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예수 어디까지 진실일까?


역사적 예수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고 좀 더 읽고 싶어서 책을 추렸다. 열 권 내외라 생각했는데 담아도 담아도 끝이 없다. 모든 책은 예수로 통하고 예수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바울까지 하려면 죽을 때까지 해도 못하겠다.



어쨌든 오늘 도착한 이레서원의 <하나님 중심의 성경 해석학> 목차와 빠르게 읽기를 했는데 역시 대단하다. 이 책 진짜 좋다. 



















































































































































































































































































































어쨌든 오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이렇게 5.18은 지나가는 구나. 내년에는 꼭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책을 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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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르메트르


누구에게나 사연은 있다.

실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실수를 어떻게 만회하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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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5-18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흘 그리고 한 인생>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르부아르>도 사서 읽어볼까 싶은.
 

길을 가다 꽃을 보았다.

보이지 않는 꼿이다.

5mm정도 작은 꽃이다.

바닥과 가장 가까운 꽃이다

그래도 꽃이다.

끊임없이 밟힌다.

그래도 꽃을 피운다.

그것이 생명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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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나는 '책들의 고향'


검색하고 찾아 봐도 책들의 고향은 보이지 않는다. 


고향은 옛 고을이 아니다. 


기억이 담긴 지정학적 장소이자 정신적인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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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위해 글을 쓰다


모리 히로시의 <작가의 수지>를 읽고 있었다. 저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돈을 위해 글을 썼고, 그것은 옳다고 말한다. 최근 들어 나 또한 그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후반부에 글을 공짜로 공개하는 것에 대해 염려를 표한다. 


먼저, 글을 공짜로 공개하면 사람은 주목한다. 그러나 읽지 않는다. 맞는 말이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읽지 않고 대충 흘려 읽는다. 


둘째, 글은 노동의 대가다. 누가 상품을 만들고 공짜로 주는가? 그런 기업은 없다. 공자처럼 보이는 것도 다 마케팅의 일부다. 글은 어떤가? 신성하다고? 그래서 작가들이 가난한 것이다. 


돈을 위해 글을 써는 것은 나쁘지 않다. 우리가 아는 수많은 작가들은 대부분 돈을 위해 썼다. 그렇지 않은가? 


글은 신성하다. 그래서 돈과 연관되면 안된다? 아니다. 그래서 돈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 돈은 곧 프로의 정신이며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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