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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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부름을 읽은 이후부터 기욤 뮈소 작가의 신작 소설이 나올 때마다 읽고 있는 중이다. 기욤 뮈소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호평을 한 적은 없으며 특히 브루클린의 소녀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자기복제가 심한 작가라는 악평 아닌 악평을 남긴 적이 많다. 기욤 뮈소는 프랑스나 한국에서 베스트셀러 1위에 자주 등극하는 작가이며 페이지터너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으며, 매년 새로운 작품을 발매한다는 사실에는 상당한 극찬을 보내고 싶기는 하다. 절대 다수 대중의 취향을 저격하면서 팬덤이 존재하고 종이책이 안 팔리는 이 시대에도 꾸준히 책이 팔리는 글을 그것도 매년 출간하는 것은 정말 엄청난 재능과 노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욤 뮈소는 최대한 발전하려는 모습을 작품으로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설을 소비하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기욤 뮈소의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작년에 프랑스에서, 올해 한국에서 출간된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의 경우 이런 기욤 뮈소의 노력과 재능이 철저하게 갈려들어간 수작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이번에 읽은 안젤리크는 약간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내용 자체가 흥미롭고 다층적으로 만들고 싶었던 기욤 뮈소의 욕심이 과했던 것인지 등장한 캐릭터는 많은데 제대로 표현되지 못 하고 스쳐지나간 느낌이다. 두 주연 캐릭터인 루이즈와 마티아스가 연결되는 지점은 너무 의미부여와 상징성이 과하고 다소 지나친 설정이 아니었나 싶다. 몇 가지 캐릭터와 설정을 빼고 자세한 묘사가 들어갔다면 더 좋은 소설이 되었을텐데 아쉽다. 글로서 표현되는 소설이 영상같다는 느낌이 안젤리크에서는 많이 덜어졌지만 그러기에 페이지터너라는 수식어도 약간 빗겨나가게 되었다.

의미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소설의 평을 하자면, 안젤리크는 욕심이 과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굳이 이 소설의 제목이 안젤리크가 될 이유도 없어보였다. 내용은 있지만 각인되지 않는, 중요한 것이 빠져있는 아쉬운 소설이다. 2022년을 마무리 짓는 마지막 포스팅, 마지막 도서리뷰에서 아쉽다는 단어를 제일 많이 쓰는구나. 2023년의 시작은 즐겁고 행복하며 의미있는 내용으로 시작 해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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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에 뮤지컬 영화 영웅을 보러갔다.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한 것인데, 나쁘지는 않았지만 딱히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뮤지컬 영웅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글은 온전히 영화 영웅에 대한 내용이다. 전반적으로 캐스팅 자체에 허점은 보이지 않았다. 연기를 못 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고 노래가 이상한 사람도 전혀 없었다. 다만 연출을 할 때 보여졌던 허점이 있어서 너무나 아쉽다. 김고은이 연기한 캐릭터 설희의 경우,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실패하고 자살을 하기 전 열차가 덜컹 거리자 무서워하는 듯한 연출이 있었는데, 어차피 자살을 할 사람이 고작 그런 덜컹거림에 무서워하는 씬을 넣은 것 자체가 너무 아이러니하다. 박진주의 캐릭터 마진주와 배정남의 캐릭터 조도선은 너무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 분위기에 감초같은 역할을 하는 캐릭터이고 연기 자체는 좋았다. 근데 전반적으로 조도선의 캐릭터성 부여가 좀 덜 된것이 아닌가 싶고 극 초반에 러시아 여성하고 결혼했다는 설정인데, 왜 조도선은 암살 작전을 펼칠 때 아내나 가족 걱정은 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다. 안중근의 캐릭터도 굳이 넣을 필요가 없던 장면을 넣어서 밉상이었다. 영화 초반 안중근의 아내가 울면서 걱정을 할 때 굳이 왜 아내를 째려보다가 아내의 반지까지 탐하는 안중근을 보면서 '이 부분은 독립운동가로서 안중근이 가족으로서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씬인가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물론 독립운동을 하거나 혁명을 외치는 사람이 가족에게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경우는 종종 있으나 굳이 이 영화에서 그런 장면을 삽입하였다는 것이 연출적으로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윤제균 감독은 희극 영화에서는 특유의 재치가 잘 발휘되는 것 같은데, 그런 재치가 영웅같은 민족과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다룰 때는 몇몇 씬에서 거슬리는 연출을 한다는 것이 아쉽다. 딱 잘라서 나쁜 영화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뮤지컬 영화로서 이 영화를 보았을 때 작품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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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의 지구사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케빈 R. 코사르 지음, 조은경 옮김, 주영하 감수 / 휴머니스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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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의 지구사는 휴머니스트에서 제작한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출판된 책이다.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는 위스키의 지구사 뿐만 아니라 차, 빵, 향신료, 아이스크림, 커리, 우유, 초콜릿, 치즈. 피자까지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는 모두 절판 중이다. 나는 집 근처 도서관의 도움으로 위스키의 지구사를 읽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위스키 역시 기원은 확실치 않다. 특정 음료가 발효가 되어 우연치 않게 술이 발견이 되었고 각 지역에 있던 과실주, 발효주 등을 증류해보니 다양한 종류의 증류주가 나타나게 된 것이라서 각 지역과 나라에 따라 만들어진 과실주와 발효주에 따라 소주, 브랜디, 위스키 등의 증류주가 나타나버렸다. 각자의 나라에서 서로 위스키의 원조라고 주장은 하고 있지만 그 주장에 나오는 술이 위스키인지 브랜디인지 아니면 다른 증류주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확실한 한 가지는 위스키의 본래 이름은 usquebae, usauebaugh 등 비슷하지만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는 것이고 영국 내의 지역 간 갈등으로 인한 주세법, 금주령 등으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혁명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위치로서 위스키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아마 영국에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간의 다툼이 없었다면 위스키도 지금과는 다른 술이 되었거나 위스키가 아닌 다른 이름의 술이 되었을 것 같다. 실제로 위스키 자체는 원래 농부가 마시던 술이었거나 약으로 활용이 되었기에 딱히 그 동안 문헌에 제대로 된 제조법이 등장을 하지 않다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간의 갈등 때문에 본격화되었다.

미국에서 버번 위스키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위스키하면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와 아일랜드의 아이리시 위스키, 2가지 버전의 위스키가 있었다. 책에 더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지만 스코틀랜드는 잉글래드와 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고 연속 증류기를 사용하여 지속적으로 번성을 하였지만 아일랜드는 정말 고난의 역사였다. 아일랜드는 독립전쟁으로 인하여 잉글랜드와 안 그래도 사이가 안 좋은 판국에 비교적 술을 더 생산할 수 있는 연속 증류기가 아닌 전통을 지킨다는 이유로 단식 증류기만 사용했던 터라 명맥이 끊길뻔한 적도 있다. 스카치 위스키는 마케팅적으로 스코틀랜드 다움을 이용하여 민족주의 마케팅을 진행하였고 아이리시 위스키는 독립이라는 미명하에 불법으로 만든 아이리시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잉글랜드에 대항하는 것이며 독립운동이라는 마케팅아닌 마케팅이 진행되었다. 둘 다 민족주의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지만 이 민족주의가 스카치 위스키와 아이리시 위스키를 특색을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버번 위스키는 보리맥아를 사용하는 스카치 위스키나 아이리시 위스키와 달리 옥수수를 사용하는 위스키이다. 물론 옥수수가 아닌 호밀을 사용하는 호밀 위스키도 있지만 전통적인 방법으로 맥아만 사용하려하는 스카치 위스키나 아이리시 위스키와는 다른 방향으로 갈라진 것이 바로 버번 위스키이다.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살다 미국을 이민을 간 이주자가 보리의 대체제인 옥수수를 사용하여 만든 것이 기원이라고 하는데, 꽤나 성공적인 대체제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전반적으로 위스키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1人이지만 역사적인 상황에서의 위스키의 발전이 꽤나 흥미로워서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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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오피셜 뱅크시
알레산드라 마탄자 지음, 정다은 옮김 / Pensel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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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는 영국 브리스톨 출신으로 추정되는 스트리트 아티스트이다. 국적이 영국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인적사항이 거의 정체불명이며 스스로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이며 영화감독이다. 확실하게가 아니라 '거의'라는 단어로 정체불명을 수식한 이유는 자신이 작업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에 (얼굴을 가린 상태로) 출연하기도 했고, 가디언 언리미티라는 곳에서 유일하게 얼굴을 맞대고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남성일 확률이 아주 높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언오피셜 뱅크시에서는 '뱅크시'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나오기는 하지만 주로 '왜 이런 행동을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서 뱅크시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뱅크시가 얼굴을 드러내놓지 않고 활동하는 이유는 '누가' 그린 그림이냐 보다는 그림이 가지고 있는 주제와 그런 그림이 나온 사회비판적인 시각과 맥락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림은 누가 그린 그림이냐보다 그 그림이 가지고 있는 작품성, 사회성, 예술성 그 자체로 평가받는 것이 중요한 순간도 분명히 존재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유명한 이유는 거장이 그린 그림이라는 것도 있지만 게르니카라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사회성, 작품성, 예술성이 작가의 명망에 뒤지지 않을만큼 뛰어나기 때문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뱅크시의 모든 작품에 열광할 수는 없지만 뱅크시가 가지고 있는 사회비판적인 시각과 그것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상당히 이 사회에 상당히 도전적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뱅크시가 과연 단 한 명의 개인인가?'라는 의문이 있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논문이나 연구자료를 보면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만든 희곡을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으로 발행되었다는 내용이 있는 것처럼 뱅크시도 한 사람이 아닌 여러 명의 사회비판적인 거리예술가가 모여 만든 집단의 이름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나는 약하지만 우리는 강하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경직된 예술과 사회를 변화할 수 있는 조그만 틀을 창의적으로 생성한 것이 바로 뱅크시가 된 것이 아닐까? 중요한 점은 뱅크시가 누구인가보다 뱅크시가 왜 이런 그림을 그리는가이다. 뱅크시는 이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서 전쟁에 반대하고 불평등을 비판하며 보이지 않는 정부의 통제에 맞서 싸우기 위하여 거리예술을 지향하지만 이미지만을 차용하는 뱅크시 전시와 무단으로 뱅크시의 그림을 사용하는 기업의 행태를 보자면 뱅크시의 의도와 상관없는 '쿨한 이미지만'을 차용하는 것 같아 아쉬운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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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조건 - 이노베이션의 10가지 얼굴
톰 켈리.조너선 리트먼 지음, 범어디자인연구소 옮김 / 유엑스리뷰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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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기본적으로 IDEO라는 회사가 일을 하는 방식을 토대로 쓰여진 느낌이 들었다. IDEO가 무언가 소셜디자인이나 건축, 인테리어와 관련된 일을 하는 회사 같았는데 어떤 회사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어서 구글링을 해보니 위키피디아에 회사 IDEO에 대한 정보가 나왔다. IDEO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중국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디자인 및 컨설팅 회사인데, 1991년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에서 설립되었다. 기본적인 회사 업무는 제품, 서비스, 환경 및 디지털 경험을 설계하기 위한 디자인 사고 방식이라고 쓰여있었는데, 이 문장을 읽으니 책에 나왔던 사례에 대한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IDEO는 소비자 식음료, 소매업, 컴퓨터, 의료, 교육, 가구, 사무실, 자동차 산업의 프로젝트를 주로 하는 업체이다.

혁신의 조건은 회사 업무 내에서 창의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과 자율성이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이다. 아시아 지역 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관료화되고 상하관계에서 오는 상명하복식 일처리는 조직원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억압하는 요소일 수 있다. 기본적인 것은 지키되 자율성을 주는 것은 어느 조직에서나 어렵고 힘든 일일 수 있다. 책에서 제시한 혁신의 10가지의 룰모델인 문화인류학자, 실험자, 타화수분자, 허들러, 협력자, 디렉터, 경험 건축가, 무대 연출가, 케어기버, 스토리텔러는 사실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질이다. 물론 모든 사람이 10종류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무리수일테지만 최소한 2-3가지의 자질은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자질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있다. 문화인류학적인 시선으로 기획을 하거나 실험자의 기본이 되는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제시하였을 때, 관료적인 기업은 바로 그 아이디어를 제지시킨다. 케어기버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도울 때, 나쁜 기업에서는 그 사람을 '호구'라고 생각하고 악용한다. 문제는 세상에는 케어기버의 존재를 악용하고, 문화인류학과 실험자의 새로운 시도를 무시하는 나쁘고 관료적인 회사가 꽤 많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 노동가능인구, 재화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모든 사람과 모든 아이디어에 대한 충분한 투여는 이익을 목표로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상당히 '불필요'하고 '낭비'되는 부분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단기이익을 위해서 장기이익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혁신의 조건은 좋은 문화를 가진 조직을 오랫동안 잘 유지하는 것이 1순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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