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유명해진 감독 셀린 시아마의 영화 '걸후드'이다. 2020년 한 해동안 한국에서는 셀린 시아마 감독의 모든 영화를 개봉하고 싶은가보다. 딱히 여성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유별난 나라도 아니고 아니 오히려 여성인권을 비롯해서 인권이나 동물권 감수성이 무딘 나라이며, 프랑스 영화에 열광하는 나라도 아닌데다, 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가 특별하게 관객몰이를 하는 것도 아닌데 1년 내내 꾸준하게 개봉하는 것이 엄청나게 신기하다. 내가 3월에 스페인에서 한국으로 귀국을 하는 바람에 2020년 1월 한국 개봉을 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보지 못했지만, 올해 5월 '톰보이'를 시작으로 8월에는 '워터 릴리스'를 보고 11월에는 '걸후드'를 봤다. 코로나의 영향 때문이라도 영화관 내부에 이렇게 관객이 매우 드물게 있는 감독의 영화를 꾸준하게 개봉하고 극장 상영을 추진하는 영화 배급사는 정말 열일을 하고 있구나.
걸후드는 톰보이나 워터릴리스에 이은 셀린 시아마 감독의 성장 3부작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톰보이의 나잇대는 막 2차 성징이 시작하기 직전인 만 9~10세 사이의 아이이며, 워터 릴리스는 만 12~14세 정도 되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걸후드의 주인공은 만 16세이다. 한국으로 치면 각각 초등학교 5~6학년, 중학생, 고등학생 정도의 나잇대인 것이다.
톰보이와 워터 릴리스의 주인공이 성정체성과 첫사랑에 대한 고민이 전부일 때, 걸후드는 친구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진로와 취업이 큰 고민거리인 것 같다. 주인공의 피부색이 달라진 것이 고민의 내용이 달라진 것과 상관관계가 있을까? 잘 모르겠다. 톰보이와 워터릴리스의 주인공은 백인이었던 것에 비하여 걸후드의 주인공은 흑인이었다. 워터릴리스의 출연 배우는 백인만 있었는데, 톰보이에서는 백인과 흑인이 섞여있었다. 걸후드에서는 출연진의 90% 정도가 흑인이거나 흑인과 백인의 혼혈로 구성되어 있었다.
마리엠은 한부모가정에서의 둘째이자 장녀다.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어머니는 어느 건물의 청소부이며, 오빠가 하나, 여동생 두 명이 있다. 주수입원은 어머니의 급여같은데, 오빠는 상당히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인간으로 묘사된다. 이 오빠라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하거나 학교를 다니는지 전혀 알 수 없는데, 일을 하는 어머니 대신 여동생 3명의 '관리'를 도맡아 한다. 이 '관리'라는 것이 정서적 보살핌이 아닌 자신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인데, 도대체 이 사람의 정체는 뭔지 모르겠다. 아마 폭력조직 같은데서 일을 하는 듯 싶지만 알 수 없다.
마리엠은 한국으로 치면 중학교 과정을 2년 정도 유급을 한 모양이다. 마리엠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은데, 성적이 따라주지 않은 모양이고 선생은 직업전문학교를 추천한 모양이라 아마 그 이후로 쭉 학교는 가지 않는 모양이다. 프랑스의 학교가 어떤 식으로 되어있는지 모르겠지만 독일과 유사하다면 성적이 상위권이라면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교에 갈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지만, 성적이 낮은 편이라면 직업전문학교에 가서 고등학교 졸업 후 직업을 가지게 되나보다. 마리엠이 왜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고 싶어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탈학교를 한 이후로 새로운 친구 3명을 만나 어울리다가 오빠의 폭력을 피해 폭력조직의 일에 가담하여 경제적 자립을 하게 된다.
영어로는 제목이 Girlhood로 소녀시절을 의미하지만 프랑스어 원제는 Bande de filles이다. 한국어로 해석하자면 '딸의 무리'인데 여성의 연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리엠이 빅이라는 이름을 선택하고 스스로의 길을 나아가는 모습이 옳은지 아니면 그른지 그 누구도 판단할 수 없다. 가정 안에 계속 머물러 있는다면 마리엠은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을테니까. 어떤 사람은 그녀가 애인과 결혼하였더라도 가정폭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을테지만, 마리엠은 스스로 빅이 되길 원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면 애초에 집이 있는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독립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