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기대하고 상처받지 마라 - 관계에 배신당하는 당신을 위한 감정 브레이크 연습
하야시 겐타로 지음, 한주희 옮김 / 갤리온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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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관계를 맺고, 가끔은 그 안에서 상처를 받을 때도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때문에 상처를 줄 때가 있고, 충분히 대화로 나의 생각을 표현했다고 생각했는데 오해가 쌓이거나 기대가 어긋나기도 한다. '혼자 기대하고 상처받지 마라'는 대화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지 않게 도움을 주고 감정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주는 실용서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기대라는 욕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보여주거나 나의 감정을 알아주길 원하는데 상대방이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상처를 받는다. '혼자 기대하고 상처받지 마라'에서는 이런 기대감을 줄이고 대화로 자신의 생각과 욕구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소통하여 감정적인 상처를 줄이는 것을 제안한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숨기거나 억누르라는 것이 아니라 말이나 글에 모든 필요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어, 듣는 사람이 상황이나 맥락을 별도로 해석하지 않고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로컨텍스트 화법을 사용한다면 오해로 인한 감정 싸움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하야시 겐타로의 생각이다.

하야시 겐타로는 기본적으로 리더십 코칭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기에 일로서 사람을 만나는 직장에 대한 사례가 많이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로컨텍스트 화법이 가족, 연인, 친구 관계에서도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말 하지 않아도 알아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더 크고, 그로인한 상처도 많이 받는다. 가깝고 친밀한 관계일수록 정확하고 따뜻한 말로 감정을 표현해주는 것이 깊고 건강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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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 선언 : 어떻게 먹을 것인가 - 지구를 바꾸는 작은 혁명
앨리스 워터스 지음, 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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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푸드 문화의 서론은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가 우리 삶을 결정한다'로 시작하고 결론은 '우리의 미래는 음식에 달려 있다'로 끝맺음이 난다. 인간을 비롯하여 모든 동식물은 무언가를 통해 영양분을 섭취해야 살아갈 수 있다. 배송, 냉동식품, 간편식이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표준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는 개인적인 기호와 생활습관이 아닌 자신의 가지고 있는 신념의 표현이 되었다. 대량생산으로 표준화된 농산물은 지역의 농업을 소멸시키고 다양한 문화를 바탕으로 한 식문화를 통일시켰다. 이는 각 나라마다 각기 다른 생태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계절이 가지고 있는 감각과 공동체의 교감을 없애버린다. 한국에서는 김장문화가 사라지고 이탈리아에서는 1년 동안 먹을 토마토 소스를 만드는 패밀리 토마토 소스가 시판용 김치와 토마토 소스로 대체되고 있다. 슬로푸드 문화는 빠르고 효율적인 삶이 아닌 자연의 속도로 다시 되돌아가기 위한 시작을 의미한다.네이티브 아메리칸 중 라코타 족에서는 Mitakuye Oyasin이라는 인사말이 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매일 음식을 소비하지만 그 음식이 어디서 왔고 누가 기르고 만들었는지에 대해 무지하다.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 그 과정 증에 흙에서 어떤 생명이 자랐고, 공동체가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직접 농사를 짓고 동물을 키웠기에 생명과 땅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단절되1었다. 제철의 식재료를 집 근처에서 구하는 소박한 행동이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토양을 회복시키는 느린 걸음이 될 수 있다. 속도의 문명에서 인간동물이 잃어버린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고민하자는 의미에서 슬로푸드 선언은 중요하다. 나는 슬로푸드 선언을 읽으면서 한국이라는 도시밀집국가에서 스마트팜을 제외하고 자연생태를 해치지 않는 도시농업이 가능할까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다. 한국은 인구밀집도가 높고, 특히 그 인구가 서울과 경기권에 몰려있다. 이런 국가에서 실천가능한 슬로푸드란 무엇일까?

네이티브 아메리칸 중 라코타 족에서는 Mitakuye Oyasin이라는 인사말이 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매일 음식을 소비하지만 그 음식이 어디서 왔고 누가 기르고 만들었는지에 대해 무지하다. 음식이 식탁에 오르는 그 과정 증에 흙에서 어떤 생명이 자랐고, 공동체가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직접 농사를 짓고 동물을 키웠기에 생명과 땅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그 모든 것이 단절되1었다. 제철의 식재료를 집 근처에서 구하는 소박한 행동이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토양을 회복시키는 느린 걸음이 될 수 있다. 속도의 문명에서 인간동물이 잃어버린 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고민하자는 의미에서 슬로푸드 선언은 중요하다. 나는 슬로푸드 선언을 읽으면서 한국이라는 도시밀집국가에서 스마트팜을 제외하고 자연생태를 해치지 않는 도시농업이 가능할까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다. 한국은 인구밀집도가 높고, 특히 그 인구가 서울과 경기권에 몰려있다. 이런 국가에서 실천가능한 슬로푸드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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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바라보는 동과 서 - 인간혁명과 지구혁명
이케다 다이사쿠.리카르도 디에스 호흐라이트네르 지음, 화광신문사 출판국 옮김 / 연합뉴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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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는 인간 내면의 혁신을 통하여 평화로운 세계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평화란 사람의 공감에서 시작이 된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내면의 연민과 감수성이 있어야 평화가 시작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폭력적인 탐욕과 이기주의를 가지고 있지만(성악설), 이를 인식하고 극복한다면 비폭력을 바탕으로 한 평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화는 인간 개인의 능동적인 선택이면서 실천의 문제이다. 개인 스스로의 평화와 공존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라고 말 할 수 있는 행동력도 중요하다. 인간혁명은 개인적으로 평화를 위해 바뀌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다른 사람도 바뀔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행동 역시 필요하다.

리카도르 디에스 호흐라이트네르는 세계화라는 것이 모든 문화를 획일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여 지역의 문화적 다영성이 인간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개인의 개성을 없애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가 속한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해가 기반이 되어야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를 이해하는 성찰이 있다면 타인을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타인의 개성은 존중하고 포용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면 평화에 한발짝 나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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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주도권을 디자인하라 - AI를 도구를 넘어 무기로 만드는 질문의 힘
박용후 지음 / 경이로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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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이전에 인터넷이 있었다. 인터넷은 세상에 있는 정보를 스스로 찾아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창구였지만 대다수의 사람이 네이버 지식인에 질문만 던지거나 특정 사이트에서 과제를 구매하여 제출하며 남이 생성한 지식을 받아먹는 삶을 선택하였다. AI 시대에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인터넷 시대보다 더 빠르게 사고력을 잃어가고 사회에서 점점 밀려나는 삶을 살게 된다. '생각의 주도권을 디자인하라'에서는 인간의 자율성, 주체성, 사유하는 방식이 AI 시대를 살아가는 주요한 포인트라고 말을 한다. AI는 만능 도구가 아닌 인간이 질문 수준 자체를 드러내는 거울이 되었다.

'생각의 주도권을 디자인하라'는 AI 활용서라기보다는 인간이 스스로 질문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을 계속 말하고 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질문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AI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질문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사고방식의 구조이며, AI의 활용을 질문자가 가지고 있는 수준을 나타낸다. 단순히 AI가 준 정보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의 맥락을 해석하고 창의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인간의 몫인 것이다. AI는 특정 문제에 대하여 답을 주고 정보를 요약해줄 수 있지만, 애초에 인간이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못한다면 답과 요약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질문과 사유를 하지 않는다면 AI를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AI의 도구가 되어버릴 것이다. AI를 활용하여 확장된 인간이 되고 싶다면, 생각하고 질문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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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동물의 탄생 - 동물 통제와 낙인의 정치학
베서니 브룩셔 지음, 김명남 옮김 / 북트리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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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규정한 유해동물이 정말 지구에게 유해한 동물일까? 유해동물이라는 개념은 전지구적 입장에서 생각한 생태학적 정의는 아니다. 인간 동물이 지구의 자원을 필요한데로 사용하고 자연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이데올로기에서 나온 단어 중 하나가 유해동물이라고 생각한다. 유해동물은 인간동물의 필요에 따라 생겨난 단어이다. '나쁜 동물의 탄생'에 등장한 플로리다의 버마 비단뱀, 케냐의 코끼리, 호주의 사탕수수 두꺼비 모두 원자연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인간이 동물의 서식지를 강제로 이동시키거나 도시 환경을 확대시켰기 때문에 문제화 된 것이다. 인구 수 증가로 인해 지구 내에서 도시는 계속 커지고 있고, 야생 상태의 자연은 축소되어간다. 지구의 관점에서 보면 지속적으로 생태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인간동물인데, 인간동물은 비인간동물을 유해동물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인간동물이 자연을 통제하고 특정 문제를 제거하려는 방식 자체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인간의 필요로 동물을 사용할 때와 도시에 적응한 야생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이중적 태도를 스스로 뒤돌아보아야 한다. 인간 동물이 지구의 자원을 독점할 권리가 있다고 누가 말하였는가? 네이티브 아메리칸이 말하는 공존을 위한 기술을 과학적으로 발전시켜 기술로서 공존하는 삶이 필요한 것 아닐까? 인간동물 중심 사회가 아닌 생태 중심의 지구를 위해서 우리는 방향을 바꿔야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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