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관람하면서 음악은 매우 좋은데 뭔가 시각이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성 주인공인 루벤은 매우 폭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루벤의 경우 (아마도) 귀족이라고 생각될만큼 매우 부잣집의 외동아들이었으나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었다. 영화에서는 루벤이 왜 시력을 잃었는지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예전에는 볼 수 있었으나 서서히 시력을 잃어갔고 시력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에 누군가 색깔에 대한 정보 등을 알려준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루벤은 전맹에 가까운 수준으로 시력을 잃었으나 빛을 구별할 수 있었으며 오랫동안 한 집에 머물렀기 때문에 활동지원 없이 집안 내부는 돌아다닐 수 있었다. 다만, 시력을 잃은 이후에 매우 난폭해져서 고용인에게 심각한 폭력을 휘둘렀으며 씻는 것을 싫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리는 난폭한 루벤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었다. 영화 시놉시스에는 '얼굴과 온 몸에 흉측한 상처가 있고 남들과 다른 모습'이라는 표현으로 마리의 외적 모습을 설명해두었지만 마리는 그저 알비노일 뿐이었고, 알비노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받았을 가능성은 매우 크지만 '얼굴과 온 몸이 흉측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알비노의 경우 사람에 따라 시각장애를 동반할 수도 있는데 안경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시각장애는 없지만 피부가 매우 약할 것 같다는 추측이 되었다.

이 영화는 사랑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나는 소통과 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루벤의 경우 시각의 결핍으로 인하여 마음의 문을 닫고 그 누구와도 소통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 어떤 관계도 맺고 싶어하지 않았다. 자신이 상처받은 것을 '폭력'으로 들어냈을 뿐이다. 마리는 알비노라는 이유때문에 차별이나 학대를 받았는지 영화에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길로 다니거나 사람 앞에서 후드를 쓰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마리의 행동으로 유추했을 때 '책' 이외의 그 어떤 소통도 거부한 것 같았다. 루벤과 마리가 서로 사랑에 빠졌다고 느낀 이유 중 하나는 마리가 책을 낭독하고 루벤이 그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서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통과 관계에 대한 갈증을 서로 풀어주었으며 서로에게 느낀 감정을 서로 사랑이라고 인식한다.

루벤이 각막이식수술로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게 되기 전, 마리는 그를 떠난다. 마리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루벤이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고 떠나면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거짓말로 루벤이 상처받을까 두려워서인지 알 수 없다. 마리는 루벤의 사랑을 순수하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루벤의 사랑이 상당히 거칠고 폭력적이라고 느꼈기때문에 어떤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루벤은 눈을 뜨고 난 뒤 마리를 찾기 위해 집장촌까지 가지만 그 곳에서 일하는 여성에게도 폭력을 휘두른다. 또한 눈을 뜨기 전 가고싶다는 터키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온 뒤 도서관에서 찾은 마리에게 함께 있자고 제안하지만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자신의 손으로 다시 눈을 멀게 만든다. 순수한 사랑으로 마리를 갈망하기에 벌인 일이라기에는 너무나 폭력적이다. 루벤의 사랑은 순수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했던 것일까? 나는 이 영화가 아름답다고 쉬이 이야기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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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가 죽던 날의 티저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 한국 영화의 티저를 보고 저 영화를 꼭 보고싶다는 생각을 한다는게 나에게는 극히 드문 일인데도. 개봉 당일에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개봉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상 김혜수가 주로 만나고 다니는 인물이 여성이었는데, 다양한 층위의 여성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여성은 이러하다.'는 어떤 문장 하나로 만들어지는 여성이 아닌 그저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는 느낌이었다. 몇몇 부분에서는 해당 지역에서 사는 여성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약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뭔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뿌려진 떡밥이 회수가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럴거면 왜 그런 신을 넣었는지 궁금한 것도 있었고, 너무나 뻔한 스토리로 이어져서 실망한 것도 있었다.

그래도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김혜수 배우와 이정은 배우가 연기를 잘 한다는 것과 이 두 배우가 어떤 상황에서도 소리를 지르거나 감정의 과잉을 보여주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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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유명해진 감독 셀린 시아마의 영화 '걸후드'이다. 2020년 한 해동안 한국에서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모든 영화를 개봉하고 싶은가보다. 딱히 여성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유별난 나라도 아니고 아니 오히려 여성인권을 비롯해서 인권이나 동물권 감수성이 무딘 나라이며, 프랑스 영화에 열광하는 나라도 아닌데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가 특별하게 관객몰이를 하는 것도 아닌데 1년 내내 꾸준하게 개봉하는 것이 엄청나게 신기하다. 내가 3월에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귀국을 하는 바람에 2020년 1월 한국 개봉을 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보지 못했지만, 올해 5월 '톰보이'를 시작으로 8월에는 '워터 릴리스'를 보고 11월에는 '걸후드'를 봤다. 코로나의 영향 때문이라도 영화관 내부에 이렇게 관객이 매우 드물게 있는 감독의 영화를 꾸준하게 개봉하고 극장 상영을 추진하는 영화 배급사는 정말 열일을 하고 있구나.

걸후드는 톰보이나 워터릴리스에 이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성장 3부작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톰보이의 나잇대는 막 2차 성징이 시작하기 직전인 만 9~10세 사이의 아이이며, 워터 릴리스는 만 12~14세 정도 되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걸후드의 주인공은 만 16세이다. 한국으로 치면 각각 초등학교 5~6학년, 중학생, 고등학생 정도의 나잇대인 것이다.

톰보이와 워터 릴리스의 주인공이 성정체성과 첫사랑에 대한 고민이 전부일 때, 걸후드는 친구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진로와 취업이 큰 고민거리인 것 같다. 주인공의 피부색이 달라진 것이 고민의 내용이 달라진 것과 상관관계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톰보이와 워터릴리스의 주인공은 백인이었던 것에 비하여 걸후드의 주인공은 흑인이었다. 워터릴리스의 출연 배우는 백인만 있었는데, 톰보이에서는 백인과 흑인이 섞여있었다. 걸후드에서는 출연진의 90% 정도가 흑인이거나 흑인과 백인의 혼혈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리엠은 한부모가정에서의 둘째이자 장녀다.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어느 건물의 청소부이며, 오빠가 하나, 여동생 두 명이 있다. 주수입원은 어머니의 급여같은데, 오빠는 상당히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으로 묘사된다. 이 오빠라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하거나 학교를 다니는지 전혀 알 수 없는데, 일을 하는 어머니 대신 여동생 3명의 '관리'를 도맡아 한다. 이 '관리'라는 것이 정서적 보살핌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인데, 도대체 이 사람의 정체는 뭔지 모르겠다. 아마 폭력조직 같은데서 일을 하는 듯 싶지만 알 수 없다.

마리엠은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과정을 2년 정도 유급을 한 모양이다. 마리엠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은데, 성적이 따라주지 않은 모양이고 선생은 직업전문학교를 추천한 모양이라 아마 그 이후로 쭉 학교는 가지 않는 모양이다. 프랑스의 학교가 어떤 식으로 되어있는지 모르겠지만 독일과 유사하다면 성적이 상위권이라면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교에 갈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지만, 성적이 낮은 편이라면 직업전문학교에 가서 고등학교 졸업 후 직업을 가지게 되나보다. 마리엠이 왜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탈학교를 한 이후로 새로운 친구 3명을 만나 어울리다가 오빠의 폭력을 피해 폭력조직의 일에 가담하여 경제적 자립을 하게 된다.

영어로는 제목이 Girlhood로 소녀시절을 의미하지만 프랑스어 원제는 Bande de filles이다. 한국어로 해석하자면 '딸의 무리'인데 여성의 연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리엠이 빅이라는 이름을 선택하고 스스로의 길을 나아가는 모습이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가정 안에 계속 머물러 있는다면 마리엠은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을테니까. 어떤 사람은 그녀가 애인과 결혼하였더라도 가정폭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테지만, 마리엠은 스스로 빅이 되길 원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면 애초에 집이 있는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독립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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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추락

기간 2020. 11. 12 ~ 2020. 11. 22

배우 이세영

장소 연우소극장



2018년 7월 17일. 이 날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네이버에 다른 것은 제외하고 '2018년 7월 17일'을 검색했을 때는 그저 그날이 제헌절이고 초복이었다는 정보만 주었을 뿐이다. 그래서 '2018년 7월 17일 해병대'라고 검색하니 나무위키 링크가 검색되었고, 그곳에는 '2018년 7월 17일에는 해병대 상륙기동헬기인 마린온이 1사단에서 추락하여 탑승 해병대원 6명 중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했다.'라는 정보가 적혀있었다. 연극 추락은 '2018년 7월 17일에는 해병대 상륙기동헬기인 마린온이 1사단에서 추락하여 탑승 해병대원 6명 중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당했다.' 사건에서 시작한다.

실제 그 사건을 경험한 화자와 극장에서 연기를 한 배우가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떤 관계인지는 잘 모르겠다. 연극은 1인극이었지만 2인극 같기도 하였다.

어디에 있는 무슨 대학인지는 모르겠다. 연기전공인 화자가 한여름, 대학의 연습실에서 연극 연습을 하다 쉬는 시간에 가족과 통화를 한다. 전화를 받아보니 아빠가 라면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전한다. 해군에서 헬기가 추락해서 사람이 5명이 죽었다고. 근데 그중 한 명이 사촌 오빠 진땡이라고.

한 명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전해졌지만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트라우마가 되어버리니까. 그것도 젊은 나이에 사람이 죽어버리면 그 트라우마는 더할 수밖에 없고 상처는 더디게 아문다. 2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 극을 올릴지 말지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이 죽은 사촌 오빠를 팔아먹는 것이 아닐지 고민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아마 그 고민 때문에 그 사건을 경험한 당사자는 연극을 올리는 것을 선택하지만 배우로서 참여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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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어떻게 시작되고 흘러갔는지 정확하게 묘사하기 힘들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나의 감정은 무척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는 기억과 그 때문에 즐거웠다는 것이다.

영화 초반 이자영, 정유나, 심보람을 차례로 비추는 카메라에서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것과 함께 세 명의 캐릭터가 드러났다. 좋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는 이자영. 날카롭게 느껴지는 정유나. 어리버리해보이는 심보람. 이 세 명의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지면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1990년대 대기업에서 일을 하던 고졸 학력의 여성이었다. 각 부서에서 1명 정도씩 배정되어 커피타기부터 각종 잡무를 떠앉았지만 진급에서는 제외된 고졸여성. 사실 주인공 1~2명 위주로 진행되는 다른 영화와 다르게 이 영화가 좋았던 점은 주인공으로 내세운 3명의 사람 옆에 있던 다른 여성의 얼굴도 많이 보여주었다는 것이었다.

실화에 실화를 더한 내용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는 실화가 아니다. 오히려 실화를 각색해 만든 '허구의 이야기'지만 그 때 당시의 여성의 얼굴 그리고 그 여성이 어떻게 살았으면 좋았겠는지에 대한 우리의 희망을 담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회사 내에서 잡다한 일을 하는 여성에게 모든 일을 물어보면서 결국은 남성중심의 사회로 회귀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 여성이 중심이 되어서 일을 끝까지 해결하는 그런 영화말이다. 사건의 목격도 그 사건을 파헤치는 것도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길을 뛰어다니는 것도 여성의 연대라서 즐거웠다. 물론 영화적으로 상상해서 만든 이야기라 가능한 것이었겠지만 일의 해결까지도 남성이나 권력자가 중심이 아닌 여성 중심의 영화였다.

트위터인지 페이스북에서 어떤 사람은 좋은 영화에 '페미니즘' 뿌려서 별로가 된 영화라는 평이 있었는데, 그 글을 쓴 사람은 남성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는 여성이 중심이 되어 일을 끝까지 마무리 한 것 뿐인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페미니즘을 부려 별로가 된 영화라고 느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그 글을 싸지은 쉐이끼는 주인공이 남성이 아니라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게지. 모처럼 영화를 보고 나서 즐거운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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