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전면개정판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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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정권교체의 열망으로 들어선 새로운 정부의 대통령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낭독한 연설문을 들으며, 유족의 고인 되신 아버지를 향한 추모사를 들으며, 또 섧게 우는 유족을 안아주는 대통령을 보며 마음이 움직이고 눈시울이 붉어졌을 것이다. 나처럼 광주가 삶에 스며들지 못한 사람에게도 그날의 슬픔과 치유의 감동은 공감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광주의 역사가, 나라의 역사가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05, 광주가 육지의 섬으로 사람들의 눈과 귀에서 사라졌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오늘날의 관심은 어떤 의미에서 잔인하다. 우리는 언제나 늦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늦는다. 피의 유산으로 우리는 늘 최소한의 것들만을 배운다. 정신을 차리는 것 같다가도 우리가 언제 그런 일들을 원한 적이 있느냐고 퉁명스러워진다. 광주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노동의 현장에, 여성과 노인들의 삶에, 모든 소수자들의 나날에. 눈멀고 귀 어두운 자 바로 자신임을 아는 나로서는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조차 부끄러울 따름이다.

 

예고 없이 날아간 김재규의 총알에 박정희가 급사한다. 왕의 빈자리를 노리는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의 정당성 없음은 아마도 그들 자신이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유신의 먹구름 아래 느닷없이 비춘 한줄기 서광에 시민들이 들뜨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원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민중의 민주화를 위한 궐기와 외침이 이어지고 광주는 그 중에도 가장 또렷한 빛이고 일성이었다.

권력에 눈이 먼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은 5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광주는 그에 굴하지 않았다. 가장 밝은 빛이자 힘 있는 외침이었기 때문인가. 적군에게 반드시 이기기 위해 전투의 최정예들만 모여 있다는 공수부대가 광주에 들이닥쳐 굶주린 맹수처럼 사람들을 찢어발긴다.

책의 페이지를 어느 곳이고 펼쳐서 읽어보라. 광주의 보통 사람들을 향해 국가의 군인들이 악귀나 다름이 없는 잔악한 행동을 펼치지 않은 곳이 없다. 적어도 보통의 국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19805월의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당신이 이 책을 처음 읽는 것이라면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며, 슬픔에 사무칠 것이고, 공포에 질릴 것이며, 화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솔직히 말해서 믿기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보통의 학생이자 가장이고, 노동자이자 국민에 불과했던 광주의 시민들을 향한 공수부대원들의 불같은 증오다. 그들은 증오에 사로잡혀 악마가 되었다. 이유 없이 사람들에게 욕설을 내뱉고, 때리고, 부수고, 망가트렸다. 누가 그들에게 그토록 무시무시한 증오를 불어넣었는가? 그들은 왜 그와 같은 증오를 순순히 받아들였는가? 그리고 그 자들은 어째서 그렇게까지 뻔뻔할 수 있는가? 분명한 것은 화창한 5월의 태양 아래, 자유와 민주주의를 부르짖었거나 혹은 그렇지 않았거나 사실 아무 관계없이 그날 그곳에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광주의 시민들은 맞고, 쓰러졌고, 부서졌고, 죽임 당했다는 사실이다.

522, 트럭으로 채소 행상을 하던 김성수(46) 가족에게 가해진 참혹함은 이 책에서 수도 없이 반복된다. 계엄군이 광주의 모든 길목을 차단해 고립시키던 중에 진도에 사는 김성수는 아내 김춘화(43)와 막내딸 김내향(5)을 태우고 집으로 가기 위해 광주교도소 근처 진입로를 빠져나가는 길에 검문소에서 계엄군과 맞닥트렸다.

 

교도소 앞에는 버스와 트럭으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그들은 서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그들 앞에 섰다. 아내는 사정을 하였다. 계엄군들 중 한명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러더니 아내를 발길로 걷어차며 안 된다고 돌아가라고 하였다. ‘! 돌아가지 않으면 죽여버려!’ 하며 총을 겨누었다. 나는 어쩔 수없이 차를 돌렸다. 그 순간 총소리가 들렸다. 내 차의 여기저기를 총탄이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차량의 속도를 높였을 땐 차 안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다섯 살밖에 안 된 내 딸 내향이의 허리에서는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아내는 어느 곳이랄 것 없이 여기저기서 피가 나왔다. 나의 옆구리에서도 피가 시트로 흘러 흥건하였다. 3백여 미터를 간 나는 정신을 잃어버렸다.” 256쪽에서 인용.

 

나는 고백컨대, 김성수 가족에게 가해진 비인간적인 폭력 앞에 분노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다만 아무런 실감이 나질 않았다. 이 책의 한 부분은 거대한 악의 축제로 구성되어 있어서(또 다른 부분은 불의에 저항하는 자들의 분노와 결의와 동지애, 그리고 공기처럼 감도는 슬픔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무지 제정신을 가지고 읽어낼 수가 없다. 기묘하고 심각하게 뒤틀린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불과 37년 전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어느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실감은 나중에서야 절망인지 슬픔인지 안도인지 형태를 알 수 없는 감정의 속살과 함께 찾아온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서평이라는 것을 작성해야 할 의무를 부여받았지만 솔직히 말해 다 읽지 못했고, 더군다나 온전히 읽지도 못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이 책을 차갑게 읽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뜨겁게 읽을 수도 없었다. 아마 그것은 그날의 현장을 꼼꼼히 복원하려는 듯한 이 책의 서술 형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불의에 저항했던 민중항쟁의 드높은 정신 이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으로 비참하고 허망하게 스러져간 괴이한 참극이라는 사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한번은 읽고 싶었으나 절판으로 인해 구하기조차 힘들었던 책이 다시 보충되어 세상에 나오니 진심으로 반갑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경위 또한 감동의 드라마이다. ‘전남대 민주교육지표사건5.18 관련 혐의로 구속된 정용화와 역시 전남대 민주교육지표사건으로 옥살이한 조봉훈이 석방 직후 반드시 진실규명을 해야 한다는 일념 하에 자료집 발간을 결심했다. 후에 소준섭, 김상집이 합류하고 수많은 이들의 도움과 증언이 더해졌다. 소준섭이 당시 모인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42면짜리 팸플릿 광주백서를 약 120부 인쇄하고는 잠시 관련 작업이 중단된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갔던 것이다.

이후 우여곡절로 취재와 기록 활동의 중단과 재활을 반복하다가 1894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이하 전청협’)의 출범으로 가속도가 붙게 된다. 초대 의장인 정상용, 부의장 정용화는 ‘5.18 진상 규명을 전청협의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삼고 극비리에 자료집의 출판 작업을 계획한다. 1985년 발간된 책의 실질적인 집필은 당시 전남대 경제학과 3학년 복학생이었던 이재의가 맡았다. 이재의는 자신의 가장 믿을만한 친구인 조양훈에게 공동 집필을 요청했다. 조양훈은 수락했다. 이재의와 조양훈은 광주백서를 바탕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애썼다. 이러한 취재와 집필 과정이 얼마나 비밀스럽게 일어났을지, 또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지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간다. 그 서슬 퍼런 정부 아래에서 얼마나 숨죽이며 분을 삭여야했을 것인가.

초고가 어느 정도 완성된 이후 문제는 책의 출판과 집필을 책임져줄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당시의 전두환 정부의 치부를 명명백백히 드러낼 책을 출판하고 집필자로 나서려는 이는 드물었다. 구속은 물론이고 어떤 치욕과 폭압에 시달리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몇몇 인사들로부터 거절을 겪은 뒤에야 전남사회운동협의회 전계량 대표와 풀빛 출판사의 나병식 대표가 출판을 맡기로 했다. 이름난 소설가였던 황석영 역시 흔쾌히 집필자로 자임하고 나섰다. 이들 모두 용기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황석영이 이 책의 실질적인 집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인기 소설가인 황석영을 찾았고 황석영은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당시의 문학인들은 이런 사람들이었다.

1985년 발간되자마자 사찰 당국의 철저한 압수 와중에도 결국 진실을 열망하는 이들에 의해 베스트셀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오늘날 다시 출판되어야 하는 이유가 책의 말미에 나온다.

 

“2008년 보수정권이 집권하면서부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수난을 맞게 되었다. 보수정권의 보이지 않는 비호 아래 일베나 극우 선동가 집단이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광주에 북한군이 내려왔다거나, 복면한 시민군을 북한 특수군이라고 우겨댔다. 5.18기념곡으로 애창되던 임을 위한 행진곡도 공식 기념행사에서 제창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에 담긴 내용들은 대부분 유언비어이며, 북한자료를 베껴 쓴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심지어 집필자들이 간첩이라는 등 개인적인 인신공격도 극심해졌다. 그들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여도 사법 당국은 그런 자들의 처벌에 소극적이었다. 이런 황당한 상황을 목도하면서 광주시민들은 분노했다. 2013년 말부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다시 써야 한다는 성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1985년 전두환 정권의 탄압을 뚫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초판을 썼듯이, 보수정권의 역사 왜곡과거 회귀를 저지하고 젊은 세대들에게 5.18의 진실을 다시 알리기 위해 개정판을 써야한다는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됐다.” 583쪽에서 인용.

 

나는 이 글 서두에서 부끄러움을 고백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다시 쓰여야했던 이유가 보수정권의 역사 왜곡과거 회귀를 저지하기 위함이기도 할 것이다. 허나 나와 같이 보수정권의 역사 왜곡과 과거 회귀에 콧방귀를 끼고 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다시 쓰여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은 그때 그 날의 광주의 고립을 다시 한 번 되새기기 위함이라고 말하겠다. 광주가 전국으로 확산될 것을 두려워했던 악랄한 정부의 통제가 불러온 고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고립의 저울에 추하나 올리고 마는 나 자신으로 인한 고립을 말하는 것이다. 광주의 눈물은 오늘까지도 마르지 않는다.

글이야 무어라고 써댄다고 해도 이후로도 오랫동안 여전히 변하지 않을 나 자신을 생각하니 역시나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다만, 부끄러울 바에야 더 부끄러워하겠다. 부끄럽고 더 부끄럽고 부끄러움에 끝을 보자는 심정으로 부끄러워하겠다. 우리의 새로운 대통령이 말했듯이 그것이 어쩌면 끝내 지워지지 않는 부채감으로 남게 된다면, 어쩌면 부끄러움이 나 자신을 조금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줄지도 모를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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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상황일지 중.

5월 27일 (화요일, 맑음)
- (새벽)3시 00분 :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여성의 애절한 시내 가두방송.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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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를 쓰다 슈테판 츠바이크 평전시리즈 3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원당희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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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 가지 감상을 가슴에 남긴다.
니체는 격렬하고 섬세한 음악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도 격렬하고 섬세한 음악이다.
이 책은 격렬하고 섬세한 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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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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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설을 읽고 별 볼 일 없는 글을 남긴다는 것만큼 자괴감에 드는 일도 없다. 다만 나는 이 소설이 왜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가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얘기하는 것이 이 자괴감을 더는 나름의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소설이란 우선 삶이 아름답다는 확신을 가진 소설이다. 그리고 그 눈부신 순간을 포착해 껴안아 보여주는 소설이다. 여기까지는 너무나 당연한 조건인 듯하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후가 사실 어떤 점에선 더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이런 점들이다. 삶의 절정은 매우 짧고 빠르게 지나간다는 사실, 그때의 눈부심이 사실 절정 이후의 쇠락해가는 개인의 삶을 이따금씩이나마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 저 달의 광휘를 알기 위해 끝없이 펼쳐진 어두운 밤하늘을 피할 도리가 없다는 사실. 바로 그런 사실들을 말하는 소설이 아름답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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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법
오한기 지음 / 현대문학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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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시간 낭비다.

오한기의 소설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튀어나왔다. 그런데 결국 다 읽었다.
까짓 시간 낭비 얼마든지 해주지 뭐
하는 마음이 든다. 이상하다. 이상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그 이상은 별로 할 말이 없다.
이런 식이면 나도 한 번 써볼까. 생각은 했지만 이런 걸 써서 또 뭐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결국 못 쓸 거라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오한기가 쓰겠지. 나는 읽고. 그게 낫다. 시간 낭비는 그 정도가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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