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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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과잉의 캐릭터 없이 일상 속에서 볼 수 있을만한 인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너무나 밋밋해서 이게 뭐 재밌냐? 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피할 수 없는 ‘노병사‘의 이야기가 마치 내 일처럼 읽혔기 때문에 가랑비에 옷 젖듯 빠져드는 소설이었다. ⟪ 달과 6펜스 ⟫와는 또다른 재미가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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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그’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결말의 뒤에 이어질 수 있는 구성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끝까지 다 읽었어도 처음의 장례식 장면으로 돌아와 다시 읽고 난 후에야 다 읽은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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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의 유서를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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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비로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이 순간에 왜 내가 내 삶을 불신해야 할까? 차분하게, 똑바로 생각해보면 앞으로 훨씬 더 견실한 삶이 남아있는 것 같은데, 왜 내가 소멸의 가장자리에 있다는 상상을 할까? (...) 그는 별난 사람도 아니었고, 일그러진 사람도 아니었고, 어떤 식으로든 극단적인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 나이에, 죽는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걸까?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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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을 다시 만드는 건 불가능해.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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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간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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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는 그녀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친절, 남의 요구에 거리를 두지 못하는 마음, 매일매일 지극히 인간적으로 기울이는 정성이 몸에 배어 있었다. 모두 그가 피비를 떠나면서 어처구니없게도 과소평가하고 내버린, 이후에 자신이 어떤 것 없이 살아야 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내버린 것들이었다.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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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늘 안정에 의해 힘을 얻었다. 그것은 정지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정체였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위안이라는 항목 밑에는 황폐만이 있었으며,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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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가족을 버린 것이 자식들에게 주었을 영향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 이 실수만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실수, 모든 뿌리 깊고, 멍청하고 피할 수 없는 실수들로 인한 가책에 시달리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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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고 네가 속죄할 수 있는 것은 속죄하고, 남은 인생을 최대한 활용해봐라.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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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의일생 #아침에는죽음을생각하는것이좋다 #남겨둘시간이없습니다 #살아있는동안할수있는최선에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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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읽기
#뉴필로소퍼9호 #삶을죽음에게묻다
#스스로행복하라 #법정스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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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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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 사람이 어떻게 책을 읽고 메모를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는 지를 엿볼 수 있어서 내게는 실용적인 책이었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서평 쓰는 연습을 하며 맥락이 있는 좋은 서평을 쓰려 노력해 봐야겠다!

좋은 서평은 바른 맥락 속에 책을 자리매김합니다. 하나의 책을 다른 책과 연결해 특정한 자리를 찾아 주는 것이 서평의 역할

공부만 하고 자기 입장이 없으면 그것은 그냥 사전 덩어리와 같은 것입니다. 또 공부는 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기 입장만 가지게 되면 남과 소통할 수 없는 고집불통이나 도그마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공부해서 자기 입장을 만들고, 또 자기 입장을 깨기 위해 또 공부하고, 이런 것이 공부이고 그게 책 읽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그가 말하는 "입장"이라는 것이 바로 책의 평가를 위한 기준이고 관점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갖추려면 성실한 선행 독서가 필요합니다. 한편으로는 여러 분야에 걸쳐 두루두루 독서를 해야 하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서평의 대상이 자리한 맥락을 이해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세상의 지식 영역에 대해 가능한 한 넓게 알아야 하고, 서평의 대상이 자리한 영역에 대해 깊게 알아야 합니다.

훌륭한 저작은 성실한 독자의 머릿속에 느낌표와 물음표가 넘실대게 만듭니다. 저자의 최선이 담긴 작품은 독자의 지적이고 정서적인 최선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독자의 최선은 느리고 세밀한 독서에서 시작됩니다. 섬세하고 차분하게 독서하다 보면, 자연스레 여러 생각의 편린이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촉발된 사유는 그 순간에 곧바로 붙들지 않으면 오래지 않아 휘발되고 맙니다. 따라서 메모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어느 정도 책에 대한 생각의 줄기가 잡혀 있어야 합니다. (...) 주요한 논지를 끌어내고, 지금 여기에 자리를 매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서평을 쓰는 토대가 됩니다. 서평의 흐름은 스스로 확정한 이해의 틀 위에서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요약은 책에 대한 내 생각의 근간입니다. 만일 책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면 서평은 쓸 수 없습니다.

처음 책을 집어 들었을 때나 막 서평을 쓰기 시작할 때는 머릿속에 그 책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기 일쑤입니다. 그럼에도 원고지나 키보드에 글을 쭉 써 나가다 보면, 어느 샌가 자연스레 글에 질서와 형상을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 (...) 의식 이면에 자리하던 모호한 느낌과 판단이 하나의 일관된 틀 속으로 짜여 들어가 언어화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생명을 가지고 자라게 되는 것이지요.

저자와 독자 사이에 위계가 사라지고, 대등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다름 아닌 서평을 통해 온전히 실현됩니다. (...) 서평의 증가는 곧 건강한 공론장의 확산으로 이어집니다. (...) 좋은 책을 읽고, 멋진 서평을 쓰는 것은 우리 사회를 변혁시키는 교양 혁명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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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서평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게 됩니다. 독자가 책을 읽는 것을 넘어서 책이 독자를 읽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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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쓰는 법 - 독서의 완성 땅콩문고
이원석 지음 / 유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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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점은 자신의 기준과 안목을 세우는 겁니다. 이를 튼실하게 세우지 못하면, 그저 단순한 촌평으로 일관하게 됩니다. 빼어난 재기로 이를 보완할 수도 있으나 하나의 서평집으로 묶어서 책을 낼 정도라면, 고유한 시각이나 일관된 입장 같은 것이 드러나야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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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 논어 ⟫ 에 담긴 생각은 이미 죽었다. ⟪ 논어 ⟫ 의 언명은 수천 년 전에 발화된 것들이고, 그 발화자와 청중은 오래전에 죽었으며, 그 언명에 원래 의미를 부여하던 맥락들 역시 역사적 조건이 변화하면서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러한 ⟪ 논어 ⟫ 의 내용을 살아 있는 고전의 지혜라고 부르는 것은 ⟪ 논어 ⟫ 와 우리 사이에 놓여 있는 오랜 시간과 맥락의 간극을 무시하는 일이다. p11

생각의 시체가 주는 이 서먹함을 즐기기 위해서는 서둘러 고전의 메시지라는 목적지에 도달하려고 들지 말고, 그 목적지에 이르는 콘텍스트의 경관을 꼼꼼히 감상해야 한다. "목적지에 빨리 도달하려고 달리는 동안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경치는 모두 놓쳐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경주가 끝날 때쯤엔 자기가 너무 늙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진 웹스터, ⟪ 키다리 아저씨 ⟫ 중에서) p16

대신 콘텍스트가 주는 경관을 주시하며 생각의 무덤 사이를 헤매다 보면 인간의 근본 문제와 고투했던 과거의 흔적이 역사적 맥락이라는 매개를 거쳐 서먹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오래전 죽었던 생각이 부활하는 사상사적 모멘트moment이다. (...) 그렇다면 고전을 왜 읽는가? (만병통치약도 아닌데... 다만!) 고전 텍스트를 읽음을 통해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텍스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과 세계는 텍스트이다. p17

텍스트 정밀 독해의 관건은 정식화된 절차를 적용할 줄 아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독해를 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 텍스트를 잘 읽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잘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p22

텍스트 정밀 독해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정식화된 절차를 외우는 대신, 상대적으로 더 훈련된 감수성을 지닌 독해자를 만나 그와 더불어 상당 기간 동안 함께 텍스트를 읽어나가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감수성을 열고 단련해야 한다. p23

침묵도 일종의 발화로 간주하며 텍스트를 읽어보라(...) 그렇다. 침묵이란 단순한 발화의 부재가 아니라, 또 다른 종류의 낭독이자, 들을 수 있는 정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침묵을 듣기 위해서는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 이처럼 관점을 바꿀 수 있게 되면, 이제껏 텍스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집중했던 학생은 텍스트가 무엇에 대해 ‘구태여‘ 침묵하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좀 더 예민한 독해자가 된다. p25-27

침묵을 매질로 삼은 메세지는 그에 걸맞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독해자를 요청한다. p29

(...) 로크가 그런 관행에 대해 철저히 ‘침묵‘함을 통해 그 관행을 무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로크의 침묵을 이해하려면, 로크의 해당 저작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당대의 언어적 콘텍스트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p34

바람직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소통과 해석을 가능케 하는 바탕을 공유하고 유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소통과 해석의 질은 곧 정치의 질이기도 하다. p61

삶에는 지름길이 없다. 자기가 가야 할 길은 가야 한다. p68

좀 더 광범위한 독서가 필요하다. (...) 하다 보면, 자칫 사상을 둘러싼 역사적 환경에 눈감게 된다.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느닷없는 천재나 악마는 사실 드물다. p70

당대의 자료 속에 들어가 보면, (...) 공자는 그가 속한 시대의 문제를 고민했던,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문제를 사유했던, 지성인의 한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 궁핍한 시대에 살면서 마주한 현실의 문제와 고투했던 당대의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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