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개봉하였던 영화이다. 뭐, 이런 영화 장르에 딱히 관심이 없으며 평소라면 절대 보지 않았을 장르의 영화이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관람하게 된 영화이다.

대충 스포일러 해도 되는 내용으로만 줄거리를 구성하자면 시장에서 꽈배기 맛집 사장을 하는 미영(엄정화)과 컴퓨터 수리업체를 운영하는 석환(박성웅) 부부가 하와이 여행 티켓이 당첨되면서 시작된다. 미영과 석환 가족이 탄 하와이행 비행기에 북한 비밀요원이 타서 비행기 납치를 하게되며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일단 상당히 저렴하게 영화를 찍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하와이 로케이션을 가게되면 비용이 많이 들테니 하와이 씬은 거의 없으며 그나마 마지막에 나왔던 바닷가의 경우 한국에 있는 어느 바닷가에서 찍었던지 아니면 간단한 CG 작업으로 처리한 듯 싶다. 그나마 돈이 제일 많이 들었던 것은 공항과 비행기 씬이었을 것 같다.

여기에 출연한 배우가 모두 연기를 잘 하는 사람들인데 배우의 재능을 가지고 이런 영화를 만들었는지 당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 돈주고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아니라 내가 날선 비난은 안하고 있는데, 이 영화를 보는 시간조차도 너무나 아까웠던 영화이다. 이선빈이라는 배우는 나름 액션연기를 잘 소화 한다고 생각했던 배우인데, 이 배우를 왜 이런 식으로만 소비하는지도 아까웠다. 물론 이 영화에 나왔던 다른 배우도 아까웠다.

TV에서건 뭐건 이 영화를 해준다고 하면 꼭 보지말고 피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보기드물게 시간이 아까운 영화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코로나로 인해서 2020년에는 다양한 영화가 영화관 개봉이 밀리거나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노선을 변경했었는데, 코로나에 익숙해진 것인지 이제 집에만 갇혀있기 싫은 사람을 위해서인지 영화관 개봉을 선택하는 영화가 늘고 있다. 픽사에서 만든 소울에 이어 2021년 내가 두 번째로 보게 된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다. 픽사와 디즈니가 하나의 계열사이기는 하지만 픽사에서 만드는 애니메이션과 디즈니에서 만드는 애니메이션은 아직까지 그 결이 매우 다르기는 하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홍보를 할 때부터 '아시아' 느낌을 많이 주었고 캐릭터 더빙 자체를 헐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아시아계(혹은 아시아 혼혈) 배우가 하였다. 주인공 라야의 목소리는 베트남계 이민자 2세인 켈리 마리 트란, 용 사수는 중국과 한국의 혼혈계인 아콰피나이고, 주인공의 반대편에 서 있는 나마리의 경우 중국어권 1.5세(혹은 2세)이다. 특이하게도 대립하는 2개의 부족 족장 모두 한국계 미국인 산드라 오와 대니얼 대 킴이 맡았다. 픽사나 디즈니에서 활약하는 아시아인이 많은 관계로 애니메이터나 기술 관련 작업에서 한국인이나 그 외 아시아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이름이 눈에 띄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었는데 이제 대대적으로 아시아 문화권을 제대로 그린 애니메이션은 처음인 것 같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 시작하기 전 애니메이션은 완전 뉴욕적인 화법이었는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면 화법이 바뀐다. 완전 새로운 화법은 아닌 디즈니의 색채는 가지고 있지만 아시아의 문화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제일 놀라운 것은 '용'을 그린 표현이었는데 서양식 용과 아시아식 용은 같은 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전혀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서양식 용의 경우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포악하고 보석을 좋아하여 인간을 약탈하는 성향을 가졌다고 묘사되며 악과 이교도를 상징하는 퇴치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에 반하여 아시아식 용은 몸통이 길며 날개가 없고 사슴뿔과 잉어의 비늘을 가졌다고 묘사되며 사람을 돕는 상서로운 동물이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농업과 어업을 관장하는 신이어서 주로 강이나 바다에 사는 신이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 나오는 용 사수도 이런 아시아 용의 특징을 가져 날개가 없고 몸통이 긴 모습을 하고 있으며 물의 관장하며 물과 관련된 능력이 있는 용이었다.

애니메이션의 내용 자체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 악을 키워 모든 생명을 죽이는 드론이라는 존재를 만들었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서로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매우 단순하고 디즈니다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그림 자체가 다양한 아시아 지역을 묘사해 준 것 같았으며 음악과 배경이 잘 어우러지는 애니메이션이라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미나리를 보고난 직후, 집에 바로 들어와서 글을 쓴다. 영화가 시작하고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어라? 스티븐 연의 한국어 실력이 늘었네?'였다. 스티븐 연이 나온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봉준호 감독의 옥자나 유아인과 함께 출연했던 버닝에서 했던 한국어에 비해 미나리에서의 한국어는 매우 '한국인'스러웠다. 옥자에서는 꽤나 끔찍했던, 버닝에서는 좀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썩 잘한다고 말할 수 없는 한국어 실력을 보여주었던 스티븐 연이 이 영화에서는 '한국인'같은 한국어 발음을 뱉어냈다. 어쩌면 버닝에서 스티븐 연이 한국어를 못 했다기보다 내가 스티븐 연의 캐릭터를 '재수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한국어를 못 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미나리는 미국 이민 1세대, 1.5/2세대와 한국인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신기하게도 한국영화 같은 미국영화였고, 미국영화같은 한국영화였다. 미국영화에서의 한국인은 아주 작은 감초나 캐릭터 역할이었고 온전한 주인공이거나 그들의 서사를 가졌던 적은 그닥 많지 않았다. 한국인이 주인공이었던 영화로 기억나는 것은 '트위스터즈'인데 이 영화/다큐멘터리는 미국과 프랑스로 각각 입양된 한국인 쌍둥이가 주인공이라서 쌍둥이 2명 모두 한국어를 할 수 없었다.

미국 이민 1세대는 어느 나라에서 여정을 시작했던지 간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그것은 미나리의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제이콥과 모니카 역시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이민을 간 것이었지만 딱히 그렇지 못 했던 것 같다. 제이콥은 농장을 만들기 위해 가족과 함께 이주를 하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 모니카의 어머니가 미국으로 건너온다.

모니카(한예리)의 엄마로 등장하는 윤여정의 캐릭터가 한국과 미국, 두 개의 나라에서 모두 HOT한 캐릭터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감독은 감독대로 윤여정은 윤여정대로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있을법한' 할머니를 제대로 그려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리를 잘 하기는 커녕 과자하나 제대로 못 굽고 딱히 손녀/손자를 살뜰하게 챙기는 것은 아니지만 유쾌해서 좋았다. 쓸데없는 잔소리도 하지 않았고.

궁금했던 점은 다른 가족이 모두 나가고 난 뒤에 할머니가 쓰레기를 모아다 불멍을 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그 할머니는 왜 불멍을 때리고 싶어했는지 의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연극 고역

출연진

윤상요 - 이동준, 조경희 - 이주영, 송민기 - 이종무, 강용복 - 우상전, 사내 - 서병철, 하규진 - 김선아, 방대한 - 김성욱

아이들 - 유서연, 이주아, 최서유, 이시율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공연을 본 주관적인 느낌을 최대한 적어보겠다.

주인공 남성은 이전에 게스트하우스 주인이었으며,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에게 숙소를 내어주며 난민인권 운동을 하던 사람이다. 관련 토론회나 인터뷰도 많이 했었는데 어느날부터 활동을 접는다. 어느 날 나타난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하며 이유를 묻자 '몸이 아파서'라는 이유를 들었다. 극의 시작이었다.

극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를 하였다. '극에 따르면'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 중 노인/여성/아동에 대해서는 난민인정을 받아들였지만 '성인 남성'에 대해서만 유독 부정적인 입장이 많았고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예멘 남성이 한국인 여성을 강간 등 성범죄를 할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에 대한 주제가 극 중간중간 튀어나오는데 보면서 실소가 튀어나왔다. '여성에 대한 성범죄'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라... 한국은 외국인 남성보다는 한국인 남성의 성범죄 비율이 훨씬 높은 한국이라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서 '한국 남성'은 범죄자가 될 우려가 있으니 성범죄 예방 차원에서 남성은 모두 감옥에 갇혀서 지내거나 거세를 하여야만 한다. 한국인 남성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두려운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윤리선생과 주인공의 대화를 들을 때면 윤리선생은 어떤 면에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며, 주인공이라는 사람은 상당히 위선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가까운 사람은 잃은 두 명의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일 수도 있었다. 한 명의 불 같이 화를 내었으며, 다른 한 명은 강과 같이 고요하게 심연으로 빠져든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슬픔이나 화를 표현하지 않는다고 그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주인공이 '짜증이 나고 찌질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주인공과 전 부인과의 대화때문이었다. 전 부인의 말에 따르면 주인공은 전 부인이 자신을 '구원' 해주는 존재로 여겼던 것 같다. 사실 이 부분 때문에 '화가 난 상황'인데 제애발 자신에 대한 구원은 자신이 하면 좋겠다. 주인공의 아버지 문제, 외로움, 성인군자스러움에서 벗어나고 구원을 하는 것은 자신이 해야만 하는 것이지 그거를 뭐 다른 사람한테 해달라고 땡깡을 부리는 것이냐.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 한국에서 공연이 되는 수 많은 연극/뮤지컬과 상영되는 영화에서 남성은 꼭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에게서 구원을 받거나 그 여성을 구해줌으로써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심리적 요인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은 집어치우면서 살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상 했었다. 이 연극의 주인공은 전자인데, 제애발 자기 자신에 대한 구원은 자신이 하길 바라며, 자신이 다른 사람의 삶을 구원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면 좋겠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 대한 구원은 해 줄수가 없다. 그저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을 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원래 이 애니메이션이 지금보다는 더 일찍 개봉을 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때문에 개봉이 미뤄지다가 드디어 개봉을 했다. 지금은 디즈니랑 픽사가 같은 계열사이기는 하지만 암튼 이거는 픽사 애니메이션이라 디즈니 특유의 뮤지컬 애니메이션은 아니다. 주인공이 재즈 뮤지션이라 음악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지적 '조' 시점에서는 원하지도 않았고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을 눈 앞에 두고서 어쩌다가 죽어버려 '절대로 다시 살아나고 싶어.'였고 전지적 '22' 시점에서는 딱히 지구에서 살고 싶지 않은데 도대체가 왜 지구에서 태어나라고 하는지 1도 모르겠어서 암튼 둘 다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하나는 지구에 가고싶고, 하나는 가고싶지 않고.

영혼의 성격은 알아서 정해주지만 지구에 가고싶은 이유를 찾는 'Spark'는 결국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 같다. 그게 무언가 당대한 목적이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내가 지금 이 순간 왜 살고싶은지'는 사람마다 이유가 다를 것이니까. 태어나기 전 영혼의 멘토를 정해주는 자리에서 나타나는 멘토는 '사회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뛰어난 사람'의 영혼만 있었다는 것에서는 기분이 딱히 좋지 않았다. 사람마다 살고 싶은 이유가 다르고 어떤 것이 소중한지 '내가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왜 멘토를 맡는 영혼이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유명한 사람'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링컨이나 마더 테레사 같은 사람이 삶의 소중함과 주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확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마더 테레사 별로 안 좋아함)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 스펙터클한 인생이 아닐지라도 모든 하루는 중요하고 모든 인생이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