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책을 완독하기가 참 어려운데 그 와중에 금정연과 정지돈의 대담집을 완독했다. 글빨 좋다. 두 사람은 아무 주제나 가지고 써대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영양의 문제는 나중이고.

문학의 기쁨이라는 제목은 무슨 생각으로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책 구매로 가장인 금정연 씨에게 조금의 인세라도 돌아간다면 그것도 기쁨은 기쁨이겠다. 한국 문학, 아니 문학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 두 사람이 힘을 내줬으면 좋겠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야 전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문학이 바뀌어야 한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고 세상에 해를 끼칠 리는 없지 않은가? 그래봐야 문학인데. 후장에 힘 주고 더 힘 내주기를. 아, 특별히 응원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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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9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와 독자 모두 기쁘게 해주는 문학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요? ^^

2017-04-19 13:11   좋아요 0 | URL
어쩐지 대강 지은 제목 같아서요. 본문 읽고 나니 말미에 나오는 ˝미래가 예전 같지 않다˝는 문장이 더 와닿았죠. 팔릴 문장인지는 모르겠지만.
 
디 아워스 - [할인행사]
스티븐 달드리 감독, 줄리안 무어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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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속에서 삶을 택한 사람들과, 삶을 위해 죽음조차 껴안으려 했던 사람들을 묘사하는 너무나 탁월한 시선. 잊을 수 없는 음악. 마음을 빼앗는 연기. 영화가 끝난 뒤에 영화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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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의 정석 - 무에서 유를 만드는 10가지 빡신 기획 습관 기획의 정석 시리즈
박신영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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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던 일을 하려니 막막하던 차에 좋은 길잡이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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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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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를 '굉장한데.'라며, 푹 빠져서 본 적이 있다. 극장에 잘 가지 않는 편이지만 《컨택트》는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이 영화 원작 소설이 있단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보관함에 넣어 두었을 뿐 아직 읽기 전이다)를 쓴 테드 창이 원작 소설가였다. 기대감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여덟 편의 소설로 묶인 소설집이다. 가장 앞에 실린 「바빌론의 탑」과 《컨택트》의 원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 두 편을 읽었다. 두 편 다 내 인생과는 다르게 매혹적이다. 또 다른 바벨탑을 쌓아 올려가는 인간들이 맞닥트린 결과와 헵타포드('일곱 개의 다리'라는 뜻이다)와의 교류를 통해 주인공의 인식이 변화하는 과정과 결말은 이란성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그것은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치의 충돌이지만 그와 동시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우리의 정신을 홀릴 것이다. 지적이며 독자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끌고 나가는 이 소설가의 뛰어난 조직 솜씨를 나는 조금도 훼손하고 싶지 않아서 글을 아낀다. 문밖에 펼쳐진 세계의 놀라움을 누구의 간섭 없이 경험할 권리가 당신에게는 있다. 나머지 여섯 편의 소설을 즐길 자유 역시 내게 남아 있다. 나는 책을 펼치면서도 나머지 여섯 편의 소설을 나의 자유 의지로 읽기 원한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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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2-07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책은 한 번에 다 읽기보다는 보고 싶을 때마다 봅니다. ^^

2017-02-07 13:17   좋아요 1 | URL
책과 연애하는 방법이 되겠네요.
 
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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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마지막 장에 적어둔 독서 기록을 보니 이번이 3회 차 독서다. 마지막으로 읽은 때가 약 4년 전이다. 나는 이전까지 《위대한 개츠비》가 왜 미국 문학의 금자탑에 포함되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했다. 오히려 미국 문학 전체를 낮춰 보게 될 정도였다. 이제 고요한 중에 깨어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지금까지 내가 무엇을 읽었던가 싶을 만큼 아름답고 흥미롭다. 이제는 내가 《위대한 게츠비》를 쓸 당시의 피츠제럴드 보다 나이가 조금 연상이기 때문에 뒤늦게 탄복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에 겐자부로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신의 나이와 비슷한 나이에 쓰인 작가의 작품을 다시 읽는다고 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실감이 나는 듯도 하다(그런 의미에서 나는 타인에 비해 몇 년은 뒤쳐진 인간인 듯도 하고).

그때에 붙잡을 만한 것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어느새 잊혀지고 마는 반딧불이의 아름다움 같은 것을 이토록 섬세하게 피츠제럴드가 포착해냈다. 개츠비는 위대하다기보다 어리석어 보인다. 그러나 개츠비를 둘러싼 군상들은 경멸스럽다.
개츠비를 보면 보바리 부인이 연상된다. 플로베르가 살아서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면 미국땅에서 쓰인 보바리 부인이라고 평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닉 캐러웨이가 개츠비의 죽음이 싸구려 기삿거리가 되지 않도록 진실에 가까운 회상을 하는 작업이라고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친구의 자살이 언론에 의해 희화화되는 데에 항변하기 위해 쓴 오에 겐자부로의 《체인질링》도 연상된다. 소설이 소설을 부르고 과거의 독서가 현재의 독서와 만나는 경험이라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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