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불완전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과 못다한 운명을 지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원하는 삶은 왜곡된 욕망일 수 있고, 못다이룬 꿈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운명은 어떤가? 바꿀 수 없는 것이 운명이기에, 운명은 결국 못다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운명이 못다한 이들이 죽어 천국에서 만난다는 이야기가 천국의 책방이다. 


영화를 먼저 보았고, 책을 읽다가 포기한 책이다. 다시 읽을 생각이다. 문득 천국의 책방에 가면 운명을 다하지 못해 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인터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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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읽어 나가는 책 중에 기타모리 가조의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이 있다. 몰트만의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과 비슷한 시기에, 아니 더 빨리 나온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이 일본에서만 유행했다면 몰트만의 책은 전세계의 신학계를 강타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기타모리의 책은 가해자임녀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기 때문이다. 독일도 가해자이지만 모든 사람의 아픔을 나누었다. 그래서 일까? 같은 아픔을 나누어도 누군가는 가식적으로 보이고, 누군가는 공감이 된다. 나는 몰트만에 더 힘을 실어 주고 싶다. 그럼에도.. 가조의 책은 무시할 수 없는 책이다. 



















몰트만은 희망의 신학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시간이 흐를 수록 진정한 희망을 십자가에서 찾았다. 강한 하나님의 죽음은 기적이자 능력이다. 진정 강한자를 스스로 약해질 수 있다. 몰트만의 책들은 한 권 한 권 곱씩으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우린 슬픔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약점과 부족함을 공개하고, 죄가 있다면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악함 조차 약함의 일부임을 자백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세월호 이후 한국을 두 패로 갈리었다. 아니 갈리어 있었지만 명징하게 드러났다. 촛불 집회는 민심이 무엇인지, 슬픔에 공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준다. 공감이란 슬픔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함께 울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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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포장지가 왔다. 알라딘에 이런 포장지가 있어나? 신기해서 한 컷 올린다. 고양이를 워낙 좋아한다.



더불어 서민의 <여험, 여자가 뭘 어쨌다고>가 왔다. 제목도 신기하고, 저자가 서민이 맞나 싶어 찾으니 맞다. 기대된다. 서민 교수님 정말 열심히 사신다. 이번에 어떤 내용일까. 기대 또 기대 된다. 


여성 혐오를 찾으니 한 권이 보여 같이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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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7-09-22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간이 나왔군요. 페미니즘 소설일까요?

낭만인생 2017-09-26 23:44   좋아요 0 | URL
소설은 아니고 그냘 에세이 수준의 글입니다.
 


페친이라 읽었다. 아니 북인더갭의 책을 좋아한다. 읽은 책만 네 권은 족히 넘을 것이다.

인터뷰 기사


신간순,

네 맛대로 살아라. 기득권층. 고통에 반대하여... 

북인더 갭의 책들은 가벼운듯 묵직하다. 틈새출판시장을 노리는? 느낌이랄까? 나의 답답함을 시원하게 해주는 책들이랄까? 기사 내용대로 대형출판사가 못내는 책을 낸다. 


















차브... 골목사장 분투기. 청춘을 아껴봐 등등... 이 책들은 공통된 내용이 전혀 없는 듯하지만, 안병률 대표를 알면 책들의 느낌이 보인다. 약자, 연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분투기 등등으로 정리 된다. 즉 소외된 계층에 대한 관심이 북인더갭의 특징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인상적인 책은 <신은 낙원에 머물지 않는다>이다. 아직도 잊혀지 않는다. 

가을이다.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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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7-09-1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무질의 책을 읽고 북인더갭의 팬이 되었습니다

낭만인생 2017-09-18 20:00   좋아요 1 | URL
무질의 책도 좋다고 소문이 났던데.. 저는 아직 못 읽었습니다.

비연 2017-09-18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여기에서 나왔군요... 출판사 이름을 이제야 인지한...

낭만인생 2017-09-18 20:00   좋아요 0 | URL
재미있는 책인듯합니다. 생각하는 글로 채워진..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Evagrius Ponticus, 345-399)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그는 개신교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제자이며, 어거스틴과 동시대 인물이다. 즉 가톨릭이 주도한 중세가 아니란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개신교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사실, 그뿐 만이 아니다. 영적 거장인 어거스틴과 다른 교부들도 개신교 출판사에서는 단편적인 것들로만 몇 권 보일뿐이지 원본을 번역한 저작들은 단 거의 없는 형편이다.


일단 인터넷 서점에 소개된 저자 소개다.


345년경 폰투스의 이보라에서 태어났다. 교부 바실리우스에게서 독서직을 받고, 379년에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에게 부제품을 받았다. 바실리우스가 죽자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를 스승으로 삼았다. 380년 고향을 떠나 콘스탄티노플로 간 그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하여 모든 이단과 싸워 승리했다. 이 일로 한때 교만과 애욕의 유혹에 빠진 적도 있었으나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383년 이집트로 갔다. 니트리아에서 2년 동안 살다가, 더 깊은 사막 켈리아에서 14년 동안 필사가로 일하면서 소량의 빵과 소금과 기름으로 금욕생활을 했다. 그는 원고들을 필사하고 문맹자들을 위해서 책을 저술했다. 에바그리우스는 지식인이었지만 정작 자신은 지식의 한계를 절감하고 단순한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스스로 작은 이가 되려고 노력했고, 그들의 적대감을 침묵으로 인내했다. 깊은 학식과 통찰력의 소유자 에바그리우스는 399년, 54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일단 인터넷 서점에서 찾은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책들이다. 

키아츠에서 나온 <에바그리오스의 기도와 묵상> 2011

분도출판사의 <안티레티코스> 2014, <그노스티코스> 2016

새물결출판사의 <폰투스의 에바그리오스 실천학>


이렇게 네 권이다. 일반 <안티레티코스>는 이번에 구입했고, <폰투스의 에바그리오스 실천학>은 몇년 전에 출판사로부터 얻은 것이니 두 권은 확보된 셈이다.





















 <프락티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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