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해서 2020년에는 다양한 영화가 영화관 개봉이 밀리거나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노선을 변경했었는데, 코로나에 익숙해진 것인지 이제 집에만 갇혀있기 싫은 사람을 위해서인지 영화관 개봉을 선택하는 영화가 늘고 있다. 픽사에서 만든 소울에 이어 2021년 내가 두 번째로 보게 된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의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다. 픽사와 디즈니가 하나의 계열사이기는 하지만 픽사에서 만드는 애니메이션과 디즈니에서 만드는 애니메이션은 아직까지 그 결이 매우 다르기는 하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홍보를 할 때부터 '아시아' 느낌을 많이 주었고 캐릭터 더빙 자체를 헐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아시아계(혹은 아시아 혼혈) 배우가 하였다. 주인공 라야의 목소리는 베트남계 이민자 2세인 켈리 마리 트란, 용 사수는 중국과 한국의 혼혈계인 아콰피나이고, 주인공의 반대편에 서 있는 나마리의 경우 중국어권 1.5세(혹은 2세)이다. 특이하게도 대립하는 2개의 부족 족장 모두 한국계 미국인 산드라 오와 대니얼 대 킴이 맡았다. 픽사나 디즈니에서 활약하는 아시아인이 많은 관계로 애니메이터나 기술 관련 작업에서 한국인이나 그 외 아시아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이름이 눈에 띄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었는데 이제 대대적으로 아시아 문화권을 제대로 그린 애니메이션은 처음인 것 같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 시작하기 전 애니메이션은 완전 뉴욕적인 화법이었는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면 화법이 바뀐다. 완전 새로운 화법은 아닌 디즈니의 색채는 가지고 있지만 아시아의 문화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제일 놀라운 것은 '용'을 그린 표현이었는데 서양식 용과 아시아식 용은 같은 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전혀 다른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서양식 용의 경우 날개를 가지고 있으며, 포악하고 보석을 좋아하여 인간을 약탈하는 성향을 가졌다고 묘사되며 악과 이교도를 상징하는 퇴치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에 반하여 아시아식 용은 몸통이 길며 날개가 없고 사슴뿔과 잉어의 비늘을 가졌다고 묘사되며 사람을 돕는 상서로운 동물이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농업과 어업을 관장하는 신이어서 주로 강이나 바다에 사는 신이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 나오는 용 사수도 이런 아시아 용의 특징을 가져 날개가 없고 몸통이 긴 모습을 하고 있으며 물의 관장하며 물과 관련된 능력이 있는 용이었다.

애니메이션의 내용 자체는 서로에 대한 불신이 악을 키워 모든 생명을 죽이는 드론이라는 존재를 만들었지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서로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매우 단순하고 디즈니다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애니메이션이었는데 그림 자체가 다양한 아시아 지역을 묘사해 준 것 같았으며 음악과 배경이 잘 어우러지는 애니메이션이라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미나리를 보고난 직후, 집에 바로 들어와서 글을 쓴다. 영화가 시작하고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어라? 스티븐 연의 한국어 실력이 늘었네?'였다. 스티븐 연이 나온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봉준호 감독의 옥자나 유아인과 함께 출연했던 버닝에서 했던 한국어에 비해 미나리에서의 한국어는 매우 '한국인'스러웠다. 옥자에서는 꽤나 끔찍했던, 버닝에서는 좀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썩 잘한다고 말할 수 없는 한국어 실력을 보여주었던 스티븐 연이 이 영화에서는 '한국인'같은 한국어 발음을 뱉어냈다. 어쩌면 버닝에서 스티븐 연이 한국어를 못 했다기보다 내가 스티븐 연의 캐릭터를 '재수없다'고 느꼈기 때문에 한국어를 못 한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미나리는 미국 이민 1세대, 1.5/2세대와 한국인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신기하게도 한국영화 같은 미국영화였고, 미국영화같은 한국영화였다. 미국영화에서의 한국인은 아주 작은 감초나 캐릭터 역할이었고 온전한 주인공이거나 그들의 서사를 가졌던 적은 그닥 많지 않았다. 한국인이 주인공이었던 영화로 기억나는 것은 '트위스터즈'인데 이 영화/다큐멘터리는 미국과 프랑스로 각각 입양된 한국인 쌍둥이가 주인공이라서 쌍둥이 2명 모두 한국어를 할 수 없었다.

미국 이민 1세대는 어느 나라에서 여정을 시작했던지 간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그것은 미나리의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제이콥과 모니카 역시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이민을 간 것이었지만 딱히 그렇지 못 했던 것 같다. 제이콥은 농장을 만들기 위해 가족과 함께 이주를 하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 모니카의 어머니가 미국으로 건너온다.

모니카(한예리)의 엄마로 등장하는 윤여정의 캐릭터가 한국과 미국, 두 개의 나라에서 모두 HOT한 캐릭터가 되었는데 그 이유는 감독은 감독대로 윤여정은 윤여정대로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있을법한' 할머니를 제대로 그려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리를 잘 하기는 커녕 과자하나 제대로 못 굽고 딱히 손녀/손자를 살뜰하게 챙기는 것은 아니지만 유쾌해서 좋았다. 쓸데없는 잔소리도 하지 않았고.

궁금했던 점은 다른 가족이 모두 나가고 난 뒤에 할머니가 쓰레기를 모아다 불멍을 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그 할머니는 왜 불멍을 때리고 싶어했는지 의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원래 이 애니메이션이 지금보다는 더 일찍 개봉을 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때문에 개봉이 미뤄지다가 드디어 개봉을 했다. 지금은 디즈니랑 픽사가 같은 계열사이기는 하지만 암튼 이거는 픽사 애니메이션이라 디즈니 특유의 뮤지컬 애니메이션은 아니다. 주인공이 재즈 뮤지션이라 음악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지적 '조' 시점에서는 원하지도 않았고 일생일대의 중요한 순간을 눈 앞에 두고서 어쩌다가 죽어버려 '절대로 다시 살아나고 싶어.'였고 전지적 '22' 시점에서는 딱히 지구에서 살고 싶지 않은데 도대체가 왜 지구에서 태어나라고 하는지 1도 모르겠어서 암튼 둘 다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하나는 지구에 가고싶고, 하나는 가고싶지 않고.

영혼의 성격은 알아서 정해주지만 지구에 가고싶은 이유를 찾는 'Spark'는 결국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 같다. 그게 무언가 당대한 목적이나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내가 지금 이 순간 왜 살고싶은지'는 사람마다 이유가 다를 것이니까. 태어나기 전 영혼의 멘토를 정해주는 자리에서 나타나는 멘토는 '사회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뛰어난 사람'의 영혼만 있었다는 것에서는 기분이 딱히 좋지 않았다. 사람마다 살고 싶은 이유가 다르고 어떤 것이 소중한지 '내가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왜 멘토를 맡는 영혼이 '위대한 업적을 이룬 유명한 사람'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링컨이나 마더 테레사 같은 사람이 삶의 소중함과 주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확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마더 테레사 별로 안 좋아함)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 스펙터클한 인생이 아닐지라도 모든 하루는 중요하고 모든 인생이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화를 관람하면서 음악은 매우 좋은데 뭔가 시각이 편협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성 주인공인 루벤은 매우 폭력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루벤의 경우 (아마도) 귀족이라고 생각될만큼 매우 부잣집의 외동아들이었으나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었다. 영화에서는 루벤이 왜 시력을 잃었는지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예전에는 볼 수 있었으나 서서히 시력을 잃어갔고 시력이 완전히 없어지기 전에 누군가 색깔에 대한 정보 등을 알려준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루벤은 전맹에 가까운 수준으로 시력을 잃었으나 빛을 구별할 수 있었으며 오랫동안 한 집에 머물렀기 때문에 활동지원 없이 집안 내부는 돌아다닐 수 있었다. 다만, 시력을 잃은 이후에 매우 난폭해져서 고용인에게 심각한 폭력을 휘둘렀으며 씻는 것을 싫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리는 난폭한 루벤에게 책을 읽어주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었다. 영화 시놉시스에는 '얼굴과 온 몸에 흉측한 상처가 있고 남들과 다른 모습'이라는 표현으로 마리의 외적 모습을 설명해두었지만 마리는 그저 알비노일 뿐이었고, 알비노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받았을 가능성은 매우 크지만 '얼굴과 온 몸이 흉측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알비노의 경우 사람에 따라 시각장애를 동반할 수도 있는데 안경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시각장애는 없지만 피부가 매우 약할 것 같다는 추측이 되었다.

이 영화는 사랑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나는 소통과 관계를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루벤의 경우 시각의 결핍으로 인하여 마음의 문을 닫고 그 누구와도 소통을 하려고 하지 않았고 그 어떤 관계도 맺고 싶어하지 않았다. 자신이 상처받은 것을 '폭력'으로 들어냈을 뿐이다. 마리는 알비노라는 이유때문에 차별이나 학대를 받았는지 영화에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는 길로 다니거나 사람 앞에서 후드를 쓰고 얼굴을 가리고 있는 마리의 행동으로 유추했을 때 '책' 이외의 그 어떤 소통도 거부한 것 같았다. 루벤과 마리가 서로 사랑에 빠졌다고 느낀 이유 중 하나는 마리가 책을 낭독하고 루벤이 그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서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통과 관계에 대한 갈증을 서로 풀어주었으며 서로에게 느낀 감정을 서로 사랑이라고 인식한다.

루벤이 각막이식수술로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게 되기 전, 마리는 그를 떠난다. 마리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루벤이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고 떠나면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거짓말로 루벤이 상처받을까 두려워서인지 알 수 없다. 마리는 루벤의 사랑을 순수하다고 표현했지만 나는 루벤의 사랑이 상당히 거칠고 폭력적이라고 느꼈기때문에 어떤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루벤은 눈을 뜨고 난 뒤 마리를 찾기 위해 집장촌까지 가지만 그 곳에서 일하는 여성에게도 폭력을 휘두른다. 또한 눈을 뜨기 전 가고싶다는 터키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온 뒤 도서관에서 찾은 마리에게 함께 있자고 제안하지만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자신의 손으로 다시 눈을 멀게 만든다. 순수한 사랑으로 마리를 갈망하기에 벌인 일이라기에는 너무나 폭력적이다. 루벤의 사랑은 순수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했던 것일까? 나는 이 영화가 아름답다고 쉬이 이야기 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화 내가 죽던 날의 티저를 보고 흥미를 느꼈다. 한국 영화의 티저를 보고 저 영화를 꼭 보고싶다는 생각을 한다는게 나에게는 극히 드문 일인데도. 개봉 당일에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개봉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상 김혜수가 주로 만나고 다니는 인물이 여성이었는데, 다양한 층위의 여성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여성은 이러하다.'는 어떤 문장 하나로 만들어지는 여성이 아닌 그저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는 느낌이었다. 몇몇 부분에서는 해당 지역에서 사는 여성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약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뭔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뿌려진 떡밥이 회수가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럴거면 왜 그런 신을 넣었는지 궁금한 것도 있었고, 너무나 뻔한 스토리로 이어져서 실망한 것도 있었다.

그래도 이 영화가 좋았던 것은 김혜수 배우와 이정은 배우가 연기를 잘 한다는 것과 이 두 배우가 어떤 상황에서도 소리를 지르거나 감정의 과잉을 보여주는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