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 한나 아렌트를 읽어야 하는가?
나카마사 마사키 지음, 김경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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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나 아렌트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나와 같은 독자도 이 책을 읽고난 뒤 `한나 아렌트는 이런 주장을 담은 책들을 써왔군` 하고 아는 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입문서로 크게 나무랄 데 없다. 내용도 문장도 명료하다. 저자는 사상가로서의 한나 아렌트를 좋아하는 게 틀림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좋은 점을 낯선 사람에게 잘 전달하고 싶을 때의 성실함과 친절함마저 느껴진다. 편집도 가독성에 최적화되어 있다.
˝한나 아렌트라고... 한 번 만나 볼래?˝ 한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길 주저할 필요는 없다.

다만, 책의 종장에 이르러 전개되는 필자의 주장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한나 아렌트의 저술을 대단히 개괄하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무모하게 개괄하자면 반전체주의자로서의 한나 아렌트는 공공의 복수성이 존중되는 무대로서 정치의 담보와 행위(한나 아렌트에게 행위란 의사소통을 통해 상대에게 작용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설득하기와 같은 행동) 하는 인간으로 존재하려는 노력을 무엇보다 우선적인 가치로 둔다. 만년의 한나 아렌트는 사유와 행위의 상관관계, 즉 사유에서 행위로 나아가야만 하는 당위성을 고찰하기 위해 《정신의 삶》을 집필하던 중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이 미완의 작품에서 전개되었을 법한 그녀의 사유를 미루어 짐작해 이 책의 저자는 오늘날의 우리가 정치적 인간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논증하고 있는데... 그러한 논증의 배경은 이해 못 할 바 아니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혹시나 그 석연치 않음에 대해 궁금증이 이시는 분은 직접 독서를 하셔도 좋다. 뭐라 해도 한나 아렌트의 입문서로는 읽어도 아깝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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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한 도형의 세계 - 이야기로 배우는 기하학의 원리
안나 체라솔리 지음, 박진아 옮김, 김인강 감수 / 에코리브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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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소위 `수포자`라 불리는 유형에서도 그 전형에 속하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플라톤은 그가 운영한 학교인 아카데메이아 입구에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출입을 금지한다는 푯말을 써붙였다는데, 나는 플라톤의 권고를 무시하고 철학에 기웃거렸다. 하지만 플라톤이 맞고 내가 틀렸다. 아카데메이아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기하학을 모르고는 철학의 중심부로 들어갈 수가 없다. 아무렴 그렇더이다 플 선생. 그럼 수포자인 내게 누가 기하학을 가르쳐줄 것인가!

단적으로 얘기해서 나는 순도 높은(?) 수포자이기 때문에 수포자가, 그것도 때 늦은 시기에 수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 책은 그런 수포자들의 때 늦은 구애를 위한 최상의 베르길리우스다. 시리즈도 여러 개 있다. 저자에게 영광 있으라.

덧) 어디까지나 순도 높은 수포자의 입장에서 내린 평가이니 유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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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26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학을 머리 쓰면서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수학을 눈으로 보면서 천천히 이해하는 것은 좋았어요. 물론 저도 고등학생 때 수포자였습니당 ㅎㅎㅎ

2016-02-26 17:43   좋아요 0 | URL
눈으로 보면서 천천히 이해하는 수학의 즐거움이 뭔지 저도 이 친절한 책을 통해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도 빠지지 않는 수포자로서 수학이 사실 즐거울 수도 있다는 경험 때문에 즐겁습니다. ^^

깊이에의강요 2016-02-27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포자에게 희소식이네요^^
수학은 일찍이 포기했으나
그 즐거움은 항상 느껴보고 싶었거든요~~


2016-02-27 13:51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그런 입장이어서 이 책이 고맙더라구요. ^^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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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프리모 레비라는 작가의 책을 읽기 전에 그에 대한 소개를 방송에서 들은 적이 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작가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으며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자 증언자로서 대단히 훌륭한 글을 썼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 결말이 당시의 내게는 충격이었다. 청취를 중단하고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세상에... 나는 추상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채로 라거(당시에는 이 용어를 몰랐다) 자체가 지옥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간이 만들어낸 지상의 지옥으로써 그만한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그리고 하고 있다). 그런데 지옥에서도 살아남았던 이가 연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세상에...

도쿄케이자이 대학의 서경식 교수는 부록으로 실린 해설에서, 자신은 이 책을 읽고난 뒤 작가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이는 예언적 성격의 발언은 아니다. 당시 프리모 레비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했다. 죽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이해했다고 썼다. 프리모 레비는 라거 내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 했다. 자살은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적 삶을 강요받고 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자살을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이 책의 8장인 <독일인들의 편지>를 읽다가 나 자신이 프리모 레비의 미약한 희망과 심대한 고통과 명철한 이성으로 엮인 이 분석적 증언을 역사적 당사자들의 입장과 얼마나 큰 시차를 두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비단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작가가 내내 그것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대가 지날 수록 역사의 무지와 망각으로 인한 간극의 확장에서 어떤 절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 내 마음에 닿은 그 뒤부터 마음이 편치 않다. 나는 한 사람의 자살에 관해 말할 때면 언제나 자신이 없지만, 적어도 일본의 전체주의화가 도드라지게 확산되고 있는 현상에 일갈을 아끼지 않는 서경식 교수가 십분 이해했다는 작가의 자살에, 앞서 말한 종류의 절망이 손길을 내밀었다고 짐작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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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1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1 16:14   좋아요 1 | URL
이 책의 6장인 <아우슈비츠의 지식인>은 그 장 아메리에 대한 공감이자 비판의 장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유레카님의 언급 덕분에 다시 한 번 그 장을 읽다가 장 아메리의 자살을 두고 프리모 레비가 이렇게 논한 대목이 있어서 옮겨 봅니다.

˝온 세상과 `주먹다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엄성을 되찾을 순 있지만 너무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다. 곧 패배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 이후 10년이 되지 않아 같은 방식으로 삶을 마감할 줄을 작가 자신이 예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장 아메리는 프랑스 작가로 살기를 원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프리모 레비는 쓰고 있네요. 오스트리아 출신의 장 아메리의 본명은 한스 마이어로 오스트리아의 독일 합병 당시 조국을 떠나면서 스스로 개명했다고 합니다.

2016-02-11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2-11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비와 아메리는 살아 남아 있었어도 죽을 때까지 수용소 안에서 지내는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2016-02-11 19:51   좋아요 0 | URL
공감합니다. 프리모 레비의 경우 오히려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소명의식으로써 말이죠.
 

책 이야기는 아니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출판사에 대한 이야기이니 사실상 책에 대한 이야기겠다. 요점은 읽고 싶은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출판사에서 출판되는 괴로움에 대한 한탄이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게 된다. 일방적 규탄 이전에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도흠 교수의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사사키 아타루의 《야전과 영원》이라는 책을 읽어 보고 싶다. 직접 읽지는 못했지만 고견을 갖춘 분들이 나서서 추천하는 책들이니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바가 없지 않다. 눈치를 채신 분들은 벌써 알아차리셨겠지만 출판사가 `자음과 모음`인 것이다.

출판사 자음과 모음의 이런저런 비행에 대해서는 뉴스를 통해 제법 보도가 되었다. 굳이 내가 더 들추어 낼 것도 없다. 그 중에도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좌천된 편집자 윤정기 씨 사건은 아직도 문제의 근본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미봉적 해결로 그치고 있다. 한 개인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히 끝낼 수가 없는 것이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2106032

나는 출판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른다. 혹여 자음과 모음의 운영진 입장에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경색되어 가는 출판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설명할지도 모른다. 사소한 문제로 회사 전체를 매도하는 건 비합리적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이미 익숙한 주장들이다. 익숙한 만큼 거기에는 어떤 현실적 근거가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여러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자행하는 부당함까지 언급하며 논점을 확장시킨다면 이 글은 무모할 것이다. 다만,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와 같은,《야전과 영원》과 같은 책을 만들고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결과물이 지향하는 바와 상충하는 일을 하고 마는지. 또 그런 결과에 대해 왜 자성하지 않고, 자성한다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인지. 무척 안타까운 마음으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애정이 없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한낱 독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뿐이다. 독자의 바람은 좋은 책을 읽는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독자는 독자 이전에 인간이다. 책과 인간이 상호보완적이라면, 좋은 책은 좋은 인간과 동떨어질 수 없다. 내가 카뮈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말과 행동이 일치했던 부류의 작가였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돌아본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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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30 14: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쥰님의 고민, 저도 이해합니다. 문제 출판사의 소식을 듣고 나면 해당 출판사의 책을 사는 것도, 읽는 것도 꺼려집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에 갇히면 정작 좋은 내용을 담은 책과 저자가 외면을 받게 됩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죠.

저도 자음과모음 출판사에 크게 실망한 독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문제 있는 출판사의 책을 사서 읽는 독자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출판사의 문제점을 알지 못하고 해당 출판사를 옹호하는 독자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출판사가 이미지 쇄신을 위해 각종 수단을 동원해서 과거 세탁을 합니다. 출판업계의 현실을 모르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책 만드는 사람들이 부당한 처사를 받는 불행한 일을 독자들도 알아야 합니다.

2016-01-30 15:35   좋아요 0 | URL
cyrus님과 저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깊고 고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답이 쉽사리 나오지 않겠지만요. 말 그대로 아이러니입니다.

문제 의식의 공유가 해결의 첫걸음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견에 공감합니다.

yureka01 2016-01-30 14: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책중 시공사에서 나온 명작이 많았습니다.시공사가 어떤 돈으로 설립된 출판사인지...그런 곳에서 만든 책이 아무리 우수하다한들 마음이 가지 않는게 사실입니다.출판사에서는 이걸 존재 빌미가 되는 경우가 되니까요. 어떤 출판사든지 출판인을 홀대하며 좋은 책은 그저 가식일 뿐입니다.책도 물론 이지만 이에 걸맞는 출판종사자들이 대우 받아야 하거든요.

2016-01-30 15:48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대로의 이유 때문에 시공사의 책과 반디앤루니스의 이용이 꺼려질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그로부터 받은 지적 혜택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 웃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출판계 종사자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은 익히 들은 바가 없지 않습니다. 책이 상품으로 취급되는 경향이 거센 시대에 어떤 방식의 개선이 우선되어야 하는지 저로서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일개 독자의 문제 의식을 넘어서는 문제를 언급하는 바람에 더 혼란스럽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별이랑 2016-01-30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격하게 공감합니다.

쥰님 처럼 저도 읽고는 싶으나 출판사가 맘에 걸려서 혼자 끙끙 거린적이 몇번 있어요.
저는 장르소설을 많이 읽는데, 표절 문제에 대처하는 출판사 방식이 마음에 안들어서 나홀로 불매하다가 글은 읽고픈데... 이럼서 고민.
결국 호기심한테 지면 차선으로 중고책 구매하곤 했어요.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한테 책임감에 정의로움 까지 바라는게 무리인가 싶기도하고...

2016-01-30 15:59   좋아요 0 | URL
별이랑님의 가슴앓이가 실감이 날 것 같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외롭지 않아야 하는데 실은 외롭다는 느낌이 듭니다.

출판사는(실은 모든 기업이) 독자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니까, 어떤 요구도 무리하다고 쉽게 치부할 수는 없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물며 그 문제가 생산물의 근본적 성질에 닿아 있다면 더더욱 말입니다. 그 가슴앓이를 응원하겠습니다.

雨香 2016-01-30 16:51   좋아요 1 | URL
별이랑님처럼 혼자 끙끙대기까지는 아니지만,
혼자 불매운동하고 그러긴 합니다.
간혹 시공사에서 나온 책은 새 책 보다는 중고책으로.......

만병통치약 2016-01-30 16: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뿐만 아니라 언제부터인가 소비하는 순간부터 그 재화 생산과 유통과정 어디에선가 벌어지는 착취와 불평등에 참여하는 세상이 되었죠. 순수를 지키고 고결하기 힘든 세상이에요

2016-01-30 16:22   좋아요 1 | URL
˝소비하는 순간부터 그 재화 생산과 유통과정 어디에선가 벌어지는 착취와 불평등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통찰에 깊이 공감합니다. 피곤하지만 새겨두지 않으면 안 될 통찰입니다.

프로필을 보고 가라타니 고진 읽기에 도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도 도전하고 있는 중인데 모두 성공적으로 완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16-02-12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3 14:56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먼저 편집자 분께서 직접 답글을 남겨주실 줄은(실은 글을 읽을 거라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조금 놀랐습니다. 고민되셨을 거라는 입장이 이해가 될 것 같아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기도 합니다. 저도 어떤 식으로 답변을 드려야 할지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 지체가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먼저 출판사와 관련해서는 본문에 개인적인 독자로서의 입장이 드러나있으니 더는 말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언급한 해당 책의 저자와 역자, 더 나아가 편집자들의 노고와 지향점을 출판사의 비행에 한 데 묶어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외부에는 밝혀지지 않는 내부의 사정이라는 것도 있을 테고 그 점도 밝혀진 사정만큼이나(더 혹은 덜) 중요한 것이겠죠. 내부와 외부의 역할이라는 것이 있겠지만 여기에서 요는 그런 것으로 책이 받는 상처가 우려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답글을 남겨주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을 직접 전해주시겠다는 제안에 먼저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면서도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정중하게 사양한다는 말을 같이 드려야겠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하신 제안이라고 생각되어 그런 선택을 했다는 점을 덧붙이겠습니다. 말 그대로 심신의 노고가 들어간 양질의 책(일 거라고 믿습니다)을 무턱대고 받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될 수 있으면 제 값을 주고 사서 읽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게 책과 책을 만드신 분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는 점도 덧붙이겠습니다.

아무쪼록 꾸준히 좋은 책을 만들어 주시길 바라고 기대하겠습니다. 편집자님의 고마운 마음과 이름을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책을 만드는 이들의 노고를 기억하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 되지 못했다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

2016-02-15 11: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16 11:23   좋아요 0 | URL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나마 대화 나눌 수 있어서 진심으로 반가웠습니다. ^^

말씀하신 책들은 읽어보도록 할 계획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 만들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
 
리오타르, 왜 철학을 하는가?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 지음, 코린 에노도 해제, 이세진 옮김, 이성근 감수 / 북노마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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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르본 대학에서 1964년, 리오타르가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네 차례 강연한 철학수업의 원고본이다. 리오타르의 주저로 알려진 책들의 발간 시기를 감안하면(《포스트모던의 조건》(1979), 《쟁론》(1983)) 철학자로서 아직은 워밍업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강의를 기반으로 한 저서의 강점은 주제가 비교적 선명하고 글이 소략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하는데(물론 그 점이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본 저서 역시 두 요건을 충족한다. 리오타르는 철학하는 원인이 욕망에 있다고 본다. 욕망은 결핍의 반증이다. 철학의 결핍은 일자, 즉 통일의 부재에서 기원하며 이 통일에의 욕망과 그 영원한 미달의 존속이 철학의 역사이자 원동력이라고 하는 것이 두 강의 내용의 핵심이다. 이후의 두 강의에서는 사유보다 앞서 주어진 언어체계 안에서 철학하기의 의미와 철학이 실천으로 이어져야하는 의의에 대해서 설파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주제의 크기에 비해 논거가 정치하지 못해서 감질맛이 난다. 수용자의 능력부족도 한몫한다.

현실의 결핍에 있어 철학이 해답을 주지 못할 것이며 어떤 면에선 철학이 그래야한다는 당위성을 거부하는 것을 하나의 주의로 내세우고 있는 리오타르의 사유에서는 패배를 직감하면서도 전장으로 나서는 장수의 체념과 결의 같은 것이 느껴진다. 어쩐지 서글프면서도 뒷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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