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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법칙 - 그랑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말하는 요리와 인생
피에르 가니에르.카트린 플로이크 지음, 이종록 옮김, 서승호 감수 / 한길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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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무를 자주 옮겨 심으면 열매를 맺기 어렵다.’는 프랑스 속담을 알고 있다.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할 때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한 우물을 파라’는 속담이 있다. 말콤 글래드 웰은 ‘일만 시간의 법칙’을 통해 한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려면 하루에 세 시간씩 십년을 꾸준히 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 모든 명언과 속담들은 평범한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가치가 있다. 그럼 우리는 다음 명언도 기억해 보자.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최근 들어 삐딱해진 누군가는 이렇게 해석이 가능하다고 소리를 높인다.
“천재는 99%의 노력을 했다할지라도 1%의 영감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둘 다 일리 있는 말이다. 두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노력과 영감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다. 노력하는 사람은 영감이 있기 때문이고, 영감이 있는 사람은 노력하기 때문이다. 영감은 마치 배의 키와 같아서 거대한 노력이란 배를 작은 키가 방향을 정한다. 왜 이 책의 제목을 음식이나 열정 등의 수많은 키워드를 넣지 않고 ‘감정’이란 단어를 채용했을까? ‘요리의 발견’(175쪽)이란 제목으로 시작되는 인터뷰에서 이런 대화가 오간다.
인터뷰어인 카트린 플로이크는 아이디어가 어디서 생기느냐고 묻는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본능대로’라고 말한다. 또는 ‘필요’라고 한다. 다시 묻는다.
“제 말은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찾느냐는 거예요.……”
“… 오히려 사소한 것들의 정연한 질서와 작은 발견 속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죠. … 새로운 요리를 소개할 때, 접시에 올려놓은 요리를 보며 어떤 식으로 감정을 더 넣어줄 수 있을지 생각하죠. … 아주 소소한 것들이지만 이런 것 하나하나가 모이면 제가 머릿속에 그린 것을 속이지 않고 표현할 수 있거든요.… 감정을 꾸밈없이 표현할 방법을 생각하는 거죠.”
그가 말하는 감정이란 뭘까? 프랑스어를 알지 못하니 감정으로 번역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아는 감정에서 찾아보자. 피에르 가니에르는 단순함, 사실, 정직함, 그리고 감정을 되뇐다. “1950년 프랑스 출신. 20세에 요리에 대한 아무런 열정 없이 부모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셰프로 일을 시작했다.”
이 놀라운 소개 글을 내가 믿어야할지 모르겠지만 단순, 정직이란 단어가 주는 일정한 법칙이 ‘열정 없이’가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그는 어떻게 프랑스 최고의 그량 셰프가 되었을까? 다른 많은 이야기보다 이 한 문장이 힘이 있을 같다.
“요리는 제가 존재하는 방식이면서 끝없는 존재하는 방식이면서 끝없는 탐구와 창작의 대상입니다. 요리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상상이 안 돼요.”(49쪽)
그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한다. 대체 불가능한, 요리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말이다. 그가 생각하는 요리는 먹는 것을 넘어 ‘매혹적이고 유려한 안무’(91쪽)고, ‘홀의 리듬에 맞춰 요리가 연주’(92쪽)되는 것이다. 그는 직원을 채용할 때 ‘오로지 그의 성품과 배우려는 열정만으로 판단’(95쪽)만으로 채용한 적도 많다. 그는 어쩌면 이성적이고 차가운 논리의 지배를 받기보다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열정과 사랑을 보는 듯하다.
그의 열정이 어디까지 인지 모르겠다. 마치 활화산이 아직도 왕성하게 마그마를 분출하는 듯 한 인상이다. 직원들에게 군대처럼 엄격하지만, 가족처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홀서빙을 하는 직원들에게도 음식에 대해 교육하고 손님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시킨다. 그의 집요함은 공간과 시간까지 지배하려 든다. 손님이 들어올 때 느끼는 분위기와 냄새까지. 인테리어까지 마음을 놓지 않는 그의 욕심이 깃든 말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파리에 있는 제 레스토랑 전체를 제 생각대로 모조리 고치고 싶어도 소유주가 아니라 세입자라서 제안이 많아요. 반면 외국의 레스토랑은 새로 설비할 때는 최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135쪽)
이제 ‘감정’이란 단어를 ‘영감’으로 치환해도 될 것 같고, ‘열정’과 ‘사랑’이란 단어로도 번역해도 될 성 싶다. 그의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그 단어는 ‘ART’다. 예술이란 단어야 말로 그를 표현하고 바르게 보여주는 가장 적합한 단어인 듯하다.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몇 개 골라 넣었다.
“고민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멋진 조합이 떠올라요.” 207쪽
“아주 멋진 중국식 질그릇 위에 올려놓고 어떻게 요리할 것인지 골똘히 생각했죠.” 210쪽
“예술가는 특정한 시각으로 세상을 인식합니다. 어느 순간 타인의 표정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죠.” 225쪽
“제가 다시 한 번 새로운 모험을 좇을 수 있었던 것은 마음 깊은 곳에 있던 어떤 믿음 때문이었어요.” 255쪽
“개인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인생이란 아무것도 잃을 게 없고 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전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26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