은 허위의식과 언어와 논리의 우상적 체계에 의해 물들어있다.-11쪽

이와같은 문화적응 현상을 빚어낸 내적인 원인은 우리가 신상의 전승을 버림으로써 우리의 주체성을 상실한 때문이다. 우리의 소비문화는 역사에 거슬러 조직화된 것이다. 기억을 얕잡아보고 희망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모든 것을 현재-그것이 코 앞의 현재이거나 영원한 현재이거나-에 붙박아 두는 것이다. 우리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는 한, 모든 형태의 신앙상의 권위란 빛을 잃고, 우리의 신앙생활이나 목회라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12쪽

모세의 대항문화란 결핍된 세계에서 생겨난 것이었다. 모든 군왕들이 항상 인식했듯이 이와 같은 의식에 대항 할 수 있는 단하나의 길은 포만이다. 포만한 상황에서 자유와 정의의 혁명을 지속시킨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44쪽

이스라엘 예언자의 특징적인 방식은 시와 서정이다. 모든 것을 실현 가능케 하는 이 왕권의식이 상상력을 위축시킨다. 따라서 전체 주의적 체제는 예외 없이 예술가를 두려워한다.-64쪽

따지고 보면 지배적인 현실에 도전하고 그와 맞서는 마지막 남겨진 길은 시적인 상상력이다. 지배적 현실은 어쩔 수 없이 산문적이다.-65쪽

이렇듯 현재의 질서의 지나친 권리주장은 희망없음을 전제로 한다. 실현된 종말론의 이 음험한 형태는 인간들로 하여 희망 없이 살 것을 요구한다.-94쪽

이 아픔을 느끼는 인간이 무감각해져 버린 예루살렘 한복판에 자리잡는다. 그리고 오로지 이 아픔만이 마침내 무감각 상태에 침투할 수 있다.-142쪽

예수가 여기서 선언한 희망은 무겁고 힘들다. 이 희망은 왕권의식에서 나온 값싸고 십자가 없는 희망과는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 이미 부요하고 배부르고 지금 웃어대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안이하고 옅은 것이지만, 부를 거부당하고 배부름에서 차단되고 도대체 웃을 사연이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은 힘든 것이다. 이러한 예언자적 동력화의 신기함은 그것이 바로 역사 없는 무인격들에겍 전해진다는 점에 있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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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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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야 한다면.. 정말 슬픈일이다.  

난 이 책을 읽지 않았다. 또 읽지도 않을 것이다. 쓰디쓴 추억 때문에..  전라도가 고향인 내게 광주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주체 할 수 없이 흥분된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신작로 위로 군인차들이 군인들을 싣고 어디론가 급히 가는 모습들을 자주 보았다. 어린 마음에 군인들이 지나가면 손을 흔들고 건빵을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당시엔 그것이 추억인지 악몽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정확히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임께서 지금은 너희들에게 말해도 모르지만 나중에 반드시 밝혀질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이 말을 잊지 못하는 것은 정확하게 잘은 모르지만 선생님께서 사뭇 진지하고 무엇가에 극히 조심하는 말투 때문에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광주항쟁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대학교를 다니면서 점차 알게되었다. 청문회 당시에도 난 광주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광주항쟁을 하나하나 알아 가면서 피가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에 갑자기 보이지 않던 형들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실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그 이야기는 많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현재화된 악몽이다.  

임신한 아이들의 배가 갈라지고, 지나가는 여고생들을 머리채를 잡아 옷을 벗기고, 진압하는 전투경찰(특수부대들이었다.)들에게 마약을 투여하는 수다한 사실은 정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끓게했다.  

 

난 이책을 읽지 않을 것이다. 정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 쓰러질 것 같다.. 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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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적 상상력 - 구약연구시리즈 24
W.브루지만 지음, 김쾌상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198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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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설교는 할 수 없다. 아니 그것은 설교가 아니다. 
설교는 나를 죽이고 남을 살리는 것이다. 
설교는 죽이는 것이다. 살리기 위해 죽여야 한다. 

브루지만은 두 영역을 설정해 놓았다. 
왕- 권력의 핵심, 조직적, 논리적, 합리적, 기계적, 피라미드식, 안정을 추구함, 그러나 죽은...
예언자-소외, 고독, 자유, 감성적, 자연의 상태, 인간적, 끈임없는 방랑과 추방, 그러나 자유한 

브루지만의 첫번째 도전은..
기억을 얕보지 말라. 
신앙의 전승을 기억하라. 
예언자는 누구인가? "전승의 아들로서 인식에 있어서와 언어체계에 있어 전승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전승의 기억에 굳게 서서 교회의 문화적 상황과의 접촉점을 분별하고 그것을 날카롭게 지적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기존의 세력은 무비판적이며, 텅빈문화이다. 언어는 텅민 문화를 개혁하고 변혁하며, 새로운 대안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내가 추구하는 예언자적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목회자의 낱낱의 행동은 대안적 공동체를 부르짖고, 만들고, 개혀가는 일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목회가 무엇인가? 
이 사회를 옹호하며 자기 교회만을 꾸려나가는 비겁한 도피가 아니다. 불의한 사회를 도전하며 과감하게 그곳에 자신의 삶을 던지는 것이다. 광야로의 이동, 아무도 없지만, 아무것도 없지만 자유를 위한 과감한 선택이다. 
목회자의 언어는 기존 사회에 안주하며 죽어있는 영혼들에게 과감하게 도전하며 그들로 하여금 광야로 나아가야 할 것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예언자 모세의 사역이었다. 안주하지 말라, 죽음을 각오하고 광야로 나가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역설의 언어,
아이러니한 도전을 어떻게 받아 드러야 하는가?
예언자는 역설의 사람이요, 아이러니의 삶이다. 

왕정에서의 예언자
"기존질서를 규제하고 거기서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로서는 참으로 자유하신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불필요하고 눈에 거슬리고 심지어 있을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만다"
솔로몬이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가? 자신의 왕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유하신 하나님을 부정한 것이다. 유일하신 하나님을 종교혼합주의로 만들고 말았다. 더럽고 추한 부패한 생각과 사상들을 예루살렘에 가지고 온 것이다. 그 실례까 바로 애굽의 공주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예언자는 도전한다. 당신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다고, 광야로 나가야 한다고, 자유하신 하나님을 거역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왕정이 추구하는 것은 안정에 대한 약속과 풍요이다. 그럼 그들이 시행하는 것은? 억압과 착취이다. 
부는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다. 누군가의 결정적인 희생과 죽음이 뒤따라야 한다. 부를 탐하는 것은 결국 타인을 죽이는 살인행위이기 때문이다.  부를 탐하지 말라. 그것이 곧 죽음이다. 

안정을 버리고 함께 배고프자,
평안을 버리고 함께 고통을 받자,
외면을 버리고 서로에게 희생하자, 
예언자의 외침이다. 
왕이 좋아한다고 말도 안되.. 
예언자의 죽음은 여기서 시작하는 법이지. 그렇지 않은가?
좌파는 여기서 잉태되었다. 
그런의미에서 나는 분명 우파는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였을까?
간단하다,
그들은 억압하는 평안, 그리고 거짓된 안정을 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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