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를 그만두다 - 소비자본주의의 모순을 꿰뚫고 내 삶의 가치를 지켜줄 적극적 대안과 실천
히라카와 가쓰미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같은 출판사에서 발간된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인상적으로 읽고 읽게 된 책이다. 시골 빵집 저자가 본 책의 저자인 히라카와 가쓰미의 《소상인이 돼라》에서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소상인`은 아직 국내에 번역 발간 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자는 소비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좋은 소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월마트에서 물품을 구매하는 대신 좀 더 비싸더라도 믿을 수 있고 성실한 사람들이 생산하는 제품을 구매해야 자본주의 세계를 정화시키고 소비자로서의 삶도 균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글은 명쾌하고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큰 틀에서는 동의할 수밖에 없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는 속 편한 중산층의 젠체하는 말로 들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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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한국타이어, 쌍용자동차, 삼성SDI 등등.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들에서 억울하고 잔인하게 내동쟁이 쳐진, 혹은 더럽고 치사해서 제 발로 나왔으나 디디려니 여전히 지뢰밭인 이들의 구술집이다. 저자가 매끈하고 조리 있게 다듬었을 문장들을 통해 어떻게 될 것 같지가 않은 대단한 기업들의 대담한 횡포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대한민국의 나쁜 기업들에 대한 보고서라고 하지만 실상 현 대한민국의 치부를 진단하고 절개한 것처럼 읽힌다. 이미 우리가 어느 정도로 기업친화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지를 고려한다면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사실은 놀라야 하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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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새겨 둘 가르침이다. 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글은 정신의 빵이니까.

빵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고, 입으로 들어간 음식은 우리 몸이 된다. 그러니까 빵은 사람의 생명을 만드는 물질인 셈이다. 책임감을 가지고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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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카뮈답지 않은 소설이다. 마치 카뮈가 쓴 《지하로부터의 수기》 같다. 여기에서 《페스트》의 세속의 성인은 잊혀진다. 하지만 소설의 화자인 장 밥티스트 클라망스에게서 내가 보게 되는 것 또한 카뮈다.

전직 변호사인 클라망스는 암스테르담의 한 술집에서 초면의 어느 신사와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미 시작된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클라망스는 자신의 도덕적인 성품을 자랑한다. 변호사 시절 법률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이들을 선뜻 변호하던 일, 불우한 처지의 사람들을 앞장서 돕던 일 등을 떠벌린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위선이었음을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자신의 위선을 고백하는 클라라망스는 심지어 즐거워 보인다. 타인을 심판하기 위해 자신을 우선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나 나나. 피장파장.

이 소설을 쓰던 시기의 카뮈는 좋지 않았다. 정치적 논쟁에 시달려 가짜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거의 만성적이라 할 수 있는 폐의 상태는 더 나빠졌다. 마흔이 넘어가는 시기였고, 아내 역시 병이 들었다. 아마 자신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카뮈는 역부족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작품다운 작품을 쓰지 못했다. 희곡 대본과 몇 편의 단편 소설을 쓰기는 했지만 카뮈는 그런 것에 만족을 느끼지 못했다.

장 밥티스트 클라망스는 신랄하고 명철하지만 빈정거리는 사람이다. 카뮈는 자신의 어두운 지점을 포착했을 것이다. 음지에 웅크리고 있던 그림자가 이제는 노크를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그림자는 카뮈에겐 현대인의 특성이라고 여겨졌다. 우리는 모두(사람이 죽어가는데도 방관함으로써 그에 일부분 동의했으므로) 어느 정도 죄인이며, 중요한 것은 나 아닌 타인이 나를 심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먼저 바닥에 내려갈 것. 그곳에서 납작 엎드려 공중에서 추락하기만을 기다리는 자들을 비웃을 것.
카뮈는 이 소설을 쓰고 난 뒤에야 자신의 유년 시절로 돌아가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를 실현시키게 된다. 물론 그 작업은 완성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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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고 착각하고 계십니까?



정말이지 버림받을 위험에 처했을 때 나를 자극시킨 감정은 사랑도 너그러움도 아니었고 다만 사랑받고 싶은 욕망, 그리고 내 생각으로는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고 싶은 욕망이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사랑을 받게 되면 즉시 파트너는 다시금 까맣게 잊혀졌고 나는 득의만면, 한껏 기분 좋고 이해심 많은 사내가 되는 것이었어요. ㅡ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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